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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야(형님아)~ 와 산 길로 안가고 큰 길로 가노?”
“니, 지금 내캉 말장난 하나?”
“아이다. 진짜 도망 안 갈게, 그냥 웃길로 가자.”
나는 이제 1학년이 된 동생을 데리고 등교를 하는 중이었다.
근데 동생 놈은 유난히도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또 수시로 학교를 가다 샛길로 빠져 학교를 땡땡이(빼먹곤) 치곤 했다.
당시, 우리가 살던 감천 2동에서 1동 바닷가에 있던 학교를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동생이 이야기하는 산길이란 일종의 지름길 이었다.
그곳은 산 길 이라기보다는 비석이 없는 수많은 묘지가 널려있던 일종의 공동묘지 사이로 가로 질러가는 길이었는데, 내가 그 길을 피한 건 같이 등교할 때 동생 놈이 수시로 묘지 사이로 숨어 날 골탕 먹이곤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동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 놈은 선천적 심장병을 앓는 아이라서 유독시리 엄마가 신경을 많이 쓴다.
그때까지, 아니 중학생이 된 후 동생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자세히 알기 전까진, 나는 이 말썽쟁이 이기도 한 동생으로 인해 이런 저런 피해를 보아왔다는 느낌을 항상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동생 때문에 짜증을 내면, 엄마와 누이는 동생이 많이 아픈 아이니까 내가 참아주어야 한다며 설득하거나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에, 집을 나오면서 부터 계속 내 속을 긁어대는 놈을 달래며 참아야만 했다.
“호야, 니 그래 자꾸 학교 빼 묶다간.......”
“안다. 금수하고 똑같은 놈이 된다고. 금수는 개 돼지 같은 짐승이고.”
“그래. 사람이 제때 배우고 익히지 못하믄.......”
“고마해라. 누가 영감탱이 아이라 할까봐. 근데 내는 진짜 학교 댕기기 싫다.”
“와? 또 누가 니보고 뭐라 카더나? 똥찬이 그 자식은 지난 번 내가 혼내줬다 아이가, 혹시 금마 말고 또 니보고 냄새난다고 놀리는 아가 생깄나?”
그러자 동생 놈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수긍을 하는 모양새다.
녀석은 야뇨증으로 인해 항상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물론 그 야뇨증의 희생양 중의 하나인 나 역시 수시로 냄새를 풍겼고.
나는 속으로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도, 겉으로는 동생에게 힘을 주기위해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떤 놈이고? 내가 가서 혼 내 줄게. 가자!”
그러자 동생 놈이 그런 나를 보면서 피식 웃더니, 가까이 걸어오면서 말했다.
“아이다. 그냥 가자, 세야.”
나는, 속으론 기뻤지만 속으론 ‘이놈이 갑자기 왜 이러지?’하는 마음에 녀석에게 물었다.
“와? 그라모 니 진짜 지금 어데 아프나?”
“아이다. 그냥......”
그라면서 문득 나를 올려보며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세야는, 가시나들 한테는 밥 아이가!”
“......!”
“가시나들이 욕을 해도 아무 대꾸도 못하다가, 끝나고 난 뒤에야 혼자서 비 맞은 중처럼 웅걸 거리기나 하고, 맞제.”
그제야 나는 내 동생을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이 여자애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동생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인지, 무슨 연고로 인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엄마와 누나를 제외한 여자들 앞에서면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뭘 물어보면 딱 필요한 대답만, 다른 여자들의 질문이나 이야기엔 머뭇거리다 그냥 대답도 못한 채로 돌아서기 일쑤였다.
그건 동급생이나 하급생들 에게도 마찬 가지였는데, 동생 놈은 그걸 바로 지적하면서 한심해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어제 추혜석 모녀와 그만큼의 이야기는 나눈 것은, 내 10년의 인생에서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 건 그만큼 추혜석이란 아이가, 그토록 단단했던 내 마음의 방어기제조차 무기력하게 무너뜨리고 순식간에 내 마음의 큰 부분을 차지해 버릴 만큼, 충격적으로 내게 다가온 그런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생이 산길로 가자고 떼를 씀에도, 우연에 판돈을 건 도박꾼의 심정으로 혹시 등교 중에 그녀와 만날 수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가지고, 때로는 동생을 달래고 때로는 협박을 섞어서 꿋꿋하게 큰 길을 고수했다.
그렇게 감천 1동의 파출소 4거리를 내려 오다보니, 갑자기 학교를 향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와~ 쟈가 누고? 우리 학교에 저런 아도 다있나?”
“엄마야! 완전 인형이네, 인형! 아가, 우째 저래 곱고 예쁘노......”
“저 아이가 입고 있는 옷 좀 봐라. 내가 지난 번 미화당 백화점에 가서 본 옷 그거네.”
“뭐? 백화점에서 파는 옷이라고!”
