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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정에 걸려 있는 옛사람들의 시
망양정의 정면 들보에는 현판 세 개가 붙어 있는데, 가운데에 매월당 김시습의 시가, 오른쪽에는 정조의 어제시(御製詩), 왼쪽에는 숙종의 어제시가 걸려 있다. 북쪽 보에는 채수의 「망양정기」가, 서쪽에는 고려말의 문신 정추(鄭樞: 1333~1382)의 시와 정철의「관동별곡」중 망양정 관련 글이 한글로 새겨져 있다. 남쪽에는 이산해(李山海)의 시가 걸려 있다.
* 울진문화원(원장 남문열)이 2011년 12월 20일 정자의 품격을 높이고 군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취지에서 추가로 게첩한 시판은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과 원재 정추(圓齋 鄭樞)의 시다.
숙종 대왕 어제시를 태송 박영교란 분이 쓴 것인데, 숙종의 호기가 대단하다.
列壑重重透迤開 열학중중투이개 여러 골짜기 겹겹이 구불구불 이어 퍼졌고
驚濤巨浪接天來 경도거랑접천래 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
如將此海變成酒 여장차해변성주 만약 이 바다를 술로 변하게 할 수 있다면
奚但只傾三百盃 해단지경삼백배 어찌 한갓 삼백잔만 기울이랴!
정조의 시 또한 태송 박영교가 썼다.
元氣蒼茫放海溟 원기창망방해명 태초의 기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
誰人辨此望洋亭 수인변차망양정 뉘라서 이곳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
恰如縱目宣尼宅 흡여종목선니택 흡사 문선왕 공자의 집 훑어보듯
宗廟宮墻歷歷經 종묘궁장역역경 종묘 궁궐담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이 부분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매월당 김시습의 시를 단산 김재일이란 분이 쓴 것이다. 현판에는 세로로 4자씩 되어 있으나, 이 시는 칠언시이므로 7자씩 읽어야 한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詩題 登望洋亭看月 등망양정간월 망양정에 올라 달을 보다.
十里沙平望大洋 십리사평망대양 십리 평평한 모래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니
海天遼闊月蒼蒼 해천요활월창창 바다와 하늘 아득한데 달빛 푸르네
蓬山正與塵寰隔 봉산정여진환격 봉래산 정히 인간 세상과 격하였으니
人在浮藜一葉傍 인재부여일엽방 사람은 물 위에 뜬 마름 한 잎에 사는 게지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1539-1609)의 시
아계 이산해의 시. 그는 인조 반정 후 간악하고 모략이 뛰어난 음험한 인물로 매김되어 처형당하였으나(송강 정철과 정치적으로 반대편인 북인의 영수), 당대에는 글 잘 짓고 글씨 또한 명필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다. 아마도 시로만 평한다면 이 시가 망양정을 읊은 시로는 제일 뛰어나다 하겠다.
枕海危亭望眼通 침해위정망안통 바다를 낀 높은 정자 눈 앞이 탁 트여
登臨猶足盪心胸 등임유족탕심흉 올라보면 족히 가슴속이 씻기네
長風吹上黃昏月 장풍취상황혼월 긴 바람이 황혼 달을 불어 올리면
金闕玲瓏玉鏡中 금궐영롱옥경중 황금 궁궐이 옥거울 속에 영롱하다.
