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2시경 일자리에 출근할 때 숭실대역을 통하여 7호선을 타고 세 정거장째인 내방역에 내린다. 그런데 집에서 숭실대역까지 대강 걸어서 10분정도 걸리는데 도착하여 승차지점까지 계단이 두개 있는데 이 두 계단을 전부 걸어서 내려간다. 첫 계단은 좀 짧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가서 옆에 있는 과일가게를 쭉 둘러보면서 오늘은 어떤 좋은 과일이 들어왔나를 본다. 그리고 역내에 들어가서는 두번째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이건 꽤 긴 계단인데 여기는 다리운동을 한다는 기분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요즘 나의 다리가 약해져서 다리근육 강화를 위해 엔간한 계단은 걸어서 오르내린다. 이건 얼마전 수원에 일이 있어 갔다가 한길에서 무엇에 걸렸는지 넘어져 해장작을 패서 큰일 날번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리에 힘이 없어 그런것 같아 그때부터 산에 오르거나 지하철 계단을 오르 내릴때는 일부러 걸어서 다닌다. 일자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때도 아까 그 긴 계단을 헐떡이며 걸어오른다. 그리고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좀 사고 다시 좀 짧은 계단을 걸어서 올라와 에스칼레이터를 탄다.
그런데 오늘 일자 조선일보에서 소설가 한은형의 느낌의 세계란 칼럼을 읽어보면
1935년생 조각가 김윤신은 49세의 나이에 안정된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즉 40대후반에 여성의 교수직도 때려치우고 아르헨티나로 갔는데 그것은 나무가 좋아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작품으로 쓸 만한 목재가 구하기 어려워서 한국과 달리 따뜻한 남미의 나무는 어찌나 굵고 튼튼한지 놀랐다며 거대한 나무를 전기톱을 들고 작업하며 70년동안 조각작업을 해온 91세의 조각가의 얼굴에는 근엄함 대신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
또 하나는 1928년생인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는 1947년에 폭격기를 개조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갔다가 1949년에 돌아올 당시 한국은 GNP가50달러대의 최빈국이었으며 옷을 만들려고 해도 옷감이 없어 이불감이나 한복감으로 옷을 만들어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고. 결과는 잘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할 수 없었지만 신나니까 하는 거죠 라며 80년동안 옷을 만들수 있었던 저력 또한 바로 즐길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과일가게를 지나다니며 맛있고 싱싱한 과일이 나왔나하고 바라보고 높은 계단을 내 건강을 위해 오르내리고 하는것도 어떤 면에서는 즐거움이 있기때문에 할 수 있으며 김윤신이나 노라노도 자신의 일을 좋아하면서 즐길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 물론 그 내용면에서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것만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6.4/2 |
첫댓글 맞네.맞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