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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1일(주)
* 시작 기도
주님...
내 안에 주님께 드리는 마리아의 헌신과 섬김 그리고 사랑보다 이를 허비한다고 꾸짖는 제자들의 판단의 칼날이 더 많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고 하셨는데 나는 어찌 그리 주는 것에 인색하고 받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지요.
주님의 장사 곧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많지 않은데 제자들은 그 예수님과 함께 자신들의 욕망과 탐욕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숨긴 탐심의 야욕을 폭로하시는 주님 앞에서 다만 할 말을 잃고 맙니다.
두 손으로 그저 입을 가릴 뿐입니다.
숨겨진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약한 고리로 터져 나오는 욕망을 제어하여 오늘도 주님과 연합한 자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은 주님의 날입니다.
공동체로 모여 함께 하는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14:1-11
제목 : 복음의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마리아 되어...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 나의 묵상
유월절과 무교절이 되기 이틀 전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아무도 모르게 잡아 죽이려고 한다.
그들은 흉계를 짜면서 말하기를 명절 동안에는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킬 수 있으니 하지 말자고 하였다.
예수님은 베다니 마을에 있는 문둥병에 걸렸던 시몬의 집에서 음식을 드시고 계셨다.
한 여자가 매우 비싼 나드 향유 한 병을 가지고 와서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너는 왜 이 향유를 허비하느냐?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훨씬 더 좋지 않았겠느냐면서 그 여자를 호되게 꾸짖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꾸짖는 자들에게 너희는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고 하시면서 그는 내게 좋은 일을 하였으니 그를 괴롭히지 말고 가만 두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기 때문에 원하면 언제든지 너희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너희와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죽기 전에 내 장례를 위해서 내 몸에 향유를 부어 준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하는데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질 때, 이 여인이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갔다.
대제사장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러자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유월절을 맞아 인자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넘겨질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제일 먼저 당신의 제자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고,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넘기고 빌라도는 군병들에게 넘겨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하여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가야바의 공관에 모여서 모의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이번 명절 기간에는 하지 말자고 하였다.
그 시간 예수님은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셨다.
그 때 한 여인이 와서 식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자신의 향유 한 옥합을 부어드렸다.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화를 내면서 차라리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낫지, 왜 이렇게 낭비하느냐고 나무랐다.
300데나리온은 거의 일 년 연봉에 해당하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이렇게 적지 않은 돈을 그냥 한 순간에 예수님의 머리에 갖다 부어버리는 이 여인의 행동이 제자들 눈에는 어이없는 행동으로 보였다.
예수님의 구속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아랑곳하지 않는 제자들의 눈에는 분노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그들의 눈에 이 여인의 행동은 그래서 낭비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이 여인을 괴롭게 하지 마라. 그는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지만,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나의 장례를 위한 것이다.”
그러시면서 덧붙이시는 말씀이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이 선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동고동락하며 함께 지냈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는 깜깜이처럼 몰랐는데 이 여인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은 병행본문인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나사로와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로 나온다.
(요 12:1-3)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여기서도 여전히 마르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하여 향유 옥합을 깨트린다.
도대체 이 마리아는 누구인가?
그녀는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여인이었다.
(눅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여 염려하고 근심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며 듣고 있었다.
마르다는 이런 마리아가 마뜩찮아서, 나 혼자 일하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시지만 말고 마리아에게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고 예수님께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눅 10:41-42)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는 말은 원문상으로는 ‘오직 한 가지 일’, 즉 ‘only one thing’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이것저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한 가지 일, 즉 말씀을 듣는 일이 최고의 가치 있는 일임을 확인시켜 주고 계신다.
따라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는 육신적으로 주님과 항상 같이 생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주님을 만날 때면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였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행함으로써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과 항상 함께 동거하는 자들이었지만 주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적인 욕심, 즉 누가 큰가 하는 것들이나, 정치적 해방에 대한 마음들이 앞섰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는 그토록 위대한 신앙고백을 해 놓고서도 예수님께서 친히 고난당하고 죽을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니까 ‘당신이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되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꾸짖었다.
