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태춘이 부른 ‘북한강’이라는 노랫말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강물 속으로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가득 흘러가고······
지난 계절 유장하게 흐르던 강물은 어느 틈엔가 얼음으로 뒤덮여 백색의 신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얼음장 밑에서는 강물 속으로 또 강물이 쉼없이 흐르고 또 흐르고 있다. 그 강 옆에는 산이 있다.
왜 산에 사는가?
산에 왜 오르는가?
산에 무엇이 있는가?
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한 화두이다.
산은 저만치의 그 자리에 우뚝 솟아 인간 세상의 변화하는 것들을 물끄러미 굽어 본다. 그 산, 그 자연을 바라보며 인간은 삶의 원기를 얻고, 세상을 보는 지혜를 읽는다.
중국 당대(唐代)의 위대한 시인, 두보(杜甫)는 그의 시 『강정(江亭)』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물은 흘러도 마음은 바쁘지 않고(水流心不競),
구름 떠가니 생각조차 더뎌지네(雲在意俱遲).”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는 물,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랬거니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했던가. 바쁘게 흘러가는 그 물을 보면서도 마음은 한가로워 바쁘지 않다.
하늘 위에 유유히 떠가는 구름, 그 구름 바라보다 내 마음도 느긋해진다.
그래서인지 다산 정약용 선생도
수급부류월(水急不流月)이라고,
급한 물살도 물에 비친 달을 떠내려 보내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당대의 천재시인 이백(李白)은 또 어떠한가. 그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냐고 물으니(問余何事棲碧山),
웃으며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笑而不答心自閒).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가니(桃花流水杳然去),
다른 세상인데 인간이 아니로세(別有天地非人間).
이처럼 산은 언제나 인간사에 지친 나를 감싸안고 어루만져 준다.
옛사람들은 세월이 강처럼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산천이라고 했다.
가을이 깊어간다.
나는 올해 정월에 있었던
흰눈 흩뿌리는 겨울 산행에서의 일들을 생각한다.
때는 겨울, 설한풍 속에서도 청청한 잎을 지키는 잣나무 사잇길을 따라
가평 운악산(935.5m)을 오르고 또 오르고 있었다.
흘리는 땀방울 따위야 별로 대수롭지 않았지만
어제(금요일) 회사 회식자리에서 마신 몇방울의 술이 확실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갈수록 지친 몸이지만 눈썹바위를 지나 병풍바위를 바라보는 경계는
그야말로 한 폭의 산수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 다시 만경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하다.
그러나 미륵바위 근처에서 그만 발에서 쥐가 나버렸다.
짧은 슬랩 구간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후행자가 오더니
넓고 평편한 곳으로 인도해주고는 상세한 처방을 준다.
평소 쥐가 자주 나는 일이 다반사였어 늘 준비하고 산행을 하지만
이날은 어제의 회식 탓인지 몸상태가 별로 였던 것 같다.
할 수 없이 앉아서 무통 사혈침으로 엄지발가락 끝을 찔렀다.
피가 난 다리를 후행자께서 세워 안마를 해주고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한마디 인사를 건넸더니 그분 말씀이
“단독 산행은 외롭지만 한편 진지한 산행이고,
다치면 더욱 외로운 산행이 되지요.”한다. 맞는 말씀이다.
외로움은 외로운 자만이 안다.
조금 안정이 되자 산아래 골프장(썬힐)에서부터 눈이 퍼붓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가 앉은 산 정상부근을 뒤덮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긴 해야 하는데 몸이 꼼짝을 못한다.
할 수 없이 정상에서 먹어야 할 도시락을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어도 시린 속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눈발이 더욱 굵어지고
가평쪽 산들이 하나 둘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보온병을 꺼내 한모금 마신다.
그래도 외로움과 추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바람을 피하고자 일어서나 또다시 다리가 굳어진다.
땀이 식자 추위가 몰려온다. 가방을 열어 준비해간 자켓을 꺼낸다.
아내 몰래 구입한 고어텍스 자켓이다. 폴라텍 위에다 고어텍스 자켓을 껴입는다.
또 고어텍스 오버트라우져를 입는다. 원래 하나의 제품(zip in zip)이었던 것을
산행시 넣어두었던 것이다. 몸이 한결 따뜻하다.
아내 몰래 구입한 자켓이 이럴 때 성능을 발휘하다니 3개월 할부가 그저 고맙기까지
하다. 그러나 산 위에서의 눈발은 거세다 못해 반신불수(?)인 나를 휘감고 있다.
다시 배낭을 열어 최후로 매트리스를 꺼내 비박 때처럼 몸에 두른다.
