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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절과 속죄일
민 29:1-11
1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
2 너희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로 드릴 것이며
3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에는 십분의 이요
4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5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6 그 달의 번제와 그 소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그 규례를 따라 향기로운 냄새로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7 일곱째 달 열흘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8 너희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9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요
10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11 속죄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라
민 29:1-11 / [새해 잔치에 바치는 제물] 칠월 초하루가 되면 너희는 모두 한 자리에 모여라. 이 날에는 어떠한 일이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날에는 나팔을 불어라. 2) 이날 너희는 내게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흠 없는 일년된 숫양 일곱 마리를 불에 살라 바쳐라. 내가 그 냄새를 맡고 흐뭇해하리라. 3) 또한 고운 가루에 올리브 기름을 섞은 곡식제물을 함께 바쳐야 한다.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6.6리터씩, 숫양 한마리마다 고운 가루 4.4리터씩, 4) 어린 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2.2리터씩을 바쳐라. 5) 또한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쳐라. 그 속죄제물을 바치면서 모든 공동체 식구들의 허물을 깨끗이 씻어 내는 예식을 올려라. 6) 이날에는 이외에도 매달 초하루에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도 함께 바쳐야 하며, 날마다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과 전제물도 함께 바쳐라. 내가 그 냄새를 맡고 흐뭇해하리라. 7) [속죄일 제물] 칠월 십일에도 너희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라. 이날에는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고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8) 또한 이날에 너희는 내게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숫양 일곱 마리를 번제물로 바쳐라. 모두 다 흠이 없는 것들이어야 한다. 이것들을 모두 불에 살라 내게 바쳐 내가 그 냄새를 맡고 흐뭇하게 하여라. 9) 또한 고운 가루에 올리브 기름을 섞은 곡식제물을 함께 바치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6.6리터씩, 숫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4.4리터씩, 10) 어린 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2.2리터씩 바쳐라. 11) 또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쳐라. 그 속죄제물을 바치면서 모든 공동체 식구들의 허물을 깨끗이 씻어내는 예식을 올려라. 그리고 이 속죄일 제물외에도 날마다 내게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과 전제물도 함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칠칠절에 대한 절기를 지키라고 한 데 이어서 나팔절과 속죄일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나팔절(1-6) 나팔절은 일곱째 달 초하루(7월 1일)에 나팔을 불고 성회로 모여 지킵니다. 이 날은 히브리 종교력으로는 정월 초하루(1월 1일)에 해당됩니다. 이 절기는 나팔을 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나팔을 부는 이유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고 다가오는 속죄일의 회개에로 이끄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초막절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팔절에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인 쇼파르를 길고 우렁차게 불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간구했습니다(시 18:2; 121:3-8). 한편 나팔절은 첫날이므로 매월 초하루에 드리는 제사와 더불어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1년 된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를 번제와 함께 소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를 알리는 나팔 소리를 듣고 정월 첫날에 다른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팔절의 제물이 매월 초하루의 제물과 중복되지만 생략하지 못하게 강조했습니다. 더 나아가 구약의 나팔절은 장차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을 예표합니다(살전 4:15-17).
속죄일(7-11) 일곱째 달 열흘 날(7월 10일)에는 속죄일로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날에는 성회로 모이고, 죄의 사함을 위하여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속죄일에는 나팔절에 드려지는 제사와 동일하게 수송아지 1마리와 숫양 1마리와 1년 된 흠 없는 숫양 7마리를 번제와 함께 소제를 드리고, 숫염소 1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또한 속죄일에도 날마다 드리던 상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함께 드리도록 했습니다. 특별히 이 속죄일에는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속죄의 피를 가지고 성소를 지나 지성소까지 들어가 온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는 날이기에 대속죄일로 불리고 있습니다.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과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렸으며,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내보내는 의식도 있었습니다(레 16:8-10). 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예표합니다.
적용: 매년 반복되는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행하실 일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한 사람이 가정과 교회와 학교를 살리고 사회와 국가를 살립니다. 한 사람 때문에 절망적인 분위기가 소망으로 바뀌고 흐린 물이 맑은 물이 됩니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연약하고 부족하다면 불평하는 일이나 문제점을 찾는 일에 힘쓰지 마십시오.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 공동체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극복하고 채워주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꿈과 비전을 가지십시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꿈과 비전을 살리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배려와 용서’입니다.
