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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번제, 안식일, 월삭 제사
민 28:1-15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3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4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5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6 이는 시내 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7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
8 해 질 때에는 두 번째 어린 양을 드리되 아침에 드린 소제와 전제와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9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10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11 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12 매 수송아지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와 숫양 한 마리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13 매 어린 양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섞은 소제를 향기로운 번제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며
14 그 전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포도주 반 힌이요 숫양 한 마리에 삼분의 일 힌이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이니 이는 일 년 중 매월 초하루의 번제며
15 또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민 28:1-15 / [이렇게 제물을 바쳐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여라. 정해진 때마다 제물을 제단에 살라 바쳐 거기서 풍겨 나는 냄새로 나를 흐뭇하게 하여라. 3) 너희가 내게 살라 바칠 제물은 이러하다 [날마다 바치는 제물] 날마다 흠 없고 일년된 숫양 두 마리씩을 번제물로 바쳐라. 4) 한 마리는 아침에 한 마리는 해거름에 바쳐라. 5) 숫양을 바칠 때에는 고운 가루 2.2리터에 좋은 올리브 기름 1리터를 섞은 곡식제물도 함께 바쳐라. 6) 이 규정은 이미 시내산에서 정해 놓은 것이다. 제단에 살라 바치는 제물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고 나 여호와가 흐뭇해하리라. 7) 또 제물을 바칠 때 성소에서 독한 술 1리터를 전제로 함께 부어 올려라. 8) 해거름에 어린 양을 바칠 때에도 아침에 바치는 것과 똑같이 곡식제물과 전제물을 함께 바치되 나 여호와가 흐뭇해 하도록 제단에 살라 바쳐라. 9) [안식일 제물] 안식일마다 내게 바칠 제물은 다음과 같다. 흠없고 일년된 숫양 두마리와, 고운 가루 4.4리터에 좋은 올리브 기름을 섞은 곡식제물을 바쳐라. 전제물을 바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10) 이렇게 안식일에는 날마다 드리는 번제물과 전제물 외에 안식일 번제물과 전제물을 별도로 바쳐야 한다. 11) [초하루 제물] 매달 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숫양 일곱 마리를 모두 흠이 없는 것으로 골라 나 여호와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12) 곡식제물로는 올리브 기름을 섞은 고운 가루를 바치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6.6리터씩, 숫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4.4리터씩, 13) 또 어린 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2.2리터씩을 함께 바쳐라. 이 제물들을 살라 바쳐, 그 냄새를 맡고 나 여호와가 흐뭇하게 하여라. 14) 또 전제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포도주 1.8리터씩, 숫양 한 마리마다 포도주 1.2리터씩, 또 어린 양 한 마리마다 포도주 약 1리터씩 부어 올려라. 매달 초하루가 되면 이와같이 제물을 가지고 와 번제를 올려라. 15) 초하루에는 날마다 전제와 함께 드리는 번제물 외에도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날마다 드리는 상번제와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 그리고 매월 초하루에 지켜야 할 제사의 규정을 말씀해 주십니다.
상번제(1-8)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갈 다음 세대에게 매일 아침과 저녁에 1년 된 숫양을 한 마리씩 화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드리는 양은 전날 밤에 지은 죄를 위한 것이고, 저녁때 드리는 양은 그날 낮 동안에 지은 죄를 위한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화제의 내용은 양의 죽음과 피를 통한 속죄입니다. 이는 인간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유지하게 함입니다. 또한 불에 태워 드리는 번제에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드리는 소제와 독주의 전제를 겸하여 드리도록 했습니다.
안식일 제사(9-10) 안식일에는 매일 일정하게 계속되는 상번제와 함께 특별하게 제사했습니다. 곧 평일보다 두 배의 제물을 바쳐 제사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평상시에도 헌신하는 생활을 해야 하지만 안식일에는 두 배로 제사하게 함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함을 강조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안식일뿐만 아니라 엿새 동안에도 상번제가 드려지듯 한 주간 전체가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초하루 제사(11-15) 매월 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숫양 일곱 마리로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지난 한 달을 돌아보고 지었던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시작하는 한 달을 헌신하며 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하루에는 속죄제 이외에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1년 된 숫양 일곱과 소제물과 전제를 드렸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고백한 백성이 지난 한 달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매월 초하루의 제사 규모는 상번제와 안식일보다 컸습니다. 이는 초하루가 한 달의 시작을 의미하고, 그 한 달을 하나님께 온전하게 헌신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적용: 예배가 살아나면 영혼이 살고,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당신은 날마다 그리고 매주 주일과 매월 초하루마다 온전한 예배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흥하고 망하는 것은 들음의 차이입니다. 흥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망하는 사람은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흥하려니까 '위로와 확신'의 소리를 듣고, 망하려니까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듣습니다.
< 설 교 >
하나님과의 교제
민 28:1-15 / 이수영 목사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머 중에 최불암 시리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불암씨가 단 것을 그렇게 좋아했답니다. 설탕, 꿀, 당원, 사탕, 메이플 시럽,, 등등.... 당분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었습니다. 어느 날 최불암씨가 방 한 구석에서 병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병에는 해골의 그림이 있고, 그 그림 밑에 영어로 "DANGER" 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불암씨가 영어는 잘 못하고 독일어를 조금 했는가 봅니다. 그 병에 씌어진 영어를 "DANGER" 이라고 읽지 않고 "단거" 라고 읽고는 그것을 마셨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견고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위험하다" "위험하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여전히 이것이 "단 거" 로 생각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든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으로 죽어있는 세상을 살게 만드는 사명 때문에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이 땅에서 축복을 누리며, 축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내가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로 축복을 누리지도 축복의 사람이 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쩌다 한번 축복을 누렸을 뿐이지 대부분은 축복을 누리지도 못했고, 축복의 사람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축복을 누리며, 축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전 세계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온 세상을 축복해야 할 그들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과의 교제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하며 살고 있습니까?
