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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탁.... 읽고 있던 다이어리를 덮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눈물을 가득 머금고서 천천히 뒤로 돌아 김태양을 바라보았
다. 김태양이 왜 이렇게 아픈지, 왜 날 못 잊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집에 있는 내 다이어리랑 색만 다르고 디자인이 똑같아서 뭘까 궁금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보지 말 걸...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우리가 사귀고 있을 때 내가 김태양을 위해 쓴 다이어리일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중간 중간에 편지형식으로도 쓰여있는 걸 보니, 처음부터 다 쓰면 선물하려고 썼던 다이어리 같았다.
기억이 안나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 김태양을 많이 좋아했었나 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어쩌면
지금 아로하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많이.... 기억을 잃은 내가 단순히 글만 보고 뭘 알겠냐 하겠지만, 그냥 문득 그런 생각
이 들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은, 지금 아로하가 아닌 예전의 김태양이 아니였을까 하고.
내가 이렇게 애교가 많은 애였나? 내가 이렇게 예쁘게 사랑할 수도 있는 애였나? 또 내가.... 김태양을 이렇게 많이 좋아했
나? 다이어리를 읽는 내내 자꾸 가슴이 따끔거려서 눈물이나 죽는 줄 알았다. 우린 싸운적도 없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
한다고 적어놓은 일기를 보고 할말을 잃었다. 특히,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사랑해' 라는 글귀를 보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떨
궜다.
우린.... 예전에 우린.......
"미안해...."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정말 많이 사랑했었나 보다. 이제 아무 것도 기억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만큼...
가까이에서 잠들어 있는 김태양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땀 때문에 젖어있는 머리를 조심스레 넘겨주었다. 이제 열은 어
느정도 내려갔는지 아까만큼 뜨겁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몸이 뜨거운게 혼자 두고 가긴 마음이 영 불편해서, 아로하 퇴근 시
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시계만 계속 바라보며 김태양 옆에 앉아있다가 아로하에게 전활 걸었다.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말 할까. 아님, 맘 상하지 않게 거짓말로 둘러대야 할까.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한참 동안 고민하다
가 결국 솔직하게 털어 놓으며 오늘 좀 늦게 들어가도 되냐고 했더니... 사심이 있는 건 아니라 괜히 거짓말 하기도 모하고
찝찝해서, 그냥 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지금 김태양이랑 같이 있다고 했더니. 정말이지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터
져 나오는 아로하의 목소리에 잔뜩 당황한 나.
-여보!!! 지금 남자 집이야??? 맙소사...
화가 난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괜찮지도 않은 모양. 그냥, 꽤 신경이 쓰이는 눈치랄까?? 아무튼, 친구가 아파서. 더 정확
히 말해 친구인 김태양이 아파서 내가 간호를 좀 해줘야할 것 같으니 오늘은 쫌 늦게 들어가야겠다고 한 번 더 쐐기를 박고
전화를 그냥 끊으려는데, 갑자기 '주소!' 라고 외치는 아로하. 차라리 그냥 화를 내지, 왠지 더 애처럼 칭얼거리는 듯한 아
로하의 말투와 행동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건성으로 대답해주니.
-나도 갈 거야!!
"오던지 말던지."
-나 지금 간다고! 지금 당장!!
"마음대로 해."
-긴장하고 있어. 지금 차 돌리면 나 언제 도착할지 몰라!
"응."
-혹시라도 둘이 이상한 짓하다가 걸리ㅁ...
"뭐래. 끊어."
생각하는 거 하고는... 아파서 잠들어 있는 애랑 도대체 무슨 이상한 짓? 그렇게 신경 쓰이면 그냥 안 된다고,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한마디 하면 될 걸. 안 된다고는 말 못하고 혼자 끙끙대다가 한다는 소리가 겨우 '둘이 이상한 짓 하다가 걸리면 가
만 안 둬' 이딴 유치한 말이라니. 쯧쯧.
끝까지 들을 가치도 없어서 중간에 짤라먹고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지만 왠자 자꾸 웃음이 나는 건, 이런 바보 같은 내 남자
가 너무 귀여워서. 말로는 '오던지 말던지' 하며 무심하게 얘기했지만,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이미 기다리고 있다
는 나도 참 바보라는 거.
