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을 즐기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식탁에도 조리법을 단순화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자연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유명 파인다이닝 식당들의 와인 리스트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내추럴 와인’의 유행도 이와 맞닿아 있다. 첨가제를 넣지 않은 탓에 다소 시고 심심할 수 있지만, 그 순수한 맛이 훌륭한 요리와 만나는 순간 상상하지 못했던 미식의 차원이 열린다.
레드와 화이트 사이, 단순히 독특한 와인을 넘어 와인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내추럴 와인 이야기.
알다가도 모르겠는 ‘내추럴’ 와인, 정체가 뭘까?
사실 ‘내추럴 와인(Natural Wine, 천연 포도주)’은 대단히 포괄적인 용어다. 시중에 수많은 종류의 포도주가 내추럴 와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판매되고 있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내추럴 와인이란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해석의 폭이 넓지만, 일반적으로 내추럴 와인이란 ‘첨가물이 없거나 아주 적은’ 와인을 통칭하는 용어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레드와 화이트 와인, 즉 ‘컨벤셔널 와인’의 반대 개념이다. 흔히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갖춘 기업에서 생산되는 컨벤셔널 와인과 달리 내추럴 와인은 회사 규모가 작은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생산된다.
유통 과정 또한 짧기 때문에 컨벤션 와이너리보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가 좀 더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자는 이러한 특성이 크래프트 맥주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내추럴 와인을 ‘크래프트 와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는 유명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인 에릭 웨어하임은 컨벤셔널 와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수많은 거대 상업 와인 제조사들은 어떤 첨가물을 넣었는지 와인 라벨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 즉 독성 있는 방부제나 착색제, 감미료가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내추럴 와인은 그것이 잔에 담겼을 때의 모습처럼 ‘투명한’ 것이 가장 와인답다고 믿는 이들의 술이다.
미식의 본고장에서 태어난 와인계의 이단아
1990년대에 시작된 프랑스의 ‘내추럴 와인 운동’은 와인 생산자인 동시에 과학자였던 쥘 쇼베로부터 출발했다. 그는 여러 실험을 통해 ‘식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토양의 건강을 해치는 현대 농업 기술에서 탈피해, 다시 자연을 살리는 과거의 농법으로 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추럴 와인의 장점은 화학성분이나 첨가물을 쓰지 않고,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내추럴 와이너리가 웹사이트 등을 통해 와인의 생산지와 제조 과정을 소비자에게 오픈하고 있다. 그만큼 와인의 성분과 제조 과정에 자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때로는 화학 성분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 경우도 있다. 어디까지를 ‘내추럴’하다고 정의할지에 대한 의견이 전문가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양조에서 최소주의 혹은 비개입주의를 지키되, 포도재배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쓸 수 있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포도밭에서부터 병입까지 철저하게 인공 첨가물을 쓰지 않는 ‘엄격한 자연주의’를 원칙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업계 안에서도 해석이 다양하기에 그중 무엇 하나를 콕 집어 ‘내추럴 와인의 공식적 정의’라고 부르긴 어렵다. 다만 분명한 지향점은 있다. “자연 그대로의 와인을 지향한다”는 것.
『내추럴 와인』의 저자 이자벨 르쥬롱이 “내추럴 와인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본래의 와인인데, 드문 것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한 것 역시 이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비싼 식초와 고급 포도주 사이, 내추럴 와인 대중화의 남은 과제
산미가 강한 내추럴 와인 특유의 맛은 두꺼운 마니아층을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편견을 만드는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제품 자체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맛에 결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추럴 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용인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것.
실제로 내추럴 와인의 맛에 대해 “식초를 이렇게 많은 돈을 내고 사 먹을 순 없다”고 혹평하는 이들도 많다. 와인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조차 보르도나 부르고뉴, 론 등에서 나오는 제품이 아니면 와인으로 쳐주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그렇다고 “내추럴 와인은 맛없다”고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은 큰 오해다. 내추럴 와인은 화학성분의 도움 없이 포도 자체의 효모균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원재료인 포도가 어떻게 숙성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독특한 맛을 보여준다. 처음엔 낯설 수 있지만 규격화되지 않는 자연의 맛,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신비의 맛이 바로 내추럴 와인만의 진정한 매력이다.
자본 논리를 넘어,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의 수고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다만 그 가치가 더 대중적으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미식의 기본요소가 ‘맛’에서 출발한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아야 한다. 싱그러운 산미와 향이 낯섦을 넘어 거부감으로 다가가지 않을 때, 내추럴 와인은 더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내추럴 와인 BEST 4
아무리 글로 읽어도 직접 마셔보는 것만큼 내추럴 와인을 많이 아는 법은 없다. 내추럴 와인은 같은 제품이라도 빈티지에 따라 큰 폭으로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 매력. 만약 충만한 바디감과 밸런스를 지닌 컨벤션 와인에 익숙해 있다면 주스인지 와인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따라서 처음 내추럴 와인을 고를 때는 매장의 직원에게 어떤 맛과 느낌을 좋아하는지 등을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추천받는 것을 권한다. 만약 조금은 아는 체하며 조금 더 내 취향에 맞는 내추럴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와인 숍에 방문하기 전 아래의 네 개 브랜드를 먼저 섭렵해보자.