혹시 기분 좋으면 통하고, 기분 나쁘면 끊어지는 그런 교제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축복을 누리며,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오늘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유지하고 있는가?" 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하여 축복을 누리고, 축복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 민28장9-15절 속에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이 중요한 시점에서 그 민족에게 해 주어야 할 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복을 누리고,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모세가 말하는 것은 제사와 절기에 관한 것입니다.
매일 해가 뜨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한 주간이 시작되면 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한 달이 시작되는 첫날에 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한 해가 시작되면 나팔을 불며 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모세는 이들이 이렇게 규칙적으로 절기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제사와 절기를 지켜야 합니까? 그것은 교제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제사와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은 여러분이 축복을 누리고, 축복의 사람이 되는 교제의 세 가지 요소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교제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날이면 날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또 다른 형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매월 첫날이 되면 또 제사를 드렸습니다. 유월절이면 유월절이기 때문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모든 제사와 절기는 각각 다른 이유와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제사와 모든 절기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 사람인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매주가 시작되면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매월이 시작되면 제사를 드리게 하여 또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어떤 청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매주일 귀찮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2주일에 한번 씩 예배드리면 안 됩니까?"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면 되지 왜 자꾸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리라고 합니까? 우리가 매 주일마다 모여서 예배드리는데도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사는데, 2주일에 한번씩 예배를 드리게 되면 하나님 없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매주, 매월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자꾸 모이게 하십니다. 주일에 모이게 하고, 수요일에 모이게 하고, 금요일에 모이게 하고, 제자훈련으로 모이게 하고, 집회와 성경공부로 모이게 합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되새겨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많은 제사와 절기가 있는가?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릴까봐 자꾸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게 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향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민족 공동체가 잊지 않도록 되살려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각 절기, 각 제사가 규칙적으로 지켜져야 할 이유입니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규칙적으로 그 절기와 제사를 드리면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는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첫 번째 요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어떤 축복을 행해 주셨는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 매일 매일 제사를 드립니까?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날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왜 매주일 제사를 드리죠? 그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왜 매월 첫날마다 제사를 드리죠? 그 한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입니다. 왜 유월절을 지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된 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각각의 제사들은 다 목적이 다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한 가지 목적입니다. 그 한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이 많은 제사와 절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지-겨-운 마음으로 그렇게 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큰 특권으로 여기며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감사함으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는 것이 지겹다면, 교회에 오는 발걸음이 너무 너무 지겨워서 아무리 서둘러도 꼭 20분씩 늦어야 한다면 그것은 버스가 고장 나거나 차가 막혀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만나기 싫은 여자를 만나게 될 때는 꼭 10분, 20분 늦게 갑니다. 그러나 너무 너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날 때면 한 시간 전에 가서 지형지물을 다 봐두고, 어디서 음식을 먹을까, 무슨 대화를 할까를 다 리허설 한 다음에 만납니다. 하나님이 그런 애인만큼도 안 됩니까?
얼마 전에 교회 마당에 서 있다가 한 주일학교 어린이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많은 성도(청년)들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주일학교에서 주는 가방을 질질 끌고 억지로 한발 한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까요? 왜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그렇게 없을까요?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교제하는 일이 그렇게 마음에 짐이 될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할 때 자연스럽게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 때에는 재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 됨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 순종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과 끈끈한 교제 가운데 있기를 원하신다면 순종이 필요합니다.
매일 매일 드리는 제사 방식이 다르고, 매 주일에 드리는 제사의 방식이 다릅니다.
매 주일 드리는 제사의 제물이 다르고, 매월 첫날에 드리는 제사의 제물이 다릅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식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얼마나 많은 제물을 드렸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마음의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장소에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식대로 우리가 순종하여 주 앞에 드렸는가? 그 순종을 가장 관심 있게 보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남자들은 일년에 세 차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가야 합니다. 남자들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걸을만한 나이가 되면 다 와야 합니다.
이때의 교통수단은 없었습니다. 다 걸어서 가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려면 6일이 걸립니다. 6일을 걸어가고, 6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6일을 또 걸어와야 합니다. 그러면 3주간씩 3번, 일년에 9주간을 예루살렘에 순례를 오는 일로 드려야 합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텔레비전으로 중계하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꼭 예루살렘에서만 해야 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꼭 예루살렘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명령대로 이 백성들이 순종하는가? 입니다.
순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정한 때에,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그냥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순종한다고 하면 어떤 교제가 될까요? 참, 지겨운 교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날 믿음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많은 데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마음으로 감사를 합니다. 그러나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내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있고, 순종할 때 하나님과의 그러한 교제는 내가 축복을 누리고, 내가 축복의 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비행기로 인천공항에서 미국 뉴욕으로 갈 때에 핸들로 운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컴퓨터에 입력된 대로 항로를 따라 비행기가 날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조종사가 필요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항로가 정해져 있어도 기류와 역풍 때문에 비행기가 항로에서 자꾸 이탈합니다. 그럴 때마다 조종사와 항법사가 다시 항로를 바로 잡아 놓습니다.
