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리들리 스콧 감독. 이완 맥그리거와 죠쉬 하트넷. 이름만 들어도 귀가 솔깃한 영화가 책으로 나왔다. '단 한명의 전우도 남겨두지 않는다. 죽어도 함께 가야 한다. 역사가 그들을 버려도 그들은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99명 특수부대원들의 영웅심, 용기 그리고 잔혹함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휴먼 드라마를 책으로 엮었다. 박진감과 진한 의리를 느껴볼 수 있다.
필라델피아 인카이어러에서 20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그는 '모가디슈의 전투' 기사로 최고의 해외 취재원에게 주어지는 해외 프레스 클럽의 할 보일 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다수의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 바 있고, 이 책은 1999년 내셔널 북 어워드의 심사 결선에 오른 책이다. 보우든은 맨스 저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플레이 보이, 롤링 스톤, 퍼레이드 등의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리 브룩하이머 필름과 함께 블랙 호크 다운의 영화 대본 집필에 참여했다.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를 졸업했다. 단국대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했고, 박사 과정에서는 미국사를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특히 전쟁사와 관련된 책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두루 섭렵했기 때문에 가히 전쟁사 전문가라 할 만하다. 현재는 번역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번역 가치 있는 작품들을 찾아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착륙하자마자 소말리아인들이 몰려왔다. 두 조종사는 권총을 뽑아들고 발사했다. 그때 추락하는 블랙 호크에서 한 손으로 매달려 있던 스미스 하사가 존스쪽 창가에 나타났다. 스미스는 아덴이 목격한 잔해에서 기어나온 두번째 병사였다. 첫번째는 부쉬였다.
날개 소음을 뚫고 스미스가 존스에게 고함을 쳤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스미스의 한쪽 팔은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존스가 튀어 나와서 스미스를 따라 교차로로 되돌아갔다. 메이어 혼자 헬리콥터를 조종하면서 골목을 엄호해야 했다.
바로 그때 디토마소 중위와 병력이 모퉁이를 돌아서 리틀 버드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메이어는 하마터면 중위를 쏠 뻔했다. 조종사가 총을 내리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중위가 헬멧을 두드리면서 사상자 인원 점호를 했는지 물어왔다. 메이어는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넬슨과 다른 레인저들은 황급히 비탈을 내려가서 리틀 버드의 날개 아래 몸을 숙였다. 넬슨은 부쉬가 복부에 심한 부상을 입은 채로 한 블록 아래쪽에 기대고 있는 걸 보았다. 델타 저격수인 부쉬의 SAW 기관총은 무릎에 놓여 있었고 콜트 45구경 권총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중략)
나머지 분대원들이 주변으로 산개하는 동안 존스와 스미스는 부쉬의 늘어진 몸뚱이를 리틀 버드 쪽으로 끌고 갔다. 존스는 스미스가 조종석 뒤의 작은 공간에 들어가도록 도왔고 그런 다음 몸을 수그려서 부쉬를 승강구에 싣고 스미스의 무릎에 얹어 놓았다. 스미스는 존스가 응급 처치를 하는 동안 더 심한 중상을 입은 부쉬의 몸을 팔로 끌어안았다.
부쉬는 방탄조끼의 복부 금속판 바로 아래쪽을 맞았다. 눈동자는 회색이고 머리 쪽으로 뒤집어 올라간 상태였다. 존스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존스가 밖으로 나와 조종석으로 복귀했다. 무전으로 C2 헬리콥터에서 공중 지휘관 매튜스가 말하는 걸 들었다.
- 41, 이탈하라. 즉시 이탈하라.
존스가 조종간을 거머쥐면서 메이어에게 말을 건넸다.
"조종은 내가 맡는다."
지휘 무선망으로 보고를 올렸다.
- 41 이탈 중이다.
잔해 주변에서 그들의 핏자국과 옷 조각, 상당량의 탄피를 발견했다. 하지만 무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델타 요원과 헬리콥터 조종사, 승무원들의 흔적도 없었다. 그들은 추락 현장 주변의 움막을 수색하면서 동행한 통역을 통해서 추락한 미군들에 대해 물었지만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총을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야밤에 큰 소리로 실종된 여섯 명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마이클 듀런트! 레이 프랭크! 빌 클리블랜드! 토미 필드! 랜디 셔그하트! 게리 고든!" 침묵만이 돌아왔다.
(중략)
"소말리아인들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레퍼가 외쳤다.
델타 요원 한 명이 그에게 사격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레퍼는 군중들을 향해 발포했다. 처음에는 머리 위를 겨냥했지만 군중이 흩어지자 총을 겨누고 쏘았다. 몇 명이 쓰러지는 게 보였다. 다른 자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골목으로 끌고 갔다.