눈발은여전하고 나는 진퇴(進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1시간 반 가량 보내니 다리가 움직일만하다.
다시 조심스럽게 철사다리(지금은 철계단)를 올라 정상에 다다른다.
눈내린 사방이 조용하고 어둡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하산을 서두른다.
남근석바위와 코끼리바위를 지나 현등사를 찾았다.
그리고 강화도 마니산 함허동천에서 면벽수도(面壁修道)한 함허대사의
부도탑에 들렀다. 눈내리는 부도탑에서 저문 저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대한제국의 충신이자 비원 옆에 동상이 있는 민영환 선생의 암각서의 글씨가
눈발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행도 고어텍스(GORE-TEX) 덕에 별탈없이
무사히 마쳤다.
매표소를 나와 천천히 두부집에 들린다.
술 한잔을 앞에 놓으니 온통 세상이 내 것 같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슬그머니 딴 생각이 난다.
한(漢)나라 때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에
지자요수(智者樂水)와 인자요산(仁者樂山)의 이유에 대해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대저 어진 자는 어째서 산을 좋아합니까?"
"산은 높으면서도 면면히 이어져 만민이 우러러 보는 바이다.
초목이 그 위에서 생장하고, 온갖 생물이 그 위에 서 있으며,
나는 새가 거기로 모여들고, 들짐승이 그곳에 깃들이며,
온갖 보배로운 것이 그곳에서 자라나고,
기이한 선비가 거기에 산다.
온갖 만물을 기르면서도 싫증내지 아니하고
사방에서 모두 취하여도 한정하지 않는다.
구름과 바람을 내어 천지 사이의 기운을 소통시켜
나라를 이룬다. 이것이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일찍이 노자(老子)도 『도덕경(道德經)』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으뜸 가는 선(善)을 물에 견준 일이 있다.
물은 언제나 낮고 더러운 곳에 처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므로, 노자는 물에서 ‘유약겸하(柔弱謙下)”의 교훈을
읽은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에서
무등산의 의연한 모습을 마치 거인위사(巨人偉士)가 말없이 웃지도 않으면서
조정에 앉아 있어, 비록 움직이는 자취는 볼 수 없어도 그 공화(功化)가 사물에
널리 미치는 것과 같다고 하며,
벼락과 번개, 구름과 비의 변화가 항상 산 허리에서 일어나 자욱히 아래로 향해 내려가지만, 산 위는 그대로 푸른 하늘일 뿐이니 그 산의 높음을 알 수 있겠다고 하였다.
이어 "가운데 봉우리의 정상에 서면 날 듯이 세상을 가볍게 보고
홀로 가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고락(苦樂)은 마음에 둘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나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며 산 위에서 느끼는
호연한 기상을 술회한 바 있다.
일찍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지은 중국 북송시대의 학자
사마광(司馬光)은 "등산에도 도가 있다.
천천히 걸으면 피곤하지 않고,
튼튼한 땅을 딛으면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산을 오르는 도는 곧 인생을 살아가는 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남명 조식(曺植) 선생은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 등산(登山)과 하산(下山)의 일을 두고 이렇게 적었다.
당초 위쪽으로 오를 적에는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기가 어렵더니,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올 때에는 단지 발만 들어도 몸이 저절로 흘러 내려가는
형국이었다. 이것이 어찌 선(善)을 좇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惡)을 좇는 것은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종선여등(從善如登), 종악여붕(從惡如崩)’의 말을
새삼 환기함으로써 산을 오르내림에 있어서도 자기성찰의 고삐를 놓지 않는
진지한 삶의 자세와 만나게 된다.
또 함께 산을 오른 동행이 말을 타고 혼자 채찍을 휘둘러 먼저 정상에 올라
부채질을 하고 있자, 한 걸음 한 걸음 비오듯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오른 조식 선생은
"그대는 말 탄 기세에 의지하여 나아갈 줄만 알고 그칠 줄은 모르니,
훗날 능히 의로움에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남보다 앞서게 될 것이다.
참으로 좋지 않은가?"라며 은연 중에 나무라는 대목은 이들의 산수유기(山水遊記)가
단지 거나한 유산(遊山)의 흥취만을 예찬코자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산이 좋아 산에 오른 일이 햇수로 십수년 근자에 이르러
종종 다리에 쥐가 나니 너무 정상을 향해서만 내닫는 나의 등산 자세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 가평 운악산에서 다리에 쥐가 나고서야 산을 오르내림에 있어서도
자기성찰의 고삐를 놓지 않는 진지한 삶의 자세를 옛글에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