< 설 교 >
민수기 29:1-11
찬송가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 조광묵 목사
오늘은 어제 본문에 이어 계속해서 절기에 드리는 제사의 제물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유월절과 칠칠절에 이어 나팔절과 속죄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팔을 불 날, 수송아지 한 마리와..(1-2)
(1)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
일곱째 달 첫 날을 나팔절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팔절은 민간력으로는 새해 첫날이지만 본문은 일곱이라는 수와 나팔 소리의 의미가 결합된 절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절기에 다 나팔을 불지 않고 7과 관련된 절기에 나팔을 불도록 합니다. 그 절기는 나팔절과 희년입니다. 나팔절은 매년 일곱째 달 첫날이며, 희년은 칠 년씩 일곱 번이 지난 다음 해입니다. 희년에는 일곱째 달 열흘날 속죄일에 나팔을 불게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족속에게 7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족속의 특별한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과 언약을 맺으실 때, 온 산이 크게 진동하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며 강림 하셨습니다(출19). 이때부터 나팔소리는 신약으로 이어져 예수님이 다시 강림하시는 신호로 표현됩니다(계 11:15).
그러므로 나팔절은 과거에 시내산의 사건을 기념하고, 장래에 이루어질 일 구원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약하면, 나팔절은 현재 이루어진 구원과 장래에 완성될 구원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나팔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해야 하는 일은, 구체적인 제물의 종류와 수로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2) 너희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로 드릴 것이며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나팔절의 의미 보다, 그날 드리는 희생제물의 종류와 수입니다. 이 나팔절에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를 번제로 드려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제사 때마다 드리는 제물의 종류와 수를 각기 다르게 정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수송아지가 초하루와 유월절과 칠칠절에는 두 마리인데, 나팔절과 속죄일에는 한 마리이고, 장막절에는 더 많은 수송아지를 드립니다. 그리고 상번제와 안식일에는 일 년 된 숫양만 드리며, 그 외 절기에는 수소와 숫양도 함께 드립니다. 그리고 제사마다 항상 빠지지 않는 제물은 일 년 된 숫양입니다. 상번제와 안식일에는 두 마리 초하루와 유월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에는 일곱 마리, 장막절에는 열네 마리를 드립니다. 이처럼 각 제사와 절기마다 제물의 종류와 수를 자세하게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제물의 종류와 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제물의 종류와 수를 정하고 있는 것이 민수기의 절기 규례의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으로 절기에 따른 풍습들이 있습니다. 그 절기의 풍습은 계절과 농사력에 따른 독특한 놀이나 음식이나 의식들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이스라엘 족속의 절기의 특징은 성막에서의 제사를 중요시하고, 또 그때 드려지는 제물의 종류와 수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사에 사용되는 희생제물들의 특징은 야생 동물이 아닌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축 중에 낙타, 나귀, 말은 제물로 사용되지 않고 소와 양, 염소가 제물로 사용됩니다. 소, 양, 염소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물들입니다. 사무엘하 12장 2-3절을 보면, 그 부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에게 한 말입니다.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 딸처럼 되었거늘(삼하12:3)”
이러한 점에서 가축은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절기 때마다 모여서 자신들의 가축을 잡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의식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대에는 법에 따라 도축장에서만 도축을 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마을 잔치나 행사 때 직접 도축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소나 돼지를 잡는 일은 마을의 행사로 여겨졌고,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축을 잡기도 했습니다.
