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강론>
(2024. 9. 22.)(루카 9,23-26)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카 9,23ㄴ-26).”
1) 신앙생활은 ‘신앙인의 생활’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고, 예수님께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동시에 그 믿음을 생활로(온 삶으로) 증언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신앙을 증언하는 생활”입니다.
순교는 목숨을 바쳐서 자신의 신앙이 진리라는 것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는 신앙의 완성이기도 하고,
신앙생활의 완성이기도 하고, 증언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신앙인이 아니고, 믿음이 없으면 그 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사랑’은 믿음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희망’은 믿음의 방향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사랑을 너무 강조하다가 믿음을 뒤로 밀어내는 이가 있는데,
신앙인의 사랑은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을 조심해야 합니다.
‘내세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의 죽음은 결코 순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믿음 없이 사랑만으로 죽는 일이 더러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 그 죽음을 고귀한 희생이라고
부르더라도, 우리 교회가 말하는 순교는 아닙니다.
그런데 순교는 신앙인이 신앙을 증언하는 일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지만, 순교가 신앙생활의 목적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궁극 목적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고,
순교는 그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마태 10,2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달아나라는 뜻이 아니라,
박해에 굴복하지 말고 신앙생활을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않고, 박해자들이 죽이려고 하지
않는데도 죽기를 자청하는 것은 순교가 아니라 자살입니다.
사실 순교는 인간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순교를 은총이며 영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박해 때에 순교한 분들도 많지만, 박해를 피해서
깊은 산 속 같은 곳으로 가서 교우촌을 만들고,
신앙생활을 계속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 교회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 말씀에서 “누구든지”는 아무도 제외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내 뒤를 따라오려면”은 “내가 주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버리고”는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을
아까워하지 말고 모두 버리라는 뜻입니다.
“날마다”는 “끊임없이”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는 “각자 자신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받아들이고”인데,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는 사람마다
그 성격과 내용과 크기가 다릅니다.
박해와 순교가 십자가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육신의 목숨에만
집착하는 사람”이고, “목숨을 잃을 것이고”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입니다.
“나 때문에”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입니다.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는
“영원한 생명만을 추구하는 사람만 그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면, ‘온 세상’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은 “누구든지
나를 믿지 않고,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은
사람들은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때에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3) 주님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항상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결과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심판과 멸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기 전에,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일입니다.
주님은 ‘잃은 양’ 하나를 찾기 위해서 애를 쓰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주님을 버리고 떠난 양은 그 사랑을
거부하는 자이고, 그가 받게 되는 것은 멸망뿐입니다.
‘주님의 사랑’만 믿고 방심하고 자만하는 것은,
그 사랑을 배반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그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서 더욱더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언제 종말과 재림이 이루어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니 항상 ‘지금’이 중요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주님을 믿고,
주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그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서 더욱더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