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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과 무교절과 칠칠절 제사
민 28:16-31
16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17 또 그 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18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19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20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를 드리고
21 어린 양 일곱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22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23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24 너희는 이 순서대로 이레 동안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을 드리되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릴 것이며
25 일곱째 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27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28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요
29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30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를 드리되
31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민 28:16-21 / [유월절과 무교절 제물] 정월 십사일은 너희를 구원해 낸 나 여호와를 기리는 유월절이며 17) 또한 그 다음날인 십오일부터 이레 동안은 무교절 잔치를 벌이는 절기이다. 그 이레 동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어야 한다. 18) 무교절 첫날에는 공동체 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라. 이날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19) 그날 나 여호와에게 살라 바칠 번제물은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숫양 일곱 마리이다. 이 제물은 모두 흠이 없어야 한다. 20) 이와 함께 곡식제물도 바쳐라. 고운 가루에 좋은 올리브 기름을 섞어 바쳐야 한다.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6.6리터씩, 숫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4.4리터씩, 21) 어린 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2.2리터씩을 함께 바쳐라. 22) 또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쳐라. 이 속죄제물을 바치면서 모든 공동체 식구들의 허물을 깨끗이 씻어 내는 예식을 올려라. 23) 물론 아침마다 바치는 번제물은 이때라 할지라도 빠짐없이 바쳐야 한다. 24) 이레 동안 이 제물을 날마다 나 여호와에게 바쳐야 한다. 그 제물을 불에 살라 바칠 때 거기서 풍겨 나는 냄새를 맡고 내가 흐뭇해하리라. 날마다 내게 바치는 아침 저녁 번제물과 전제물도 빠짐없이 내게 바쳐야 한다. 25) 잔치의 마지막 날인 이레째 날에도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날에도 공동체 식구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라. 26) [칠칠절 제물] 나 여호와에게 처음 익은 곡식을 바치는 칠칠절 첫 날에도 너희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라. 이날에도 어떤 일이든 해서는 안 된다. 27) 그날 다음과 같은 제물을 불에 살라 바쳐 나를 흐뭇하게 하여라.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숫양 일곱 마리를 바쳐라. 28) 고운 가루에 올리브 기름을 섞은 곡식제물을 함께 바쳐야 한다.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6.6리터씩, 숫양 한 마리에 고운 가루 4.4리터씩, 29) 어린 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2.2리터씩을 바쳐라. 30) 또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쳐라. 그 속죄제물을 바치면서 모든 공동체 식구들의 허물을 모두 깨끗이 씻어 내는 예식을 올려라. 31) 제물을 바칠 때에는 늘 흠 없는 것으로 바쳐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바치는 번제물과 그와 함께 바치는 곡식제물과 전제물도 빠짐없이 내게 바쳐야 한다.
날마다 드리는 제사와 매주 안식일 제사와 매월 초하루 제사를 가르친데 이어서 유월절과 무교절과 칠칠절에 드리는 제사에 대한 규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월절(16)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가족 단위로 양을 잡아 식사하며 출애굽의 해방과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이날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피를 바른 집을 그냥 넘어간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유월절은 정월인 아빕 월 십사 일 저녁에 지켰습니다. 유월절을 영원히 지키라는 명령은 그 심판과 구원의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유월절 사건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백성을 구원해 주실 것을 예표합니다.
무교절(17-25) 유월절 다음 날, 열다섯째 날부터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이 이어집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구별 없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무교절이 유월절에 이어져 한 주간 동안 지켜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월절은 애굽에서 처음 태어난 모든 것을 멸절시킨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을 지켜 구원해 주신 구원 사역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고, 무교절은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을 기억하며 지키는 축제의 절기입니다. 무교절의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 성회로 모이고,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칠칠절(26-31) 칠칠절은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불립니다(행 2:1). 이날은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바치는 초실절(레 23:9-14)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오순절(五句節)이라고 불렀으며, 또한 이때는 다 자란 밀과 보리를 거두는 시기였기에 맥추절이라고도 했습니다(레 23:15-21; 신 16:10). 이는 유월절과 초막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에 속했습니다. 이때 모든 남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출 23:7). 칠칠절에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한편 구약 시대에 보리와 밀의 곡식의 추수 절기가 신약 시대로 넘어오면서 성령의 강림을 통하여 영적 추수의 절기가 되었습니다.