교차로에서는 병사들이 집중 사격을 받으면서 바리케이드를 손으로 치우고 있었다. 레퍼도 다른 병사들과 함께 한두 번 길을 오르락거렸다. 미군들은 이제 장갑차에서 약간 앞쪽에 있는 골목 양쪽으로 산개했다.그들은 움직이다가 정지하고, 기다린 다음 다시 움직이면서 마치 인간 아코디언마냥 살금살금 동쪽으로 향했다. 어느 곳에선가 그들이 정지했을 때 인근 건물에서 집중 사격이 날아왔다. 병사들이 엄폐물을 찾아서 응사하기 좋은 위치를 잡으러 움직였다.
"야, 내 위치로 와라."
레퍼가 스물세 살 먹은 제임스 마틴 일병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마틴이 뛰어와 벽 뒤에 쪼그렸다. 레퍼가 오른쪽으로 두 발짝 떼는 순간 마틴이 머리에 총을 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마에 작은 구멍이 보였다. 다른 대원들과 함께 레퍼가 악을 썼다.
"의무병! 여기 의무병이 필요하다!"
의무병이 마틴 옆으로 달려와서 쇼크를 방지하기 위해 옷을 느슨하게 풀렀다. 의무병이 잠시 마틴을 살펴보더니 돌아서서 다른 대원들에게 알렸다.
"죽었다."
의무병과 다른 병사들이 마틴의 시신을 끌고 가려다 사격을 받고 흩어졌다. 그중 한 사람이 돌아와서 총알을 무릅쓰고 한 손으로 사격을 하면서 다른 손으로 마틴을 끌고 안전지대까지 들어왔다. 그가 가까이 오자 다른 대원들이 달려가서 힘을 합해 시신을 골목으로 끌어들였다.
레퍼는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엄폐하면서 마틴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끔찍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가 마틴 일병에게 자기 쪽으로 오도록 했고 그래서 마틴이 총을 맞고 죽은 것이다. 시신을 끌다보니 마틴의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왔다. 열대 기후라 대원들은 속옷을 거의 입지 않았다. 레퍼는 마틴이 그런 식으로 반벌거숭이로 쓰러져 있는 걸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날아오는 총알에도 불구하고 죽은 사람의 바지춤을 치켜올려 주려고 골목으로 뛰쳐들어갔다. 그렇게라도 해야 죽은 사람을 덜 욕보이는 것 같았다. 레퍼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이 총알 두 발이 근처에 날아왔다. 레퍼는 망설이다가 엄폐물로 돌아갔다.
99명의 미군 특수부대와 수천 명의 회교도가 싸운 이야기
내셔널 북 어워드 심사 결선에 오른 책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책
밀리터리 히스토리 북 클럽이 엄선한 책
1993년 10월 3일, 99명의 미군 특수 부대원은 소말리아 군벌의 고위 보좌관 두 사람을 납치하여 부대로 귀환하라는 임무를 받고,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중심의 미로 같은 시장 골목으로 투입되는데...
■ 블랙 호크 다운은...
전쟁 취재 분야의 고전으로 불릴 블랙 호크 다운은 베트남전 이후 미군이 체험한 가장 길었던 전투를 마크 보우든이 탁월한 솜씨로 풀어낸 보고서이다. 1993년 10월 3일, 99명의 미군 특수 부대원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한복판의 미로 같은 시장 골목으로 투입된다. 그들의 임무는 소말리아 군벌의 고위 보좌관 두 사람을 납치하여 부대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작전 소요 시간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대원들은 고립된 채 수천 명의 중무장한 소말리아인들과 길고 처참한 야간 전투를 치르게 된다.
이튿날 아침, 18명의 미군 대원들이 전사하고 70명 이상이 중상을 입은 채 상황은 끝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보우든의 서술은 박진감 넘친다. 전투 상황에서 솟아나는 영웅심, 용기, 잔혹함이 묻어나는 매혹적인 이야기다.
■ 영화같은 현실이 우리 눈 앞에서 일어나다
<지 아이 제인>, <글레디에이터>, <한니발>, <블레이드 러너>의 거장 리들리 스콧이 감독하고, 이완 맥그리거, 톰 시즈모어 등이 주연을 맡는 초대작. 이 책의 주인공 레인저 대원들이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 자신들이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뉴욕 쌍둥이 빌딩 비행기 테러 사건은, 모가디슈 전투와 마찬가지로 사실이지만 사실같지 않은, 눈앞에 일어난 현실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오마르와 탈레반 정권에 대한 군사행동을 개시했다. 이 사태와 너무도 유사한 사건이 이미 1993년에 있었다. 블랙 호크 헬기를 이용한 레인저 투입, 적의 지도자 납치 또는 제거, 수단과 목적이 너무도 유사하다...