조선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1539년∼1609년)가 평해로 귀양을 간 적이 있었다. 「망양정기(望洋亭記)」에는 이산해가 “영동지방에 귀양갈 때 소공대를 지나면서 아득히 보이는 울릉도를 바라보니 마음이 저절로 기쁘고 행복해졌다”는 내용이 있는데, 울릉도에서 맑은 날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삼척, 울진, 강릉 일원은 줄곧 울릉도를 잇는 내륙 통로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문
余自少時。喜爲文辭。以爲文可學而能也。求古人之書而讀之。記於心而誦於口。久之。試書之。文雖成而陋不足觀。旣而思之。文者。以氣爲主。氣之不充而能爲文者未之有也。昔太史公周覽四海名山大川。得於氣而發於言。故其文疏宕奇健。變化無窮。余則生乎偏方。而亦不能盡國中之奇觀。無怪乎文之鹵莽如是也。及謫嶺東。過洛山而觀日出。過臨瀛而望鏡浦寒松之勝。過召公臺而望蔚陵之縹緲。中心已自喜幸。而及登望洋亭。見天容海色之蒼然淵然。而其大無外。其闊無涯。其深無極。然後始有以盡平生之壯觀。而浩浩乎匈中。若與曩時異矣。百川滔滔。日夜不止。則知氣之必養其本原。而爲文不可不混厚深遠。三光繞天。出沒無停。則知氣之不使有間斷。而爲文不可不純實猛健。蛟龍鯨鯢。噴薄紛挐。則知氣之務要雄勇。而爲文不可不動盪發越。蜃樓鰲嶼。隱現明滅。則知氣之務要沈着。而爲文不可不奇古幽眇。風濤怒號。振撼坤軸。銀山玉峯。素車白馬。橫馳逆走於雪花氷雹之中。則知氣之務要凌厲。而爲文不可不巉截峻拔。風恬波靜。鏡面如拭。上有一天。下有一水。而水天相涵於空明有無之中。則知氣之務要凝定。而爲文不可不溥博淵泓。凡天地之間。萬物之變。可驚可愕。可喜可娛。使人憂。使人悲者。無不收攬於是亭之上而助吾之氣。則其發於文者。衆體百態。無不兼備。而其視前日之記誦剽竊者。果何如也。噫。以眇然之身。登亭而俯仰。則不啻如糠粃蜉蝣之微。而天之蒼蒼。地之茫茫。海之浩浩。物之林林。百怪千變。無不驅入於方寸之中。而爲己之用。則其亦壯矣。一壺村釀。自酌自飮。蒼顔白髮。兀然頹於其中。則天地一衾枕也。滄海一溝瀆也。古今一須臾也。是非也得喪也榮辱也欣戚也。無不消融蕩滌。而與造物者相揖於混沌鴻濛之域。其亦快矣。其壯也如是。其快也如是。則氣焉有未充。又焉有餒之者乎。然後把筆伸紙。試書吾胸中之所有。則其必有擊節而嘆賞者矣。余之有得於是亭者。不其韙歟。亭在郡北三十里濱海斷岸之上。故太守蔡候所建云。月日。記。
내가 소싯적부터 글짓기를 좋아하여, “글은 배워서 능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옛사람의 책들을 구하여 읽었는데, 마음에 기억하고 입으로 독송하기를 오래 한 다음 시험삼아 써 보았더니 글은 비록 이루어졌으나 비루하여 보잘 것이 없었다. 이윽고 생각해 보니, 글이란 기(氣)가 주가 되므로 기가 충실하지 못하고서 글을 잘할 수 있는 경우는 없었다.
옛날에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사해(四海)의 명산대천을 두루 유람하여, 기에서 얻어 말로 나타내었던 까닭에 그 글이 소탕(疎宕)하고 기건(奇健)하여 변화가 무궁한 것이다. 나는 치우친 땅에 태어난 데다 그나마 나라 안의 기이한 경관들도 다 보지 못하였으니, 글이 이처럼 조잡함도 괴이할 것이 없다 하겠다.
그 후 영동(嶺東)으로 귀양오는 길에 낙산(洛山)을 지나면서 일출(日出)을 보고, 임영(臨瀛 강릉(江陵)의 고호)을 지나면서 경포대와 한송정의 빼어난 경관을 바라보고, 소공대(召公臺)를 지나면서 아스라이 먼 울릉도의 자태를 바라봄에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망양정에 올라,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깊어 그 크기가 밖이 없고 그 넓이가 가없고 그 깊이가 끝이 없음을 본 뒤에야, 비로소 평생의 장관을 유감없이 다하여 호호탕탕한 흉중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듯 느껴졌다.