그리고 약 30분 후. 김태양 이마 위에 수건 한 번 더 갈아주고 햇살이랑 같이 거실 쇼파에 나란히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데
띵동- 하며 반가운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인터폰에 비친 아로하 얼굴에 얼른 뛰어 나가 내 집처럼 벌컥 문을 열어주면. 뭐
먹을 거라도 사왔는지 한 손에 하얀 비닐봉지를 들고 앞으로 살짝 내밀며 씨익 웃는 아로하.
"오빠!!"
거의 안기듯이 다가가서 손에 들려있는 봉다리를 들고 속에 뭐가 들었나 확인하고 있는 내 머릴 손바닥으로 슥슥- 쓰다듬어
주는 아로하. 허리까지 숙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햇살이에게도 헤프게 웃음을 날려주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리
고 나랑 햇살이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아로하가 사온 초밥을 먹는 동안 혼자 쇼파에 앉아서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정신사납게 굴더니 아무리 봐도 재밌는게 없는지 리모콘을 내려놓고 일어나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다가 거실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 앞에 서서 사진 속 인물들을 너무도 빤히 바라보는 아로하.
"태양이 사진빨 잘 받지!? 역시 잘생긴 애들은 사진도 잘 나온다니까."
우물우물. 입 안 가득 초밥을 집어넣고 걸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복스럽게 먹으며 아로하를 향해 말하니, 힐끗 눈을 흘기
며 조용히 나를 노려보는 아로하. 크흠, 헛기침을 하며 물을 한모금 마시고. 괜히 햇살이에게 많이 먹으라며 내 앞에 놓인
초밥 하나를 챙겨주고 있는데.
"....닮았다."
계속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 아로하에게 '응?' 하고 되물으면. 옆으로 고갤 돌려 나를 바라보고 싱긋 웃
으며 말하는 아로하.
"너네 셋, 닮았어."
"엥?"
햇살이는 뭐,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것이 이미지가 비슷해서 충분히 닮아보일 수도 있는데. 김태양은... 좀 아니지 않나?
저렇게 잘 생긴 애랑 닮았다고 하면 나야 뭐 영광이지만.
"오빤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한 번도 우리가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로하는 뭘 보고 우리
가 닮았다고 하는 건지. 한발 한발 다가가 아로하 옆에 나란히 서서 쭈욱- 고개를 들고 사진을 올려다 봤다. 고개를 왼쪽으
로 기울여 보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기울여 보기도 하고. 그렇게 아무리 하나하나 천천히 뜯어봐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데.
쯧쯧- 아무리 내 남자지만, 보는 눈이 저렇게 없을까?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아로하를 올려다보면, 역시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왠지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며 천천히 눈가에 입맞추는 아로하.
"여기도 닮았고..."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이번엔 입술에 살짝 입맞추며.
"여기도 닮았어."
머엉.... 내 눈엔 하나도 안 닮았는데 뭐가 닮았냐고 따지려던 입술이 꾹 다물어지고, 갑작스런 스킨십에 조금 당황스러운
나. 혹시라도 햇살이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밥 먹다 체하진 않았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왠지 두근거리는 가슴이
자꾸만 간질거려서 다른 건 별로 신경쓰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익숙한 스킨십에도 가슴이 떨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새롭기도 하고, 한편으론 지금이 가슴 떨릴 타이
밍은 아니였던 것 같은데 나 왜 이러지? 라는 생각도 들어서 괜히 민망하기까지 했다. 아로하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쁘
지 않은 느낌. 마치 연애 초 때 내 모습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맨날 이런 기분을 느낄 수만 있
다면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익숙함이라는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듯.
"여기 우리집 같다. 왜 이렇게 편해?"
"그치!? 꼭 우리가 집주인 같애."