우리가 년 초에 결심했다고 그것들이 별 문제없이 일년 동안 계속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에 교회에 와서 방향을 수정하고, 수요일에 와서 또 방향을 수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계속해서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로를 이탈하면 죽습니다. 항로를 이탈하면 격추당합니다. 지금 내가 항로를 이탈하였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의 선을 잘 지키며 살 수 있을까? 끊임없는 교제를 실천하기 위한 2가지 요령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개인적인 교제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큐티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신문 먼저 붙잡지 마세요. 말씀 앞에 먼저 앉으세요. 이렇게 함으로 여러분의 항로를 매일 매일 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매일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개인적인 교제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공동체적인 교제에 힘써야 합니다.
이 말은 교회의 교제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로 그 말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의 교제가 지겨운 사람은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자주 빠지는 사람은 지금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바쁜 시간에 꼭 여기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각자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면 안 됩니까? 목사 혼자서 카메라 앞에 서서 설교하고 여러분들은 새우깡 먹으며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예배를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대로, 공동체가 모여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며 서로 격려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하나님과 끈끈한 교제를 유지하며 사는 방법 3가지가 있습니다.
지성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감성적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제를 통해 여러분이 이 땅에서 축복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향기로운 예배
민 28:1-8 / 박종순 목사
모든 종교는 예배 행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각각 다릅니다만 자연을 숭배하고 예배하는 종교도 있고, 새기거나 부어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도 있고, 사람을 신격화 해 예배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합니다. 대상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예배도 살아 숨쉬는 예배라야 합니다.
구약의 경우 모든 제사가 곧 예배였습니다. 특히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의 경우 제물을 선택 할 때 두 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는 살아있는 것이라야 했고 둘은 흠없는 것이라야 했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만 그러나 죽은 것은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산 짐승이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짐승을 잡아 드리려면 칼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이곳저곳 상처가 날 수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제물 자체가 흠 있는 것은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신약의 경우는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히브리서 9:12 말씀대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14을 보면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실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더 중요한 말씀은 히브리서 10:18입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짐승을 잡아 제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흠 없으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 피가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에서 바울 사도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드리는 산 제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산 제사는 곧 산 예배를 뜻합니다. 죽은 제물을 드릴 수 없고 흠있는 제물을 드릴 수 없었던 것처럼 생명 없는 예배, 맥빠진 예배를 드려선 안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번제 드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번제는 짐승을 잡아 고기는 각을 떠 불태워 드리고 내장도 씻어 불태워 드립니다. 그때 연기와 냄새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피는 그릇에 받아 두었다가 번제단에 뿌립니다. 모조리 불태워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에 온전히 불태우다라는 뜻 Holoskaio라고 했습니다.
고기가 타고 내장이 불에 타는 냄새를 본문 2,6,8,13,24절과 29:6,8절에서 향기롭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예배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조명해 보겠습니다.
1.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나의 향기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50:10-12을 보면 "삼림의 들짐승, 천산의 생축, 산의 새들, 들의 짐승,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왕이었던 다윗은 역대상 29:11-14에서 "권능도 영광도 이기는 것도 위엄도 천지에 있는 것도 다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8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세계도 만물도 주의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사야도 다윗도 바울도 "그렇습니다. 다 주의 것입니다"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왜 모든 것이 주의 것입니까?
창세기 1:1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지키시고 섭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계나 만물은 그렇다 치고 왜 내가 주의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역대상 29:14에서 다윗 왕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생명도, 물질도, 시간도, 재능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욥기 1:21을 보면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정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찌니라"고 했고, 3절에서는 "매일 드리라"고 했고, 4절에서는 "아침에 드리고 해질 때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시간 즉 예배드리는 시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 정하신 날, 정하신 때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약에서 드렸던 모든 예배(제사)는 시기도, 방법도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백성들에게 규례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내 맘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 나면 드리고 바쁘면 안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제쳐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안됩니다. 틈나면 예배드리고 틈나지 않으면 예배를 빠지는 것도 안됩니다. 예배는 내 맘대로 정하고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기도, 때도, 방법도 정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예배를 받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라는 단어의 뜻이 여러 가지입니다만 그 중에 노예나 종이 주인을 섬길 때 "절하다, 몸을 굽히다, 엎드리다, 입맞추다"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종이 주인의 계획이나 일정을 짜는 법은 없습니다. 주인이 종의 일정을 정하고, 할 일을 정하고 감독합니다.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주체인 것입니다. 내가 예배를 마음대로 바꾸고 조정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3. 향기로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2,6,8,13,24,27절과 29:2,6,8절을 보면 "향기로운"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려 아홉 번이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경우는 제물을 태워서 드릴 때 나는 냄새를 향기롭다고 표현했습니다.
문제는 제물을 태우는 냄새가 어떻게 향기로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물을 태워드리는 냄새를 향기롭다고 한 것은 그 희생을 향기롭다고 한 것입니다. 희생보다 더 진한 향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30:22-38을 보면 향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째 최고급 향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0:23-24을 보면 상등 향품을 취하되
몰약 500세겔, 향기로운 육계 250세겔, 창포 250세겔, 계피 500세겔, 감람나무 기름 한 힌으로 향유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둘째 거룩한 관유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관유란 성전에 있는 기구나 제사장의 몸에 발라 성별할 때 사용하는 향유를 말합니다. 식용 기름이나 미용을 위한 향수가 아닙니다. 거룩한 구별을 위해 사용하는 향유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셋째 법대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0:35을 보면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라"고 했고, 37절을 보면 "너희를 위해 만들지 말라"고 했고, 38절을 보면 "그런 자는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했습니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서 예배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주 5일 근무제 제도는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충분한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근로현장에서 쌓인 피로를 풀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조업체나 회사입장에서 보면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찬반을 떠나 우리 입장에서 중요시 할 것은 주 5일 근무제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신앙을 망가뜨리는 일이 일어나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제물을 태워 드리는 제사를 향기롭다고 표현한 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자신을 태우고 희생해야 향기로운 예배가 됩니다. 자기 할 일 다하고, 자기 갈 곳 다가고, 자기 쓸 것 다쓰고 남은 찌꺼기로 예배하는 것은 향기로운 예배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과 노력과 재능을 드리는 예배가 향기로운 예배인 것입니다.
