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19세기는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며 지구상 곳곳을 군함을 파견하던 때이기도 하다. 식민지 쟁탈전은, 유럽 국가간의 전쟁을 스포츠로 생각했던 유럽왕들의 시선을 제 3 세계로 돌리게 했던 매력적인 것이었다. 유럽 각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넘쳐나는 식민지를 두고 서로 싸울 필요조차 없었다. 또, 그 많은 식민지를 한꺼번에 도둑질 할 능력(군대)을 가질 수도 없었기에, 각국은 협약에 의해 나누어 가지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19세기는 유럽 각국이 식민지 전쟁이외에 커다란 전쟁이 없었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19세기는 유럽의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유럽 각국의 얄팍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폐악이 각국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국가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19세기 식민지 쟁탈전에 미국과 일본이 끼여들지 못한 것은, 미국은 인디언으로부터 빼앗은 드넒은 신대륙을 관리하기도 벅찼던 것이다.
일본은 1860년대 메이지유신을 통해 유럽의 제국주의를 모방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인디언들을 완전히 몰아내면서, 일본은 겨우 메이지유신을 완성을 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제국주의 땅따먹기에 19세기가 끝날 즈음에 겨우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미국과 일본은 데프트 가쓰라 비밀협약을 통해 일본은 조선을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 하여 겨우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유럽은 제국주의 선두 주자였던 영국과 프랑스등의 나라들과 후발주자였던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 간의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산업화의 발전 단계에 따라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산업화가 제국주의를 통해 도둑질한 착취물의 양에 따라 각국의 경제력의 차이는 엄청나게 되었고 그것이 각국의 정치 질서를 변하게 하는 요인이 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독일과 이탈리아는 시장과 대의민주주의 두개를 때려잡는 파시즘으로 변질되게 되었고, 러시아가 마지막에 산업화의 대열에 뛰어들어 맑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영국이 아닌 농업국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원인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제국주의를 모방의 속도였던 것이다. 뒤늦게 깨달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광무황제로 등극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아마, 메이지유신 보다 40년이나 빨랐던 효명세자의 개혁이 성공했더라면 조선은 일본보다 먼저 제국주의 대열에 동참했을 지도 모르겠다.
효명세자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조선은 제대로 된 왕의 승계가 일어나지 못하여 어거지 족보로 만들어 힘 없는 왕족의 아이들을 양자로 받아들여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지만, 대비들의 수렴청정으로 외척이 득세하는 세도정치에 의해 왕권이 위축되고 고종에 이르러서 겨우 왕이 직접 정치를 하게 되었으나 고종과 대원군과 며느리의 엇박자에 의해 정국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일본은 기가 막힌 외교술을 발휘하여 영국을 등에 업고 청일 전쟁을 성공시키고 미국을 등에 업고 러일전쟁에 승리하여 조선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2 차 대전을 통하여 제국주의 국가들은 뼈 아픈 교훈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식량의 자급자족이었다. 공업화에 몰두하여 상품을 수출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농산물은 수입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이, 전쟁을 통하여 무역이 중단이 되자,
특히 농토가 작아 농산물을 수입하던 후발 산업주의 국가 독일과 이탈이아에서는 식료품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인플레가 일어나 원인은 물론 식료품의 품귀현상도 있었지만, 그 보다 무역의 결제 수단이었던 환율의 불균형 또한 한 몫을 했다.
또 하나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전쟁 후 인플레이션의 단서이기 했던 무역 불균형과 환율은 무엇인가 공통의 화폐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 브래튼우즈에 모인 각국은 드디어 달러를 세계 주축 통화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미국 주도하의 세계 경제로 재편 될 수 있던 이유였다.
또한, 세계 대전을 통해 농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제국주의 국가들은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 자급율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에 성공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공업화로 농업이 위축되었으나 그들의 식민지였던 제 3세계 국가들은 농업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전이 끝나고 식민지에서 독립을 하게 되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나라가 생겨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그런데, 기아의 속도는 선진 복지국가로 탈바꿈한 제국주의 국가 주도의 무역이 증가 속도와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선진국을 모방하여 뒤늦게 산업화에 성공하고 무역 전쟁에 뛰어든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뼈아프게 후회하는 농업 경시 정책을 본 받아 식량자급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