남은 초밥을 다 먹고 우리에게 과일을 내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간 햇살이와 어느새 잠에서 깨 거실로 나오다가 나란히 쇼파
에 앉아있는 우리를 보고 정색하며 인상을 팍 찌푸리던 김태양. 누가봐도 기분 나쁜 표정이였지만 우린 그저 싱글벙글 웃으
며 서로에게 과일을 먹여주느라 바빠서 거기에 기분 나빠할 틈도 없었다. 그냥 한 번 보고 '왜 저래?' 하며 고개를 다시 돌
릴 뿐.
아무튼, 씻으러 들어간 김태양이 꽤 오랫동안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고. 우린 그 사이 계속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사이
좋게 과일을 나눠먹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집주인이라도 되는냥 아주 편안한 자세로.
"여보. 너도 과일 이렇게 예쁘게 깎을 수 있어?"
"응! 난 다 잘해."
"오빤 니가 과일 깎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응, 한 번도 안 깎아봤어. 그래도 난 다 잘하니까, 이거보다 더 예쁘게 깎을 수 있어!"
"진짜??"
"응."
왠지 날 못 믿겠다는 눈치로 바라보는 아로하에게 끊임없이 '난 다 잘하니까' 라는 말로 거의 세뇌를 시키고, 그래도 영 못
믿는 눈치길래 이따 집에가서 깎아주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있을 때. 몇 십분만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김태양을 보고 그대
로 굳어버린 나.
방금 전까지 아파서 푸석푸석했던 얼굴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뽀송뽀송해진 피부와 촉촉히 젖은 머리카락. 살짝 시선
을 내리깔고 꽤 도도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 섹시해서, 아무 생각없이 바라본 그대로 시선이 멈춰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 지금 이런 말 하면 너무 웃기겠지만..... 조금 반한 느낌.
"야."
넋을 놓고 한 곳만 바라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것도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는 내가 마음에 들
지 않았는지 내 옆에 앉아서 빈정상한 말투로 나를 부르는 아로하. 여보도 아니고 꼴통도 아니고 '야' 란다. 언제 아로하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냐는 듯이 그러거나 말거나 굴하지 않고 계속 김태양만 바라보고 있는데 이제서야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친 김태양은 그저 피식 웃는다.
그리고 너무 자연스럽게 쇼파쪽으로 걸어와 내 옆에 앉아서는, 아로하가 노려보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
며 무심하게 티비만 보는 김태양. 왼쪽에서는 질투에 눈이 먼 아로하의 뜨거운 시선이, 오른쪽에서는 여유로운 김태양의 미
소가. 이럴 땐 정말, 대한민국이 일처 다부제였으면 좋겠다. 엄청 엄청!
"이제 안 아파?"
일단은 남자친구도 아니고 내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왼쪽으로 고갤 돌려 살짝 어색하게 웃어주고 다시 오른쪽으로 고갤 돌
려 이제 안 아프냐고 물어보면, 티비에만 고정 돼 있던 시선을 내게 돌리고 조금 애교 섞인 말투로 열 나는지 봐달라는 김
태양. 손으로 이말 짚어보니 아까보단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주 열이 없는 건 아니라 열이 좀 난다고 했더니. 우울한
표정으로 울상을 짓는 김태양과 쇼파에 비스듬히 기대 누우며 다 죽어가는 말투로 얘기하는 아로하.
"아, 나도 열 나는 거 같애..."
"응? 열 나???"
급히 고개를 돌려 아로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열이 난다는 건지, 걱정이 돼서 자세를 고쳐 앉아 아로하의 이마도 짚어
봤더니 열은 커녕 오히려 내 이마가 더 뜨거운 정도였다. 내 눈치를 살살 살피는게 꽤병이라는 걸 한 번에 알아 챘지만, 얼
마나 질투가 났으면 그랬을까 귀여운 마음에 씨익 웃으며 아프지말라고 한쪽 볼을 슥슥 쓰다듬어줬더니 애처럼 너무 좋아하
는 아로하.
그렇게 아로하의 마음을 달래준 뒤 셋이 나란히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손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고갤 돌려
김태양을 바라보면. 내 손을 잡고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티비만 보고있는 김태양.
"...태양아."