마치 그것처럼 이스라엘 족속은 나팔절에 성막에 모여 가축을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가축들이 차례로 잡혀서 제사 드려질 때, 나팔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막에서 모여 그 장면을 지켜보는 이스라엘 족속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동물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 동물의 희생을 통해 자신들이 구속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족속은 자신들의 눈 앞에서 죽어 가는 제물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죄의 비참함을 보는 동시에, 구원의 나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족속도 신앙에 있어서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제사가 그들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대속의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동물의 희생제사와 달리,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섬기게 만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이렇게 증거 합니다.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브리서9:9,12)
죄 사함이 사람의 마음과 행실에 달린 것이라면, 그 제물의 종류와 수는 어떤 것이든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속제물로 인해 죄사함이 이루어 진다면, 그 대속제물의 종류와 수가 정확해야 중요합니다. 그리고 참된 대속제물은 제사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변화 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참된 대속제물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소제로는 고운 가루로 드릴 것이며(3-11)
(3-4)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에는 십분의 이요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그리고 번제와 함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로, 곡식 가루에 기름을 썩어서 번제와 함께 제단에서 불태웁니다. 그 곡물의 양은 일정하게 수송아지에는 십분의 삼, 숫양에는 십분의 이, 어린 양에는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립니다. 번역상 생략된 단위인 에바는 20리터 정도로, 한 말인 18리터 보다 조금 많은 양입니다. 이처럼 소제의 곡물 양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곡물을 추수한 그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음식으로 가공하도록 가루로 찧거나, 굽거나 부치거나 삶아서 드립니다. 일상에서 먹는 음식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절기의 제사는 희생제물과 함께 음식을 제물로 감사가 드려진다는 것 또한 중요하게 말씀하십니다.
속죄하기 위하여(5-11)
(5-6)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그 달의 번제와 그 소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그 규례를 따라 향기로운 냄새로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또 하나 민수기에서 규정하는 절기의 특징은 정해진 제물 외에 따로 속죄제를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절기에 속죄제를 드리도록 한 것은 속죄제의 의미 때문입니다. 속죄제는 대속제물로 인해 죄가 사해지고 죄의 벌이 면제됨을 의미합니다. 모든 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속죄제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 절기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속죄가 반드시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희생제물의 대속적인 죽음 없이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삶을 잘 살고 신앙 생활을 잘 하더라도, 늘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지점은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7) 일곱째 달 열흘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다음은 일곱째 달 열흘 날인 속죄일입니다. 이 하루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입니다. 열흘 절에 나팔을 불었던 것과 다르게, 괴로워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괴롭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본문에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16장에서 속죄일을 자세히 말씀하시는데, 왜 자신을 괴롭게 해야 하는지 나타나 있습니다. 그날 대제사장은 두 손을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죄를 아뢰고 광야의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보냅니다. 이처럼 죄에 대한 자각과 자복이 있고, 그리고 죄에 대한 자유와 해방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속죄일에도 중요한 것은, 그날 드리는 제물의 종류와 수입니다. 얼마나 진심으로 괴롭게 하는가가 아니라, 그날 드리는 제물의 종류와 수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내면과 진심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속죄의 본질은 그 제물의 희생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진심이 죄를 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제물이 죄를 대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참된 대속제물로 인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행실이 변화를 받습니다.
(8-10) 너희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요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속죄일에도 나팔절과 동일하게 번제와 소제를 함께 드립니다. 감사의 제사가 빠지지 않고 동반됩니다.
(11) 속죄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라
그리고 속죄일에도 동일하게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따로 드려야 합니다. 살펴본 것과 같이 나팔절과 속죄일에도 다른 절기와 같이 정해진 종류와 수의 제물로 번제를 드리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많은 양의 제물 혹은 값어치가 높은 제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제물을 통한 제사를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절기에 정한 제사 외에 속죄제를 별개로 드리도록 합니다. 우리는 제물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한 마음과 행실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보다 그 제물의 종류와 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 정하신 제물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양심과 행실을 변화시킵니다. 마음과 행실이 진실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자로 삼지 않는 것이 우리가 가진 문제의 근원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자로 삼을 때, 우리의 마음과 양심이 변화를 받아 눈을 들어 주님을 목적삼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제물 삼아 하나님 앞에 사는 하루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규례를 정해 절기마다 번제와 속죄제를 주신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우리의 대속제물이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멀리 돌아가 있다면 다시 대속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도록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본문에서 절기의 규례에 대해 말씀할 때, 절기 때 드리는 제물의 종류와 수를 구체적으로 말씀하는 이유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2. 일곱째 달 첫날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은 민간력으로 새해이지만, 본문의 말씀이 강조하는 점을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묵상해 봅시다.
