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SGI 왜? 이렇게 되었나?(5-2)
(일반인을 위하여 쉽게 씁니다)
(5-2) 법을 지키는가? 아니면 사람을 지키는가?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SGI가 종문인 대석사와 절교하므로 인하여 모순된
것에 대하여는 설명이 없었다.
즉 불법에서 가장 중요한 三寶인 佛, 法, 僧이다.
700년이래 니치렌대성인 불법의 근간이 삼보이다.
기존 불법과 이 때문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삼보 중에 僧이 없어졌으니 누가 승을 대신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대성인 불법적으로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에서부터 사달이 나게 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문제를 일으킨 본산 대석사의 승려를 인정하지 않음은 곧 승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면 불법에서 볼 때 승보는 누가 되어야 하겠는가?
SGI의 견해를 본다면 SGI가 승보가 된다.
따지고 보면 4부대중이 있지 않은가?
굳이 삼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4부도 있고 과거 석존의 불법과 대성인의 불법
을 살펴보면 없는 것도 아닌데 4부중에도 우바이, 우바새가 승보가 된다는 논리가
되지 못한다면 SGI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된다.
이로 인하여 (중략하고) 한국 내에서는 닛켄종 잡기와 죽이기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부산을 거점으로 닛켄종이 발붙이지 못하게 철저하게 투입된 세력이 한국SGI 박재일
전이사장의 측근과 세력들이었다.
닛켄종이라고 이름을 지었는 것은 대석사를 참배하고 승려에게 指導를 받고 공양을
하는 SGI회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SGI는 분명히 당시 대석사 법주(승보로 칭함)닛켄이 부정과 부패로 불법을 땅에 떨어지게
한 장본인이므로 대석사와 결별하고 SGI 중심으로 광선유포를 한다고 천명한 상태였으므로
SGI회원이 일본의 대석사나 승려에게 공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인정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방법의 자로 불법에서는 가장 벌이 엄한 신도로 취급을 하고 있었기에 그 분위기는
어찌 보면 살벌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거리 상으로나 아니면 그 때까지 SGI주도로 대석사 등반을 성불에 준할 정도로 강요하여(?) 대어본존 배알의 척도로 삼았기 때문에 반발하는 신도들이 일본 내에서는 많았다는 것이다.
일본 다음으로 SGI회원 수가 많은 한국에서야 당연히 호들갑을 떨며 아부하는 인간들의 백태가 줄을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일례로 대석사에 가려면 한국SGI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몇 몇이 갔다 온 예는 있지만 그 전의 이야기이다.
지나간 일이라고 웃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본부가 일본 SGI이다.
본부에 잘 보이려는 인간이 당연히 많게 되고 장년부, 부인부, 남자부, 여자부 등이 앞을 다투어 소위 센타라고 말하는 일본에 각각으로 보고를 하는데 그 파워게임이 보통이 아니었다. 일본 강점기를 원망하는 국민들에게 만약 비쳐졌을 때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 간부에게 서로 줄을 대고 서려고 안달하는 모습에 구역질이 날 판이었다.
4부가 무엇을 보고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일본 어느 간부에게 보고를 하는지 모른다.
이렇게 해서 그 이전의 이사장시절에는 없었던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고 이 때부터 종교권력의 맛이 탄생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가 있겠다.
일본 창가학회 소속 중에서 SGI 한국 담당 간부가 정해졌고 매달 1회의 정기회합은 물론
부정기적인 회합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일본 본부간부회에는 한국SGI 이사장을 비롯한 간부가 수 십 명이 참석을 하고 한 달간 불법행사의 지시를 받는다.
시간이 흐르고 닛켄종과의 싸움에 있어서 한국에서는 연전연승이라는 보고가 일본에 가고
어느 정도의 닛켄종이 한국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쇼에 불과 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
당시 한국 내에서의 닛켄종 실태는 미미하기 그지없을 것이란 추측이다.
왜냐하면 일본 내에서도 7파 정도가 있는데 한국에도 SGI반대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떠드는 만큼 신도 수가 많지는 않았다고 본다.
한국에서 일본 대석사를 가려면 개인적 경비가 만만찮다.
그리고 이미 한국SGI를 통하여 전 회원이 일본 대석사와의 결별을 알고 있는 마당에
굳이 갈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게 맡는 말이라고 본다.
(5-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