訓 民 歌 / 정 철
[1]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두분 곳 아니면 이 몸이 사라시랴
하늘갓튼 가업슨 은덕을 어데 다혀 갑사오리.
[2] 님금과 백성과 사이 하늘과 땅이로다.
내의 셜운 일을 다 아로려 하시거든
우린들 살진 미나리 홈자 엇디 머그리.
[3] 형아 아애야 네 살할 만져 보아
뉘손듸 타 나관데 양재조차 가타산다
한 졋 먹고 길러나 이셔 닷 마음을 먹디 마라.
[4]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 일란 다하여라.
디나간 후면 애닯다 엇디하리
평생(平生)애 곳텨 못할 일이 잇뿐인가 하노라.
[5] 한 몸 둘혜 난화 부부를 삼기실샤
이신 제 함끠 늙고 주그면 한데 간다
어대셔 망녕의 꺼시 눈 흘긔려 하나뇨.
[6] 간나희 가는 길흘 사나희 에도다시,
사나희 녜는 길을 계집이 츠ㅣ도다시,
제 남진 제 계집 하니어든 일홈 뭇디 마오려.
[7] 네 아들 효경 닑더니 어도록 배홧나니
내 아들 쇼학은 모래면 마찰로다
어내 제 이 두 글 배화 어딜거든 보려뇨.
[8] 마을 사람들아 올한 일 하쟈스라
사람이 되어나셔 올치옷 못하면
마쇼를 갓 곳갈 씌워 밥머기가 다르랴.
[9] 팔목 쥐시거든 두 손으로 바티리라.
나갈 데 계시거든 막대 들고 좇으리라.
향음주(鄕飮酒) 다 파한 후에 뫼셔 가려 하노라.
[10] 남으로 삼긴 듕의 벗갓티 유신(有信)하야.
내의 왼 일을 다 닐오려 하노매라.
이 몸이 벗님 곳 아니면 사람되미 쉬울가.
[11] 어와 뎌 족해야 밥 업시 엇디할꼬
어와 뎌 아자바 옷 업시 엇디할꼬
머흔 일 다 닐러사라 돌보고져 하노라.
[12] 네 집 상사들흔 어도록 찰호산다
네 딸 셔방은 언제나 마치나산다
내게도 업다커니와 돌보고져 하노라
[13] 오날도 다 새거다 호믜 메고 가쟈사라.
내 논 다 매여든 네 논 졈 매여 주마.
올 길헤 뽕 따다가 누에 머겨 보쟈사라.
[14] 비록 못 니버도 남의 옷을 앗디 마라.
비록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비디 마라.
한적 곳 때 시른 후면 고텨 씻기 어려우리.
[15] 쌍육(雙六) 장기(將碁) 하지 마라 송사(訟事) 글월 하지 마라.
집 배야 무슴 하며 남의 원수 될 줄 엇지,
나라히 법을 세오샤 죄 잇난 줄 모로난다
[16] 이고 진 뎌 늘그니 짐 프러 나랄 주오
나난 졈엇꺼니 돌히라 므거올까
늘거도 설웨라커든 지믈 조차 지실까.
<송강가사>
[현대어 풀이]
[1] 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께서 나를 기르시니 / 두 분이 아니셨더라면 이 몸이 살아 있었겠는가 / 하늘 같이 높으신 은덕을 어느 곳에 갚아 드리오리까 ?
[3] 형아, 아우야, 네 살들을 한번 만져 보아라. / (너희 형제가) 누구에게서 태어났기에 얼굴의 생김새까지도 닮았단 말이냐? / (한 어머니에게서) 같은 젖을 먹고 길러졌기에, 딴 마음을 먹지 마라.
[4] 부모님 살아계실 동안에 섬기는 일을 정성껏 다하여라. / 세월이 지나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리 뉘우치고 애닯다 한들 어찌하겠는가 /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이 부모님 섬기는 일이 아닌가 하노라.
[5] 한몸을 둘로 나누어 부부를 삼으셨기에 / 살아있는 동안에 함께 늙고 죽어서도 같은 곳에 가는구나 / 어디서 망령된 것이 눈을 흘기려고 하는가?
[6] 여자가 가는 길을 남자가 멀찌감치 떨어져 돌아서 가듯이, / 또 남자가 가는 길을 여자가 비켜서 가듯이, / 제 남편, 제 아내가 아니거든 이름도 묻지 마시오.
[8]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을 하자꾸나. /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 못하면 / 말과 소에게 갓이나 고깔을 씌워 놓고 밥이나 먹이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9] (어른이 기동할 때에 만일) 팔목을 쥐시는 일이 있거든 (그 손을) 내 두 손으로 받들어 잡으리라. / 나들이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실 때에는 지팡이를 들고 따라 모시리라. / 향음주가 다 끝난 뒤에는 또 모시고 돌아오련다.
