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분홍의 「리아트리스」감상 / 전해수
리아트리스
김분홍
공중에 그어놓은 밑줄은 밀애의 표지(標識)입니다 화려하고 보폭이 느린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죠
철봉은 풍경의 테두리, 나는 누구의 테두리인가
철봉에 매달려 철봉을 흠모하면 철봉은 사라지고 철봉에 매달려 철봉을 증오하면 철봉은 다가와 나의 손가락을 잘라요
미래는 밀애의 오독, 내가 철봉에 매달릴 때 당신은 뿌리 없는 외발이 전부죠
구름은 무거워지고 싶을 때 외발을 감춰요
철봉과 나는 수직이라서
쇄골에 접혔던 밤을 펼친 철봉은 내 몸을 휘감고, 나는 오늘밤도 철봉에 매달려요
구름이 피 묻은 손가락으로
하늘에 밑줄을 긋자 철봉은 상대를 바꿔가며 표지(表紙)뿐인 이불을 넘겨요 내 몸이 뜨거워질수록 철봉은 차갑게 식어가요
거절당할수록 쌓여가는 집착
펼쳐보고, 뒤집어보고, 돌려봐도, 당신은 퇴고할 수 없는 나의 밑줄
....................................................................................................................................................................................................................................
시「리아트리스」는 김분홍 시인의 관심이 소리의 ‘확산’과 ‘되돌아옴’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이른바 소리의 “밀애”방식을 한 차원 달리 표현하고 있다. 예컨대「리아트리스」에는 “철봉”이 등장하는데 “철봉”은 “밑줄”의 형상으로 공중에 떠 있는 “뿌리 없는 외발”의 “당신”과 교차된다. 결국 “당신”은 “나의 밑줄”이며, 나는 당신에게 “거절당할수록 쌓여가는 집착”을 (철봉이라는) 한 줄 밑줄로 “펼쳐보고, 뒤집어보고, 돌려 보”는 변형된 사랑의 형태를 재구성한다.
특히 “밀애”가 “미래”로 발음되면서 “오독”되는 과정을 제시하며 사랑의 다른 모습을 형상화해낸다. 그렇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바라보는 세상은 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철봉을 “공중에 그어놓은 밑줄”이라 여기며 이 밑줄은 “밀애의 표지(標識)”이며 “보폭이 느린 문장”이라 규정한다.
한편 철봉이 “상대를 바꿔가며 표지(表紙)뿐인 이불을 넘”긴다는 표현과 만나면서 “거절”과 “집착”이라는 사랑의 방식이 등장하는데, “철봉이 내 몸을 휘감고” “철봉에 매달”려 밀애의 표지(標識)인 밑줄에 집착하는 “나”의 (매달린) “손가락”은 철봉에 의해 잘려나간다. 시인은 사랑의 거절을, 그것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는데 “철봉에 매달려 철봉을 흠모하면 철봉은 사라지고 철봉에 매달려 철봉을 증오하면 철봉은 다가와 나의 손가락을 자”른다며 맹목적 사랑과 그 사랑의 결과를 드러낸다. 사랑할 때의 당신들은 그래서 영원히 “퇴고할 수 없는 나의 밑줄”이 되는 것이다.
전해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