적용: 유월절은 구속의 절기이고, 무교절은 해방의 절기이며, 칠칠절은 추수의 절기입니다. 세 가지 절기는 당신에게 어떤 은혜가 되었는지를 서로 나누어 봅시다.
우리의 보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Juan Carlos Ortiz) 목사가 쓴 [제자입니까?]의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할렐루야"하며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진눈깨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는 하는 말이 "날씨 한번 더럽네"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날씨를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 설 교 >
맥추 감사제사를 드리자
민 28:26-31 / 오창우 목사
할렐루야 !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1년에 세 번, 하나님 앞에 감사절기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맥추 감사절입니다.
오늘은 이 맥추감사절의 의미를 제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눌려고 하는 것입니다.
맥추 감사 제사는 어떻게 드리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모여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 제사의 내용은 무엇인가? 감사절은 축제인데...
과연 많은 것을 얻어서인가? 해마다 드리라는 것으로 보면 흉년에도 드리라는 것
이다. 결국 이 감사축제의 의미는 신앙적인 것에 의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처럼... 외양간에 소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을 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리로다... 의 고백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1. 모이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맥추 감사절은 첫 번째는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이 타락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모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는 것은 내 신앙에 문제가 생긴 증거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교회에 모이는 일을 힘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귀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신앙 생활은 모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라` 그랬던 것입니다.
여러분! 월드컵 때 응원 생각나시지 않습니까? 집에서 텔레비전보고 할수도 있지만 경기장에서뿐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함께 모여서 응원을 합니다.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700만 명이 경기장에서, 전국의 길거리에서 모여서 함께 응원을 할 때 세계를 감동시키고 우리 자신도 감동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도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할까? 생각만 해도 감동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울 때 미스바에 모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블레셋군대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승리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기를 `두 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모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적도 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맥추 감사절을 맞이해서 성회로 모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26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아멘
성회로 모이는 데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일하는 것 때문에 모이는 것을 안 해도 괜찮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유 없습니다.
일하지 말고 모여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만남을 통해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보다 관계확인이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우리도 명절에 가족끼리, 친척끼리 모입니다.
이 명절에는 친구와 사업상의 관계자도 중요하지만 가족끼리 모입니다. 그러면 양해가 됩니다. 모여서 가족간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회로 모여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랑의 관계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모이는 것에 순종하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냐 또 그러냐 하는 것을 나눌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모일때 모이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으면 그 사람 진짜 우리 가족 맞아? 그런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 모이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 백성 맞아? 이렇게 이야기해도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일을 성수한다고 하는 근본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모이는 곳에 은혜가 있고
모이는 만큼 하나님이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일 오전뿐 아니라
오후에도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도 금요일 저녁에도 새벽에도 모이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모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모이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모일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늘도 모인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실줄로 믿습니다.
2. 맥추절의 제사는 2가지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제사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27절부터 29절까지 있는 말씀을 읽겠습니다.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년 된 수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의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아멘.
복잡한 내용이 써 있습니다마는 제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번제고 하나는 소제입니다.
첫째, 번제를 드린다.
번제는 생명을 바치는 제사입니다. 소, 양, 비둘기, 뭐 이런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에 보게 되면 수송아지, 수양.. 뭐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만 한마디로 생명을 바치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제사입니다. 이 번제를 드린다는 것은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 번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이미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셨던 제사입니다.
창22장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때에 그 이유는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시험했겠습니까? 어쨌든지 이 사실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좋은 믿음이다.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번제를 드린 것으로 봐서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바치면서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11:17-19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외아들 이삭을 바칠 수가 있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주권에 대한 인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바칠 때에 외아들만을 바치는 게 아닙니다. 외아들이 죽으면 자기의 대도 끊어지는 거 아닙니까? 자기의 생명도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겁니다. 그는 이 생명 바치는 일에, 또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일에, 그는 하나님 앞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순종해서 하나님이 그를 인정했고 하나님이 이런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고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던 믿음입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이 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간곡하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자 신하들에게 걱정이 생겼습니다. 이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렇게 울며 불며 기도했던 다윗 그 기도 안 들어줬으니까, 다윗이 앞으로 어떻게 할까 염려가 됐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이것을 눈치로 알았습니다. 왜 그러냐? "죄송합니다.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 때 이 다윗은 아무 소리하지 않습니다. 일어난 자리에서 그는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그리고 몸을 단장하고 집무실로 나갑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아들이 죽었는데, 그렇습니까? 그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아들이 아직 살았을 때에는, 병들어 있을 때에는 그래도 살려 주실까 해서 기도했지만, 이제 죽었는데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때 다윗의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가 어찌 할 수 있겠느냐.
