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가 끝났다.
단풍이 드는 감나무잎 사이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평온한 교정에 따스한 햇살
우리 6학년 3반 모두는 실습장옆 돼지우리에서 9마리나 낳은 어미돼지에게
돌아 가면서 죽을 끓여 주고 있었다.
황학영 담임선생님께서 다음주에는 소풍을 간다고 말씀하셨다.
가을소풍이다 가을소풍!
우리 어린것들은 손벽을 치며 좋아했다.맨날 꽁보리밥속에서 지내다
소풍가는 날만은 흰 쌀밥을 해서 싸주시는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1년에 한 두번 만져보는 어머니가 주시는 쥐꼬리만한 소풍용돈으로
평소에 그렇게 사먹고 싶던 교문앞의 가게의 뉴가와 김이 모락모락나는 찜빵을 사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어느 집에든지 애들 7~8명은 기본이고 많은 집은 아이들이 열명이 넘었으니
먹는 양식이 없어서 매 끼니를 걱정하는 험준한 보리고개를 넘는것이 가장 힘든 살림이였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17~18세에 시집와서 40대 후반까지 계속 애 놓느라 정신이 없었고
머리위에는 물동이나 짐을 이고 등에는 어린애를 업고 양손에는 짐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 예사였다.
어느 어머니든지 연년생 줄줄이 형제들이 내리 젖을 빨다 보니 40대에 이미 젖이 쭈굴쭈굴 축 늘어져
밖으로 내놓고 다니시는 것이 보통이고 예사로운 생활습관이 되었다.
이렇게 고생고생하시면서 사시는 어머니가 별도 단지에 애지중지 보관해둔 쌀로 만든 김밥뭉치 3개와
감 삯힌것 2개 삶은 고구마 2개를 신문지에 둘둘말아 광목으로 된 책보재기에 싸서 어깨에 메고
산터백이 너머 옥산으로 난생 처음 기차구경하러가는 것이 국민학교 6학년 마지막 소풍이었다.
새로 갈아 입은 옷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키가 작은 나는 앞줄에 서고 키가 큰 무을토박이는 뒤에서
줄을 따라 왔다.그 어릴 때 걷던 토박이님의 걸음걸이 모습이 지금까지 똑 같은 모습으로 걷고 있으니
순진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옥산에 도착한 우리는 기차다리 철로옆에 진을 치고 우리반 모두는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시꺼먼 검은 물체가 흰 연기를 내 품어면서 칙칙폭폭 굉음내면서
돌진해 우리 앞을 지나갈 때 난생 처음보는 기차의 모습을 보고 우리 어린 것들은 탄성을 질렀다.
뒤로 계속 연결된 기차고빼를 보고 이런 기차가 다 있나 싶었고 지나갈 때 손을 흔들어 주는 기관사는
딴 나라 사람같이 신기해 보였다.
어둠이 찾아오는 저녁 때 우리 6학년3반 모두는 황학영선생님의 손목을 잡고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면서 산터백이 고개를 넘어 온것이 국민학교 마지막 소풍이 되었다.
가을소풍에 어린마음 모두를 싣고 동심의 세계에서 하늘을 날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존경하던 황학영선생님은 이미 만날 수 없는 분이 되셨다. 가을석양이 물들고 감이 빨갛게
익어 갈 때는 지금도 마음은 어린시절 가을소풍의 그날로 되돌아가 검정고무신을 신고 선생님의 손을 잡고
산터백이 고개를 넘는 6학년 3반이 되곤 한다.
우리의 마음은
때로는 세월의 수레를 뒤로 돌리기도 하고
어른의 마음을 어린애 마음으로 만들기도 하니
이 모든것이 고향을 무을에 둔 은혜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고향 무을은 영원하리라....................................
고향 무을 만만세!
쌍무지개 뜨는 언덕 올림
첫댓글 우리어린시절무을소풍이였읍니다타지역분들은이글을읽어면웃을겁니다무을의사람만이알수있는일이니까요가을소풍가던일이새스럽게떠오르네요그래도그시절이아름다웠읍니다
어린 것들도 맨날 농사짓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소풍가는 날은 일에서 해방되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5학년 가을소풍때는 장자골을 거쳐 이실로 소풍을 갔는데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지금의 이실도 감이 많을까요? 안곡에서 무을학교까지 매일 뛰면서 통학했던 하얀구름김일태님도 가을소풍의 정취가 감미롭게 다가온다고 하니 역시 하얀구름김일태님은 오리지날 무을인입니다.홧팅이ㅖ요.
우리5학년때는원동재를넘어감문숯골못으로도소풍을간적이있어요추억입니다
하얀구름김일태님도 개자고개를 넘어 돌로지은 감문중학교를 지나 숯골못으로 소풍을 갔었군요. 너무도 깊이 생각나는 추억입니다. 우리 황학영선생님도 5학년까지는 원동고개 개자고개넘어 감문중학교와 당시 새로 만드는 저수지현장을 단골로 소풍을 가곤했습니다.