[10] 남남으로 생긴 가운데에 친구같이 신의가 있어 / 나의 모든 일을 말하려 하노라 / 이 몸이 친구가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까?
[11] 아, 저 조카여, 밥 없이 어찌할 것인고? / 아, 저 아저씨여, 옷 없이 어찌할 것인고? / 궂은 일이 있으면 다 말해 주시오. 돌보아 드리고자 합니다.
[13] 오늘도 날이 다 밝았다, 호미를 메고 나가자꾸나. / 내 논을 다 매거든 너의 논을 조금 매어 주마. /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뽕을 따다가 누에에게 먹여 보자꾸나.
[16] 머리에 이고 등에 짐을 진 저 늙은이, 짐을 풀어서 나에게 주오. / 나는 젊었거늘 돌이라도 무겁겠소? / 늙는 것도 서럽다 하는데 무거운 짐까지 지셔야겠소?
[창작 배경]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정 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였던 1580년(선조13) 정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백성들을 계몽하고 교화하기 위하여 지은 작품이다. 송나라 때 진고령(陳古靈)이 백성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조목별로 쓴 '선거권유문(仙居勸諭文)' 13조목에다, 군신(君臣), 장유(長幼), 붕우(朋友) 3조목을 추가하여 각각 한 수씩 읊은 것으로, 유교의 윤리를 주제로 한 교훈가이다.
[이해와 감상]
'훈민가'가 계몽적 · 교훈적 노래이면서도 세련된 문학으로 설득력이 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언어 형식에 있다. 유교적 윤리관에 근거한 바람직한 생활의 권유라는 주제를 표현하되, 현실적 청자인 백성들의 이해와 접근이 용이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중국 문학에서 차용한 한자 · 한문이 거의 없다. 어법에 있어서도 완곡한 명령이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청유의 형식을 위주로 하고 있다. 지은이가 이런 언어 형식을 취한 것은 통치자로서의 명령적, 지시적 태도를 버리고 인간적인 데에 호소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 결과, '훈민가'는 훈민(訓民)이라는 목적 의식에서 지어진 많은 시조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고, 친근감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 리]
▶ 성격 : 연시조, 훈민가(訓民歌), 교민가(敎民歌), 교훈가
▶ 전체 구성
제1수 - 부의모자(父義母慈)
제2수 - 군신 (君臣)
제3수 - 형우제공(兄友弟恭)
제4수 - 자효(子孝)
제5수 - 부부유은(夫婦有恩)
제6수 - 남녀유별(男女有別)
제7수 - 자제유학(子弟有學)
제8수 - 향려유례(鄕閭有禮)
제9수 - 장유유서(長幼有序)
제10수 - 붕우유신(朋友有信)
제11수 - 빈궁우환(貧窮憂患) 친척상구(親戚相救)
제12수 - 혼인사상인리상조(婚姻死喪隣里相助)
제13수 - 무타농상(無惰農桑)
제14수 - 무작도적(無作盜賊)
제15수 - 무학도박(無學賭博). 무호쟁송(無好爭訟)
제16수 - 반백자불부대(班白者不負戴)
※ 제3수의 '군신', 제9수의 '붕우유신', 제10수의 '붕우유신'은 <선거권유문>에 없는 내용을 추가한 부분이고, '무이악릉선, 무이부탄빈, 행자양로, 경자양반'의 4조목은 채택하지 않았으며, '무학도박'과 '무호쟁송'은 시조 1수의 제재로 용해시켜서 표현함.
▶ 창작 의도 : 유교적인 윤리관에 근거하여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권유하는 데 있었지만, 작가 정철은 사대부 계층의 선험적인 가치체계를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명령하는 어법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정감어린 어휘들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제재들을 다룬 어떤 작품들보다도 강렬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 '훈민가(訓民歌)'의 특성
① 윤리(倫理) 도덕(道德)의 실천 궁행(實踐躬行)을 목적으로한 목족 문학(목적문학)이다.
② 강원도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한 계몽적이며 교훈적인 성격의 노래이다.
③ 문학적인 운치나 창의성은 적지만. 평이한 말 속에 인정의 기미를 곁들여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④ 고유어를 사용하여 백성들의 이해와 접긍이 용이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⑤ 청유 어법을 활용하여 설득하는 힘이 강하다.
▶ 주제 : 유교의 윤리
첫댓글 시조의 전형들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또다시 새로움을 배워갑니다...
귀한 자료에 푹 빠져 잘 쉬어갑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