온갖 시내가 도도히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기(氣)는 반드시 본원(本源)을 길러야 하며 문장은 혼후(混厚)하고 심원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삼광(三光 해,달,별)이 하늘을 돌아 쉼없이 출몰하는 것을 보고는 기는 간단이 있어서는 안 되고 문장은 순실(純實), 맹건(猛健)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교룡과 고래가 물기둥을 뿜고 사납게 날뛰는 것을 보고는 기는 모쪼록 웅용(雄勇)해야 하고 문장은 동탕(動盪), 발월(發越)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신기루와 오서(鰲嶼 신선이 산다는 섬)가 숨었다 나타났다 멀리서 명멸하는 것을 보고는 기는 모쪼록 침착해야 하고 문장은 기고(奇古), 유묘(幽眇)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노한 풍랑이 울부짖으며 지축을 뒤흔들고 은산(銀山)과 옥봉(玉峯), 소거(素車 흰 수레)와 백마(白馬)의 모습을 한 파도가 눈과 얼음 같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좌충우돌로 마구 치달리는 광경을 보고는 기(氣)는 모쪼록 능려(凌厲)해야 하고 문장은 참절(巉截), 준발(峻拔)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바람이 잠들고 물결이 잔잔하여 수면이 잘 닦은 거울 같고 위에는 오직 하늘, 아래에는 오직 물뿐이어서 달빛이 언뜻언뜻 비치는 가운데 물과 하늘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광경을 보고는 기는 모쪼록 응정(凝定)해야 하고 문장은 부박(溥博), 연홍(淵泓)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와 같이 천지의 사이에 만물의 변화로서 놀랄 만하고 기쁠 만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하게 할 만하고 슬퍼하게 할 만한 것들을 이 정자 위에서 남김없이 거두어 잡아 나의 기운을 돕는다면, 문장으로 발휘되는 것이 뭇 체식(體式)과 온갖 자태를 모두 갖출 터이니, 예전에 기송(記誦)하고 표절하기만 일삼던 것과 비교하면 과연 어떠하겠는가.
아, 내가 미미한 일신으로 정자에 올라 천지를 굽어보고 우러러보니 나의 존재가 겨나 하루살이보다도 더 보잘 것이 없건만, 높푸른 하늘과 드넓은 땅, 아득한 바다와 수많은 만물이 갖가지 괴이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가슴속으로 달려들어와 나의 작용이 되지 않음이 없은즉, 그 또한 장엄하다 하겠다.
이에 한 호리병의 텁텁한 막걸리를 자작(自酌)해 마시다 취해 창안(蒼顔) 백발로 정자 위에 쓰러져 누우면 천지가 일개 이부자리이고 창해가 일개 도랑이고 고금이 일개 순간이라, 시비니 득실이니 영욕이니 희비니 하는 따위는 남김없이 융해되고 세척되어 저 홍몽(鴻濛)한 혼돈의 세계에서 조물주와 서로 만나게 되니, 그 또한 통쾌하다 하겠다.
그 장엄함이 이와 같고 그 통쾌함이 이와 같고 보면, 기가 어찌 충실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한 어찌 결핍됨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뒤에 붓을 잡고 종이를 펴서 시험 삼아 내 흉중에 간직한 것을 쓴다면, 그 글을 보고 필시 무릎을 치며 탄복하는 이가 있을 터이니, 오늘 이 정자에서 얻은 바가 훌륭하지 않겠는가.
정자(망양정)는 군(郡) 북쪽 30리 거리의 바닷가 깎아지른 벼랑 위에 있는데, 고인이 된 군수 채후(蔡侯)가 세운 것이다.
모년 모일에 기(記)를 쓰노라.
