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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콩 달 콩 교단 반세기 그 29(여교사 추행 사건의 전말)
토요일 출근길에 극장 앞을 지나다 보니 선전간판에 그려진 반가운 얼굴이 나를 따라 오며 말을 걸었다. 죤 왜인과 리차드 위드마크. 붓끝이 거칠어 제 얼굴이 한참 아니었으나 그런 데로 흉내는 내었다. 서부영화 ‘알라모’ 선전간판이었다. 둘은 씽긋이 웃으며 쌍권총을 뽑아 든 채 나를 겨누고 계속 따라오며 협박했다. 올 거지? 안 오면 쏴 버린다! 그래, 그래, 쏘지 마. 퇴근길에 들리 마. 할리우드 키드였고, 특히 서부영화 마니아였던 나는 퇴근길에 곧장 극장으로 달려갔다. 몇 번 본 영화였지만 라스트신이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극장 앞에 오니 반 아이 한 놈이 얼쩡거렸다. 아마 돈은 없을 터이고, 영화는 보고 싶고, 머리 속으로 통밥을 굴리다 나를 보고는 아이고 뜨거워라, 몸을 숨긴 채 눈깔만 내놓고 내 거동을 빠끔히 살피고 있었다. 나는 그놈 나이 때의 내가 생각이 나, 손가락으로 불렀다. 허나 놈은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혼비백산 삼십육계를 놓았다.
어린 시절 나는 저녁때만 되면 동네 극장 앞에서 살았다. 그러다 생판 모르지만 마음씨 좋아 보이는 어른이 극장표를 끊으면 슬쩍 가서 손을 잡고 씩 웃으며 쳐다본다. 그러면 대체로 3가지 상황이 전개 된다.
<상황 1> 야야, 니 누꼬? 늰데 나메 손을 뿌뜨노? 하고, 기겁을 하면 이 건 볼장 다 본거다. 일찌감치 손을 털고 돌아서야 한다.
<상황 2> 아이고 야야, 니 내를 아나? 어리둥절해하면, 어른 따라 가면 공짜거든요 하고, 손가락으로 어른의 손등을 살짝 노크하면 둔한 안동 양반들도 허, 오늘 아 하나 준네. 하고, 어깨까지 감싸 주어 싸잡아 들어갔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상황 3> 인생의 간을 아는 어른은 역시 고수였다. 손을 턱 잡으면 나보다 더 능청스럽게, 니 어데 갔드노? 어여 드가자. 내가 도리어 민망할 정도다. 극장에 들어가서는 헤어지기 전에 내 뒤통수에 꿀밤을 안기며 한마디 잊지 않는다. 공부나 쪼깨 하소!
극장 안은 시계 진(풍랑이 심해 배가 출어하지 못하는) 탓인지 뱃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같이 긴 고무장화에 생선 내장이 말라붙은, 검게 물들인 야전잠바를 걸치고는 요란스럽게 껌을 짝짝 씹고들 있었다. 그러다 남이야 개의치 않고 저희들끼리 쌍욕을 여상스레 내뱉으며 끼길 거렸다. 이제 그들은 오후의 무료한 시간을 영화로 죽이고, 밤이면 바다에서 고기를 낚듯이 어느 선술집에서 여인을 낚으리라. 어쩌면 그 중에서 운 좋은 한 둘은 풋사랑을 만나 농축된 정액을 분수처럼 쏟아 내겠지. 하기야 샛바람 지는 날은 누구 말마따나 공치는 날이었고, 그들에게는 몸을 푸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자리를 얻어걸릴 요행은 일찌감치 접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 용케도 스크린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위치를 확보하였다. 선 자리지만 이 정도면 하고 나는 만족했다. 초여름이라 극장 안은 생선 비린내 투성이였다. 그래도 나는 그 내음이 좋았다. 뱃사람들에게서 풍겨 오는 짭조름한 냄새에 내 콧구멍은 도리어 벌름벌름 거려졌다. 그 당시 나는 바다에 흠뻑 빠져 있던 때라 거의 열려있는 뱃사람들의 거친 얼굴에 정이 끌려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이 풍기는 비린 냄새도 어쩌면 구수하게 느껴졌다.
