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 조현태
여기저기서 자녀 혼례 소식이 전해 온다. 혼례식에 다녀 보면 주례사들이 대충 엇비슷한 권면의 말이다. 매번 그렇지는 않지만 ‘알콩달콩 잘 살라’ 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긴 주례사 중에 언뜻 섞어 하는 말이라 사람들은 무심코 듣고 지나간다. 물론 나도 전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듣고 지나치기 예사였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순이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모르고 있었다 싶어 얼굴이 붉어진다. 만약, 혼기에 접어드는 아들이 ‘알콩달콩이 뭐냐’ 는 질문이라도 한다면 난감할 터이니 말이다. 내친김에 나름대로 대답할 준비라도 해 두어야 할까 보다.
도대체 알콩은 뭐고 달콩은 뭘까. 궁금해서 사전을 뒤져 봐도 없다. 사전에도 없는 말을 세간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 더 궁금하다.
물론 이 낱말의 어원이나 유래가 몇 가지 있을 것이지만 나만의 방식은 이렇다. 일단 ‘콩’ 이란 공통분모를 빼고 ‘알’ 과 ‘달’ 을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알’ 은 껍데기를 제외한 알맹이를 뜻하거나 ‘진짜 또는 알짜’ 를 나타내는 접두사라고 나온다. ‘달’ 은 껍질이 살갗에서 벗겨져 있는 상태의 명사형이다. 나머지 ‘콩’ 에 다가서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와 같은 뜻의 ‘이러쿵 저러쿵’ 을 빌려 와서 대입해 보면 ‘알콩달콩’ 이 된다. ‘쿵’ 을 좀 더 깜찍하게 표현하는 모음으로 바꾸어 ‘콩’ 으로 발음한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본다. 이렇게 분리 작업을 하면서도 가닥을 잡을 수밖에 없겠다. 정리를 해 보면 ‘알짜배기든지 벗겨진 껍질이든지’ 로 풀어 놓을 수 있다.
왜 결혼하는 청춘 남녀에게 이러한 말이 포함된 주례사를 하는가? 인생사에는 반드시 알맹이가 있는 반면에 껍데기가 있게 마련이고, 깨가 쏟아지는 행복이 있는가 하면 죽을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찌 기쁨만 있고 가슴 터지는 슬픔만 있으랴.
그렇다고 이제 막 새 가정을 이루어 한 몸으로 합치는 자리에서 복장 터지는 아픔도 있다고 겁을 주기는 걱정스러울 수 있지 않겠나. 먼저 혼인하여 살아 본 경험은 알콩보다 달콩이 더 많았더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졌으리라. 알콩은 저절로 넘어가고, 달콩은 헤치고 넘어가다 보니 너무나 버거워서 허리도 꼬부라지고 관절마다 닳아 걷기조차 힘드노라고 차마 말 못할 일이다. 주름진 얼굴이며, 백발이다 못해 대머리가 그 흔적으로 남았다고 자식 같은 신랑 신부에게 어찌 말하리. 그래도 수많은 고달픔과 서러움보다는 몇 안 되는 행복과 보람 때문에 살아왔다고 하면 어떻게 알아들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온 삶이 있어 낳고 기르고 너희들처럼 새로운 짝을 지어 준다는 경험담이 들어 있는 말이 아닌가. 우리 조상님의 슬기로운 말에 이렇게 살가운 감정을 지녀 왔다.
더 나아가서 뒤에는 항상 ‘잘’ 이란 부사를 붙인다. 이 뜻은 알콩달콩 하면서도 훌륭하게 이겨 나가라는 당부를 의미한다. 이만하면 족하지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일일이 예를 들어 가며 듣기 좋고 아름다운 수식어를 동원하여 장구하게 연설한다 하더라도 결혼하는 당사자가 가슴으로 맏아들이기 나름이다. 어차피 새 가정의 행로에서 감당해야 할 몫은 그들에게 맡겨야 옳다. 삶의 저변에 ‘빨리빨리’ 가 깔려 있는 민족성이기도 하니 이 한 구절의 당부만으로도 주례사로 충분하지 않은가.
비단 혼례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측면에서도 알콩달콩이 적용된다. 학교생활, 직장, 군대는 물론이려니와 문학이나 예술, 심지어는 각종 경기나 봉사에 이르기까지 알짜배기와 헛껍데기가 뒤엉켜 있게 마련 아니던가.
그것도 실보다 허가 더 판치는 가운데 사는 현실이 세상사이고 보면 등산가에 견주어 볼 일이다. 가파른 산에 올라가는 일이 고되고 힘든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숨 가쁜 고비, 고비를 넘기면서 정상에 도착했다가 뿌듯한 가슴 안고 내려가는 것이 등산 아니던가. 위험하다고 고난스럽다고 산에 오르지 않는 등산가가 어디 있겠는가. 그 힘들고 어려운 등산을 왜 할까. 물어 보나마나 등산가이기 때문이다. 등산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줄 알면서 자일을 챙기는 것은 ‘잘할 수 있다’ 는 믿음이 정신 속에 깔려 있다. 등산가라는 이름을 지키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그 신뢰가 맡아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삶도 알콩달콩한 줄 알면서도 인생이기 때문에 살 잘 것이라는 믿음을 힘입어 사는 것이 인생사다.
그래서 내가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