나는 할말이 있어서 부른 건데 아무래도 내 의도를 잘못 파악했는지, 놓기 싫다는 듯 내 손을 더 꽉 잡는 김태양에게 싱긋
웃으며 배 안 고프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날 바라보고 똑같이 웃으며 '고파' 라고 말하는 김태양.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새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였다. 5시도 안 되서 온 것 같은데 벌써 11시가 다 되어 간다니.... 아로하가 퇴근하고 온지도 얼
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늦었다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내 집처럼 앉아있다가 시계를 보고 새삼 놀라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고 가."
"응???"
"둘 다."
갑자기 자고 가라는 김태양 말에 한 번 놀라고, 괜히 난처한 얼굴로 아로하를 한 번 바라봤다가 '그럴까?' 하는 의외의 반
응에 또 한 번 놀라고.
"자고가자~ 어차피 시간도 늦었는데. 밥 먹으면 12시겠다."
"...."
"싫어?"
"응?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오빠 괜찮아? 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할 뿐, 선뜻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으
면.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마치 괜찮다는 듯이 내 머리를 살짝 헝클이며 예쁘게 웃어주더니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라
회사도 안 나가고, 자기랑 같이 외박하는 건 괜찮다고 말해주는 아로하.
말은 안 했지만 예전에 우리가 사귀는 사이였다고 너무 안 좋게만 볼까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집까지 와준 것도 고맙고. 충
분히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을 오히려 좋게 받아들여 줘서 너무 고마웠다. 외박,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이지만 어쨌
든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라도 펑펑 흘려줄까 하다가 대신 포옥 안겨서 마음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려주면. 등 뒤에서 들
려오는 못마땅한 목소리.
"그냥 집에 가라."
금방 삐지고 금방 풀어지는 유치한 성격이 왠지 비슷한 두 사람. '밥 해줄께!!' 하며 기분 좋게 일어나서는 햇살이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자신있게 해준다고는 했지만, 막상 할줄 아는 건 하나도 없어서 도움을 요청하려 똑똑 노크를 하고 조심
스레 방문을 열면 책상 앞에 앉아서 자기 얼굴만한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열심히 무언가 끄적이고 있는 햇살이. 같
이 놀자고 해도 밀린 방학 숙제 한다고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더니 아직도 숙제 중인가 보다.
노래 때문에 노크 소리도 못 들었는지 갑작스런 내 등장에 살짝 놀라며 헤드셋을 빼고 눈을 크게 떠보이는 햇살이에게 '너
네 오빠 배고프대' 라고 말하면,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오빠 일어났어?' 라고 말하며 내 소식이 반가운 듯 벌떡 일어
나서 곧장 거실로 뛰쳐나가는 햇살이.
그러다 김태양 옆에 앉아있는 아로하를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김태양을 올려 보며 이제 괜찮냐고 잔뜩 걱정스런 말들을 늘어놓는다. 이럴 때 보면, 동생이 아니라 꼭 엄마 같은 느낌. 뭐
평소에도 오히려 햇살이가 더 누나 같았지 김태양이 오빠 같은 느낌은 별로 없었다. 가끔, 아주 가끔 빼곤.
"오빠아..... 나 이거 타고 싶어."
햇살이가 해준 밥으로 다시 배를 채우고 소화까지 다 시킨 후에, 아로하의 차를 타고 다 같이 이마트에 와있는 우리. 벌써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였지만 어느 하나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어쨌든 24시간 운영하는 지점에 와서 카트를 끌고 입구로
들어서는데, 가난한 고시생 컨셉의 파란색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아로하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간절하게 얘기하는 날 무심
하게 바라보는 아로하.
처음에 김태양이 이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가지고 나왔을 땐 이게 뭐냐고 안 입는다고 길길이 날뛰었는데, 사악하게 웃으면
서 옷이 이거 밖에 없다고 끝까지 잡아 떼는 김태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갈아입고 오더니. 막상 입어보고 나서는 꽤 마음
에 들었는지 한참을 거울 앞에 서서 자기한테 잘 어울리는 거 같다며 만족스럽게 웃던 아로하.