그렇게 웅성거리는 사이로 나는 혹시 혜석이 아닐까 싶어 궁금증을 가득안고 내려가니, 주변에 아이들이 길을 막고 있어 구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 저아, 안다. 저 발전소 옆에 커다란 빨간 벽돌집에 새로 이사 온 그 아이다!”
“그기~ 발전소 소장하고 큰 배 선주들이 모여 산다는 그 집?”
“맞다. 근데 쟈는 서울에서 내려 왔다더라.”
아이들을 뚫고 학교까지 뚫린 길까지 나오니 등교하다가 한 곳을 쳐다보는 아이들 뒤로, 전봇대 근처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선 눈길은 아래로 내려 깔고 있는 혜석이 보였다.
나는 동생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손을 꼭 쥐고서 그녀를 쳐다보던 중,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스나, 어제 내를 가지고 놀 때는 까불거리는 것 같더이...... 그래도 예쁜 건 여전하네.’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들도 많이 보는 곳에서 아는 척을 하는 것도, 또 어제 학교에서 모르는 척 하자고 한 이야기도 있어 돌아서는 순간, 혜석의 엄마가 나를 발견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곧 혜석에게 무어라 이야기 하는 것 까지 못 본 척 보면서 돌아섰는데, 그런 내 귀에 혜석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세야~ 와 그라노?”
동생은 자신을 손을 잡은 내 손에 갑자기 땀이 많아지더니, 잡은 손에 갑자기 힘을 주질 않나, 난데없이 꼼지락 거리다가, 발 걸음까지 멈추는 내 행동이 궁금했던지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난 동생의 궁금증에 대답은 않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아서니, 과연 혜석 엄마가 나를 향해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곤 곧 허리를 숙여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를 하니, 눈을 내려 깔고 땅바닥을 보던 그녀가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왠지 단단히 화가난 얼굴처럼 보였다.
그렇게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는 그녀의 눈길에서 왜 자신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냐는 생각을 읽고 말았는데, 동시에 내게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듯한 텔레파시도 동시에 전달되어져 왔다.
‘뭐꼬? 저 눈초리는 우리 누부야(누나)가 화났을 때 보내는 신호처럼, 눈을 깜빡 거리면서 레이저를 쏘아대는 것 까지 우째 저래 똑 같노......’
가만 보니 눈 크기도 중학교에 다니는 4살 많은 누나와 비슷한데,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눈에서 보이는 신호까지 비슷하다.
거기에 나하고 아무 약속도 안 해놓고 어거지를 쓰는 것까지도......
물론 생긴 건 혜석이 훨씬 예쁘긴 하지만(내 눈에).
그러면서도 나는 ‘혜석이 나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소문날까봐’ 그녀를 쳐다보는 동시에 주변을 의식하느라 가슴은 뛰고 얼굴은 저절로 달아올라 안절부절 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 엄마의 배웅을 받으면서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기 시작하자 내 마음의 한 곳이 쿵! 내려앉는가 싶더니, 반면에 나도 모르게 어깨는 으쓱~ 올라가는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
‘추혜석. 쟈~ 진짜, 낼 기다맀나보네......! 가스나, 아직 친구가 아니라고 했으문서......우짜지?’
그렇게 난처함과 벅차서 가슴이 뛰는 동시에, 머릿속 역시 복잡해져 멍~한 상태로 내가 서있는 방향으로 걸어오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중에, 학생들 사이에서 갑자기 여자애 두 명이 튀어나오면서 혜석의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추혜석!”
“혜석아!”
놀라 쳐다보니 우리 반 여자 애들이었다.
내가 착하다고 생각했던 부반장과 피부도 곱고 예쁘장한 현정이란 아이였고, 어제 전학 온 혜석과 어울려 재잘 거리던 모습을 안보는 척 몰래 지켜볼 때 봤던 그 친구들이었다.(하룻 만에 절친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들의 등장에 혜석도 놀란 듯 했고, 나 역시 뭔가 서운한 듯 하면서도 다행이란 기분이 들며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내 눈길은 혜석과 같이 있었던 혜석 엄마를 쳐다봤고,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면서 웃으며 손짓을 해 주었다.
그냥 동생을 데리고 가도 된다는 그런 느낌이 전해지는.
혜석 역시 갑작스런 친구들의 등장에 깜짝 놀랐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선생님께 영훈이 항상 일곱 시 반이면 등교한다는 이야기에, 같이 등교를 하고 싶은 마음에 미리 나와서 기다렸다.
그런데 이 자식이 무려 20분이 지나서 나타났다. 그것도 동생까지 데리고.
그래선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짜증이 나서 창피를 무릎 쓰고 그 놈에서 못되게 굴면서 시위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친구들 덕분에 그런 짓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타난 여학생들에게 반갑고 고맙기도 해서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재잘거리는 중에 또 한 명이 더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그녀가 특히 관심있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근데, 쟈~ 영감, 아니 영훈이 아이가?”
