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언스테이션 입구.워싱턴 방문첫날 김호중 부부와식사 한식당 Thunder Grill
워싱턴 대 종착역(Union Station)의 천정 무늬.
기차,버스, 렌트카, 투어, 식당,Gift shop, 등
여행자들을 위한 모든 시설이 있는 대역사다.워싱턴의서울역.
11/12/12
Comfort Inn의 아침 식사는 아주 캐주얼 했다. 캐주얼한 호텔에서 캐주얼한 식사였다.우유와,
씨리얼과, 토스트, 베이글, 와풀,달걀,쏘시지,오린지 주스, 그리고 진한 커피가 있었다.
우리의 워싱턴 안내자로부터
아침 인사 전화가 왔다.
“오늘은 헤어지는
날, 오시지 말고 쉬세요. 각자 가면 되니까요.”
부득이 가는 것 봐야겠다는
걸 말리고 김수자와 나는 ’잘가’하고 헤어졌다.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부담이 없는 이런 친구가 좋다.
‘내년 졸업 50주년
여행에서 만나자’는 약속만 든든히 해두었다.
Comfort Inn의 셔틀 버스는 매 시간30분에 유니언 스테이션으로 출발 했다. 아침 나절의
워싱턴 종착역 유니언 스테이션은 거대했다. 높은 천장,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수호 천사들의
조각들이 오래된 유물
박물관을 연상시켰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도시에서
보던
초라한 행색들이 아니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보스턴이나 뉴욕으로 떠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로 인근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많다고 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정류장에는
흑인과 스페니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버스정류장의 사람들은Second Class인생들이라고 생각하니 약간 센티멘탈
해졌다. 갈 때는 몰랐는데 돌아가는 길은 쓸쓸했다.
거대한 몸집의 흑인여자가 연신 말을
시킨다. “I’m 65 years old, you know.”그래 그게 어쨌단 말이냐.
버스가 워싱턴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가는 하이웨이를 타고 달렸다.
온 몸이 허물어지는
듯 했다. 잠을 충분히 못 잔 탓이리라. 지나가는 나무가, 낙엽이 아물아물 해지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나 보다.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 잠이 깨었다. 앞 좌석의 흑인 여자가
운전사 옆으로 가더니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This bus tire flat.
God saved us. Thank God! Hallelujah”
세상에. 30여명을 태우고 가던 버스의 타이어가 빵꾸가
났다니, 그것도70마일 속도의
하이웨이에서. 교통 순경이 왱왱거리고 달려와서 다른 차들을 스톱시키고 버스를 길가로
안내했다. 버스가 슬로우
모션으로 동네 그레이하운드 버스 터미널에
정차했다.
운전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Ladies and Gentlemen,
sorry for making trouble.
Another bus will come within one hour thirty minutes.
Everybody get off and wait for the bus, please.”
대부분 승객들은 조용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몇몇 흑인 젊은이 들만 떠들고 웃고 낄낄거렸다.
“Oh, My God! There is
a McDonald. God Saved us. Hallelujah! “
흑인 여자의 말을 패러디
한 것이다. 이 애들은 무슨 축제라도 만났다는 듯 깔깔거리며
우루루 맥도널드로 몰려갔다. 멕사칸 여자 하나가 자기는 아틀란타까지 가야 하는데
어떻게 되는거냐고 불안해 하며 물어왔다. 그레이하운드에서 다음 버스로 가도록 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 주었다. 항공회사에
근무할 때 비행기가 자연조건
때문이든 엔진트러블이든 일단 연발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스케줄을 다시 짜 주고 하루
밤 묵을 호텔을 알선 해 주는
것은 보통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맥도널드 봉지를
들고 다니며 먹다가 아무렇게나 구겨버린 봉지를 열고 주워
먹는 백인 노인이 있었다. 이 백인은 워싱턴에서부터 무임승차를 한 사람이다.
그레이하운드 버스 운전사가 티켓을 달라고
하니 ’없다’고 하며 마구 버스에 올라 탄 사람이다.
맘 좋게 생긴 흑인 운전사가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한쪽은 검은
양말을
신었는데 한쪽은 맨발이었다. 그의 쇠락이 발끝까지 온 듯 했다.
한 시간 반 만에 온다던
버스는3시간이 지나서 왔다. 맨발에 지팡이를 든 무임승차 백인이
제일 먼저 탐승하려 했다. 그는 마치 자기를 떼어놓고 갈까봐
떼쓰는 어린애 같았다.
내가 차에 오르는데 차 안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맨발의 백인 노인이
쓸어져 있고 입에서는 먹다 남은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disgusting’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쓸어진 노인을 부축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인도 흑인도 황인도 노숙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백인이 흑인들에게 조롱 당하고
있다는 컨셉은 아니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그 노인의
광경은 백인의 몰락 그 자체였다.
버스가 버지니아의 리치몬드에
도착하자 다음스케줄을 알아보았다. 더럼에 가는 차편은
없었다. 다행이 랄리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 백인노인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그가 저녁끼니 때문에 수모를 당할까봐 주머니에 있던 돈을 꺼내주었다.
20불을 받아 들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칠까봐 얼른 버스에 탐승했다.
랄리에 도착 한 시간은
거의 자정이 가까워서이다. 남편,아들,며느리,손녀 별하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밤이 늦었는데 애를 재우지 않고.” 늘 하던 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별하를
안았다.
오늘아침 워싱턴에서
우리의 안내자 김호중 목사가 한 말이 환청 인양 들렸다.
”God Bless You!”
첫댓글 수자씨 안녕..더럼에서 3개월 지내시고 ..
수화당 덕분에 워싱턴까지 진군하셨군요.ㅎ 호중 목사님(이젠 기독교방송국 사장님) 부부가
제대로 의전 행사를 잘 치른 감이네요.ㅎㅎ
틈틈이 흑인여자, 백인 노인의 모습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솔개님, 건강하시지요? 요새 동기들 행사에 잘 안보여서 안부 궁금.
그래요. 모든게 수화당 덕분이었지요.
버스 여행을 해 보니 미국의 서민들 모습이 보이네요.
자본주의가 극대화 되어서 계층의 음영이 짙어져있습니다.
오바마가 감당 못할 곳에 와 있는듯.
그런 사회에서 한인들의 생존방법은?
늙은이들은 오히려 누리는 편이지만 2세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할까.
고국이라고 다르지 않으니 이 세상에구원은 어디에 있는지
솔개님 답을 아세요?ㅎ
돌아가는 길에 그런 순조롭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니 얼마나 황당했니? 그 8시간이나 걸리는 왕복거리가 그렇잖아도 보통길이 아니었는데....
어이구 워싱턴행을 후회하진 않으셨나요? 네가 있어 나의 여정 첫 걸음은 화려하고 기쁨충만이었는데. 남편과 아들 며느리 별하에게도
걱정을 끼치고....여하튼 수자씨,이번 일들이 좋은 소재의 씨앗이 되어 근사한 모습으로 활짝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그지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