생명에 대해서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이 땅에 보내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또 죽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다.
그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번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 감사절을 지나면서 소위
감사예물을 드리면서 이것은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고백이 이 속에 있느냐 이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살아 있는 것에 진짜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 이 시간까지 살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내가 오늘 어디서 무슨 사고로 죽은 사람보다 더 잘나서 이 시간 살아 있는 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생명의 주인이시고 나를 살게 하신 그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것 이것이 번제를 드리는 성도의 자세라 그런 말입니다.
두 번째, 소제를 드린다.
소제는 하나님의 삶의 주관자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은 철저하게 내 일이 잘 될 때에도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고 안 될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주관자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도 공중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누가 가서 그 먹이를 주지도 않고 길쌈도 아니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은무엇 이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제는 생명을 바치는 번제와는 달리 땀흘려 농사하여 지은 곡식을 추수한 것을 드리는 제사인데 생명을 나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듯이
농사짓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농사를 지었다고는 하지만 그런다고 농사가 잘 될 수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것이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 이 말입니다.
어제 일을 생각해 보십시요. 태풍이 부니까 그 동안 잘 지어놓은 농사가 어떻게 되었는가? 한 순간에 다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제 속에는 잘되고 못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나의 노력의 결과가 있을 수가 없다는 신앙의 고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 우리는 이 사실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맥추 감사 추수의 날에 이러한 생명의 주권- 살고 죽는 것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하나님께 있다는 신앙의 고백을 하는 번제와 우리가 잘 되고 못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소제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이 사실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요.
한 부자가 추수 때가 되어 추수를 하는 가운데 과거와는 달리 풍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고를 헐고 더 큰 창고를 짓고 천년만년 이것으로 잘 살자며.... 기뻐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 그러나 기억하라 만약에 오늘 밤에 하나님이 너의 생명을 가져 가신다면 이 모든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돈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믿어서는 안된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겁니다. 생명의 주인 되시고 삶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번제와 소제를 통해서 우리의 생사화복...사람이 살고 죽고 잘 되고 못되고는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하나님만을 믿으라는 고백을 듣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제사와 신앙의 고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히11:6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정체는
첫째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찾는 자는 상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는 두 가지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제물을 드려야 한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은 나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살게 하신 것에 대한 값이요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도와 주셔서 여기까지 왔다는 -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것에 대한 값의 제물인 것입니다.