장내 불이 꺼지고 영사기가 ‘차르르-’ 돌아갔다. 영사기의 불빛은 뱃사람들의 짙은 담배 연기로 긴 깔때기 모양을 하며 스크린을 비추었다. 시장 바닥 같던 장내가 일순 숨을 멈추었다. 그러나 스크린은 낡은 필름 탓인지 빗물이 스크린 양 옆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곳곳에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그래도 뱃사람들은 불평 없이 숨을 죽이는데 고비마다 필름이 끊어져 암흑천지가 되고는 했다. 그러면 거친 뱃사람들은 손가락을 입속으로 쑤셔 넣어 홱홱 휘파람을 불거나 야유를 퍼부었고, 곳곳에서 담배를 피워 무느라 성냥불이 여기저기 피어올라 그들의 검게 타오른 얼굴들을 오버랩 시켰다. 그러다 영사기가 다시 돌아가면 언제냐 싶게 금방 조용해졌다. 영화에 빠져 한참 침을 삼키는데 환한 빛을 토하며 출입구 휘장이 시도 때도 없이 벌컥벌컥 열리고는
김00 기관장님, 선주가 찾습니다-.
박00씨, 면회요- 한다. 그러면 관람석 어디선가,
오징어 배 타러 갔다-.
통씨에 똥 누러 갔다-.
순간 장내는 폭소가 터지며 웃음바다가 되고는 했다. 그렇게 영화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데 또 휘장이 벌컥 열렸다.
동부국민학교 고제홍 선생님, 급한 일로 면회요-.
나는 화들짝 놀라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다. 내 이름이 이런 상황에서 불릴 줄이야.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에 부랴부랴 출입구로 향했다. 거기, 아까 그놈이 기다리다 다짜고짜 내 옷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선생님요, 유 선생님이 깡패들 한데 뚜들겨 맞니더.
유 선생은 학교의 유일한 처녀 교사였다. 내가 동부교에 근무한 다음해에 교대를 졸업하고 부임하였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으나 흰 피부에 늘씬한 몸매를 갖고 있었다. 항상 밝고 상냥한 태도는 선생님 뿐 아니라 아이들, 그리고 학부형 사이에서도 인기 몰이를 하였다.
그 당시 체육주임이던 나는 중간 놀이 주창자였다. 교감을 설득해 교과 일정표에 넣었는데 무얼 한다? 망설이는 나에게 유 선생이 귀띔을 했다.
리듬 체조 해요.
리듬체조? 나는 귀에 설었으나 유 선생이 무용에 취미가 있다고 자청했다. 4월부터 중간놀이 시간에 전교생을 모아 놓고 유 선생이 리듬 체조를 지도하였다. 아이들에게는 생소하였고 중간 중간 남학생과 여학생이 손잡는 장면이 나오면 아이들은 1학년짜리도 몸을 배배 꼬았다. 그러면 유 선생은 안타까워 안달을 부렸고 나는 막대기로 구령대를 쾅쾅 치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면 아이들은 눈치를 살살 보다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가는 막대기를 매개체로 하여 서로 쥐고는 했다. 유 선생은 진이 빠져 할딱거리고 나는 선생님들께 협조해 달라고 통사정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앞에서 관리해야 할 선생님들이 중간 놀이 시간만 되면 슬슬 빠져 나가 아이들 뒤쪽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로 갔다. 햇볕 탓이구나, 나는 야속한 마음이 들었으나 대부분이 선배 분들이라 속으로 고추장만 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술 자석에서 아리송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간 놀이 시간에 아이들 뒤쪽에 서면 경치가 그리 좋단다. 경치가 좋다? 다음 날 나도 그들처럼 뒤쪽에 가 보았다.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까만 아이들 뒤통수가 바둑판의 흑 돌처럼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이상해서 선생님들의 눈이 가는 곳을 따라가 보았다. 아뿔싸! 나는 경악했다. 그들은 구령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리듬체조 시범을 보이고 있는 유 선생의 몸매를 엉큼하게 즐기고 있지 않는가. 어쩌면 그들은 한발 더 나가 그녀의 입은 옷을 하나하나 벗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여자는 여자를 볼 때 그 입은 옷을 보지만 남자는 여자를 볼 때 그 알몸을 본다고 했든가. 그러고 보니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하늘하늘한 무용복을 입고 있어 움직일 때마다 팔등신의 굴곡이 그대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노출이 적나라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특히 여성을 상징하는 부위가 더욱 도드라졌다.
나는 그날 퇴근 후 술자리에서 선배들이지만 화를 내었다. 이건 아니다. 동료 직원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음부터는 눈치가 보여선지 뒤쪽으로 가는 선생님은 없었다.
어쨌든 젊고 발랄한 유 선생의 이미지는 구룡포 총각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아이를 따라 뛰었다. 극장에서 50m 정도 떨어진 바닷가 담 벽 주위에 사람 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자, 거기 담벼락에 유 선생이 옹크리고 않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아귀에게 능욕당한 초식동물처럼 그녀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왈칵 보듬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유 선생님! 왜 이래요?
