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실천하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강론>
(2024. 9. 18. 수)(루카 7,31-35)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루카 7,31-35).”
1) 그 당시 아이들은 장터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흉내 내면서 놀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라는
말은, “결혼식 놀이를 하자고 해도 싫다고 하고”이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는 “장례식
놀이를 하자고 해도 싫다고 한다.”이고,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 세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도
거부하고, 예수님의 복음 선포도 거부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 사람들’은 당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회개도 거부하고 복음도 거부하는 사람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고, 당연히 오늘날의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2) 세례자 요한이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다는
말씀은, 그의 ‘엄격한 극기고행’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생활은 회개의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라는 말은, ‘저자는 미쳤다.
정상이 아니다.’ 라는 뜻인데, 이 말은, 자기들이
요한의 회개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가 미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요한 탓을 하는 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라는 말씀은,
당신의 평소의 생활 모습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시 나게 극기고행을 하시지는 않았고,
사람들이 식사에 초대하면 언제든지 응하셨습니다.
<그러나 풍족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평소의 생활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루카 9,58) 아주 힘들고 고달픈 생활이었습니다.>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라는 말은, “예수는 예언자나
랍비다운 모습이 하나도 없는, 시정잡배 같은 사람이다.”
라고 비난하는 말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세리 같은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것을 비난하는 말인데,
‘저자는 죄인이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하는 말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생활 모습이
전혀 예언자답지도 않고 랍비답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예수님 탓을 하는 말입니다.
3) 마태오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의 복음 선포가 똑같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4,17).”
이렇게 표현은 똑같은데, 세례자 요한의 선포는 ‘회개’에
초점을 맞춘 선포이고, 예수님의 선포는
‘하늘나라’에 초점을 맞춘 선포입니다.
어떻든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
또는 회개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두 선포의 공통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를 거부한 일과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거부한 일은, 둘 다 ‘회개’를 거부한 일이고,
사실상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셔서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들어가기를 거부해서 안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들어가려고 하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회개하기를 거부했을까?
사람들과 요한의 대화에서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루카 3,8).”,
즉 “온 삶으로 실행하는 회개를 하여라.” 라고 가르쳤을 때,
군중이 그에게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루카 3,10).
그때 요한은,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11).” 라고 대답했고,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군사들에게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라고 말했습니다(루카 3,13-14).
요한의 말을 정리하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버려라.”이고, “기득권을 내려놓아라.”입니다.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과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말에 거부감과
반감을 느꼈을 것이고, 회개하기를 거부했을 것입니다.
4) 오늘날에도 ‘회개’ 라는 말 자체를 듣기 싫어하는 이들이
있고, 회개할 죄가 없다고 자처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려라.”, 또는 “내려놓아라.” 라는
말에 대해서 반감과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반발을 의식해서 회개하라는 말을 못하거나
안 하는 종교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한 번 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끊임없이 계속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
회개는 한 번 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끊임없이 계속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