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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연중 제18주일) 탈출 16,2-4.12-15; 에페 4,17.20-24; 요한 6,24-35
3년 전 이곳에 처음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고민 끝에 강론을 쓰게 된 첫 이유는 저부터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 보고자였습니다. 그러기에 첫 글의 주제가 바로 ‘거리둠에 동의하기’였습니다. 한발 물러서서 주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하느님을 나만의 하느님으로 만들려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시각을 버리고, 내가 가진 경험을 버리고, 한발 더 물러서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내 생각 속에서 한계 지어진 주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 원고를 준비하기 위해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 거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소위 말하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라는 주님의 말씀에 마음이 오랫동안 머뭅니다. 빵만 바라보고 달려가면 주님의 참 모습을 제대로 만날 수 없습니다. 빵에서 한발 물러서야지 빵 너머에 계시는 주님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빵 그 속에 계시는 주님을 얻어 만날 수 있게 됩니다.
1독서로 제시된 탈출기는 이 의미를 더욱 깊게 묵상하게끔 이끌어 줍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고기와 빵을 배불리 먹던 때를 떠올리며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합니다. 제가 조금 놀랍게 느낀 것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기억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민족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양식을 내려주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 양식을 단순히 그들의 만족을 위해 주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말씀하시지요.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탈출 16,4) 고기와 만나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 너머에 계시는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1독서와 복음 모두 우리에게 일러주는 바는 같습니다. 빵에만 머무르지 말고 빵 너머에 계시는 그리고 빵 속에 계시는 주님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이미지 출처 = photostockeditor.com)
여러 의미로 거리를 두어야 할 시기입니다. 그 거리는 우리를 외롭게 하겠지만 외로움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거리를 둠으로써 더 새로운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앙적으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요즘 시기에 잘 어울리는 성가 한 곡을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강훈 바오로 형제님의 곡 ‘간절한 맘으로’입니다. 잊지 싶지 않은 추억을 놓아야 할 때가 많고, 그려 놓은 많은 미래를 두고 떠나야 할 때가 많은 시기입니다. 지금 물러서는 한 걸음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새로움으로 다가서기를 함께 기도해 봅니다.
가슴 가득 간절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의 기도 하늘에 닿을까 소리 없이 외쳐 보네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을 놓아 버려야 할 때
나보다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려 할 때
온 삶을 다한 노력들이 탄식 속에 묻힐 때
나는 기도하네 간절한 맘으로
그려 놓은 많은 미래를 두고 떠나야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눌 때
내 삶을 향한 희망들을 꿈꾸고 있을 때
나는 기도하네 간절한 맘으로
문을 두드리는 햇살에 눈을 떴을 때
조그만 어깨에 따스한 온기 전해올 때
바람 부는 언덕에서 당신을 느낄 때
별을 바라보며 감사한 맘으로
기도합니다
오늘로 유상우 신부의 '삶으로 말씀읽기' 연재를 마칩니다. 3년간 강론을 집필해 주신 유상우 신부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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