그런 베드로는 예수님께로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라는 꾸지람을 들은 것이다.
누가 주님의 마음과 뜻을 가장 잘 아는가?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자이다.
그런 자는 주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을 수 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처럼 말이다.
한편 제자들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그런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고 은 30개를 받는다.
병행본문인 요한복음 12장에서는 그를 일컬어 도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요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문제는 마리아가 향유를 부어드릴 때 그녀를 나무랐던 사람이 다름 아닌 가룟 유다였던 것이다.
(요 12:4-5)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그의 눈에는 돈만 보인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는 거창한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에게는 돈이다.
마리아의 향유를 보아도 돈이고,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것도 돈이다.
그는 예수님을 넘기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한다.
(마 26: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은 30개는 당시 노예 한 사람의 값어치이다.
가룟 유다는 돈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팔면서도 은 30개인 노예 한 사람의 값을 받은 것이다.
차라리 돈을 받지 않고 넘겼으면 그래도 마음이 이렇게까지는 찢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인 은 30개를 받고 팔아넘긴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아넘긴 자는 가룟 유다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나는 은 30개가 아니라 은 10개, 은 5개로도 팔아넘겼던 지극히 괴악한 죄인 중에 괴수였다.
가룟 유다가 은 30에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고,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넘기고, 빌라도는 군병들에게 넘기고 그 군병들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짜 십자가에 넘긴 자는 가룟 유다도 대제사장도 빌라도도 군병도 아닌 바로 나다(롬 4:25).
내 안에 이런 끔찍한 모습이 있다는 것은 곧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확증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거짓과 속임수, 음란과 정욕, 살인 등 마음으로 사람을 죽인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눈만 뜨면 죄지을 생각에 사로잡혀 죄의 세력은 나의 옛 사람을 지배하여 죄의 몸으로 하여금 죄의 수렁 속으로 몰고 갔다.
나는 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은 그저 지식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진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신 이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시다(행 2:23).
그분이 당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이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죽었던 나를 다시 살리시기 위하여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죽이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일련의 모든 역사적 사실은 그것으로 끝나지만, 나의 죄로 인하여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과 그런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진리는 복음이요 생명이다.
이 생명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은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다.
비록 주님께서 육신으로는 지금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시지만, 그의 영은 우리 안에 함께 하시고, 또한 예수님의 존재 자체이신 말씀이 나와 함께 하기에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가룟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처럼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만 있으면 아쉬울 것이 없기에 예수를 찾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주님과 교제하는 나는 사귐을 통한 영생을 빼앗길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보배이기 때문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을 영생으로 알았던 나에게 진정한 영생의 의미를 알려준 복음은 나에게 생명이다.
이 복음을 통하여 나의 신앙과 목회의 출구를 찾았고 지금은 혼미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의 뜻인 영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예전에 돈과 명예를 추구하며 살았던 나는 그 돈을 위하고 명예를 위하여 예수님을 얼마나 많이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그런 부분에 대하여 인지하지 못하고 죄의식도 없었습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결국 나는 영적 사망선고를 받아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살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참 평안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통하여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 날마다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갖는 참된 영생의 삶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죽기에만 합당한 이 죄인이요,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런 나를 살리시려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지금 그 사랑에 감격하고 이 진리의 복음 앞에 향유 옥합을 깨트립니다.
그 향유의 향기가 나만 아니라 내 주변에 풍겨나게 하시고 복음의 향기가 널리널리 퍼져가게 하소서.
나의 이 한 몸, 복음의 향유 옥합이 되어 입을 여는 순간마다 옥합을 깨트려서 복음의 향기를 풍기는 자 되게 하옵소서.
요즘 날씨는 구름이 잔뜩 낀 잿빛 하늘이나, 나의 마음은 주의 영광의 빛으로 맑음입니다.
주님의 품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이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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