3. 모든 절기에 드리는 제사 외에 속죄제를 별도로 드리도록 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4. 속죄일에 스스로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묵상해 봅시다.
나팔절과 대속죄일의 의미와 삶에의 적용
민 29:1-11 / 배현석 목사
한국에서 어릴 때 신앙 생활할 때가 종종 그리운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교회 종소리입니다.
교회 종은 높은 종탑에 달려 있었고,
새벽마다 종은 온 동네에 잔잔한 깨움의 소리를 들려 주었습니다.
모두들 그 소리를 들으며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다들 생각했습니다.
그 종소리는 깨어지는 잡음이 아니라, 은은하고 잔잔한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경쟁하면서 종소리를 넘어
스피커를 통해 울려오는 찬양 소리가 동네마다 들려 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교회 스피커를 통해서
소리를 내는 것은 금지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그 종소리가 그립습니다.
나팔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7월 1일에 거행됩니다.
7월은 일곱째 달로서 완전수, 안식의 수이기도 합니다.
또 유대인의 월력으로는 7월이지만, 당시 일반 달력으로는 1월, 즉 새해였습니다.
새로운 달을 안식과 나팔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의 시작은 안식부터 입니다.
성도의 새로운 시작 또한 안식부터 시작합니다.
안식이 어떤 것입니까?
일을 안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 일을 안하는 것입니다.
안식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일곱달, 즉 안식해야 할 그 일곱번째 달에 안식을 기억하면서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팔절은 참된 새로운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안식은 새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워지는 날이죠.
새로운 것의 본질은 천국입니다.
천국이야 말로 진정한 새 나라의 시작이고, 그 나라를 백성들에게
또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팔절은 영혼을 깨우는 날입니다.
나팔절은 천국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나팔절은 복음 선포와도 같은 선교의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팔절에는 당연히 나팔을 불겠죠.
이 나팔은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입니다.
직접 그 소리를 들어보면 매우 은은합니다.
소리가 크긴 하지만, 괴롭게 들리는 그런 소리는 아닙니다.
분명히 내가 이 소리를 듣고 깨어 있어야 하겠구나 라는 그런 소리입니다.
그리고 이 소리는 멀리 갑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이 소리는 울려 퍼졌습니다.
이 나팔 소리는 하루 종일 일정 간격으로 계속 불려 졌습니다.
나팔절에는 하루 종일 제사를 드리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상번제를 아침에도, 저녁에도 드려야 하죠.
그 날이 그 달의 첫 날이므로, 월삭에 해당하는 제사를 드려야 하죠.
그리고 7월이므로 나팔절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가지 제사를 섞어서 하나로 만들어서 드리자 말라고 했습니다(6).
예배의 순서 하나 하나가 다 의미가 있음을 말합니다.
뭉뚱거려서 그렇게 의미를 약화시켜서 드려서는 안됩니다.
하루 종일 예배를 드려야 해도, 그 속에 참된 하나님을 향한 향기가 올라갑니다.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합시다.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아침에 찬양의 나팔을 불며 하루를 시작합시다.
해마다 송구 영신 예배 때는
선교에 헌신하는 나팔을 불고,
천국이 반드시 온다는 나팔을 부는 예배가 되도록 합시다.
2.
나팔절 다음 10일 후에 대속죄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7월 15일에는 장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7월은 온갖 제사로 매우 바쁜 한달이었습니다.
마치 수련회와도 같습니다.
시기적으로 농번기를 지나서 파종도 하기 전인 농한기의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업과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이러한 여름의 수련회(혹은 부흥회)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대속죄일은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모든 죄를 회개하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이 날, 아사셀 염소를 준비하여 모든 죄를 전가하고, 광야로 떠나 보내는 날입니다.
일년에 하루, 이 날은 우리의 심령을 괴롭게 하는 날(deny yourself)입니다.
이 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아무 일이라는 것은 단순한 직장 일 뿐만 아니라,
단순하게 여기는 오락 혹은 육신의 유익등을 위해서 운동하는 것과 같은 일까지를
포함합니다.
