|
|
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맹물을마시자
출처 : 여성시대 맹물을 마시자
여시들 안녕
수렴청정이라는 단어가 아마 대부분 익숙할거야
미디어 상에서 수렴청정은 외척의 득세...나약한 왕권...이런 거랑 연결되어 보여지는 경우가 많아
왠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 수렴청정은 세습군주국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또 공적으로 인정 받는 제도였어
여기서 수렴이란 발을 내린다는 것을 뜻하고 (유교 국가에서 정사를 논하는데 남녀가 얼굴을 마주할 수 없으니...)
청정은 정사에 대해 듣는다는 것을 뜻해
조선시대에는 총 6명의 왕비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그 왕비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어
조선에서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왕비는 세조(수양대군)의 왕비인 정희왕후 윤씨야
세조와 정희왕후는 금슬이 좋은 부부였고, 계유정난 당시에 세조가 출정을 망설이자 정희왕후가 직접 갑옷을 입혀주며 나아갈 것을 독려했다..라는 일화도 남아있어
세조와 정희왕후 사이에는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세자 시절 젊은 나이게 죽고 말아
이에 둘째아들인 예종이 즉위하는데 예종도 그만 갓난아이인 아들 하나를 남겨두고 세상을 뜨게되자,
큰아들의 차남인 성종이 즉위하게 돼
비록 아기라고는 하지만 예종에게도 아들이 있었고, 또 성종의 위에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도 성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데에는 정희왕후의 결단 없이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되고 있어 (손자들이 모두 어린 상황에서 처가가 가장 강력한 성종이 왕이 되는게 낫다고 판단한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은 내 추측...)
정희왕후는 13살에 즉위한 성종이 20세가 될 때까지 수렴청정을 하는데, 사실상 뒤의 5년은 형식적인 수렴청정이었다고 해
(실제 정사는 성종이 살핀 것으로 여겨짐)
또 수렴청정이라고는 하지만 정희왕후는 직접 정사를 보는 곳에 나아가 발을 치고 앉아있진 않았고,
따로 전해 듣고 결정만 내렸다고 함
특이한 점 하나는 정희왕후는 한문에 능숙하지 못해서 한글로 신하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했다고 함...
정희왕후가 한 일 중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단종과 관련된 이들의 처우를 개선한 일인데,
단종 왕비인 정순왕후에게 양곡을 주게 했고 단종의 조카인 정미수(경혜공주의 아들)가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줌
사실 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세조의 후손인 왕들은 정통성 문제 때문이라도 단종과 관련된 이들에게
너그러운 처사를 보이기가 어려웠어
그나마 아내인 정희왕후 정도 되어야만 이런 처결을 할 수 있었던 것...
두번째는 바로 수렴청정을 한 왕비 중에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 싶은 문정왕후 윤씨
문정왕후는 중종의 세번째 왕비로 명종의 어머니였어
(참고로 정희왕후와 문정왕후 둘 다 파평윤씨)
문정왕후는 자신의 의붓아들인 인종(중종의 두번째 왕비인 장경왕후의 아들)과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했는데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인종을 문정왕후가 죽인 것이나 다름 없다는 야사들도 많이 남아있어
야사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저런 소문이 퍼질 만큼 두 사람 사이가 안좋았던 것은 사실인 모양
(두사람 사이가 안좋았다기 보다는 문정왕후가 인종을 핍박한 것에 가깝지만...)
인종이 젊은 나이에 죽고,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이 12살의 나이에 왕이 되자 경원대군의 생모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돼
정희왕후와 달리 문정왕후는 직접 편전에서 발을 내리고 정치를 했고, 문정왕후 수렴청정기에 소위 '소윤'이라고 불리는 문정왕후 친정 세력이 득세(그 유명한 윤원형과 정난정)했음
문정왕후 수렴청정기에는 파란만장한 정치적 사건들이 있었어
인종의 친위 세력이던 '대윤'세력을 대거 숙청한 을사사화, 종친들도 죽어나간 정미사화...
문정왕후를 두고 사람들이 "여왕"이라고 부를만큼 문정왕후의 위세는 그야말로 임금 이상이었어
명종이 20살이 되자 문정왕후도 수렴청정을 거두는데, 이후에도 죽기 전까지 외척들을 이용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야사에는 다 큰 명종을 문정왕후가 자기 말을 안들으면 회초리를 치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있음 ㅇㅇ
이건 문정왕후가 대비 시절 사용한 어보인데 한국전쟁기에 미국으로 흘러갔다가 17년도에 환수됨
3번은 바로 위에 나온 문정왕후의 며느리인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야
인순왕후는 명종과의 사이에서 순회세자라는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병약해 일찍 죽고 말아
이에 직계가 끊기고 최초로 방계 출신 임금이 왕위에 오르는데 바로 선조..
선조는 왕위에 오를 때 16세로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었는데,
제대로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 계승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위한 기간이 필요해 인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한 것으로 보여
그래서인지 인순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은 8개월로 가장 짧아
인순왕후의 남동생은 바로 한국사 붕당정치 공부하던 여시들에게 익숙할 심의겸인데,
앞선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시기 외척의 전횡이 심했기 때문인지 인순왕후는 척신의 등용을 꺼려했다고해
네번째는 바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야
정순왕후는 미디어에서 정조의 대척점에 서있던 인물로 많이 묘사되고, 이후 외척의 세도정치가 이어져서인지
그 원흉으로 여겨지는 일이 많지만 나는 좀 억울한 점이 많다고 생각함 ㅠㅠ...