4. 성전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7절을 보면 "거룩한 곳에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거룩한 곳은 제사 드리는 제단을 말합니다. 구약시대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회막에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곳은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동방박사 얘기를 하곤 합니다. 만일 그들이 이상한 별을 연구하다가 예수가 동방 베들레헴 마을에 나셨다는 사실을 알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택배로 보냈다든지 속달로 보냈다든지 인편에 보냈다면 별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 박사는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직접 찾아와 경배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제 4박사는 길을 잃고 헤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비로소 예수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 4박사는 30년동안 예수를 찾아 헤메다 만났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TV를 바라보며 예배할 수 있습니다. 집 옆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 예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충신교회 교인들은 멀든 가깝든 여기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히브리어로는 「아보다」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라트레이아」라고 합니다. 그 뜻은 주인을 섬기는 종이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일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영어로는 예배를 워십서비스(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예배인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였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과로와 주색에 빠져 산 것이 주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은 운동부족입니다. 식사도 궁녀들이 가져다 주고 그들이 먼저 음식 맛을 봅니다. 세수도 궁녀들이 시켜 주었기 때문에 운동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왕의 삶은 섬김을 받기만 했지 몸을 놀려 남을 섬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편하고 좋은 것처럼 여겨졌겠지만 단명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서비스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섬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예배 횟수가 너무 많다는 둥, 예배 시간이 길다는 둥 구실을 잡아 예배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단순한 요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싫어하거나 피하려 한다면 신앙이 성립되겠습니까?
신앙이 자라고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섬기는 일을 많이 해야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이며 섬김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빠지지 맙시다.
예배에 우선순위를 둡시다.
예배에 최선을 다합시다.
정성으로 예배합시다.
예배 시간을 지킵시다.
그렇게 드리는 예배가 향기로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상번제(常番祭)의 삶을 삽시다
민수기 28:1-8 / 배진기 목사
구약의 제사는 신약의 예배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3-4절에서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양 한 마리씩 항상 불로 살라 드리는 화제의 제사를 드리게 명령 하셨습니다. 이 번제의 제사를 항상 매일 드려지는 번제라는 의미에서 상번제(常番祭)라고 합니다. 상번제의 제사에 대해 레위기1: 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상번제(常番祭 ; continual burnt offering)란 단어의 뜻 그대로 항상 드려지는 불로 살라 드리는 화제(火祭)의 제사를 말합니다.
번제(燔祭)는 히브리어로 “올라”라는 말인데 “올라간다, 상승한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를 말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호르카우토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전체를 태워 드리는 제사 (whole burnt offering)"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는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헌신의 제사였습니다.
상번제는 제물로 매일 아침과 저녁에 양을 드릴 뿐 아니라 소제(素際 ; grain offering)의 제사를 같이 드렸습니다. 소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민하”이며 그 의미는 “선물, 헌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소제는 감사의 제사를 말합니다. 소제는 고운 곡식 가루와 기름, 유향을 섞어서 태워 드렸고 고운 가루로 무교병을 만들어 태워 드렸습니다.
그리고 상번제에는 제물에 포도주나 독주를 또는 향유를 부어서 드리는 전제(奠祭 ; drink offering)가 같이 드려졌습니다.
이러한 상번제(常番祭)는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매일 일상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예배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을 나눕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무엇 보다 상번제(常番祭)의 삶을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매일같이 항상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매일 매일을 헌신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삽시다.
1. 상번제의 제물로 흠없는 숫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상번제를 명령하실 때 제물에 대해 양이나 크기나 가치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백성 전체를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분량이나 가치를 문제 삼을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그 사람의 형편대로 정성껏 자원하여 드리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헌물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8:12에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 하셨고 이어서 고린도후서 9:7에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예배의 삶은 자원하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헌신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제물은 흠이 없는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이므로 흠이 없어야 했던 것입니다. 수컷은 생명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죄와 흠이 전혀 없으신 생명의 근원 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의 제물 되실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8-19에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찬을 나누면서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한 흠 없는 숫양과 같은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며 그 보배로운 피를 기념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우리의 제물되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감격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은 번제의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사람들의 죄를 전가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레위기 1:4에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라고 제사의 규례를 말씀 하시며 제물의 머리에 안수 함으로 죄의 전가를 허락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소나 양으로 사람을 대신하는 제물을 허락하셨으나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는 제물로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배려요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제물에게 행한 안수(按手)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안수(按手)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사마크”라는 단어 인데 그 의미가 아주 중요합니다. 단지 전가하는 의미만이 아니라 안수를 통해서 제물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제물로 예수님을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한 제물만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예수님이하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주님께 맡길 뿐 아니라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23에서 예수님께서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는 길은 바로 우리의 죄를 맡기는 일 바로 회개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하나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4-7에서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우리가 주님과 하나됨을 이루는 삶에 대해 권면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회개와 교제의 삶을 이룹시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성찬은 바로 내가 주님과 하나됨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3. 제물을 화제로 드리기 전에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리게 하셨습니다.
번제의 제물에 대하여 레위기 1:11에 “그가 제단 북쪽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것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번제 단은 놋 제단입니다. 놋은 심판의 상징입니다.
인간의 죄는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6:23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심판은 바로 사망입니다. 사망을 속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필요합니다.
레위기 17:11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9:22에도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의 단에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속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7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보혈의 권능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19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말씀 하였으며 히브리서 4:16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오늘 성찬을 나누면서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으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는 성도들이 됩시다.