내 목소리에 그녀가 얼굴을 들었다. 온 얼굴에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되어 비참하게 이지러져 처참했다. 평소 희고 투명하던 왼쪽 볼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술은 터져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선혈이 유난히 선명한, 찢어 진 흰 블라우스로 젖가슴을 한사코 가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 그녀는 그제야 소리 내어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백주대로에서 이런 일이? 더구나 어린 여 선생을…. 나는 눈이 확 까뒤집어졌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나는 두 주먹을 불끈 모아 쥐고 둘러 선 사람 누구랄 거 없이 돌아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중에는 학부형들도 있었고 학생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후였다.
알아보이 우짜노. 순사들도 괄지 못허는 늠들인데….
마, 똥개한데 물리 뿌랬다 생각하소.
사람들은 한마디씩 뱉고는 혀를 끌끌 차며 흩어져 갔다. 나는 암담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올랐으나 우선은 유 선생을 안돈시키는 일이 급했다. 나는 남방을 벗어 그녀에게 입히고 자취방까지 데려다 주었다.
자취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동짓날 개구락지처럼 널브러지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창밖 포구에는 무심한 호미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었다.
그날, 유 선생은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고자 시장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했다.
극장을 막 지나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봉산 수숫대 같이 키가 멀쩡한 사내와 깍짓동 같은 사내 둘이 길을 가로 막아섰다. 그녀는 처음에는 무심히 비켜서 걸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막아섰다. 그러길 몇 번, 그녀는 불길한 낌새를 느끼고 돌아서려했다. 그러자 그중에 깍짓동 같은 놈이 다짜고짜 그녀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억세게 움켜잡고 담벼락으로 밀어 붙였다.
왜, 왜 이래요?
니가 그 잘난 유 선생이가?
그, 그런데요…? 유 선생은 사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바동댔다. 허나 사내의 손아귀는 흡사 독수리의 발톱처럼 그녀의 양 어깨를 움켜쥐고 있어 요동 칠 수가 없었다.
이거 놓고 말하죠! 유 선생은 싸늘하게 말하며 사내를 꼬나보았다.
우리 뽀뽀 한번하자. 사내가 니글니글하게 웃으며 막무가내로 주둥이를 내밀었다.
철석! 유 선생은 온 힘을 다해 사내의 따귀를 때렸다. 그리고 내깔겼다. 뭐 이런 인간이 있어?
쉬-발 년이! 사내는 유 선생의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가격하였다. 그리고 블라우스 깃을 잡고는 북 찢어 내렸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박속같은 속살이 왈칵 드러나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폭력으로 인한 고통보다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함에 절망했다고 했다.
유 선생을 추행하고 폭력을 휘두른 당사자는 구룡포 바닥에서 악명 높은 조직 폭력배 갈매기파 두목 강욱이었다. 그 당시에 이미 조직화하여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단합대회를 열어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한번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이었는데 축항에서 강욱의 명에 따라 수 십 명이 얼음 바다에 입수하여 극한 훈련을 하는 것도 보았다. 그들은 배가 입항하면 어획량의 일정 부분을 커미션으로 요구하거나 외지 뱃사람들의 등을 쳤다. 그러다 심사가 틀리면 회칼로 사람을 뜬다고 했다. 구룡포 사람들도 쉬쉬하며 그들을 피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도 모르는 척 했다. 그 시대는 법보다 주먹이 앞서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용서 할 수 없었다. 그는 용서 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것이다.
첫댓글 교단 반세기 이야기가 아직도 남았나?
글이 술술 풀려나오는 모양이네.
언제 읽어도 재미가 있군.
나도 어린 시절 극장 앞에 가끔 가서 공짜 구경한적이 있네.
마지막 종영 5분전 문을 개방하는 틈에 들어가 보았던 추억.
자네의 기막힌 기지가 나는 그때 왜 없었을까? 후회가 되네.
오랫만에 보니 저루 밤갑군
다음회가 기다려 지는군
정의의 사나이 고제홍과 폭력배 두목과의 대결장면(?)이 벌어질
다음 글이 기다려 지는군.
어디 갔었길래 이제사 보이노???.....
다음편 갈매기파 두목 강욱, 정의의 싸나이 무무와
신나느 결투 장면을 기다려본다... ㅡ義峰ㅡ
고재홍님 주먹이 세다 해도 갈매기파 두목에게 터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입네다~
무무님! 지난번 시키시는대로 찻수저로 우로 5번 좌로 3번을 이제껏 젓고 있어도
올 것이라던 그 님이 아니오시니더....ㅋㅋㅋ
단편 아니, 장편. 액션, 애정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