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질이란?
자기 자신이나 자신과 관계된 사물 따위에 대해
남에게 좋은 것이라고 드러내어 뽐내는 짓이고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언행을 함으로써
모욕감ㆍ혐오감ㆍ증오감을 주면서 기만하는 행동이다.
보통 뽐내다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거나
좋은 것을 우쭐거리며 보라는 듯이 자랑하다는 뜻이다.
요즈음 세상은 1인 왕국이다.
얼마든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거나 과시하거나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왕이 많은 충성된 신하를 거느리고 싶어 하듯
사람들도 자신의 독자이자
팬 또는 충성스러운 팔로우를 거느리고 싶어 한다.
가장 잘 나온 사진 가장 근사한 장면
가장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올려놓는다.
심하게 말하자면 자랑질에 점점 중독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그 자랑질의 종류이다.
크게 두 가지의 경우로 나뉘는데
하나는 자신이나 자기의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잘난 점만 알린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변질된 자랑질이다.
나만 봐달라는 자랑질이며 눈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다.
자랑질에는 상대방 무시가 뒤따른다.
자랑질이 차별을 부르고 이미지를 왜곡시키며
누군가의 좌절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자랑질은 스스로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것이고
자랑질이 쌓이면 우월적 지위가 체질화된다.
자랑질에 세뇌된 사람은 열등적 지위를 갖게 되고
자랑질이 무시를 낳고 무시가 소외와 차별을 낳아
불공정과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든 그 말을 듣는 사람이든
무엇보다 우리가 경계할 일은 무시하지도 말 것이며
무시를 당연히 받아들이지도 말아야 한다.
자기 자랑의 심리에는 기본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의 태도가 깔려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인정받음을 통해서
이 같은 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하지만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애정, 사랑의 결핍에 기인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자기 자랑의 출발은
이 애정결핍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엄연한 의미에서의 자기 자랑 자기 과시는
자신의 결핍된 애정 자아의 모습을 은폐하려는
부패된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뭐든
있다가 자랑이지 없다는 자랑이 될 수 없다.
람보르기니 있다는 자랑이지만 없다는 자랑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 없다가 그 사람의 자유로운 영혼을 입증하고
또 기술 문명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행위로 비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없다는 놈은 저 잘난 멋에 사는 나르시시스트이거나
뭔가 센척하려는 게 분명하다.
자랑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타인으로 하여금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고
동시에 본인의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시기나 질투를 사 인간관계를
해칠 수 있으니 양날의 검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자랑이라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면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객관적으로 자랑이란 것도
자기가 이룬 업적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능하지만
자기가 이룬 업적도 아닌 것
예를 들어 부모/자식의 성과,
가족/친척/친구의 성과에 대해 자랑하는 것은 꼴불견이라는 평이 많다.
자기가 속 빈 깡통이란 것을 보여주는 꼴값이다.
꼴값 떤다거나 꼴불견이란 말은
겉모양이나 하는 짓이 비위에 거슬리거나
우스워서 차마 볼 수가 없음이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인간의 기본 도리로
인·의·예·지·신으로 국민의 기본 윤리를 삼았던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의 자부심도 예의를 지켜
인간의 도리를 행하자는 덕성교육과 인성교육의 한 지표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무례는 용납되지 않는다.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범법 행위는 아니라 해도
사람들의 기피대상이 되어
인간관계가 깨지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나만 좋으면 된다는 태도는
남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용납될 수 없다.
한편으로, 남의 자랑을 듣는 입장에서는
질투 혹은 시기를 느끼더라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그러한 감정이 과하지 않게
적절한 부러움으로 가라앉히면 삶의 좋은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