지난 반년 동안 나를 살게 하신 생명의 값 그리고 삶을 인도하신 은혜의 값은 어느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값을 이 시간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 이건 조크입니다. ( 빵 냄새 값 100만원 ) 어느 동네에 욕심 많은 사람이 빵집을 했습니다. 이 빵집 주인이 아주 잘 익은 빵을 가마에서 막 꺼내는데 이웃집 사람이 그 빵의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서 하는 말이 "야! 빵 냄새 너무 좋다! 이 빵 냄새 맡으면 기운이 나고 너무 너무 좋다" 그랬습니다. 빵집 주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왜 내가 여태껏 이 생각을 못했지?` 저 사람 기분 좋게 한 것은 내 빵인데, 나는 빵 만드느라 열심히 고생하고 빵을 만들어 냈는데 냄새는 저 사람이 맡으니까, 이제는 빵 먹는 값뿐만 아니라 빵 냄새 맡는 값도 받아야 되겠다. 특히 이웃집 사람이 가장 많이 맡았으니까, 이 사람부터 받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집 사람에게 `그 동안 이웃에 살면서 매일 상당한 양의 빵 냄새를 맡았으니 냄새 값 주시오` 그랬으니 그 사람이 주겠습니까? 안 주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줍니까? 안 줍니까? 난 절대 안 주겠다는 겁니다...그러니까, 빵집 주인은 정식으로 법원에 빵 냄새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은 재판장에 다 몰려 왔습니다. `야! 판사가 어떻게 재판할까?` 빵집 주인의 열띤 주장을 다 들은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일리 있다고 판결을 내리는데 "이웃집 사람은 빵냄새를 맡아서 기분이 좋았으니, 냄새값 100만원을 지금 지불하시오" 10만원도 아니고 100만을 하라니, 어떻합니까?이웃집 사람은 뭐 씹은 얼굴로 100만원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주었습니다. 빵집 주인은 100만원을 가슴에 끌어 안고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띠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판결이 안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빵집 주인은 100만원을 이웃 사람에게 돌려주시오." "이웃 사람은 빵 냄새만 맡았을 뿐 빵을 가져오지는 않았으니, 빵집 주인도 돈을 만지면서 기쁨을 누렸으면 이제 다시 돈을 돌려주시오." 순간 재판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터무니 없는 욕심을 부린 빵집주인은 망신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이 욕심 많은 빵집 주인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받는 복이 있습니다. 소유의 복입니다. 둘째는 누리는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빵집 주인은 받는 복은 받았으나 내 것으로 만드는 누리는 복은 받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는 받은 복은 많은데, 누리는 복을 받지 못해서 인생이 헛되다 그랬습니다. 누리는 복을 받아야 된다 그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느냐,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누리는 복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 많이 받기는 받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누리는 복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인 되시고, 하나님이 삶의 주관자가 되심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 심을 때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누리는 복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제사는 추수의 결과에 상관없이 많이 거두었든지 못 거두었든지 드려야 한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부정적인 현실에도 믿음과 감사로 극복하며 새로운 삶을 창조해 가야 합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떠난 한 여자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악성 위궤양을 앓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때가 되어 떠났습니다.
그런데 선교지로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는 데도, 본부에서 선교 지원금 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 동안 선교사님은 아무 활동도 못하고 매일 보리죽만 먹으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그렇게 고생을 하며 지내고, 그리고 한 달 뒤, 선교 지원금이 도착하여 육 개월 동안 활발히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면서, 한 달 동안 선교비가 오지 않아 보리죽만 먹었던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건강을 지켜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선교 보고가 끝나자 한 의사가 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예, 그렇지요!" 그런데 이분의 이야기는 그런 뜻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보리죽만 드셨기 때문에 살아나신 겁니다."
“선교사님의 악성 위궤양은 본국에 있으면 절대 못 고칩니다. 왜냐 하면 먹을게 많아서, 그런데 그 곳에 가서 한달 동안 굶다시피 보리죽만 먹고 살았는데, 악성위궤양은 안 먹으면 낫는 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병을 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집의 개들도 보면 아프면 안 먹습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치유가 됩니다. 그 때에 이 선교사가 깨달았습니다. 사실 선교비가 오지 않은 한 달동안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하나님 정말 나를 사랑해서 이곳에 보냈습니까?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는 어려움을 당하는 것도 축복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통해서 건강을 되찾기도 하고,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와서 깨어지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더 큰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하나님께서 "NO"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나의 오만을 없애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오만은 당신께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포기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인내를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인내는 고난의 산물이며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얻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행복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은 은총을 주실 뿐이지 행복은 나에게 달려 있다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영혼을 성숙시켜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성장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고 당신은 내가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가지를 쳐주실 뿐이라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내 고통을 덜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고통으로 인해 내가 당신께 더 가까워 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YES"라고 말씀하시며
그래서 당신 외아들을 나에게 보내주셨다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내가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도와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 드디어 네가 바른 생각을 했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인이고 삶의 주권자 되심을 믿는 사람은 사도바울이 고백한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 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 말씀을 믿으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분명히 믿는 것은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그것을 잘 참고 견디면 하나님은 그 이상의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되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절대로 나를 버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그때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도와주심을 믿는 그런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맥추절 제사, 번제와 속제는 기본이고 그 외에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30절-31절을 보자.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아멘. 맥추절 제사는 기본적으로 번제와 소제이고, 그런데 하나님은 속죄제도 드려라 그랬습니다. 이 속죄제는 매일같이 드리는 제사도 드리라 그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맥추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상번제인 속죄제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가 아니라 이것도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상번제라고 하는 것을 봐서 우리는 속죄제는 매일같이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무엇인가 하면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입니다. 우리의 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고 나의 삶에 주관자가 되시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없이도 살 것처럼 살았던 것에 대한 불신이고 두 번째는 잘 될 때는 내가 잘나서 잘사는 것처럼 교만하다가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던 죄입니다.