원재 정추(圓齋 鄭樞; 1333~1382)의 망양정에 올라
望洋亭上立夕時 春晩如秋意轉迷/知是海中風霧惡 杉松不長向東枝
망양정에 올라 저녁 무렵 서 있으니/ 늦은 봄이 가을 같아서 마음 더욱 아득해지네/ 아무래도 바다 가운데 바람 안개 나쁜 모양이지/ 삼나무 소나무 동쪽 향한 가지는 자라니 못하네.
萬壑千巖邐迤開 傍山歸去傍山來/雲生巨浪包天盡 風送驚濤打岸回
일만 골짜기 일천 바위가 잇따라 놓였는데/ 산을 따라 돌아가고 산을 따라 내려왔다네/ 구름이 큰 물결에서 나니 하늘을 다 감쌌고/ 바람은 놀란 물결을 보내어 언덕을 치고 돌아오네)
송강 정철(松江鄭撤: 1536∼1593)의 관동별곡 중 망양정 부분
天텬根근을 못내 보와 望망洋양亭뎡의 올은 말이,(하늘의 끝을 내내 못 보아 망양정에 오르니,)
바다 밧근 하ᄂᆞᆯ이니 하ᄂᆞᆯ 밧근 무서신고.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가?)
ᄀᆞᆺ득 노ᄒᆞᆫ 고래, 뉘라셔 놀내관ᄃᆡ, (가뜩 성난 고래를 누가 놀라게 하기에,)
블거니 ᄲᅳᆷ거니 어즈러이 구ᄂᆞᆫ디고. ((물을) 불거니 뿜거니 어지럽게 구는 것인가?)
銀은山산을 것거 내여 六뉵合합의 ᄂᆞ리ᄂᆞᆫ ᄃᆞᆺ,(은산을 꺾어내어 온 세상에 내리는 듯,)
五오月월 長댱天텬의 白ᄇᆡᆨ雪셜은 므ᄉᆞ 일고.(오월의 드높은 하늘에 백설은 무슨 일인가?)
져근덧 밤이 드러 風풍浪낭이 定뎡ᄒᆞ거ᄂᆞᆯ,(잠깐 사이에 밤이 되어 풍랑이 가라앉거늘,)
扶부桑상 咫지尺쳑의 明명月월을 기ᄃᆞ리니,(해 뜨는 곳 가까이서 밝은 달을 기다리니,)
瑞셔光광 千쳔丈댱이 뵈ᄂᆞᆫ ᄃᆞᆺ 숨ᄂᆞᆫ고야.(상서로운 달빛이 보이는 듯 숨는구나.)
珠쥬簾렴을 고텨 것고, 玉옥階계ᄅᆞᆯ 다시 쓸며,(구슬 발을 다시 걷고, 섬돌 층계를 다시 쓸며,)
啓계明명星셩 돗도록 곳초 안자 ᄇᆞ라보니,(샛별이 돋아 오를 때까지 곧바로 앉아서 바라 보니,)
白ᄇᆡᆨ蓮년花화 ᄒᆞᆫ 가지ᄅᆞᆯ 뉘라셔 보내신고.(흰 연꽃 한 가지를 누가 보내셨는가?)
일이 됴흔 世세界계 ᄂᆞᆷ대되 다 뵈고져.(이리 좋은 세계를 남들에게 다 보이고 싶구나.)
流뉴霞하酒쥬 ᄀᆞ득 부어 ᄃᆞᆯᄃᆞ려 무론 말이,(신선주를 가득 부어 달더러 묻는 말이,)
英영雄웅은 어ᄃᆡ 가며, 四ᄉᆞ仙션은 긔 뉘러니,('영웅은 어디 갔으며, 사선은 그 누구인가.')
아ᄆᆡ나 맛나 보아 녯 긔별 뭇쟈 ᄒᆞ니,(아무나 만나 보아 옛 소식을 묻고자 하니,)
仙션山산 東동海ᄒᆡ예 갈 길히 머도 멀샤.(선산이 있는 동해로 가는 길이 멀기도 멀구나.)
