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귀성이 무엇이꼬
생각지도 않은 역귀성이 현실이다
큰놈은 손자 글로벌 스탠다드 인재를 키운다고 캐나다에 있고
둘째놈은 시흥에 있다
명절이 되면 손자 놈이 눈에 삼삼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손주
손주 얼굴 까먹겠다.
얼굴을 맞대고 또 쓰다듬으며
손주 냄새 맡아야지
가족끼리 털어놓고 살갑게 이야기해야제
등을 토닥토닥 두들이며 사람 냄새 맡아야제
봉다리 봉다리 정 나누어야제
엄마의 고봉밥도 먹여야제
“아부지요. 형도 외국있고 하니
이번 추석에는 시흥서 지내고 설악산으로 여행 합시다”
“조상 산소는 어찌하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아부지요 설악산 콘도 예약 해 나습니다”
“야가 머카노, 고향 사람들 욕한데이”
아내가 여보!
성인도 시대를 따르라고 하지 않는교
아들 말대로 합시다
역귀성이 현실로 다가왔다
눈에 눈물이 나온다
그래서 조상 산소에 성묘를 추석 전에 가기로 하였다
내 고향 금천은
꿈속에 그리는 고향 마을 錦泉!
맑고 깨끗한 수정 같은 비단샘(錦泉) 솟아
들을 기름지게 하니
온갖 과일 채소가 자라고
春山의 산천에는 산나물이 지천으로 나와
입을 달게 한다
아슬아슬 산허리 감싸고 도는 비단 물줄기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산허리 돌아
신작로는 산자락을 한참이나 돌고 돌아
제법 넓은 들판이 보이고
앞 금천에는 물비늘 반짝이는 맑은 냇물,
옥색 물빛이 산자락을 휘감고
눈부시게 고운 모래가 어우러진 풍경
논밭들이 줄지어선
구불구불한 언덕 빼기
푸르게 펼쳐진 풀밭에 하얗게 빛나는 길들,
곳곳에 피어난 갖가지 꽃들과 우아하게 춤추는 나비들이
한없이 눈을 끌어들인다.
비단 샘물(錦泉)이 솟고 있다
마을 앞 마당에는 100년이 지난
커다란 종각과 교회가 마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앞마당에는 커다란 노거수 느티나무가 두그루 마을의 이야기를 천년간 간직하고 있다
한 그루는 동사나무로 소원지가 달려 있다
다른 한 나무는 정자의 그늘을 지어주고
아이들이 책을 읽고, 놀이 하는 곳이다
단오날에는 커다란 그네가 걸려
동네 아낙네, 처녀들이 하얀 속치마를 바람에 휘나리며
분내를 내며 나비처럼 바람을 타고 오른다
커다란 느티나무 옆 정자는 마을의 정보 센타이다
정자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담소를 나눈다
명절이 되면 할매 할배가 하루종일 자식을 기다린다
학같이 목을 길게 빼들고
눈길은 신작로로 향한다
정자 앞에는 작그마한 연못
연꽃의 항연
잠자리 한 마리가 연꽃 꽃봉오리에 앉아 휴식하다
연꽃 향에 취한 듯 날갯짓을 하지 못 한다
연꽃 같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조그마한 연못에는
연꽃이 미소를 짓는다
연꽃 향기가 온누리를 덮는다
날아든 벌에게 꿀을 나눈다
생명이 자라고 있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속에
몸을 담고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맑고 향기로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정화한다
香遠益淸(향원익청) 處染常淨(처염상정)
언덕에 옹기종기 둘려 앉은 집
자연을 닮은 은은한 향기를 지닌,
들꽃같은 소박한 삶들이 들어있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마을 뒷길을 오르면 웃골 선산이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한 번 당신을 불러봅니다.
선산 굽은 소나무가 빙그레 웃는다
우리 잘 난 교장선생님 왔나
‘얘야! 단디해라’귀에 딱지 안도록 들려 주신 어메 목소리가 드린다
이제는 불러도 불러도 볼 수 없고, 꿈속에서 그려보지만 생각이 가물가물한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한다
울 엄마가 살아 계실 때가 생각난다 .
어메 아베는 마음이 착하시어
하늘에 흰 눈이 내리는 날 하늘 나라로 가셨다
눈처럼 아름답게 세상 삶을 사셨다
기력이 다하도록 팔십 평생, 구십 평생 일만 하시다
기력이 소진되어 병원에 오셨지만
의사선생은 기력이 소진 되었으니
마음으로 준비하라 하신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 눈처럼 귀천 하셨다
어메 미안해요
참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어머니의 정성 기도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감승진을 남 먼저하고
어려운 장학사 시험에 2등 합격하고
나이 오십에 교장 승진하였다
승진 할 때마다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시며
우리 아가 돈을 보내어 잔치한다고
마을 사람들을 속이신 어메
교장 12년을 하면서도 내자식 때문이라는 핑게로
제주도 여행도 한번 시켜주시 못하고
큰 사무실 회전 의자에 한번도 앉혀 보지 못한 불효자
어메, 아베 죄송해요
어메는 평생을 희생하며 기도 하셨다
선산은 마을 뒷 웃골은 햇볕 잘 드는 양지쪽 나지막한 언덕에
소나무가 둘러 쌓여있다.