즉, 이 날은 모든 것을 내려 놓는 날입니다.
어쩌면 밥 짓는 것도, 밥 먹는 것도 하지 않는 날입니다.
금식의 날이죠.
전적으로, 전심으로 하나님만 향하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의미의 대속죄의 자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속죄일 때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속죄는 단순히 반성하고, 내가 잘 못하는 못난 놈이다 라고만 하는
그런 날이 아니라
속죄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금식도 기쁜 것입니다.
매 주일 예배 시간 중에 드리는 ‘회개 기도’시간도
그저 한 주간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이 아니라
죄 가운데서 나와서, 은혜 앞으로 나아가는 참으로 중요한 시간입니다.
잘 씻는 사람이 깨끗하듯이
바르게 회개하는 사람의 영혼이 깨끗합니다.
대 속죄일
민 29:7-11
이스라엘의 7월은 절기로 시작하고 절기로 마칩니다.
7월 1일 저들은 먼저 큰 나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 나팔 소리는 다가오는 절기를 알리는 소리이면서 그 나팔 소리 자체가 절기이기도 합니다. 이 날을 나팔 절이라고 하는 데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을 기념하는 것이 이 날의 유래(출 19:16. 19)이고, 둘째는 앞으로 절기가 다가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 이 나팔 소리입니다.
7월 10일은 대 속죄일로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이런 속죄는 일년에 한차례 이 날만 있는 행사입니다.
7월 15일부터 8일간은 장막절 혹은 초막절이라고 하는 절기인데, 이 절기는 그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40년간을 지내던 일을 회상하면서 첫째는 광야에서 인도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둘째는 그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집을 떠나 초막에서 기거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적인 의미인데 인생은 나그네로써 가나안과 같은 천성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절기입니다.
근심하는 날
"칠월 십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민 29:7).
성경은 대 속죄일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날은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죄를 아프게 느낀다는 뜻이며, 회개한다는 뜻입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는 두 가지 근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먹고사는 문제로써 육신적이며 세상적인 근심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적인 근심으로써 첫째는 죄를 애통하는 데서 시작하고, 둘째는 죄를 회개하며, 셋째는 죄를 용서받고도 그 분의 말씀과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아프게 여기는 근심입니다. 세상의 근심은 끝없는 근심거리만을 제공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근심은 성도들도 가져야 하는데 주일날이 바로 이런 근심을 하는 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런 근심을 가질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개별적으로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슥 12:12-14).
대 속죄일에 마음을 괴롭게 하며 애통하고 통회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 말씀은 죄의 회개는 집단적으로 회개하고 집단적으로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민족적으로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왔을지라도 회개는 개별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개별적인 것이지 민족적이거나 가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인이 잘 믿어도 남편까지 대동하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불신 자녀를 대동하고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계도 개인적입니다. 집단적으로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겔 18:2).
이 말씀을 한 에스겔 선지자는 계속하여 예언하기를 한 사람이 하나님이 율례를 지키면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겔 18:5-9)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의인이 자녀를 낳았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의 길을 가지 않으면 그는 "가증한 일을 행한 죄로 정녕 죽을 것이라"(겔 18:10-13)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그 아들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할아버지의 길을 따라 의의 길을 가면 그의 아버지는 불의한 사람이라도 그의 아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겔 18:15-18)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말씀이 있는데 악인이 돌이켜 의를 행하였을 때에는 지금까지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 것이라"(겔 18:2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 이 말씀은 죄의 회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이 막연하고 포괄적이며 외형적으로 하는 회개는 회개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하셨나니"(욜 2:12).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 4:9).
이상의 말씀은 참으로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온 바리새인이 앞자리에서 기도한 것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고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고 회개한 세리의 기도를 받으신 것은 그가 진정으로 회개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 13:1).
진정으로 마음을 괴롭게 하고 회개를 하심으로 사죄와 구원의 은총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제물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속죄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민 29:11).
이때 번제를 비롯하여 소제와 속죄제 등 여러 가지 제물을 드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평상시에 드리는 상번제 외에 특별히 드리는 제물이라고 명시를 하였습니다.