인천(仁川) 나재 채수((懶齋 蔡壽; 1449~1515)의 망양정기(望洋亭記)
* 왼쪽에 '인천 채수 근기'라고 적혀 있는 이 망양정기는 조선조 성종 2년(1471년) 평해군수로 재직하면서 현종산 기슭에 있던 망양정을 개축했던 채신보(蔡申保)의 아들 채수(蔡壽)가 지은 중수기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5권 평해편>에 실려 있다.
망양정기(蔡壽 望洋亭記) 해석 전문
“이 정자는 여덟 기둥으로 둘렀는데 기와는 옛 것을 쓰고, 재목도 새로운 것을 쓰지 않았다.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풍경 물색의 기이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자의 조금 북쪽을 둘러 8칸을 지으니 이름을 영휘원(迎暉院)이라 한다.
벼랑을 따라 내려가면 또 한 돌이 우뚝 솟아 그 위에 7, 8명은 앉을 만하며 그 아래는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이름을 임의대(臨漪臺)라 한다. 북쪽을 바라보면 백 보쯤 밖에 위험한 사다리가 구름을 의지하여 그 위로 사람이 가는 것이 공중에 있는 것 같으니 이름을 조도잔(鳥道棧)이라 하는데,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유람 관광하는 즐거움이 이 이상 없다. 바람 자고 물결 고요하며 구름 걷고 비 갤 때에, 눈을 들어 한 번 바라보면 동쪽이 동쪽이 아니요, 남쪽이 남쪽이 아닌데 신기루(蜃氣樓)는 보이다 말다하고, 섬들은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가다가 큰 물결이 거세게 부딪치고, 고래가 물을 내뿜으면 은은하고도 시끄러운 소리에 하늘이 부딪치고 땅이 터지는 것 같으며, 흰 수레가 바람 속을 달리고 은산(銀山)이 언덕에 부서지는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보면 고운 모래가 희게 펼쳐지고 해당화는 붉게 번득이는데, 고기들은 떼 지어 물결 사이에서 희롱하고 향백(香柏)은 덩굴 뻗어 돌 틈에 났다.
옷깃을 헤치고 한 번 오르면 유유히 드넓은 기운과 짝하여 놀아도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며, 널리 조물주와 함께 하여 그 끝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서 비로소 이 정자가 기이하고, 하늘과 땅이 크고 또 넓은 줄을 알게 된다.
아, 우리나라에서 봉래(蓬萊)·영주(瀛洲)를 산수의 고장이라 하지만 그중에도 관동(關東) 지방이 제일이 되며, 관동지방의 누대(樓臺)가 수없이 많지만 이 정자가 제일 으뜸이 된다. 이는 하늘도 감추지 못하고 땅도 숨기지 못하니, 모습을 드러내어 바쳐서 사람에게 기쁨을 줌이 많다. 어찌 이 고을의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를 적어서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없다.”
望洋亭記
是亭繚以八柱。瓦用其舊。材不新聚。雖不壯不麗。而景物之奇。莫可端倪。亭之小北。環搆八間。名迎暉院。緣崖而下。又有一石突起。上可坐七八人。下臨無地。名臨漪臺。北望百步外。有險棧欹雲。人行如在半天。名鳥道棧。凡行旅遊觀之樂極矣。每風恬波靜。雲消雨止。擧目一望。則其東無東。其南無南。蜃樓隱見。鼇嶼出沒。或洪濤怒號。鯨鯢噴薄。則隱隱轟轟。如天摧地裂。如素車奔風。銀山碎岸。近而視之。鳴沙鋪白。海棠飜紅。群魚族戲於波間。香柏蔓生於石隙。披襟一登。悠悠乎若與灝氣游而莫得其涯。洋洋乎與造物者俱而不知其所窮。然後始信亭之奇。而天地之大且廣也。嗟夫。我國號蓬瀛山水之窟。而關東爲最。關東之樓臺以百數。而此亭一朝冠焉。天不能慳。地不能祕。呈奇獻異。悅人多矣。豈非此邑之幸歟。是不可不志以傳於後也.
망양정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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