“어? 민영훈이 맞네. 오늘은 동생하고 같이 등교하는가 보다.”
“그라니까. 늦었제. 쟈는 동생하고 같이 안 오는 날은 일곱 시 반에 딱 맞춰서 등교 한다 안하더나.”
“에고, 그라고 보몬 쟈도 아직 우리와 같은 국민학교 4학년 밖에 안되는 안(아이인)데, 진짜 고생이 많다. 그쟈?”
“맞다. 저 코찔찔이 오줌싸게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그런데, 또 점심 때 반 개 밖에 안주는 급식 빵까지 동생하고 나눠 먹는다 아이가?”
“맞다. 그래서 아가 만날 물배만 채우고......”
그런 친구들의 말에 혜석이 궁금한 듯 물었다.
“설마, 배가 고파서 물을 먹는다는 이야기야?”
“그래, 맞다. 민영훈 쟈들 옆집 사는 아(아이) 한테 들었는데, 집이 너무 가난해서 쌀밥은 전부 저 아픈 코찔찔이 한데만 주고 영훈이 쟈는 보리밥만, 그것도 한 번도 배부르게 못 먹는 것 같더라 그라더라.”
“집에가믄 갓난쟁이도 업고 다녀야 한다 카더라.”
“맞다. 양숙이가 쟈가 사는 7감을 지나가다가, 다른 아들은 다 노는데 영훈이 쟈만 막내둥이 알라를 포대기에 업고 부러운 듯이 멀뚱히 구경만 하는 걸 몇 번이나 봤다 그라대.”
혜석은 궁금한 얼굴로 친구들에게 물었다.
“영훈이네 엄마는 뭐하시는데?”
“작년까진 달비(머리카락) 팔러 다녔는데, 요샌 수녀들한테 수를 받아서 놓기 시작했다더라.”
“그럼 공부는 언제 해?”
그러자 부 반장하는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근데 그걸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영감 쟈는 표준전과가 없어서 그런지, 첨엔 숙제로 내준 낱말 뜻 풀이도 지 맘대로 풀어오고 산수도 해오긴 해 오는데 엉망으로 해와 혼도 많이 났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부터는 시험만 치면,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전부 90점이 넘는 거 안있나?”
“그래서 선생님이 쟈를 좋아한다 아이가. 청소 당번만 되몬 따로 남아라 해서 공부이야기를 한다더라.”
“그거, 맨날 말썽 부리서 그라는 거 아니었나?”
“그게 아이라, 영감, 아니 민영훈 쟈가 가끔씩 웅얼거리는 공자하고 맹자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그라는 거라 카던데?”
그런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혜석은 앞서 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 교문으로 들어가는 영훈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푸웃~”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로 배를 채운다는 애가 키는 구부정하게 커서 동생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모습이, 마치 오래 전 젊었을 때 한학을 공부하셨다던 큰 키와 마른 몸매의 아직도 정정하고 꼬장꼬장한 조선시대 선비 같은 모습의 외할아버지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선지 수업이 마친 쉬는 시간 중 화장실에 다녀오다 만난 혜석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느닷없이 나를 불렀다.
“민영훈.”
“......와?”
“너, 오늘 내가 3점에서 1점을 더 올리려다가 1점을 내려 주니까, 앞으로 잘 해, 알았어!”
“그게 먼데?”
“내 첫 번째 남자 친구가 되는 점수.”
나는 황당해서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녀를 보면서 물었다.
“푸핫, 뭐라꼬? 그람, 그기 3점 이었더나?”
그녀는 내 뒤로 걸어오는 친구를 의식한 듯 눈을 내려 깔면서 조용히 말하면서 지나갔다.
“다시 1점을 올리려다 봐준다. 앞으론 그렇게 웃지 마.”
나는 그런 그녀를 쳐다보면서 속으로 기분좋게 웃었다.
‘가스나가 웃기면서 생각보다 얌체도 아닌 것 같네. 거기다 웃을 때 보니 할배들이 이야기 한 미인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고 한, 눈이 크고 눈빛도 맑은데다가 이는 하얗고 가지런하고......명모호치라 그랬었제?’
첫댓글 재미가 없더라도 댓글을......
댓글 거지 배상 ㅜ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조방, 하야리아부대......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처음 듣게 된 지역 명칭이었네요^^
그만큼 주어졌던 환경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 같아요.
겨울 이면 바닷가 찬바람이 숭숭 둟고 들어오던 판자집.
새벽이면 깨어나서 연탄불 확인해야 했고, 어떤 날은 가스에 취해 온 식구들이 밖에 나와 쓰러지고 구역질하느라......
그런 세월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사랑은 꽃 피었고, 살기위해선 반드시 무언가를 했어야 했었죠.
그렇게......
입신양명을 위해 가난을 뒤로하고 서울로 입성했건만, 별명처럼 영감까지가 한계이자 운명이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지금은 홀애비가 되어 그때 그 시절을 이렇게나마 반추해 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