4. 상번제(常番祭)에 소제(素際)가 같이 드려진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 5-6절에 번제와 함께 소제를 명령하셨습니다. “(5)또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6)이는 시내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시내산에서 정한 상번제라는 말은 출애굽의 은혜를 감사하는 상번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구원의 감격을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언제나 첫 사랑을 가지고 삽시다.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섞어 불살라 드린 것은 우리의 정성과 감사와 사랑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곡식의 고운 가루는 정성을 상징합니다. 곡물은 일년의 수고를 통해 수확 되어집니다. 고운 가루로 만들기 위한 수고가 필요합니다. 또 고운 가루를 만드는 것은 회개하는 마음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름과 유향은 감사와 사랑의 상징입니다. 여기의 기름은 제물의 기름이 아니라 곡물을 찧어낸 감람유를 말합니다. 성찬을 나누면서 구원의 감격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사랑의 결단을 드리도록 합시다.
5. 상번제의 제물 위에 독주의 전제가 드려졌습니다.
본문 7절에서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라고 전제의 제사를 명령했습니다. 제물이 불에 타면 냄새가 좋지 않습니다. 특히 피를 뿌리면 피가 타는 냄새는 악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화제와 함께 전제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번제와 함께 감사의 전제로 말미암은 향기로운 제사가 넘쳐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위의 모든 죄가 타는 것은 제물이 타서 피냄새와 기름 냄새로 말미암아 악취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포도주가 부어지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는 죄악으로 오염된 탁하고 더러운 피가 아니라 흠 없는 자신을 희생하여 흘리신 정결하고 향기로운 피입니다.
우리 삶의 모습이 향기로운 전제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의 따라야 하고 삶의 본이 드러나도록 향기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독주를 부어 제물을 불에 사르는 것은 주님이 당하시는 심판의 고통과 아픔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열납하심을 의미합니다. 더불어서 자신의 전부를 다 살라드리는 우리의 열정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2:28-29에 “(28)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29)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성찬을 나누며 뜨거운 마음으로 나의 전부를 불살라 드리는 열정적인 헌신의 삶을 결단 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려졌던 상번제는 바로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의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제물이 되심을 감사드리며 언제나 주님과 하나되는 회개를 이룹시다.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예배의 삶을 삽시다. 언제나 철저한 회개의 마음과 삶의 자세로 향기로운 예배의 삶을 삽시다.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 향기로운 헌신을 통해 열정적인 화제의 삶을 삽시다.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충만하여 언제나 주님을 예배하며 사는 안디옥 성도들이 됩시다.
상번제의 결론적인 모습은 본문 8절의 말씀입니다. “소제와 전제와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우리의 삶이 향기로운 화제가 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묵상하고 예배함이 마땅하다.
민 28: 1-15 / 조용호
◈ 주 해
1. 2번째 인구조사를 통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군대가 계수되고, 기업을 분배받는 다는 약속이 주어진다. 슬로브핫의 딸들도 기업을 분배받는다.
1) 사명을 다 마친 모세는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다.
2) 민수기 28~29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치는 제사를 다시 알려준다.
3) 광야 2세대가 새롭게 계수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만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민 28:1-2절은 28-29장의 서문이다. 즉 모든 제사(예배)에 해당하는 서문이다.
민 28: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민 28: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정해진 절기에 따라서, 너희는, 내가 받을 제물, 내가 먹을 음식, 곧 나에게 불살라 바쳐서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의 희생제사를 어김없이 바치도록 하여라."
1)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내가 드리고 싶은 시간(기간)에 내 맘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이 정한 시간,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에 따라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2)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것이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제물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 제물이다.
3. 놀랍게도, 우리가 드리는 제사(예배)의 제물은 “하나님이 먹을 음식”이 된다.
1) 사람에게 있어서 “먹을 음식”은 절대적인 필요이며, 없어서는 않되는 것이며, 먹으면서 마음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먹으면서 교제하게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너희가 먹을 음식을 내가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민 18:8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한 모든 헌물을 네가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노라
3) 영원하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이 먹을 음식”이라고 하신다.
-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 이 제물은 절대적인 필요가 되며, 완전한 기쁨가운데 계신 하나님께, 이 제물은 기쁨이 된다.
- 우리가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굻으신다고 비유적으로 말씀하는 것이다.
4) 놀랍게도, 백성들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의 음식”이 되면서 동시에 “제사장의 음식”이 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왕같은 제사장을 기쁘시게 한다.
5) 자녀가 나이가 든 부모의 음식을 반드시 공급해야 하듯이, 성도는 하나님이 드실 음식을 반드시 공급해야 한다.
- 언약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드리는 예배를 음식 삼으신다.
4. 하나님이 먹을 음식이므로 당연히 이 제물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1) 하나님의 헌물이고, 하나님의 음식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므로 “정한 시간에 어김없이 바치라”고 하신다.
2) 이 음식을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어떻게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겠는가?
3) 이 음식을 드리지 않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겠는가?
5. 제사제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제사는 안식일 예배가 아니라 “상번제” 즉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제사다.
민 28:3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여라.너희가 나 주에게 바쳐야 할 불살라 바치는 제사는 다음과 같다.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숫양을 날마다 두 마리씩, 날마다 바치는 번제로 바쳐라.
1) 이 상번제는 안식일에도 안식일 제사와 별도로 드려야 한다. 월삭때도 월삭제사와 별도로 상번제를 드려야 한다. 7대 절기에도 7대 절기와 별도로 상번제를 드려야 한다.
2) 상번제는 1년 365일 동안 항상 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음식”이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번제를 드리면서 매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출 29: 42-43).