아까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기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정말 어울리긴 어울린다. 좀 할 일 없는 백수처럼
보이긴 해도 평소에 보지 못하던 색다른 모습에 더 호감이 가는 건 사실. 어쨌든, 집에서 만큼은 워낙 귀하게 자라서 마트
같은덴 별로 올 일이 없었기에 지금도 조금 들떠있는 나. 특히 이렇게 새벽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 무지 설렌다. 어쩌다 한
번씩 올 때마다 카트 타고 다니는 꼬마 애들을 보면 나도 꼭 타보고 싶었는데 매정하게 딱 짤라서 안 된다고 말 하는 아로
하 때문에 시무룩해 있을 때였다.
"내가 태워줄까?"
"응??"
잔뜩 풀이 죽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실망하고 있을 때, 옆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번개보다 빠르게 고개를 번쩍 들
고 김태양을 바라보면. 내 뒤에 서있는 아로하를 보고 한 번 피식 웃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내가 태워줄께."
"진짜??"
"응. 남편이 뭐 저래~ 예쁜 와이프가 하고 싶다는데 해주지도 않고. 그치?"
"응!! 나 완전 상처 받았어."
"이래서 아저씨들은 안 된다니까. 챙피하다 이거지!! 그냥 개념 없다는 소리 한 번 들으면 그만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서 그 정도도 못 해줘??? 늙으면 겁만 많아진다더니... 쯧쯧. 남편 완전 구리다. 그치??"
"응!!
"으응??? 너 지금 응이라고 했어?"
"응."
매정하게 한 번에 딱 짤라서 안 된다고 말할 땐 언제고 자기 구리다는 말은 싫은지 내 뒤에서 나를 갈구는 아로하. 남편이
고 뭐고 이제 다 필요 없어. 흥!! 콧방귀를 뀌며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응' 이라고 말하면, 할 말을 잃은 듯 아무 말 없
는 아로하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는 김태양. 조용히 옆에 서있던 햇살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다가
그냥 고개를 홱 돌려버렸고,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위에 있는 김태양의 손을 탁 치며.
"내 여보 터치하지 마."
라고 유치하게 말하는 아로하. 목소리는 꽤 단호했지만 '내 여보' 와 '터치' 라는 유아틱한 언어구사에 압박감은 전혀 느껴
지지 않았다. 오히려 황당해서 웃음만 더 날 뿐.
"싫은데요?"
"뭐?"
"돼지야, 그냥 나한테 와~ 내가 니 남편보다 더 잘해줄 수 있어!! 납짝 엎드려서 니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줄께. 평생 여왕처
럼 모시고 살께."
"진짜??"
"응. 매일 가슴 두근거리게, 설레이게, 사랑만 하고 살게 해줄께... 나한테 와."
아로하보다 더 잘해준다는 말보다, 평생 여왕처럼 모시고 산다는 말보다. 매일 가슴 두근거리게, 설레이게, 사랑만 하고 살
게 해준다는 말에 더 끌려서..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김태양이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
상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이고, 왠지 프로포즈를 받은 것 같은 기분에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나. 기분이 묘하
다.
그런데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해서 결코 흔들린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웃으면서 장난처럼 말하는 것 같아도 내 마음까지
진심이 닿아서 두근거리는 것 뿐이고, 아로하랑 같이 있는 자리에서 들은 말이라 더 기분이 묘할 뿐. 그래도 어쩌면.... 정
말 어쩌면. 한 번쯤은 흔들릴지도 모르겠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
내가 잠깐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 뒤에서 한 팔로 내 허리를 끌어안는 아로하와, 어느새 내 허리에 둘러져 있는
아로하의 팔로 정확히 향해져 있는 김태양의 애틋한 시선. 그리고...
"알면서.... 난 안 되는 거 다 알 면서....."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들릴 듯 말듯 작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더니. 천천히 시선을 들어 내가 아닌 내
뒤에 있는 아로하를 바라보며.
"그래도 나 다 진심이니까, 지애한테 더 잘해줘요. 안 그럼 내가 진짜 뺏고 싶어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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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이죠?
그동안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도저히 체력이 따라주질 않길래 일주일 정도 예고도 없이 제멋대로 쉬었어요.