안산은 신비와 전설의 명산 금성산과
학과 봉이 노니는 비봉산, 수정같은 샘이 솟는 수정사
수정사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물에 세상의 더러운 소리를 씻는(귀를 씻다) 이동천
주산은 매가 힘차게 창공을 나는 날깨 짓을 하는 매봉산
매봉산 앞에는 수 많은 문필봉이 붓을 잡고 공부한다
천년의 명당이 조상의 천년 고택이다
'굽은 솔이 선산 지킨다'
소나무가 하늘을 이고 멀거니 서 있고,
노랗고 하얀 들국화가 바람을 타고 흐느적거린다.
가을 하늘은 티끌 한 점 없이 맑게, 밝게 빛나는 無垢淨經이다.
다나니경 무구정경(無垢淨經)이다
하늘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웃고, 흐르는 물을 보고 웃고,
법을 얻어서 웃는 곳이 여기 아닐까?
조상의 삶의 흔적으로 참다운 삶을 배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이 점점 엷어지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웬일인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커져만 간다.
아버지 생전에는 별스럽지 않았던 일들이었는데 집안일를 이어받으니
그 별스럽지 않았던 일들이 모두 별스런 일로 다가온다.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종사(宗事)에 이르기까지 마음 쓰고 챙겨야 할 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큰바위 얼굴 같으셨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해마다 벌초일이 다가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벌초를 한다.
길게 자란 풀들이 잘라져 나갈 때마다 불효했던 마음도
비례적으로 탕감되는 것 같아서다.
추석에 선산에 오른다
이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들이 당신들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신다.
내 살아생전엔 내 새끼 키운다는 핑게
대학, 대학원 공부한다는 핑게로
효도 한번 하지 못한 불효자
선산에 오를 때 마다 죄스런 마음이 커진다.
그 회한의 마음을 탕감하기 위해서 오늘도 예초기를 돌린다
아부지 어메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둘째놈이 차를 가지고 부모를 모시려 왔다
고향 선산을 그리니 눈물이 난다
역귀성이 이루어졌다
우종구님의 역귀성이 생각난다
역귀성/逆歸省
우 종 구/禹鍾九
정월 초이튿날
영등포역 하행선 플랫홈
차창에 어머니의 구겨진 주름살이
서리꽃으로 피어나네
“춥다 들어가거라”
“어서, 그만 들어가라니까”
깊이를 잴 수 없는 모정
저만치서 아들 등 떠미는
육탈한 다섯 손가락 자꾸만 울먹이네
손자 놈이 눈에 밟혀 창문을 향한다
창문 사이에 손자 놈 손을 부딪 힌다
고은의 귀성을 읊어본다
‘고향길이야 순하디 순하게 굽어서/ 누가 그냥 끌러둔 말없는 광목띠와도 같지요/
산천초목을 마구 뚫고 난 사차선 저쪽으로/
요샛사람 지방도로 느린 버스로 가며 철들고/
고속도로 달리며 저마다 급한 사람 되지요....’(고은 ‘귀성’)
가는 길이 좀 불편하고 지루 하더라도 고향은 푸근해서 좋다.
세월이 흘러 이웃도 바뀌고 사는 모습도 달라졌지만
귀성길이 언제나 설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흥서 추석을 쇠고 설악산을 향한다
강릉을 지난다
두고온 동생들과 조카들 일가 친척이 생각난다
조선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사친이란 시가 생각난다
‘천리 먼 고향 만 겹 봉우리 저쪽인데(千里家山萬疊峯)/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길이 꿈속에 있네(歸心長在夢魂中)/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寒松亭畔孤輪月)/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鏡浦臺前一陣風)/
갈매기는 모래 위로 해락 모이락(沙上白鷺恒聚散)/
파도 위엔 고깃배가 오락가락(波頭漁艇各西東)/
어느 때 강릉 땅을 다시 밟아서(何時重踏臨瀛路)/
색동옷 입고 어머니 곁에서 바느질할까(綵舞斑衣膝下縫)’.
신사임당이 고향 강릉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한시 ‘사친(思親)’이다.
이토록 그리운 가족에게 달려가는 추석
나는 일가 친척을 고향에 두고 설악산으로 간다.
설악산의 보름달을 보며 고향을 그린다
눈에는 자꾸 눈물이 난다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명절 가운데 가장 좋은 명절이 추석이다.
이때는 마침 곡식들이 풍성하게 익고,
과일들은 단맛이 들고, 바람은 서늘하고 달은 밝습니다' 여운형
추석 한 달전부터 시작된 신라시대 길쌈 겨루기와 달 밝은 밤의 강강술래,
마을사람들이 질펀하게 먹고 놀면서 무한히 즐겼던
고유 풍속과 신명이 잊히지 않도록 강조한 것이다.
추석은 신라 유리왕 9년에 시작됐다.
길쌈 경쟁을 벌여 진 편이 이긴 편에 술과 밥을 대접하고 온갖 유희를 즐겼다고
‘삼국사기’에 전한다.
수확의 계절에 한데 모여 한바탕 신명나게 노는 행사였다.
이후 긴 세월 동안 변하고 다듬어져 지금은 우리에게 행복을 전하는 날이 됐다.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는 집이 늘고 있으나
모여 앉아 웃음꽃 피우는 정겨움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하던 일 멈추고 서둘러 귀성길에 오르는 것도
그 정겨움의 한자락을 잡아 보고 싶어서일 게다.
즐거워야 할 추석 연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더 서럽고 쓸쓸하기도 하다.
올해는 오랜 시간 계속된 경기 침체에 힘들고 지친 이가 유난히 많다.
그래도 함께할 가족과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이번 추석에는 다 같이 보름달과 함께 ‘희망’의 온기를 가슴에 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