6.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예배이며, 매일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것이다.
1) 하나님은 상번제를 하나님이 정한 아침과 저녁에 매일 어김없이 바치라고 하신다.
2) 상번제는 양과 함께 곡식예물과 전제를 드린다.
- 아침마다 고운 밀가루 3~4리터, 기름 1.5리터에 반죽하여 곡식예물로 바친다.
3) 아침과 저녁에 드리라는 말씀처럼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고, 저녁에 묵상한 말씀을 재묵상한다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일 것이다.
7. 하나님은 상번제에 대한 명령 후에 상번제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화제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 제사의 처음 목적은 “나의 기쁨, 나의 만족, 나의 위로”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것이다.
2) 자녀가 부모님의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드리는 첫 번째 목적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기쁨을 위해서다. 부모님의 기쁨과 칭찬을 통하여 자녀가 기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3) 하나님은 “너희의 기쁨을 위하여 제물을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하나님의 음식을 위하여 제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4)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창조주요, 구원자요, 공급자요,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8. 상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은 안식일에 드릴 제사를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1) 안식일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상번제)와 별개로 따로 제물을 바쳐야 한다.
민 28:10 안식일에는 날마다 바치는 번제와 부어 드리는 제물 외에, 안식일 번제를 따로 바쳐야 한다."
2) 안식일 제사도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하나님이 바치라고 한 제물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
9. 월삭에 드리는 제사 역시 매일 드리는 제사와 별개로 바쳐야 한다.
1) 월삭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 수양 한 마리, 일 년 되고 흠없는 수양 일곱 마리를 여호와께 번제로 바쳐야 한다. 각 짐승의 제물에는 소제와 같이 바친다.
2) 월삭 제사도 불에 타서 향내를 피워 여호와를 기쁘게 해 주는 번제물이다.
3) 월삭 제사의 특이한 점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드리는 번제물 외에 속죄 제물로 수염소 한 마리를 바쳐야 한다.
4) 매월 첫 날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예배를 드리라고 하신다.
10.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1) 예수님이 친히 번제물과 화목제물, 속죄제물이 되셨다.
2)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의 음식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는 예배를 하늘 아버지는 얼마나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실까?
3) 구약의 제사를 기뻐하신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을 아들을 통하여 드리는 예배로 받으신다.
11. 상번제를 받으신 하나님은 날마다 완전한 제물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 성소,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하여 정말로 기뻐하신다.
1) 십자가에서 육체가 찢기심으로 죽으신 그리스도는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는 새로운 산 길을 여셨다.
2) 이 길을 통하여 아버지 집에 오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볼 때 얼마나 기뻐하실까?
3) 하나님의 기쁨을 믿음으로 보는 자는 아들을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 나간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
4)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나를 기쁘게 보시니,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파레시아)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5).
◈ 나의 묵상
회개: 말씀의 검이 드러낸 비참한 존재
상번제, 안식일 제사, 월삭 제사를 말씀하시면서 단 한번도 “너희의 기쁨을 위하여, 너희의 음식을 위하여”라고 하지 않으신다. 오직 “하나님의 음식이며 하나님의 기쁨(향기로움)” 때문에 제물을 드리며 예배(묵상)하라고 하신다. 아, 나는 왜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해 왔는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음식을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향기로운 화제를 위하여 예배하고 묵상하였는가? 오늘 내가 묵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향기로운 화제, 하나님의 음식을 위하여 묵상을 시작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만 하고, 성도들과 나누어야 하고, 생명의 교제를 누리고, 하늘에 속한 기쁨을 맛보고 싶어서 묵상을 시작했다. 동기가 완전히 비성경적이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었으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께 나가야 하는데, 나는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께 또 다고다고 하는 거머리처럼 묵상을 한다.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주셨는데, 하나님의 권세를 누리고 싶어서 묵상을 한다. 거룩한 척하지만 이기적인 동기, 여전히 나를 위한 묵상을 한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2. 복음을 통하여 생명이 환하게 나타나다.
그래서 복음이 소망이다. 그래서 여전히 흐르는 피권세가 소망이다. 아들을 내어주셨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지만 여전히 주님의 보혈로 내 영혼을 씻어야 한다. 이기적인 마음, 부정한 마음을 주의 보혈로 정하게 씻어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보혈을 내어 주신다. 샘솟듯하는 피권세로 오염된 영혼, 이기적인 동기를 씻어 주신다. 그리고 용납하여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신다. 피곤한 내 영혼과 험한 세상살이에서 안식과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나를 이해하여 주신다. 논리로 따지신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그러나 따지지 않으시고, 정죄하지 않으신다. 아들을 힘입어 나오면, 하늘 아버지는 언제나 웃으신다. 기뻐하신다. 비록 이기적인 동기일지라도 아들로 인하여 은총을 베푸신다. 요나단 때문에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듯이, 아들 때문에 나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두 다리를 저는 죽은 개와 같은 나를 왕의 식탁에 앉히신다. 아들 안에 있는 것이 복이다.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복이다. 아들 안에 있기에 베풀어지는 하늘 아버지의 인자하심은 끝이 없고, 성실하심은 영원하다. 아들 안에서 아버지 품속에 거한다. 아들 때문에 자비를 베푸시는 하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생명 주심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 날마다의 묵상을 뭔가 의를 행하는 듯이 하고 있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를 위하여 베풀어 주신 식탁에서 챙겨 먹으면서 감사하기는커녕, 무슨 의로운 행위라고 하듯이 하니 어처구니 없는 죄인입니다. 이기적인 동기로 묵상을 해도 긍휼히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납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이론은 잘 아는데, 실제로 들어가면 참 어리석은 예배를 드립니다. 성경이 실제가 되고, 성경적인 묵상, 성경적인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상번제로서 날마다 말씀 묵상을 행하게 하시고, 이 묵상이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음식이 되게 하옵소서. 상번제 외에도 월삭 예배와 안식일 예배를 주 안에서 아버지의 기쁨이 되도록 드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저에게 복음과 예배를 가르쳐 주십시오. 주일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이기적인 동기가 아닌, 하나님의 음식을 위하여, 하나님의 기쁨과 향기로움을 위하여 드리는 예배, 주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부모를 공경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민수기 28:1-15
(작성: 김남빈)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의 40년 세월은 기나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과 불순종의 반복된 삶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을 무렵,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광야 여정도 드디어 종점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단 한 평의 가나안 땅도 점령할 수 없었던 그들이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아모리 땅과 바산이라는 나라를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변화와 눈앞에 있는 가나안 땅을 보며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이제 곧 입성할 가나안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다양한 계획을 세우며 멋진 청사진을 그려보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세세하게 알려 주시는데, 그 첫 번째 규정은 제사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3절에서 8절은 상번제에 대해, 9절과 10절은 안식일에 바칠 제물에 대해, 11절에서 15절은 초하루에 바칠 제물에 대해 증거합니다.