우리는 이런 죄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교만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속죄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맥추감사의 제사와 함께 매일같이 드리는 상번제, 속죄제를 드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에 바바라 존슨이라고 하는 주부가 있습니다.
(「모자에 제라늄 꽃을 꽂고 행복하게 살아라』 5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 셀러 저자.」)
바바라 존슨은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는 아주 어려운 일을 겪고 난 후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바라 존슨은 남편과 네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문제가 불어 닥쳤습니다. 집에 돌아오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그만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첫째 아들은 음주 트럭 운전자에 의해 치어 죽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호모섹스에 빠져 집을 가출해 버렸습니다. 셋째 아들은 베트남전에 18세에 자원입대해서 어린 나이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그는 연속되는 불행으로 ‘하나님, 어찌해서 내게는 불행만 다가옵니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과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비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부정적으로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해!` 하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내 생명의 주인이시고 나의 삶에 주관자가 되심을 고백하고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내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감사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시간만 나면 교회에 가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식물인간이었던 남편이 기적적으로 생기를 되찾고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게 되었고, ‘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나도 뭔가 좋은 일을 해야지.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해야지.` 하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재난을 당해 실의에 빠진 부모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베트남 전쟁으로 전사한 젊은이들이 5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전사했을 때 그 부모들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위로했습니다.
‘아들이 죽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국가를 위해서 큰 일을 한 겁니다.`
또한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해서 위로했습니다. 그들을 모아 함께 기도도 하고 그들을 위한 세미나도 개최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이들을 도와주는 그룹을 만들고 선교회도 조직했습니다.
그는 남을 돕는 일로 아주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시고, 희망과 능력을 주셔서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출판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강사로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성계의 지도자가 되어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호모섹스로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남은 생애를 보람 있게 사는 축복을 감사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만약 절망하고 낙심했더라면 더 비참하게 살았을 텐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생명의 주인 되시고 삶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을 때 그의 인생은 새로워졌습니다. 진로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성공했습니다.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남을 도와주는 존경받는 여성계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원망하며 사시겠습니까? 불평하며 사시겠습니까? 남의 약점만 끄집어내고 욕하며 사시겠습니까? 비관적이며 부정적인 삶을 사시겠습니까?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작은 일부터 감사하고 교회에 나와서도 감사하고, 가정에서도 감사하고, 직장에서도 감사하고, 국가와 민족, 사회에도 감사하고 감사의 씨를 뿌릴 때 감사의 열매, 축복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감사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인되시고 우리의 삶의 주관자 되시는 우리는 주어지는 삶의 현실을 감사해야 합니다.그러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 이런 일을 보면 은혜는 환경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 은혜 입니다!
* 깨달으면 감사, 못 깨달으면 원망입니다. 깨닫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동안 감사치 않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깨달음의 은혜 때문입니다. 은혜 중에 최고의 은혜는 깨닫는 은혜입니다. 땅에 살아도 깨달으면 하늘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살아도 못 깨달으면 땅의 사람입니다.
두 렙돈으로 가난하게 살아도 깨닫는 은혜 받으면 천국의 삶이지만, 재벌 되어 부자로 살아도 못 깨달으면 그 사람은 진정 거렁뱅이입니다.
움막에 살아도 깨달으면 천국일지라도, 100평 빌라에 산다해도 못 깨달으면 움막만도 못한 것입니다. 죽 끓여 놓고도 깨닫는 은혜 받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지만 고기반찬을 놓고도 못 깨달으면 세상에 종 되어 삽니다.
감옥에 앉았어도 깨달으면 그곳이 천국이지만
궁궐에 앉아 살아도 못 깨달으면 그곳은 감옥입니다.
