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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18. 큐티
에스겔 43:18 ~ 27
번제단의 봉헌
관찰 :
1) 번제단 봉헌 규례를 시작하는 말
- 18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는 이러하니라”
a. 번제단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예식에 관한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b. 하나님께 번제단을 봉헌하는 규례는 크게 두 가지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는 번제를 드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c. 에스겔은 번제단을 강조하기 위해 “그 위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이 표현이 두 번 사용되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d. 번제물을 드리는 것과 피를 바르는 것은 모두 생명의 죽음을 전제합니다. 이 두 가지 내용을 동등하게 강조하는 것은 번제물을 드리는 행위는 짐승의 죽음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생명을 대신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 짐승의 피를 바르는 것은 죽은 짐승의 피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죄를 속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e. 레 17:11은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고, 피는 죄를 속하는 역할을 하므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써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죄를 속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짐승 제물이 다른 생명의 죽음을 대신한다는 의미와 죄를 속한다는 의미 모두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같은 구약의 제사 제도는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성전의 번제단에서 반복해서 다시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히 9:27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신 속죄는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처럼 행할 필요가 없는 단회적 제사였습니다. 히 9:12이 말하는 것처럼 짐승의 피로 드린 제사가 아니고 오직 자기의 피로 드린 제사였으므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제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피와 달이 그리스도의 피는 요 6:53이 증거하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었습니다. 즉 짐승의 죽음과 피로 드리는 구약의 제사는 제사드리는 자의 죄를 속하는, 죽음으로써 그의 죽음을 막는 소극적 역할만 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피로 드리는 신약의 제사는 속죄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죄의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살 수 있게 하는 적극적 역할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f. 그러나 구약의 제사도 오실 메시야의 영원한 속죄와 구원 사역의 그림자였으므로 진실된 마음으로 성전의 번제단 앞에 나와 희생 제물의 죽음을 지켜보고 회개한 사람이라면 속죄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는 진실된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잃어버린 채 성전의 마당만 밟고 가는 형식적 제사였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자녀를 죽여 우상에게 드린 그 날에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까지 자행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속하는 제사라 일컬을 수도 없으며 도리어 죄를 더하고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요구하는 새 성전에서 번제단에 희생 제물을 드리고 피를 뿌리는 의식도 미 6:8이 강조하는 것과 같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던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용서 받기 원하는 진실된 참회와 죄의 자리에서 떠나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나오는 제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번제단을 완공한 날의 번제단 정결 예식
- 19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
a. 21절까지 번제단을 완공하는 날 거행되어야 할 번제단 정결 예식 규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b. 번제단을 봉헌하는 의식을 주관할 사람이 사독 자손 계열의 레위인이어야 한다는 사실과 그 의식에서 드려질 희생 제물이 수송아지 한 마리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c. 사독 자손 계열의 제사장들은 이미 40:46에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을 드는 일을 행할 사람들로 지명되었습니다. 사독은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으로 아론의 손자이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의 후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민 25:10-13에서 비느하스의 후손으로 대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이 약속은 왕상 2:26, 27, 35에서 솔로몬이 다윗 왕 시대에 데제사장직을 수행하던 아비아달을 쫓아내고 사독으로 그를 대신하게 한 사건으로 성취되었습니다.
c. 하나님께서는 희생 제물을 드리는 등 번제단의 봉헌 예식을 행하는 제사장의 일을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즉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직무와 그를 통한 성전 제사는 하나님의 거룩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는 섬김의 사역과 밀접한 관련을 지닙니다.
d. 고대 다른 종교에서도 제물을 태워 우상에게 바치는 제사가 있었지만 그들의 제사는 짐승만 태우는 형식적 제사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의 신들은 제사를 드리는 자의 제물의 피, 제물의 가치만을 보는 것으로 여겨질 뿐 그들의 삶의 면모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드리는 제사 제물보다 그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먼저 보시는 분이심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사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거룩을 간과하거나 그의 내면에 거룩을 향한 열망, 그의 삶 속에 거룩을 소망하는 삶이 없다면 그의 예배는 무의미한 것이며 도리어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e. 새로운 성전에서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께 진실되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제사장들과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거룩을 열망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참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의 손으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가 드려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20절. “네가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청결하게 하고”
a. 희생 제물인 수송아지의 피를 어느 곳에 발라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피를 바르는 행위가 가져오는 효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b. 수송아지의 피를 발라야 할 첫 번째 장소는 제단의 네 뿔 즉 번제단의 제일 위층은 삼 층의 네 모서리에 있는 뿔이었습니다. 두 번째 장소는 아래층 네 모퉁이였습니다.
c. 수송아지의 피를 번제단에 바르는 행위는 정결하게 하는 효과, 즉 번제단이 하나님께 사용되는 기물이므로 그것을 죄의 오염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동시에 속죄하는 혹은 속전을 내는 효과, 즉 번제단의 부정함으로 인해 닥칠지 모르는 죽음으로부터 제사장의 생명을 대신 살리는 속죄의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 21절. “그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가져다가 성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
a. 번제단의 봉헌 의식을 위해 잡은 수송아지의 남은 사체는 특정한 장소에서 태우라는 명령입니다.
b. 정확하게 어디서 태울 것이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성소와 성소를 기준으로는 외부이지만 성전 전체를 기준으로 볼 때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태웠을 것입니다. 학자들 중에 성소의 서편 뜰 뒤에 따로 떨어진 건물이라 추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성전으로부터 스무 척의 거리를 두고 세워졌고 너비가 일흔 척이고 길이가 아흔 척의 규모라는 사실 외에는 용도에 대해서 기록된 바가 없습니다. 이 건물 외의 다른 곳에서 태웠을 가능성보다는 이 건물에서 태웠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노는 것입니다.