우리 무을초딩 때 얘기
책가방 대용으로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싸서 걸머지고 먼 통학길을 달려가서 학교가자마자 전교생이 각자 책보자기들고 앞냇가에 가서 고사리 손으로 모래를 담아 운동장 파인곳을 메우고 초가지붕아래 멍석깔린 교실에서 공부하며 때론 집에서가지고간 *바가지로 뒷거름을날라 넓은 실습지에 뿌려 온갖채소를 가꾸면서 당번이되면 꽁보리밥 도시락 절반을 졸업할때 담임선생님양복값과 사은회 경비마련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우리반 암돼지에게 아낌없이 주던 그때를 아시나요?
하교시 배고파 실습지 가지 몇개 따먹다 걸려서 이튿날 죽도록 혼난 이런저런 체험들이 쌓여 아련한추억으로 회상되네요 ㅎㅎ
천수답이 대부분이고 걸핏하면 흉년이 들어 점심도시락을 못싸오는 친구들이 가끔있었어요. 그래도 서로 나누어 먹고 지내면서 어린시절릉 보낸 그 때가 정겨운 샘동네였답니다.
귀한 추억을 가진 님들은 그래도 많이 행복해 보입니다.....
쟈스민님이 끓여주신 떡국 정말로 잘 먹었어요. 쟈스민님의 생각에 저는 3표를 던집니다.쟈스민님 샌스만점이예요.
쌍무지개님 유년시절 추억은 어디까지 인가요~
올려주신 글을 보고 있노라면......
그시절이 머리속에 훤히 그려집니다~
지금 이 때쯤 가을소풍을 가면 더 많은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질것 갔습니다. 굼이님 검은 고무신을 신어 보셨나요?
저 어릴적엔 빨간구두가 유행하던 때라 ...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빨간색 구두가 얼마나
신기하고 예쁘던지 ..하루종이 신고 돌아다녀
뒤굼치가 다 까졌던 기억이 나네요~
굼이님은 울에 살아서 멋쟁이였구만요
뒷굽이
6학년때 소풍가는날 아팠던 기억 그리
카페에 들어오니 언덕님이 옛날 초등학교 시절 소풍이야기를 하셧네요 저는 그시절 생각이 가물가물 한데 이글을 보니 어린시절 기억이 새롭게 생각이 나네요 장자골 넘어 이실로. 옥산 기차보러. 감문 수골못. 잊지 못할 추억거리 입니다.
토박이님은 기억력도 좋으시네요.저는 감문수골못 이름을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나요. 쥐고리용돈으로 풍선을 사서 힘차게 불면 온갖 모양이 나오던 그 재미에, 뉴가를 아끼면서 한개씩 호주머니에서 꺼내먹던 그달콤한 맛,걸어서 오만군데 다 다닌 소풍길, 우리 국민학교2학년 때는 송삼뒷쪽으로 원통산기슭의 험준한 고개를 넘어 대원저수지로 점심늦게 도착했던 소풍길은 평생을 두고 잊지못할 추억입니다.
무지개님.토박이님은 대원저수지 원통산 감문 고루다녔네요. 우리는 죽으나 사나 수다사.짧은다리로 자갈길을 행군하듯 걸어서 절 입구 금을 캐서 가루를 만드는 신기한집도 있었고 대웅전의 금빛 큰부처님의 내려감은듯한 눈이무서워 오래 구경 못하고 보물찾기 한다고 헤메고 나서 먹은 꿀맛같은 점심도시락맛은 잊을수 없지요
아주어릴때선친께서 감문숯골(炭洞)못 조성할때 하루노임을 밀가루 몇되받아 힘겹게 마루에내려놓으시던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맑고 푸른물로 가득찬 이못은 경치도좋지만 낚시 명소이기도합니다
가을소풍때 사 먹던 그 맛있는 뉴가와 눈깔사탕이 지금도 교문 앞 가게에서 팔고 있을까? 요.
그때 그 시절이생각납니다
쌍무지개님께서는 요즘 통 연락이 없으시네요~
무지개님 등장하시면 카페가 활기넘쳤는데요..
무을약손이님 반갑습니다. 님의 모습은 굼이님이 올려주신 가을여인이란 타이틀에서 보았는데 그 모습이 티이브이 주말연속극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유명한 탈렌트의 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무을면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시는 님의 모습은 자랑스럽습니다. 홧티이잉이예ㅛ!!
전 왜 이글을 이제야 읽은거죠? 꽁보리밥에 검정고무신은 신었던 기억은 없는거 같고. 소풍가는날 전날은 새운동화를 머리맡에 두고 잠을 설쳤던 기억은 있는데 학교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않은곳에 살아서 인지~~ 무지개님의 가을소풍을 읽어보니 그때 그장면들이 머리속에 연출되네요. 그리운 추억들이 아련히 떠올릴수 있는 계절이 지금 가을이 아닐까 싶네요. 곳곳에 추억이 서려있지만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이 가을이라는 계절이 더 사람을 그리움으로 살게 하는거 같아요.
역시 가을은 진주님을 행복하게 합니다 진주님 홧팅이예요
아! 옛날이여!!
아름다운 추억은 자기 인생행로에서 가장 소중한 무형의 재산입니다.
가을소풍 용돈5원가지고도 그래도푸짐했답니다 추억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