이해해주실 거죠? ㅠ_ㅠ 그래도 정말 요 일주일 동안은 거의 하루 이틀 빼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뻗어서 잤더니
이제 좀 살만하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서 별로 하는 거 없는 것 같아도 집안일 하면서 직장 다니는게 참 힘들더라구요. ㅠㅠ
게다가 소설까지 쓰고 하면 거의 맨날 늦게 자서 아침에 더 힘들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많이 쉬었죠 뭐.
직장인들도 학생들처럼 방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전이랑 비슷한 속도로 연재를 계속 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전보다조금 더 느려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완결까지 쭉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 너무 오랜만에 왔지만, 격하게 반겨주세요. ♡ ㅋㅋㅋㅋㅋㅋ
아 참. 혹시 다이어리 기대하셨던 분들껜....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별 거 아니였는데, 가끔 제가 이런식으로 본의 아니게 뒤통수를 ㅠ_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업쪽=숫자)
첫댓글 123
내가 아로하라면 저렇게 할수 있을까.... 그리고 태양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넌 거기서 더 멋있어지면 안 돼 ㅠㅠㅠㅠㅠ
태양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멋있나요? ㅋㅋㅋ 제가 아로하라면........ 으음. 저렇게까진 좀 힘들 것 같은데; ㅋㅋㅋ 그쵸?
1453 매일마다 밤 11시넘으면 확인하고 잤어요 ㅠㅠㅠ 넘넘 오랜만이에요 ㅋㅋㅋ 재밌어여 ~~
아 정말요?? ㅠㅠㅠ 제가 너무 늦게 왔죠 ㅠ 죄송합이다.. ㅋㅋ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넘 감사해요~~
7 아..ㅠㅠㅠ 태양이가 진짜 힘들겠어요 ㅠㅠ 저둘이 알콩달콩 하는거보면.. ㅠㅠ 마음이 아주 ㅠㅠ 태양이 힘내라1! 화이팅!!!
그쵸 ㅠㅠ 아무래도 ㅠ 둘이 사이 좋은 거 보면 마음이.... ㅠㅠㅠ ㅋㅋ 태양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
아 ㅠㅠㅠㅠ 흑 ㅠㅠㅠ
태양이 불쌍하죠 ㅠㅠ
일처 다부제! 진심으로 동감!!!!!!!!!!!!! 아 얼마나 좋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만 해도 좋져? ㅋㅋㅋ 하지만 현실은 ㅠㅠㅠ
123아진짜아로아너무좋아요 ! 나같으면절대적으로저런행동들이안나오는데정말대단한것같아요내애인좋아한다는애한테도별로많은오해도않가지고그렇지만우리로하속으론많이아프겟죠 ? 그래도너무좋다우리로하ㅏㅏㅏㅏㅏㅏㅏ그리고태양아힘내자화이팅이야 ! 천천히잊어가도되잖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치 ? 그리고전기다릴꺼예요언제오시든괜찮아요기다리고있을께요그래도너무늦게오시면안되구요아무튼오랜만이여서반가워요 ! ! !
그쵸 ㅠㅠ 로하처럼 저러기 힘든데, 로하도 속으론 마음이 아프겠죠 ㅠㅠ 왜 저렇게 착한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태양이 ㅠㅠ 아우.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네요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기다려주신다니 ㅠ 넘 감사합니다 ㅠㅠㅠ 오랜만에 뵈서 저도 반가워요~~~ ㅋㅋㅋㅋ
작가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ㅠㅠㅠㅠ 넘 오랜만이에요!! ㅋㅋㅋㅋ 역시 로하 너무 멋있었요! 근데 태양이도~~~ ㅋㅋㅋㅋㅋㅋㅋㅋ 태양아 빨리 지애 잊고 누나한테 오렴! 넒은 가슴으로 안아줄ㄲ[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양인 좋겠어요 ㅠㅠ 늦게와서 죄송합니다 ㅠㅠ ㅋㅋㅋ 다음편은 좀 더 일찍 올 수 있도록 할께요 감사합니당~~
777 넘 기다렸어용~~~ ㅎ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1.ㅋㅋㅋㅋ 오랜만이에용^&^ 역시 로하는 너무 멋진것같아요!!!!! 태양이도 멋진데,,, 왜 전 불쌍하게 느껴질까요???