3) 완공일 이후 칠일간의 번제단 정결 예식과 봉헌 제사
- 22절. “다음 날에는 흠 없는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하게 하기를 수송아지로 정결하게 함과 같이 하고”
a. 26절까지 완공일 이후 칠 일간 거행될 번제단 정결 예식과 봉헌 제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b. 제단을 봉헌하는 의식은 첫째 날에 이어 두 번째 날에도 행해졌습니다. 25절을 보면 일곱째 날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21절을 보면 첫째 날에는 속죄 제사의 희생 제물이 수송아지였으나 본 절에서는 둘째 날부터 숫염소가 속죄제물로 드려졌습니다. 또한 23-25절을 보면 수송아지도 계속해서 드려졌으나 속죄제물로 드려진 것이 아니고 번제물로 드려졌습니다.
c. 숫염소나 수송아지가 매일 계속 드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둘째 날부터는 수송아지가 아닌 숫염소를 속죄제물로 삼아 드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레 4:23, 24을 근거해서 숫염소가 족장이나 왕의 속죄제물이기 때문으로 봅니다. 또한 레 16:5이하를 근거로 들어 숫염소는 대속죄일에 모든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지는 속죄제물이었기 때문으로 보기도 합니다.
d. 첫째 날의 속죄제물은 번제단을 정결하게 하는 모세 오경의 규례 출 29:36을 따라 수송아지로 드리게 했지만 둘째 날부터의 속죄제물은 왕이나 족장 및 모든 백성을 위한 속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숫염소로 드리라고 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둘째 날의 정결 의식은 희생 제물이 수송아지에서 숫염소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 짐승의 피를 번제단에 바르는 방식은 20, 21절에 기록된 수송아지의 경우와 동일하게 진행되었습니다.
- 23절. “정결하게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a. 정결 예식을 위해 드려야 할 희생 제물 이외에 번제물로 드려야 할 희생 제물에 관한 언급입니다.
b. 번제물을 위한 희생 제물은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였습니다. 수송아지는 레 1:5을 보면 일반적으로 드리는 대표적인 번제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레 1:10, 14을 보면 가난한 사람의 경우 수송아지 대신 양이나 염소를 드리거나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숫양은 레 8:18, 19을 보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위임식을 행할 때에 제물로 드리던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c. 첫째 날과 둘째 날 드리는 번제물에 공통적으로 붙는 조건은 흠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제물은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러한 제물을 드린다면 그 같은 일을 행하는 자에게는 속죄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임할 뿐이라 말씀하셨습니다.
d. 과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흠이 있는 부정한 짐승이 드려지던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는 겔 40-42장에서 사람이 세우지 않은 새 성전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시고 10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 성전에 행한 자신들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18-27절의 번제단의 봉헌 규례와 관련된 희생 제사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흠이 있는 제물을 드렸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 벧전 1:18, 19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속죄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관련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속죄 제사의 희생 제물로 보고 아무런 흠이 없으신 온전하신 그의 피로 인한 속죄 사역이 영원한 효력을 지닌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본문의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새 성전의 흠이 없는 제물은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의 속죄와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단번에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 24절. “나 여호와의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a. 본 절은 22절에 언급된 희생 제물인 숫염소와 23절에 언급된 번제물인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는 방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b. 레 1:1-9에 의하면 희생 제물을 안수하고 그 제물을 잡고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일과 제물을 물로 깨끗하게 씻는 일까지 전반적인 일들을 모두 제사를 드리러 나온 사람이 직접 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단지 깨끗하게 씻긴 제물을 하나님의 번제단에 올려 놓은 뒤에 불사르는 일만 했습니다. 또한 제사장들이 제물들을 가져갈 대상은 “여호와의 면전”(리프네 예호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면전”은 번제단을 의미합니다.