제사에 대하여는 레위기에서 자세히 설명을 하였는데, 제물의 종류는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와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습니다. 그 중 번제는 제물 전체를 드리는 것으로써 나의 생애와 생명을 드리는 것을 뜻하고, 소제는 식물성 제물로써 나의 생활을 드리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죄를 속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로써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의미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대 속죄일에 속죄제를 드리고도 항상 속죄제를 드렸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들도 여전히 죄인이어서 매일 매일 일상적인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여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번제와 같은 일상적인 제물 외에 대 속죄일에는 특별한 번제를 드리라는 것은 일년동안에 범한 죄 전체를 속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기도를 하는 것도, 헌금을 하는 것도 특별한 기회에는 특별히 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대 속죄일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서의 완전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에게도 신령한 근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별적으로 깊이 기도하고 회개하는 은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속죄의 기쁨을 누리면서 특별히 감사하고 특별히 기도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팔부는 날
민 29:1-6 / 이용만 목사(새하늘교회)
1. 나팔절(욤 테루아)
나팔절은 유대인들에게서 새로운 시간이 시작하는 새해입니다. 이 날은 유대력으로 7월 1일이며, 태양력으로 올해는 9월 24일 저녁부터 시작을 합니다. 본문 29장 1절에서 이 날을 ‘나팔을 불 날’이라 하여 나팔절이라 칭합니다. 이 날에 백 개의 나팔을 네 가지 방식으로 부는 데 방식에 따라 다른 의미들이 있습니다.
나아가 이 날에 대한 ‘욤 하딘 – 심판의 날, 욤 하케세 – 감춰진 날, 욤 하키두쉰 – 메시야의 결혼식날, 욤 하멜렉 – 메시야의 대관식, 욤 하나찰 – 부활의 날, 욤 하아케다 –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날’과 같은 다른 명칭들이 있습니다.
2. 봄의 절기와 가을의 절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절기 중에 가장 중요한 일곱 절기가 있는 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그것입니다. 이중에 네 가지는 봄의 절기이고, 뒤에 세 가지는 가을의 절기입니다.
1) 봄의 절기
유월절과 무교절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그리고 오순절은 교회의 탄생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 있습니다. 즉, 죄와 어둠으로 망가지고 망해가는 이 세상에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로 죄를 처리하시고, 영원한 의와 생명을 주실 것과 그 결과로 교회가 탄생될 것에 대한 예표가 봄의 절기입니다.
2) 가을의 절기
가을의 절기는 ‘나팔절’으로부터 시작해서 ‘대 속죄일’과 ‘초막절’입니다. 이 절기는 마지막의 큰 추수와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있습니다. 즉, 이 땅에 처음 오실 때는 어린 양으로 오셨지만 모든 만물을 심판하고, 통치하고, 다스릴 엄위하신 왕으로 오셔서 사탄과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이후의 인류는 겨울로 들어갈 것입니다. 즉, 영원한 안식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3. 두 번의 나팔 소리
나팔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인류 가운데 결정적인 두 번의 나팔 소리가 있습니다.
1) 십자가에서의 나팔 소리
한번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예수님께서 지르셨던 큰 소리입니다. 이 때에 해가 어두워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죽은 자들이 살아납니다. 새로운 생명의 선포였습니다. 사탄의 모든 근거지인 죄를 박살내시고,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시고, 죄 가운 데 있는 영혼들에게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시는 나팔 소리가 인류 가운데 선포된 것입니다.
2) 재림의 나팔 소리
주님께서 천사들의 호령소리와 나팔 소리와 함께 다시 오실 것입니다. 다시 오실 때에 모든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왕으로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며, 주님안에서 부활한 모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할 것입니다.
이 나팔 소리는 “보라, 영원하신 왕이 이 땅에 오셔서 주권을 회복하실 것이다.”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4. 나팔 소리가 시작되었다.
이 두 번째 나팔 소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서 네 가지의 나팔 소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자연의 나팔 소리
주님은 “자연이 나팔을 불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때가 오면 주님이 가까이 계신 줄 알라”는 것입니다.