01. 라미디아, 로쏘 카르보 (Lammidia, Rosso Cargo)
병의 라벨에 손바닥 모양이 찍혀있어 일명 ‘손바닥 와인’이라고 불리는 ‘라미디아’ 시리즈. 굉장히 종류가 많아 실험적이지만, 맛은 어렵지 않은 내추럴 와인이다.
이탈리아 아부르조 지역에서 나오는 이 와인은 오랜 절친 사이인 마르코와 다비네가 만든 제품이다. 이들은 와인 양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한 번은 개발 중인 와인이 제대로 발효되지 않는 일이 생겼다. 이때 이들의 할머니가 포도가 잘 익을 수 있도록 ‘사악한 눈’을 없애주는 의식을 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와인의 이름이 ‘사악한 눈(Lammidia)’가 됐다.
라미디아 로쏘 까르보는 체리나 캔디 같은 느낌이 느껴지는 가벼운 레드와인이다. 기분 좋게 톡 쏘는 듯한 느낌에 ‘펑키한’ 맛이 특징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내추럴 와인 입문용으로 제격이다.
02. 카바이, 시비피노 (Kabaj, Sivi Pinot)
와인, 즉 포도주가 처음 시작된 곳은 조지아다. 당시는 내추럴 와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지만, 오크통 대신에 토기에 숙성하던 그때의 와인은 지금의 우리가 마시는 컨벤션 와인과 분명히 다르다. 슬로베니아에 있는 ‘카바이’의 목표는 고대 방식 그대로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 출신 와인 메이커 ‘장 미셸 모렐’과 그의 아내 ‘카트자 카바이’가 만든 카바이는 ‘오렌지 와인’으로 유명하다. 오렌지 와인은 화이트 와인의 양조 과정과 달리 포도의 껍질을 제거하지 않아 노란 오렌지빛을 띤다. 카바이는 1993년에 첫 빈티지를 시작한 이래 전통 방식으로 와인을 제조해온 오렌지 와인의 거장이다.
카바이 시비피노의 첫인상은 산미가 굉장히 ‘톡 쏜다’는 것. 하지만 조금 더 마시다 보면 주스같이 밝고, 즐거운 내추럴 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네 가까이에서 흔히 보이는 와인 숍에서도 판매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03. 코스타딜라(Costadila)
내추럴 와인과 관련해 ‘오렌지 와인’만큼 많이 듣는 용어가 바로 ‘펫낫(Pet-Nat)’일 것이다. 펫낫은 탄산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뜻한다. 프랑스어로 ‘자연스러운 거품’을 의미하는 페튀앙 나튀렐(Pétillant Naturel)의 줄임말인데, 탄산을 따로 주입하지 않고 와인의 발효가 끝나기 전에 병입해 기포를 만든다.
내추럴 와인 브랜드마다 ‘펫낫’은 한 종류씩 있기 마련이지만, 되도록 펫낫을 전문적으로 양조하는 와이너리의 제품을 고를 것을 추천한다. ‘코스타딜라’는 펫낫 중에서도 유명하고, 내추럴 와인에 관심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핫한 제품.
코스타딜라는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서 생산된 내추럴 와인이다. 풍부한 과실 향과 적당한 단맛, 자연스러운 기포의 느낌이 좋아 입 안에 머금는 순간 피크닉 혹은 여름 해변에 놀러 온 기분이 든다.
04. 구트 오가우, 테오도라(Gut Oggau, Theodora)
앞서 소개한 세 개 브랜드가 표준적인 맛과 대중성을 지녔다면, 지금 소개할 와인은 독특한 개성이 매력적인 제품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생산되는 ‘구트 오가우’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스테파니 췌페와 와인 메이커 출신인 에드워드 부부가 만든 내추럴 와인이다. 이들은 20년 가까이 버려져 있던 17세기 와이너리를 부활시켜 유기농 농법으로 와인을 제조하고 있다.
이 와인의 특징 중 하나는 라벨에 사람의 얼굴이 그려졌다는 것인데, 이는 각 와인을 의인화하여 이름과 얼굴 등의 개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면서 구트 오가우의 족보는 현재 무려 3세대를 이룬 대가족이 됐다고 한다. 와인을 품종이나 농장이 아닌 캐릭터와 얼굴로 구분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구트 오가우의 모든 가족이 매력적이지만, 특히 추천하는 것은 3세대 막내 라인업(구트 오가우 시리즈는 부모 라인, 막내 라인 등의 족보로 불린다) ‘테오도라(Theodora)’다. 화이트 와인이며, 잔에 따르면 과일 향이 넘실넘실 피어오르고, 효모의 감칠맛이 느껴진다.
원문: 마시즘
첫댓글 프랑스에 포도가 많고 미식가들이 많아서인지 와인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들어요
참 여러가지로 이래저래 생각꺼리가 많은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