c. 제자장은 먼저 제물들을 번제단으로 가져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준비된 제물을 가지고 번제단으로 가까이 나가 그 위에 올려 놓는 일, 즉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 불에 태워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흠향하시는 향기로 올려드리는 일은 42:13이나 19절이나 본 절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d. 제사장은 그 제물들의 위에 소금을 쳐야 했습니다. 레 2:13에서는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예물에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번제단으로 제물을 가져가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져다 드리는 모든 제물에는 소금을 넣어야 했습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기능과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아무리 진실된 제물이라도 그것은 부정한 사람과 동일시되기에 그 부정을 정결케 하기 위해 소금을 치는 상징적 행위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e. 민 18:19과 대하 13:5에서 ‘소금 언약’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민 18:19에는 하나님께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을 제사장의 몫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대하 13:5에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이 다스리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소금은 어떤 것의 속성이 변질되지 않고 계속 지속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음식의 맛을 제대로 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소금 언약이라고 한 것은 제사장에게 줄 거제물과 다윗 자손에게 줄 이스라엘의 왕권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약속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본 절에서 번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한 것은 번제를 통하여 그것을 드리는 사람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약속이 번복되지 않는다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f. 번제물에 소금을 치라는 명령은 인간 편에서는 자기의 부정함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씻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속죄 사역으로 정결함을 입는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용서가 번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25절. “칠 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
a. 번제단을 하나님께 봉헌하기 전에 드린 속죄제는 총 칠 일에 걸쳐 행해졌습니다.
b. 첫째 날은 20, 21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수송아지를 잡아 피를 제단에 바른 후에 사체는 별도의 장소에서 태웠으며 둘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는 염소를 속죄 제물로 드리고 수송아지와 수양을 번제물로 태워드려서 총 칠 일 간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c.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수양 한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준비하라는 내용은 23절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 26절. “이같이 칠 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하게 하며 드릴 것이요”
a. 칠 일 동안의 속죄제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완전한 속죄가 드려질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b.에스겔 당시 바벨론 포로 공동체의 독자들에게 새 성전에서 번제단이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되도록 거룩하게 구별하고 정결케 될 것이며, 또한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전의 죄악을 회개하고 죄로 인한 모든 부정함을 씻고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 살아가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사실, 속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가 드려질 수 있는 조건이 완전히 구비되었고 실제 그러한 제사가 드려지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c. 그러나 본 절 전체의 궁극적 의미는 새 성전의 실체인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교회,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이라 일컫는 신약 성도들과의 관련 하에 찬을 수 있습니다. 이를 감안할 때 궁극적으로 본절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속죄 사역과 그로 인한 신약 교회와 성도들의 상태가 어떤 것일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먼저 정결함을 입어야 할 번제단은 하나님께 헌신되어야 할 성도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영혼, 또는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려져야 할 그들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칠 일 간의 속죄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신약의 성전인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과 복된 관계를 영위하며 온전한 헌신을 바치는 삶을 살 조건을 다 갖추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4) 제8일 이후부터의 번제단에서의 제사 거행 개시
- 27절.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a. 칠 일 동안의 속죄제사를 드리는 기간이 끝난 이후에 제팔 일부터 드릴 제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b. 칠 일간의 번제단을 위한 속죄제사 즉 봉헌식을 치르고 난 뒤에 드릴 제물에 대한 설명입니다.
c. 새 성전의 환상은 신약 시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그에 근거해 새 성전을 세울 신약 성도들과 면밀한 관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여 본 절의 번제와 감사제 제사는 언약 관계의 수직적 측면과 수평적 측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번제는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상징합니다. 감사제는 예배자들이 공동 식사로 함께 나눠먹는 것입니다. 성전은 재건되었고 이미 속죄는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속죄와 속건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께 헌신하며 이웃과 화목하는 삶을 영위하면 되는 것입니다. 소제의 경우는 신약적 문맥에서 성도가 일상에서 하나님 앞에 수고한 것을 바치는 삶의 제사를 의미하기에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에 편입시킬 수 있습니다.
d. 번제와 감사제물은 회복될 선민의 새 성전에 대한 감사의 의미만 아니라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정결하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가르침 :
1) 번제단 봉헌을 통해 번제단 자체가 정결하게 되고, 또 제사를 드리는 자들과 제사장이 정결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고서 제사를 드리게 되면 도리어 죄로 인한 저주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섬세하게 속죄에 대한 피의 제사의 필요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 필요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완성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새 성전의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 환상이 궁극적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 일은 에스겔이 다 파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성령의 감동하심이 임하게 된 사도들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신약에서 복음서 다음에 씌여진 서신서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됨의 사역이 이 새성전의 환상이 완성된 것이라는 것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새 성전의 제사가 온전히 성취된다는 것은 바벨론 포로의 유다 공동체가 회복하게 된 소망을 오늘날 성도가 더욱 완성된 것으로 소유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죄악을 씻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죄를 벗어나 헌신과 감사의 제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적용 :
1) 에스겔이 본 새 성전 환상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만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해석은 성령의 은혜와 역사가 아니면 열려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다 이루었다” 선포하시고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오셔서 사도들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말씀들과 주님이 이루신 일들이 구약의 말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선명하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에스겔의 새 성전 환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된 것임을 깨닫게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저와 같은 사람도 성령의 은혜로 그것이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하신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2) 에스겔이 천사를 따라다니며 성전을 척량하고 그 수치들을 일일이 기록한 이유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상징적이고 예언적이기에 쉽게 열리지 않은 것이나 성령께서 열어주시고 믿어지게 하시기에 그 새 성전의 환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됨으로 믿어지고 바라보게 되어집니다. 그것은 새 일을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말씀을 성취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심을 믿게 되는 역사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