상번제에 드릴 제사에 대한 규례 (1-8)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신 뒤에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려야 할 제사와 절기에 드릴 제물에 관한 규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규례는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이미 언급되었지만, 가나안 진입 직전인 본장에 와서 이러한 규례를 다시금 말씀하신 것은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세에게 각종 규례를 듣는 이들은 대부분 출애굽 2세대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모세로부터 정식적으로 율법을 듣지 못했던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했던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철저하고 체계 잡힌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준비시키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선 순위로 생각해야 했던 것이 다름 아닌 제사이듯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가장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을수록, 우리가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예배임을 기억하십시다.
제사의 규례 중, 가장 먼저 살펴볼 상번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며 그들의 삶에 기초요 밑그림과 같은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8)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시내 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 해 질 때에는 두 번째 어린 양을 드리되 아침에 드린 소제와 전제와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상번제의 뜻은 매일 드리는 제사, 항상 드리는 제사입니다. 3절에 나오는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에서 중요한 단어는 ‘매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두 마리의 숫양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두 마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한 마리, 저녁에 다른 한 마리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번제를 요구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라는 것이었으며,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상번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구약의 제사는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지만, 아침과 저녁에 드려지는 희생 제사는 또 다른 의미로 성도들의 삶에 표현되어야 합니다. 마치 구약의 백성들이 양의 드림을 통해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 앞에 규칙적으로 나아간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예수를 의지함으로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른 아침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 하루의 삶을 의탁하며 주님의 통치를 사모해야 하며, 저녁 시간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곧 오늘날 우리가 드릴 상번제요, 하나님께서 향기롭게 받으실 일상의 예배입니다.
5절에서 8절은 곡식을 요리하여 드리는 소제와 독주를 부어드리는 전제도 아침과 저녁으로 드려야 했음을 증거합니다. 그들은 소제를 드릴 때 가루를 곱게 빻아야 했고,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철저히 부서진 자아를 상징합니다. 함께 드린 기름은 올리브를 빻아 채취한 것으로 성령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즉 곱게 빻아진 가루가 회개한 사람에 비유된다면 기름은 회개한 자 위에 임재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가리킵니다. 7절에 나오는 전제는 본래 포도주를 부어서 드리는 제사의 한 종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포도주의 전제라 하지 않고 독주의 전제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제의 제물이 포도주가 아닌 독주로 규정된 것은 광야에서 쉽게 만들 수 없었던 포도주를 대신하여 여러식물들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전제의 제물을 삼는 것이 용이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상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 형태의 제물이 필요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엄청난 정성과 수고가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들은 상번제가 매일 많은 수고가 들어간다고 해서, 하루쯤 건너뛰어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한 삶이 당장은 수고로울지 모르나, 그 수고가 결국엔 가장 큰 복이요, 진정한 기쁨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이어서 안식일에 바칠 제물에 대한 규례가 등장합니다.
안식일에 드릴 제사에 대한 규례 (9-10)
(9-10)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일상의 모든 일을 멈추고 쉼으로써 그날을 거룩히 지켰습니다. 이날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두 가지 사건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의 일을 끝마치신 후 안식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이고, 아울러 애굽 땅에서의 구원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두 가지를 기억하며,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그리고 소제와 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날에 제사장들은 평일과는 달리 제물을 두 배로 드림으로써 안식일의 거룩함을 외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평일의 헌신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제정한 안식일에 더욱 정성을 다하여 헌신해야했음을 보여줍니다.
