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나큰 고독 / 홍속렬
나는
한국에서 여자축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다
아무도 관심 없는 여자축구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에 처음 여자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 한국도 출전하기 위해
신문광고를 내어 공개모집 했다
나는 당시 상무부대 축구 감독으로 재직 중이었고
급조된 여자축구가 상무로 합숙 훈련을 들어와
그들의 뒷바리지를 해주며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건 축구선수도 아니고 팀도 아닌
아니 볼을 찰 줄도 모르는 다 자란 처녀들을 모아
축구를 한다는 일이 웃기는 코메디었다.
그리곤 북경 아시안 게임에 나가 참패하고 돌아온
한국의 여자축구?
나는 당시 대한축구협회 여성분과 부위원장으로
여자축구행정을 도맡아 관리하고 있었고
팀 같지도 않은 대한민국 여자축구팀? 에 대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여자축구?
이런 팀을 내가 해보자고 결심하고
먼저 상무에서 여군으로 여자팀을 만들어
팀다운 팀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으로
부대장에게 보고하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결재를 맡아
군 팀으로 시작하려 했으나 군인의 증원은 미팔군의 결재를
맡아야 하는데 그쪽에서 결재가 미뤄지는 과정 중에
마침 신학교에서 여자팀을 창단하겠다고 날 스카웃 해서
오직 열정 하나만 믿고 철밥통인 상무를 전역해서
체육선교 신학교 여자축구팀을 창단 정부 주도로
이화여대와 숙명여자대학을 정책적인 지원으로 팀을 창단했고
이와여대 숙명여대 체육선교 신학교 인천전문대학 등
네 개 팀이 첫 리그를 벌려 내 팀인 체육선교 신학교 팀이
우승을 첫해에 해내었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의 여자축구는 내 생명과 같았고
내 가정과 나 개인의 삶을 모두 바쳐 시작한 여자축구?
재정지원이 없어 내 개인의 희생으로 팀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곤 재정지원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칠년만에 여자 축구를 접고 나는
중미에 축구선교사로 나가 그곳에서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선교를 했다.
축구선교사로 팔 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대하는 여자축구는 참 많이 발전했고
신기하리만치 처음보다 잘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 사명 어린이 꿈나무 축구로
이어지는 나의 미션은 조치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내 꿈은 여전히
여자축구에 가 있는 중이라
조치원에서 거행되는 여자축구 실업 리그나
대학 리그 경기가 있을 때마다 먼 길 걸어 걸어
찾아가 경기를 보는데 처음 시작할 때보다
높아진 경기력에 감회가 새롭다.
내가 여자축구를 시작할 땐 초창기인데 다가
선수 구하기도 힘들었고 인식이 부족해
무슨 여자가 축구냐? 하며 사회적 인식도 부족했던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던가?
이 노병이 그렇게 전 재산을 다 바쳐
이뤄 놓은 여자축구의 기반을 다 닦아 놓은
이 노병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고
발전한 여자축구를 보는 일은 좋았으나
축구장에서 느끼는 지독한 고독을 어쩌랴?
나의 고독? 나의 사랑 여자축구는 어디로 행해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