힘겨운 직장 속에서도 깨달아지면 그곳은 선교지 되지만
좋은 직장 속에서도 못 깨달으면 그곳은 수용소 되고 맙니다.
방 한칸에 온 식구 살아도 깨달으면 대궐이지만,
각자의 방 넓다 해도 못 깨달으면 쪽방의 삶 입니다.
시원치 않은 남편(아내) 앞에 두고 깨달으면 주님 섬기듯 하지만
못 깨달으면 그 남편(아내)은 남남 되고 맙니다.
못 고칠 질병 끓어 안고도 깨달아지면 그것도 감사의 이유이지만
건강하여도 못 깨달아지면 그 건강은 아픔만도 못합니다.
깨닫는 것이 그렇게 큰 은혜일수 없습니다.
은혜란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아지면 은혜 입니다.
기막힌 은혜란, `아 그래서 그렇게 되었구나!`
`하나님의 섭리를 잘 헤아릴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실려고- 그래셨구나!`라고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상황으로 바꾸어 지는 것도 주님의 은혜이지만 변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속에서 주님의 섭리가 깨달아진다면 더 큰 은혜 입니다. 즉시로 응답을 주심도 귀한 은혜이지만 침묵과 더딘 응답 속에서도 깨닫는 은혜 받았다면 그것은 더 없는 축복 입니다. 가시를 뽑아 주심도 은혜이지만 박힌 가시 속에서 말씀하심으로 깨닫게 하신다면 그 가시는 오히려 갑절의 은혜가 됩니다.
깨달음의 깊이가 감사의 깊이이며 감사의 깊이가 영성의 깊이일 것입니다.
깨달으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입니다. 못 깨달으면 그 어디나 지옥입니다.
"주님! 깨닫지 못한 우매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기막힌 깨달음
으로 충만케 하사 놀라운 인생으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는 성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은 깨닫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습관적이고 위선적이 되기 쉽다. 신앙생활의 기쁨은 없다. 오히려 교만한 마음으로 남보다 먼 저 인정받기를 원했고 남을 판단하는 일에 앞장서고 분노 실망으로 억울해 한다. 나의 열심이 오히려 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오래 참으심으로 기다리시는 주님의 신실하신 그 사랑이 잠 자고 있던 내 영혼을 깨우심을 받으라. 그러면 복음의 빛으로 내게 들어오신다 .
나의 행함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그의 의로우심을 내가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심을 깨닫게 해주신다.
나는 믿는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어둠의 자식이 아니고 빛 의 자녀가 되었음을. 이제 나는 내 안에 계신 성령께 순종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라.
부족한 나의 것으로 드리지 아니하고 온전하신 주님의 것으로 드리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 찬송을 한 장 부르자.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에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지난 서해바다에서 일어난 소위 서해교전으로 인해 우리 아군이 많이 죽었다.
생각할수록 속이 상한다. 희생자들의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란다. 문제는 죽은 이들의 죽음과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죽음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를 잘 들어야 한다.
국방의 측면에서 보면 안보를 튼튼히 하라는 것
정치의 측면에서는 햇빛정책을 계속할거냐 아니면 강경책을 쓸 거냐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분단의 아픔이다. 그렇다면 신앙적 의미에서 볼 것은 무엇인가?
1. 월드컵이 신앙이 되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2. 월드컵의 열기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는 일에의 열심히 그 10%만이 라도 되라는 책망이기도 하다.
맥추절은 추수했다는 소득에 대한 단순 감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다. 그래서 맥추 감사제사는 두 종류이다.
1.자원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제사 이다. 생명과 삶의 주관자 되심이다.
2. 의무제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는데... 그 사랑을 모르고 살아온 것 그 죄를 회개하고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하는 것이다.
창세기 34장의 복을 받자.(22-24)
1)승리
2)번영
3)보호.안전
살전 5:16-18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는 말씀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산다. 믿어라. 최고의 감사로 하나님 믿음을 보이라.