구약의 안식일의 의미는 오늘날 주일로 이어집니다. 구약의 안식일에는 갑절의 제물을 드림으로써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처럼, 오늘의 성도는 주일에 더욱 밀도 있게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그날을 구별되게 보내야 합니다. 곧 6일 동안도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와 헌신을 드리는 날이 되어야 하며, 주일은 더욱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초하루에 드릴 제물에 대한 규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초하루에 드릴 제사에 대한 규례 (11-15)
(11-15) 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매 수송아지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와 숫양 한 마리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매 어린 양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섞은 소제를 향기로운 번제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며 그 전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포도주 반 힌이요 숫양 한 마리에 삼분의 일 힌이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이니 이는 일 년 중 매월 초하루의 번제며 또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본문은 매월 첫날을 가리키는 초하루에 대한 규례를 증거합니다. 초하루에는 상번제나 안식일 번제의 경우보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즉 매일 드리는 상번제가 드려졌으며, 그 외에 초하루를 위한 제물인 수송아지 둘, 숫양 하나, 1년 된 어린 숫양 일곱 그리고 속죄 제물로 숫염소 하나가 드려졌습니다. 또한 민수기 10장 10절을 보면 초하루에 은 나팔을 불어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시고 그들을 기억해 주시기를 염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하루 제사에 있어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반드시 속죄제가 곁들여져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 한 달의 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새로운 달의 헌신이 무의미함을 의미하며, 정결한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초하루에 대한 규례를 보며, 하나님께서 매월의 첫째 날을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지난 달에는 연약하여 넘어졌다 할지라도 초하루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바른 삶을 위해 기도하고,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다시 일어나 옳은 길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시작점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상번제에 대한 규례를 주시며 1년 365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셨고 안식일과 초하루 그리고 여러 절기를 통해 더욱 깊은 교제로 나아갈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규례들을 지킬 때에 형식에 얽메이는 것이 아닌, 마음과 중심을 다해 드린다면 가나안 땅에서의 삶은 매일 축제와 같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토록 교제하기를 원하셨던 주님은 오늘 우리와도 날마다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광야와 같이 척박한 삶에서나, 가나안과 같이 윤택한 삶에서나 오직 하나님만 소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자리에서 일상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참된 기쁨이 있는 일상의 예배로 나아가십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마음으로 울고, 영원을 소망하며 웃는 복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바쁘고 분주한 일상으로 인해, 주님을 놓치고 세속적 가치관에 함몰되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제는 매 순간 주님을 바라봄으로 모든 일상이 예배의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주님께서 지정하신 모든 예배를 우선순위에 두어 우리의 삶이 더욱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 일하시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상번제의 뜻은 무엇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 기억해야 할 두 가지는 무엇이었으며, 상번제 보다 두 배의 제물이 바쳐진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3. 하나님께서 초하루에 속죄제를 요구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4.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였습니다. 매일의 삶을 일상의 예배로, 주일을 온전한 예배로 지키고 있는지 묵상해봅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
민 28:1-8 / 송수천 목사
모든 종교는 예배 행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각각 다릅니다만 자연을 숭배하고 예배하는 종교도 있고, 새기거나 부어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도 있고, 사람을 신격화 해 예배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합니다. 대상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예배도 살아 숨 쉬는 예배라야 합니다.
구약의 경우 모든 제사가 곧 예배였습니다. 특히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의 경우 제물을 선택 할 때 두 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는 살아있는 것이라야 했고, 둘은 흠 없는 것이라야 했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만 그러나 죽은 것은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산 짐승이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짐승을 잡아 드리려면 칼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이곳저곳 상처가 날 수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제물 자체가 흠 있는 것은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신약의 경우는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히9: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9:14절을 보면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실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더 중요한 말씀은 히10:18절의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짐승을 잡아 제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흠 없으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 피가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롬12:1절에서 바울 사도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드리는 산 제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산 제사는 곧 산 예배를 뜻합니다. 죽은 제물을 드릴 수 없고 흠 있는 제물을 드릴 수 없었던 것처럼 생명 없는 예배, 맥빠진 예배를 드려선 안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번제드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번제는 짐승을 잡아 고기는 각을 떠 불태워 드리고 내장도 씻어 불태워 드립니다. 그때 연기와 냄새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피는 그릇에 받아 두었다가 번제단에 뿌립니다.
모조리 불태워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에 내장이 불에 타는 냄새를 본문 2,6,8,13,24절과 29:6,8절에서 향기롭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예배라는 것입니다. /할/ ▶몇 가지를 상고해 보겠습니다.
①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2).
시50:10-12절에 보면 "삼림의 들짐승, 천산의 생축, 산의 새들, 들의 짐승,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왕이었던 다윗은 역대상 29:11-14절에서 "권능도 영광도 이기는 것도 위엄도 천지에 있는 것도 다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롬14:8절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창1: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지키시고 섭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계나 만물은 그렇다 치고 왜 내가 주의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역대상 29:14절에서 다윗 왕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생명도, 물질도, 시간도, 재능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욥1:21절을 보면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②정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고 했고, 3절에서는 "매일 드리라"고 했고, 4절에서는 "아침에 드리고 해질 때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시간 즉 예배드리는 시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 정하신 날, 정하신 때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내 맘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 나면 드리고 바쁘면 안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제쳐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안됩니다. 틈나면 예배드리고 틈나지 않으면 예배를 빠지는 것도 안됩니다. 예배는 내 맘대로 정하고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기도, 때도, 방법도 정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예배를 받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라는 단어의 뜻이 여러 가지입니다만 그 중에 노예나 종이 주인을 섬길 때 "절하다, 몸을 굽히다, 엎드리다, 입맞추다"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종이 주인의 계획이나 일정을 짜는 법은 없습니다. 주인이 종의 일정을 정하고, 할 일을 정하고 감독합니다.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주체인 것입니다. 내가 예배를 마음대로 바꾸고 조정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③향기로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향기로운"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려 여섯 번이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을 태우고 희생해야 향기로운 예배가 됩니다. 자기 할 일 다하고, 자기 갈 곳 다 가고, 자기 쓸 것 다 쓰고 남은 찌꺼기로 예배하는 것은 향기로운 예배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과 노력과 재능을 드리는 예배가 향기로운 예배입니다.
④성전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7절을 보면 "거룩한 곳에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거룩한 곳은 제사 드리는 제단을 말합니다. 구약시대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회막에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곳은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집에서 TV를 바라보며 예배할 수 있습니다. 집 옆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 예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은 멀든 가깝든 여기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