2) 사람들의 역사의 나팔 소리
두 번째는 “사람들의 역사가 나팔을 불 것이다.”입니다. “곳곳에 난리와 난리 소문들이 있을 것이며, 민족과 나라가 서로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며, 사람들이 너희들을 환난에 넘겨주고 죽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자칭 그리스도라하는 이들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날 것이다.”라 합니다. “이 때가 되면 재림의 때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나팔 소리
세 번째는 “이스라엘이 나팔을 불 것이다.”라고 합니다. “무화과 나무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고 하시는 데 무화과 나무는 열매맺지 못하여 저주받았던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무화과 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난 사건이 1948년 66년 전에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하였고 세계의 정치와 경제와 역사의 중심에 선 사건입니다.
4) 신실한 주님의 종들의 나팔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비밀을 보이지 않고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기에” 깨어있는 신실한 종들에게 이 때에 대한 말씀들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자연과 역사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중주로 “깨어나라, 보라! 왕께서 오셔서 이 땅의 주권을 회복하신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나팔절 때에 나팔을 길고 힘차게 한 번을 부는 것이 ‘테키야’인데 왕의 대관식을 선포하는 외침입니다.
5. 준비하라.
1) 신부로 단장하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신랑으로의 오시며 그날은 곧 영원한 혼인잔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랑으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신부로 단장하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에 나팔 소리와 함께 임하셨고, 임하신 곳에서 당신의 사랑하는 이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만나기 전에 몸을 씻고, 옷을 빨고 거룩하고 순결하게 자신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나팔절부터 7월 10일 대속죄일까지는 아무 일도하지 않고 예배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신부의 단장은 두 가지로서 하나는, 죄를 씻는 것이요 또 하나는,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함으로 죄를 씻고, 예배하고 주님을 대면하여 주님의 사랑을 알아감으로 주님을 닮아갑니다.
아가서의 말씀에서 이런 이들을 일컬어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나의 누이, 나의 완전한 자, 나의 어여쁜 자”라고 합니다. 신랑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2) 군사로 세워가라.
다시 오실 주님의 날은 혼인식일 뿐 아니라 영원한 승리자의 왕의 대관식의 날이며 마지막 추수를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추수에는 잘 훈련된 일꾼이 필요합니다. 영혼과 생명을 거두어들일 잘 다듬어진 충성된 종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왜 군사여야합니까? 한 영혼을 구원해 내는 것은 어둠과 사탄의 진영에 들어가서 그를 붙잡고 있는 세력을 끊어버리고 그곳에서 구원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을 군사로 세워갈 수 있는데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로 이끌고 예수님의 심장과 하나가 되게 하여 그분의 열정과 사랑으로 일어서게 합니다. 또한 우리가 말씀을 받고, 말씀으로 살고, 그 말씀을 전할 때에 영혼을 붙잡고 있던 어둠이 떠나고 그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들에게 영혼을 맡겨 놓으실 것이며, 이런 교회들에게 영혼 구원의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대 부흥, 추수의 역사입니다.
3) 새로운 삶의 방식을 취하라.
계절이 바뀌면 옷이 바뀌고,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역시 영적인 시즌이 바뀔 때인 지금 우리의 삶과 신앙의 방식을 바꾸어야합니다. 이 때에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은 “어린아이가 되어야한다.”입니다.
백성들과 리더들이 모이고, 행진할 때에 나팔을 불었는 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고 통치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된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된다는 것은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선택할 때에 그 삶속에 하나님의 행하심의 역사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어린 아이의 모습이 영적인 성숙함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영혼을 낳고, 영혼을 양육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낳는 것은 주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6. 교회는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공동체이다.
이 세 가지의 일을 이루는 곳이 교회입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배워갑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사랑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면서 군사로 세워져 가며, 함께 나아가 전쟁을 하고 구원의 역사, 추수의 역사를 함께 이룹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하나님 아버지에게 의존된 공동체로서 서로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나누며 간증 공동체를 만들면서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우리 새하늘 교회가 함께 주님의 몸을 이루어 이런 공동체를 세워가길 소망합니다. 나아가 이 공동체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오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