민수기 28:16-31
(작성: 김광욱) 찬송가 327장 ‘주님 주실 화평’
민수기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전, 전쟁에 나갈 군인의 수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두 번을 계수했습니다. 첫 번째는 출애굽 2년 초에 했으며, 두 번째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칠 즈음에 하였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 결과로 40년 광야 생활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으로의 인도 약속을 파기하지 않으셨고,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기 얼마 전에 이스라엘의 수를 한 번 더 계수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40년 광야 생활 동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결과, 은혜였습니다. 두 번째 군인 계수가 끝난 후, 민수기의 자연스러운 순서는 요단강을 건너는 과정이라든지 입성 후 땅을 차지하는 과정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관한 규정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군대는 세상의 군대와 달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법, 즉 말씀을 잘 준수하는 것이 어떤 군사 전략 이상으로 중요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회복 또는 유지에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다면, 전쟁이나 어떤 것을 하더라도 무의미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데스 바데아 불신 사건 이후,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출애굽 2세대들이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 정복 활동과 정착 생활이 이루어져 함을 보여주는 기록순서인 셈입니다.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자 28장 29장에 제사 관련 규정이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제는 매일 드리는 제사, 매주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 그리고 매월 첫날에 드리는 제사에 관한 규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절기에 관한 제사 규정 중 무교절과 칠칠절에 관한 제사 규정입니다.
유월절, 무교절(16-25)
16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첫째 달’은 이스라엘의 종교력 1월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이전에는 ‘첫째 달’을 ‘아빕월’이라고 불렀으며, 포로기 이후에는 ‘니산월’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 종교력 1월 14일은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전 애굽의 처음 난 것은 모두 죽었지만,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이스라엘의 모든 집은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이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날이기에 구원을 기념하며 기뻐하는 날이며, 구원을 베풀어 주신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절기입니다. 우리 역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7 또 그 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그 달’이란 16절에서 언급한 이스라엘 종교력 1월을 가리킵니다.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라고 하는데, 1월 15일부터 명절이라는 말입니다. 이 명절은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날, 15일부터 7일 동안 지켜야 할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유월절과 이어지기 때문에 무교절과 혼용하면서 후대에 명확히 구분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막14:1, 눅22:1), 유월절과 무교절을 구분 없이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절은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무교절에 먹을 음식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 무교병입니다. 무교병을 먹게 된 기원은 출애굽할 당시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와 쓴나물과 함께 누룩 없는 빵을 먹었던 날에 있습니다. 급히 먹고 애굽을 떠나야 했기에, 곡식 가루 반죽에 누룩을 넣어 발효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 평소와 달리 포기해야 할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8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1월 15일부터 시작되는 무교절 첫날에는 성회로 모이라고 명령하십니다. 각자 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교절 첫날은 생업을 멈추고 성회로 모여, 나의 생계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쉬라고 하신 날에 하루 일을 더 하면 일이 더 잘 될 것 같고 수입이 더 오를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길게 보면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해 주시며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서 쉬게 하시는 날은 쉬어야 합니다. 쉬어도 삶의 문제가 없게 해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9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20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를 드리고 21 어린 양 일곱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22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무교절 7일 동안 매일 드릴 제물입니다. 짐승은 세 종류인데 수송아지, 숫양, 숫염소입니다. 숫양은, 큰 것은 한 마리 작은 것은 일곱 마리를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총 11마리입니다. 제사의 종류는 번제, 소제, 속죄제입니다. 어제 살펴본 매월 첫날 드리는 번제, 소제, 속죄제와 똑같습니다.
23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24 너희는 이 순서대로 이레 동안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을 드리되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릴 것이며 25 일곱째 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무교절 기간 매일 드리는 제사가 있을지라도, 평소 매일 드리는 상번제는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평소 매일 드리는 제사는 아침과 저녁에 각각 한번씩 드렸습니다. 23절을 보면 아침에 상번제를 드린 후 무교절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24절에 ‘이 순서대로’라는 말씀을 통해, 제사의 순서 즉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규정대로 제사를 드려야 함을 주목해야 합니다. 25절에는 무교절 일곱째 날에 해야 할 일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는데 원문에서 번역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어 ‘라켐’입니다. 첫날에 해야 할 일이 있는 18절 원문에는 ‘라켐’이 없습니다. ‘라켐’의 뜻은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무교절 제7일째, 즉 이스라엘 종교력 1월 21일에는 무교절 첫째 날처럼 아무 노동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성회로 모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지막 날은 무교절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날에 즐거워하라는 의미입니다. 구약 시대 무교절 7일째 성회로 모이는 것처럼 오늘날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주일 예배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 가족이든 교우들이든 함께 쉬면서 기쁨을 누리는 한 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칠칠절(26-31)
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7주가 지난 날입니다. 칠칠절은 밀과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이기에 맥추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7주가 지난 다음 날이기에,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이날을 50번째 날을 의미하는 절기, ‘펜테코스테’ ‘오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약 시대 밀과 보리 추수로 인한 감사의 날에 신약 시대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님이 임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물질적 풍요로움의 날이 신약 시대에는 영적인 풍요로움의 날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우님의 삶이 물질적 풍요로움의 복이 임할 뿐만 아니라 영적 풍요로움의 복이 더 하길 축복합니다.