(일단 정순왕후는 안동김씨도 아님...)
정순왕후는 무려 자신보다 51살이나 많은 영조의 계비로 책봉 돼
의붓아들이 되는 사도세자가 영조의 늦둥이 임에도 정순왕후보다 10살이나 많았음
어머니를 넘어 할머니 뻘인 후궁들과 이모, 언니뻘인 며느리들 사이에서 정순왕후가 자신의 자리를 잡기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 돼
말년의 정조는 위독한 상황에서 "수정전"(당시 정순왕후가 머물던 처소)이라고 간신히 얘기하는데,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봐라! 이게 정순왕후가 배후라는 증거다!라고 하지만 정조 독살설은 신빙성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어린 세자를 걱정한 정조가 왕대비에게 뒤를 부탁하기 위해 정순왕후를 찾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해
(정조의 문집을 보아도 정순왕후에게 호의적인 내용들을 볼 수 있음)
특히 영조 말년에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정순왕후와 그 가문이 세손이던 정조를 옹위한 기록들이 남아있음...
다만 정순왕후의 가문인 경주김씨와, 며느리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의 친정이 서로 대립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해
정조의 아들인 순조가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당시 왕실 최고 어른이던 정순왕후가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하게 돼
수렴청정 초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벌(신유박해)이 벌어지는데 이 때 혜경궁 홍씨의 남동생인 홍낙임이 연루돼
홍낙임의 처벌을 막기 위해 혜경궁 홍씨가 자결을 시도하고,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가 석고대죄를 하며 막아서지만
최후에는 사사되고 말아
신유박해가 정순왕후 일파가 자신의 반대세력을 쳐내려고 한 시도로도 많이 읽히지만 오히려 정순왕후는 이들에 대한 지나친 처벌이나 국문을 막으려 했고
신유박해의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무부무군"(임금도 없고 아비도 없다.)라는 천주교 신자의 메모였는데, 조선에서 이게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올만한 내용인지 생각해보면...
순조가 14살이 되자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두고 물러남
다섯번째인 순원왕후는 유일하게 수렴청정을 두 번한 인물이야
순원왕후는 정조 말년에 세자빈으로 간택되는데, 간택 후 빈궁으로 내정되었지만 혼례를 올리기 전에 정조가 승하하고 말아
이 때 안동김씨가 득세할 것을 견제한 무리들이 이 혼례를 무르는 것이 어떠하냐 당시 수렴청정을 하던 정순왕후에게 건의하지만
정순왕후가 "대혼을 결정하고 기뻐하던 주상의 얼굴이 선하다."라고 하며 정조의 뜻을 받아 혼인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을 단칼에 결정해버림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는 아들 2명과 딸이 3명 있었는데, 장남인 효명세자는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차남은 요절해
순원왕후의 세 딸은 조선시대의 마지막 공주(이후에는 옹주만 태어남)들이야
효명세자의 아들이자, 순원왕후에게는 손자가 되는 세손이 순조 사후 8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헌종)하게 되자 순원왕후의 첫번째 수렴청정이 시작 돼
이 때 순원왕후는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친정인 안동김씨를 등용하는데, 이후 이어지는 세도정치의 시작은 여기로 보는 것이 좋을 수도...
이후 열네살이 된 헌종에게 실권을 넘겨주자, 헌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할머니의 가문인 안동김씨를 축출하려 하고
이로인해 헌종과 순원왕후의 갈등이 극심했다고 함
실제로 헌종이 죽기 며칠 전에 친정에 보내는 편지에 헌종을 두고 "패악한 자식"이라고 쓰거나,
헌종이 죽은 후에 "속이 다 시원하다"라고 쓴 편지가 있을 정도...
다만 죽은 지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성군이 될 자질이 충분했는데 그림 속의 떡을 보는 것처럼 아깝다."라고 쓰기도 함...
헌종이 젊은 나이에 병사하자 철종이 즉위하는데 철종은 19세로 즉위 당시 나이가 꽤 있었지만 여기도 후계자 교육이 전혀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순원왕후가 다시 수렴청정을 하게 돼
참고로 순원왕후는 명필로 유명
신정왕후 조씨는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부인인데,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중에 병사하게 되며
왕비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해
다만 아들인 헌종이 뒤이어 왕위에 오르며 자신의 아버지를 추숭했고 이에 신정왕후도 자연스럽게 추존왕비가 될 수 있었어
수렴청정을 한 왕비 중엔 유일한 추존왕비야
철종 말년, 순원왕후 사후 신정왕후가 왕실 최고 어른이 되는데 철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다음 왕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사실상 신정왕후에게 주어져
(물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비슷비슷한 정통성을 가진 왕손 중에 신정왕후에게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었던 것..)
철종 다음으로 왕위에 오르는게 바로 고종인데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차남이고, 친 형 뿐만 아니라 사촌형도 여럿 있었기 때문에 고종을 선택한 것은 신정왕후의 의지가 반영 되었다고 볼 수 있을 듯 해
신정왕후는 12살에 왕이 된 고종이 15세가 될 때까지 수렴청정을 하는데, 신정왕후가 물러난 이후에도
고종은 친정하지 못하고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처럼 집권하게 됨
긴 글 읽어준 여시들 고마워~~
첫댓글 정희왕후 대단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