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합리화
누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비워야 한다는 뜻은 알겠으나 남편이 몇 달 동안 월급을 안 가져와 심히 쪼들립니다. 이럴 때의 기도는 어찌해야 하는지요?"
그분의 질문은 실상 이 안의 모든 사람이 했던 질문들이고, 또 여전히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할 것인데, 문제는 기드온 멤버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질문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현재 길을 가고 있는 분들은 이미 충분히 깨닫고 이런 육에 대한 질문에 답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분의 질문을 이용해서 기드온 멤버도 자신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 곧 진도가 나가야 함을 자각해야겠습니다.
성경에는 육에 관하여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라"는 말씀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육에 속한 것은 이미 넘치게 주셨는데, 자기의 게으름으로 채우지 못하는 것이거나 자기의 욕심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육신의 안위, 이생의 염려로 인한 고민은 이것과 저것 중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곧, 내게 좀 더 나은, 좀 더 좋음을 줄 수 있는 것을 찾기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비우기 위해 고민하는 것 같지만 실은 무엇인가를 비우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굳이 생각까지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계산을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 손익을 계산한 결과가 자기에게 좋음을 주지 못할 때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한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라는 말씀으로 육신에 관한 것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 맞게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못 박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따라 "세상에 속한 것을 원하는 부정한 나를 부인하고 내가 쌓은 욕심을 비우는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야 하는데, 육신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 생활에 필요한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하나님께 여쭤 볼 것이 아니라 가이사 세상에서 물어 보면 될 것입니다.
가이사 세상인, 현재 내 육신이 거하는 대한민국에서 내 한 몸의 육신의 노동을 한다면 헐벗고 굶주리는 곳이 아닙니다. 일자리가 넘치는데 인력이 없어 인력을 수입하고 있지만, 막상 실업자는 더 넘칩니다. 좀 더 편하고, 좀 더 쉽고, 좀 더 일락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상대적 빈곤과 상대적 열등감을 가지고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에 채움을 향한 온갖 욕심은 가득하나, 내 정신과 육신의 힘듦에 비해 마음의 족함을 채울 수 없다는 계산으로, 육신을 입은 인생이라면 누구나 수고함으로 그 입에 음식을 넣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것조차 하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난 게으름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육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정신이 수고함을 하지 않고 그저 허공과 맨 땅만 바라보고 있는데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수고함만으로도 얼마든지 채울 수 있게 세상에 넘치게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 것이지만 그 만물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 거저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대가를 받지 않으시고 그것을 그저 내 육신의 수고함만으로 공짜를 원하는 만큼 채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온갖 짐승들, 그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가는 인생, 그리고 이방인들도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육신에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것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육신의 게으름과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우리는 짐승들이 자기 입을 채우기 위해서 사냥하는, 본능의 충족을 위한 생각과 행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를 따라 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에 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이 육신이므로, 오늘 먹고, 자고, 입을 것만 있을 수 있게 적당한 노동을 하여 얻어지는 것으로 육신의 욕구는 채우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배를 채워 주기 위해 수고하지 못하는 육에 속한 생각, 온갖 욕심을 비우지 못하는 내 속의 더러운 마음을 치는 생각 이외에 할 기도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한 노동을 "수고"라고 하지 않습니다. 호랑이가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 잠복하고 뛰는 행위를 한 것을 "수고했다."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의 양식은 이미 주셨으나 사람이 수고하지 않음으로 먹지 "않는" 것처럼, 영의 양식인 말씀도 성경으로 이미 주셨으나 말씀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의에 속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고, 육신의 수고도 하지 않으므로 말씀을 깨닫지도, 말씀을 따라 행하지도 않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고 다음은 사도행전의 성령을 받은, 곧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지혜를 받은 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로 따라 나눠 주고
또, 서신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내 육신의 안위를 위한 고민과 수고함에서 벗어나, 타인을 위해서, 타인과 통용하기 위해서, 타인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 수고할 때에라야 그것을 짐승이 자기 배를 채우는 본능의 행위가 아닌 "사람으로서 하는 수고"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하는 수고함을 통해 우리는 위 말씀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인 만물을 이용하여 공짜로 먹고, 자고 , 입고 있으므로 사람이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와 하나님 나라 안의 형제들을 위하는 수고를 할 때 비로소 육신의 본능(의식주)을 채우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의에 벗어난 모든 것, 내 육신의 안위, 나 한 사람의 평안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모든 생각과 행위가 음란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부정한 내 마음과 욕심으로 인하여 이것저것 계산하고 있는 생각을 지워 내려는 노력뿐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0:27] "하나님을 내 목숨을 다하여, 내 뜻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고, 그것을 몸소 행하시고 주신 성령의 법령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이웃이란 세상에 속한, 영이 죽어 있는 흙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말씀 안의 형제들, 영이 산 자입니다. 이 강령과 법령을 따르는데 있어서 현재 내가 처해 있는 환경과 조건이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가이사 세상에 맞게 정리하면 됩니다. 고전 7장에 이미 말씀 하셨습니다.
복음서와 서신에 가이사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미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보고도 내가 가이사 세상에 속한 것으로 고민을 하는 것은 단지 "내려놓기 싫음", "내게 더 유익이 되고, 덜 손해가 되는 타협점을 찾음" 그리고 "육신의 나약함과 게으름"으로 인한 고민으로 결국 모든 인생의 고민은 낮아지고 비우기 싫은 자기 욕심과 나약한 정신과 게으른 육신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에 반하는 마음과 말은 모두 "자기 합리화"입니다
첫댓글 귀한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