27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28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요 29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30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를 드리되 31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구약 시대 칠칠절에 드리는 제사와 제물은 무교절 기간에 드리는 제사와 제물과 같습니다. 또한 칠칠절 제사에서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더라도, 평소 매일 드리는 제사는 변함없이 드려야 했습니다. 구약 시대 매일 드리는 제사, 즉 상번제를 오늘날 비교해 보자면, 새벽기도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절기를 맞이하더라도 매일 드리는 제사를 빠지지 않도록 하셨음을 생각해 볼 때, 매일 드리는 예배, 예배의 삶, 삶의 예배, 매일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변함 없이 이 새벽기도회에 동참하신 교우님들은 앞으로도 어떤 일이 있으시더라도, 이 귀한 은혜의 시간을 놓치지 않으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삶의 터전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이스라엘이 군대를 계수하듯이 점검해야 할 것을 점검하더라도, 정작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킬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잘 누릴 수 있으며, 나아가 죄에 대하여 우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 다양한 이유로 우는 사람에게 주님을 만나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매일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별한 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더라도, 매일 하나님께 감사와 삶의 예배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신 삶의 터전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삶을 놓치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웃과 친구 중 우는 자들에게 진정한 웃음을 주시는 주님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유월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2. 무교절은 유월절과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3. 칠칠절은 오순절과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4. 무교절과 칠칠절의 제사를 드리는 날에 매일 드리는 상번제를 생략할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드는 사람이 매일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민 28:16-31 오늘의 큐티
한 일간 신문에 소개 된 술에 대한 이야기다.
직장인 정모씨(26)는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고르는게 낙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출시되는 맥주들은 모두 맛보기 위해 매일 다른 맥주를 구입한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자 요즘은 맥주 한 캔 마시지 않으면 허전하고 잠이 오질 않는다.
직장인 박모씨(25·여)는 "평소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자기 전 맥주 한 캔을 마시고는 쉽게 잠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요즘은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아예 잠에 들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저도 주의 술을 소량만 마시기 때문에 건강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소량의 술을 오래 마시는 것은 오히려 간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박정숙 알코올의존자사회복귀시설 '까리따스' 사무국장은 "간은 알코올 해독작용을 한 뒤 일정기간 쉬어야 정상 기능한다"며 "소량이라도 주기적으로 긴 시간을 마시면 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고, 짧은 시간 많은 양을 마시는 폭음보다도 안좋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왜 상번제가 필요하고 속죄 제물이 필요하며 흠 없는 것으로 구별해야 했을까?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제사의 본 기능이나 정신을 놓치면 바리새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자신은 온전한 것 같고 상대는 그렇지 않아 정죄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대로 구약의 무수한 제사와 제물로는 죄를 없앨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온전한 제사의 그림자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제사할 때 마다 온전한 제사를 사모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공로로 예배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나름 선하게 산다고 해도 흠 많은 인간일 뿐이다.
긍휼히 여기시는 그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설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주일에 예배하며 주님의 구속하심도 잊지 말아야 하고
나의 창조주가 누구신지 내가 이 땅에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지도 말씀을 통해 배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사모해야 한다.
유월절을 통해 구속의 놀라운 은혜를, 칠칠절을 통해 가장 귀한 것으로 드리지만
여전히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회상하며 감사하며 소망해야 했다.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의 예배 안에 녹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