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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함정수, 속이기 위해서 아니라 속지 않기 위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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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일찍이 바둑마니아로 소문났다. 정치적인 색깔을 떠나, 바둑을 좋아하는 유명인사로서 그의 바둑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바둑팬 또한 안원장의 '바둑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리라. 예전 기사이긴 하지만 [월간바둑]에 실렸던 그의 인터뷰기사는 바둑에 국한한 내용이었으나 '안철수의 생각' 일단을 살펴볼 면이 있기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 사람의 행마법(96년 11월)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씨 글/정용진 편집장 사진/이시용기자, 안철수 바이러스연구소 제공 오늘날 지구상의 웬만한 것은 컴퓨터에 정복되었고 또 정복되고 있다. 체스는 이미 세계 최강자와 겨루는 수준에 이르렀고 장기도 머지않아 공략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바둑만큼은 아직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모를까 컴퓨터가 영원히 인간을 이길 수 없는 마지막 분야가 바둑일 것이라고 장담하기까지 한다. 컴퓨터의 두뇌는 0과 1의 이진수 조합으로 구동된다. 그런 의미에서 흑백의 이분법이 가능한 바둑과 유사한 면이 많다. 바둑과 컴퓨터는 지극히 수학적이라는 데에서 한 혈통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원시적인 컴퓨터의 형태가 바로 '주판'이라고 일반상식 책에 서술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주판'은 원래 '바둑'에서 변형되어 나온 기구라는 사실을 여럿 고문헌에서 증명하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400만 대를 넘어선 지가 오래다. 설사 '컴맹'이라 할지라도 대략적이나마 컴퓨터 바이러스가 무언지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니 컴퓨터 바이러스를 모를지라도 'V3'하면, "어허 그 사람, 안철수란 이름은 들어봤소"하고 아는 체 하는 이가 의외로 많다.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용 프로그램 V3를 개발한 안철수(34.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소장) 씨의 유명세는 그 정도이다. "컴퓨터 쓰는 사람치고 그가 만든 V3 한번 쓰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면 아마 한명도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에 관한 에피소드 한 토막. 아들에게 컴퓨터를 사준 지 얼마되지 않은 아버지가 밖에서 컴퓨터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라는 말을 듣고 왈, "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있다는데 무섭다더구나" "괜찮아요. 안철수라고 서울대 나온 의사가 치료용 백신을 개발해 놓아 걱정 없어요." "그래도 조심해라. 아무튼 안 뭐라고 하는 의사가 백신을 만들었다니 주사라도 한대 맞아두는 게 좋을 성싶다." "???" 컴퓨터계에서 이렇게 유명한 안철수 소장이 컴퓨터에 손대기 전 먼저 바둑에 흠뻑 빠진 매니아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바둑과 컴퓨터 간의 '피땡김'을 고려하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도 모른다. 그가 바둑을 배운 동기도 대다수의 사람처럼 어깨너머로 어찌어찌 알게 된 게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었다. 서울대 의과대학 예과 2학년 때 취미활동 개발차원에서 배우기로 작심한 품목이 바둑이었다. 본과에 진학하면 취미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없다는 선배의 충고가 계기가 되었다. 정신수양의 의미도 곁들여 바둑을 두면서 어지러운 현실을 이겨볼까 생각한 것이다. 바둑은 사실 책으로 배우고 기원은 심심할 때 갔다. 안소장은 무엇이든 시작할 때 관련서적을 두루 사 이론부터 파고드는 성격이다. 그리고 책에서 배운 내용을 연습한다. 처음에는 행보가 더딜지 모르나 기초이론 무장이 단단하므로 종내에는 다른 사람보다 빠른 효과를 본다. 바둑도 그랬다. 학기 중엔 청계천 고서점에서, 방학 중엔 고향 부산 구덕운동장 근처 고서점에서 눈에 띄는 바둑책은 죄다 손에 집었다. '월간 바둑'도 그때 만났다. 첫 길잡이가 된 입문서는 오타케(大竹英雄) 九단이 쓴 책이었다. 무작위로 산 책이 50권쯤 될 무렵 어렴풋이나마 모양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기원은 이때 비로소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10급에게 9점을 깔고도 100집 이상 져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으나 1년 만에 기원급수 2급까지 급행보를 보였다. 그때 기원급수 2급이면 지금 한국기원 심사기준으로 볼 때 아마 1~2단쯤 될 것이다. 당시 부산 한국기원 서면지원의 이기섭 사범이 듣기 좋은 소리로 무릎을 쳤다. "아깝다. 어릴 때 배웠으면 조훈현 못지 않을 기재인 것을..." 한때 그는 컴퓨터바둑 프로그램을 개발할 욕심으로 자료도 꽤나 모았다. 의과대 시절에는 공부 때문에 기회를 못보다가 군의관 시절 시도할 요량이었으나 그만 바이러스 백신 개발연구에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 영영 미답의 세계로 남기고 말았다. 덕분에 컴퓨터 사용자들에게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긴 했으나 바둑계로 보자면 아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바둑이나 컴퓨터는 혼자만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상대가 있어야 바둑이 재미있어진다는 점에서 컴퓨터의 세계와 다른 데가 있다. 그래서인지 안소장은 혼자서 책과 묘수풀이 대하는 것을 더 즐겼다고 한다. 현재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느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경영공학(Executive Engineering)과에 수학하며 의료 정보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이기에 바둑을 접할 시간은 거의 없다. 컴퓨터에 본격 뛰어들면서 시간에 쫓겨 바둑과는 사실 생이별하다시피 했지만 나이가 더 들고 여가가 있을 때는 다시 찾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바둑은 그의 가슴속에 도사린 바이러스(?)와 같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활동을 재개할지 모를. "내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어떤 시점, 어떤 통로로 들어왔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 점에서 바둑의 복기와 비슷합니다. 한판의 바둑이 끝난 후 어느 대목에서 내가 잘못 두었나 분석하고 반성해야 다음에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컴퓨터 바이러스는 말하자면 바둑의 함정수 같은 것이지요. 함정수란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속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것 아닙니까. 상대가 함정수를 쓰지 않으면 사실 함정수를 알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함정수와 같은 컴퓨터 바이러스가 계속 출몰하는 한 그것을 찾아 연구하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그래서 다른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바이러스 퇴치와 같은 소모성 연구보다는 더욱 가치있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글 | 정용진 /월간바둑 96년 11월호 게재] | ||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그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