ㅋㅋㅋㅋㅋㅋㅋ 태양인 멋있다보다 불쌍하다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서인듯 ㅠㅠ 그쵸 ㅋㅋㅋ 아 이런 ㅠㅠ 그래도 감사합니당 ㅋㅋㅋ
와와와와아아 완죤 많이 기다렸어요!!ㅋㅋㅋㅋㅋㅋㅋ오늘 올라와있는거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능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헐헐헐헐헐....!! 이편보고 나서 태양이가 더 좋아진거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한............. 이 뒤숭숭한건 뭥미?! ㅋㅋㅋㅋ뭐지.... 이번편 태양이 너무 멋있었어ㅋㅋㅋㅋㅋㅋ그저 귀엽고 자상한 아로하도 멋있는데....틱틱거리면서 부드러운 태양이도 너무 멋있다!!! 나 원래 아로하편인데!!(편은 무슨....)ㅠㅠㅠㅠ안되 이러면 안되는데ㅠㅠㅠ담편엔 아로하 더 멋있게 해주세요 제가 태양이한테 넘어가지 않게ㅠㅠㅠ 태양이ㅠㅠㅠ뒤에 대사 넘 슬펐음ㅠㅠㅠ!! 완결 까지 같이 달리겠습니다! 담편 기대할게요!!
태양이 알고보면 멋진 놈이에요 ㅠㅠㅠㅠ 흐흐흑. 태양이 분량이 많아진다면 로하보다 더 인기도 많았을텐데, 아무래도 로하가 주인공이다 보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아쉽긴 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죠 ㅠㅠㅠ ㅋㅋㅋㅋ 완결까지 같이 달려주신다니 넘 감사합니다 ㅠㅠ 그리고 다음편에서 로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부담감 ㅋㅋㅋㅋ 그래도 담편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처음 댓글쓰는데,,, 지애 너무 욕심쟁이네요,, 태양이한테 맘갔다가 아로하한테 맘갔다가 이것저것도 안놓칠려는 꼬마애같네요.,, 같은여자지만 짜증나네요 ㅡㅡ;;
헐 ㅋㅋㅋㅋ 지애가 좀 그래보이긴 하는데, 나쁜 맘으로 그러는 건 아니지만 욕심쟁이긴 하죠 ㅠㅠ 어쩔 수 없는 듯 ㅋㅋㅋ 지애도 어서 빨리 맘 잡아야할텐에. ㅋㅋㅋ 감사합니다~~ 그래도 지애 넘 나쁘게 보진 말아주세요 ㅠ ㅠㅋㅋㅋㅋ
태양이너무불쌍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힝
불쌍한 우리 태양이 힘내라고 응원해주세요 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당 ㅋㅋㅋ
77 태양이 불싸유ㅠㅠㅠ로하랑 지애랑 잘되길 바라긴하는데..!!태양이가 너무 불쌍함니다ㅠㅠ모두모두 다~잘됫으면..!ㅋㅋ이번편 잘보구 갑니다~새해에도 행복하시구요!ㅋㅋ다음편에서 뵈요!
태양이가 아무리 불쌍해도 지애랑은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ㅠㅠ 그래서 더 불쌍한가요? 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헨노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담편에서 뵈요 ㅋㅋㅋㅋ
123 태양이가 넘 불쌍해요 ㅠ;; 담편두 기대할께요
넵 감사합니다 ㅋㅋㅋ 담편도 기대해주세용
777 태양이 안됐어요.ㅠㅠ
그쵸 ㅠㅠ 태양이 응원해주세요 ㅋㅋ
3 아..ㅠㅠ 완전 로하 귀여워죽겟어요>__<ㅎ 태양이가 불쌍하긴 하지만.ㅠ.ㅠ좋은여자 없나요..?ㅠㅠ태양이도 좋은여자랑 잘댓음좋겟어요ㅠ담편두 기대할게요 ㅎㅎㅎㅎ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척 하는거 귀여웠죠 ㅋㅋㅋㅋ 질투쟁이. ㅋㅋㅋ 태양이도 언젠간 좋은 여자 만나겠죠 ㅠ 감사합니다~~
잘봣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