사실 빈 라덴은 소말리아 사태와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이 책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전사들이 아이디드 민병대에게 원래 대전차 병기인 RPG를 헬기 공격용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전수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들이 바로 빈 라덴의 거점이었던 인접국 수단에서 소말리아로 몰래 잠입해 온 빈 라덴의 조직원들이다. 역설적인 것은, 라덴의 수하들이 전수한 몇 십만원도 되지 않는 유탄으로 몇 십억 짜리 헬기를 잡는 비기가 아프간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가며 러시아를 상대로 갈고 닦은 기술이라는 점이었다. 아프간에서 소말리아로, 소말리아에서 다시 아프간으로, 같은 맞수, 같은 전술. 그런 점에서 미국이나 아랍의 무장세력들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 책을 읽는 동안 전해오는 스크린의 생생함
이 책에서는 소말리아인들의 관점에서 전투를 보고자 시도하였고, 소말리아인들이 봉기하도록 만든 미국과 유엔의 미숙한 행동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사소한 실수들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강습대가 충분한 식수와 야시경을 휴대하지 않았던 점과, 무겁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탄조끼에서 방탄판을 빼 버린 점, 그리고 공식 지급품인 무거운 케블러 헬멧 대신에 가벼운 하키 헬멧을 착용한 점 등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켰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내내 전쟁영화 속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든다. 전투의 공포, 두려움과 우유부단함, 목숨이 왔다갔다하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미군 병사들의 주저와 망설임,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잔혹한 행동도 여과없이 전달하였다. 이 책은 군에서 아직도 비밀로 분류된 전투를 상세히 묘사하였다. 비밀로 분류된 이유는 극비인 델타 포스 부대의 활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참전 용사들의 체험을 진솔하게 반영했다.
■ 21세기의 미국인?
블랙 호크 다운이 그토록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이 책이 우리 시대의 핵심 문제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 대한 여러 우호적 서평들마다 이 책이 "21세기로의 전환기에 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참신한 시각"을 제시하였다고 평가했다. 모가디슈에서 생긴 일을 무능한 정치인, 외교관, 장군들의 탓으로 돌려버리면 그뿐일까? 그런 식으로 클린턴 대통령, 매들린 울브라이트, 레스 애스핀, 게리슨 장군을 비난할 수는 없다.
1993년 여름, 미군을 소말리아에 투입하게 만들었던 정책은 미국이 이 세계에서 맡은 낯설고 익숙치 않은 역할의 산물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이 그 임무를 떠맡도록 이끌었고, 일단 소말리아에서 기아사태가 해결되자 거기다 그럴듯한 국가를 세우도록 지원하자는 생각은 논리적으로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소말리아 기아 사태는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었다. 식량부족은 인재였고, 상호불신과 반목으로 지새는 군벌들이 상대방에 대한 무기로서 고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그저 식량만 전달해 준 다음 손을 떼버리면, 위기가 다시 재발하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들이 미국이 이룰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미리 지적했지만, 미국의 개입이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대의명분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개입은 근본적인 화두 때문이었다. 세계 유일의 군사대국으로서 미국은 과연 인류의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방관해야 하는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도덕적 책임이 미국에게 있지 않는가???
밀리터리의 고전으로 등극하다
몇 달 전에 친구로부터 '블랙 호크 다운'이라는 영화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만큼 대강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영화의 개봉을 기대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영화의 원작 소설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책을 주문했다. 3일 후 퇴근하니 책이 도착해 있었다. 포장을 풀고 책을 조금만 읽기로 마음먹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앉은 자리에서 두꺼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첫 실전에 투입된 병사들의 피에 얼룩진 전투 기록이다. 작가 마크 보우든은 이 소설을 위해 전투 일지를 읽고 참가했던 병사들과 인터뷰를 해서 전투 현장을 재구성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패권 주의와 값싼 애국심을 자극하는 블록버스터일 것이라고 예상하며 혹평했다. 하지만 원작소설을 읽어보면 그러한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소말리아의 입장에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가능한한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일단 소설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이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는 어떨지 그것이 궁금하다. 번역도 지금까지 본 밀리터리 서적 중 잘 된 편에 속한다. 다만 번역하기 힘든 단어들을 원어 그대로 읽어버리곤 하는데 찾아보면 적절한 우리말이 있긴 하다. 그러한 부분이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