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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Giulio Del Torre / Arthur Maria Rabenalt 울리오 델 토/
아르루트 마리아 라베날트
출연 : Ferruccio Tagliavini(Aldo Morani)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알도 모라니:홀아비 테너가수)
Sabine Bethmann(Elisabeth) 자비네 베스만 (엘리자베스:독일 여성)
Erich Winn(Rudy Rudolf) 에리치 윈(루디:엘리자베스의 바람둥이 연인)
Massimo Giuliani(Dino Federico) 마찌모 지울라니 (디노:테너 가수아들)
Music by Willy Mattes(윌리 매트)
제작년도 : 1959년 이탈리아, 서독 합작)
상영시간 : 103분
[이하, 가져온 글]
옥같은 클래식이 흐르는 멜로드라마!
영화 <물망초(勿忘草)>(Vento Di Primavera)는 1935년의 동명 타이틀 영화를 리메이크(remake)한 영화다.
1963년대 당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물망초"는 1959년 서독과 이탈리아가 서로 합작해 만든 영화로 '아르루트 마리아 라베날트(Arthur Maria Rabenalt)'와 '지울리오 델 토레(Giulio Del Torre)'가 메가폰을 잡았고,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Ferruccio Tagliavini)'와 서독의 금발 미녀배우 '자비네 베스만(Sabine Bethmann)'이 각각 남녀 주연을 맡은 멜로영화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명테너 '탈라아비니'가 오페라 가수라는 주인공을 맡아 극중에서 주옥같은 클래식 노래를 부르는 관계로 음악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린 아들만 데리고 사는 테너가수 '알도 모라니(탈리아비니)'가 어린 아들 '디노(마찌모 지울라니)'와 우연히 알게된 독일여자 '엘리자베스(자비네 베트만)'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하지만 이 영화는 어린 소년과 친 엄마같은 '엘리자베스'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언덕에서 '알도 모라니'가 아들과 '엘리자베스'를 앞에 두고 노래하는 장면은 잊지못할 추억의 명장면이다.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한 '물망초(Non Ti Scordar Di Me:논 띠 스콜다르 디 메)'는 유명한 이태리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Turna a Surriento)'를 작곡한 작곡가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Ernesto De Curtis 1895-1937. 이태리 나폴리)가 1935년에 '도메니코 푸르노'라는 이탈리아 시인의 시(詩)에 곡을 붙였고,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가 처음으로 불렀다.
'질리'도 이 노래로 1935년도 영화 '물망초'에 역시 주역인 오페라가수로 출연하였다. 이태리 출신의 세계적인 성악가로 내한공연도 가진바 있는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는 극중에서 <나를 잊지 말아요:non ti scordar di me> 와 <돌아오라 소렌토: torna a surriento>, <볼라레: volare>, <슈베르트의 자장가: wiegenlied>, <마리아 마리: maria mari>, <남몰래 흐르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 등 수많은 노래를 부른다.
클래식음악과 멜로드라마를 절묘하게 접목시킨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1963년과 1973년 두번이나 수입 상영되었으며, 1973년 개봉때는 명보극장과 허리우드 2개의 대형개봉관에서 상영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가 부른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너무도 유명하여 실제 <사랑의 묘약> 공연중에 이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부른 후 관객의 너무도 엄청난 반응으로 14번의 앙콜을 받은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하니 그의 노래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 3대 테너 중의 하나로 손꼽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가 이 노래를 1986년 독일의 뮌헨올림픽홀에서 불러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명곡중의 명곡이다.
이후에도 세계적인 성악가들을 통해 계속 불리어지고 있는 "물망초"는 그 전설에 깃든 애절한 이야기처럼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사랑의>남몰래>마리아>슈베르트의>볼라레:>돌아오라>나를>물망초(勿忘草)>
♥ 물망초 영화 스토리 ♥
이태리를 동경하여 로마에 있는 지사로 근무를 신청하여 이태리행 비행기에 오른 독일여성 '엘리자베스(Sabine Bethmann)'는 우연히 옆자리에 타고 있는 어린 '디노(Massimo Giuliani)'를 만나게된다.
디노의 아버지는 당시 인기 절정의 스타인 테너 '알도 모라니(F.Tagliavini)'로서, 혼자서 아들을 키우고 있는 홀아비이다.
로마공항에 마중나온 직장 상사인 바람둥이 '루디(Erich Winn)'는 이미 애인이 있으나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숙소를 마련해 주고 시내구경을 시켜주는 등 많은 친절을 베풀며 유혹해 결국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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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루디'의 옛 애인이 엘리자베스에게 루디의 여성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상처받은 엘리자베스는 루디를 떠나고 의상을 담당하는 회사에 일하게 된다. 그러다가 같이 사는 모델 친구를 통해 '알도 모라니'의 공연을 보게 된다.
'알도'가 부르는 '물망초'에 감동한 나머지 '루디'와의 아팠던 추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다.
숙소로 돌아와 호텔 복도에서 혼자 놀고있는 디노와 우연히 마주치자 디노는 무척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따라 알도 모라니의 호텔 방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알도'를 만난다.
디노를 통하여 서로 알게된 두사람은 서로 가까워졌고, 아들의 도움으로 알도는 프로포즈를 한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그를 단지 선생님으로서의 존경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아직 루디와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세계 연주 여행에 동행해 줄것을 요청하는등 그의 열정어린 노래와 끈질긴 설득으로 청혼을 받아 드린다. 그리고는 함께 세계 연주 여행을 시작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알도 모라니의 공연을 TV중계로 지켜보던 루디가 TV에 비추어진 에리자베스를 발견하곤 곧장 공연장으로 달려나가 에리자베스를 만난다.
" 당신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헤어진 것은 친구가 꾸민 일이다. 나는 지금도 당신과의 일을 잊지 않고 혼자이며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 지금도 늦지 않다. 다시 시작하자"
엘리자베스는 예전에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이 다시금 열렬히 구애하자 두 남자 사이에서 번민한다.
그러나 루디에게 돌아갈 마음을 굳히고 알도의 공연이 있는 날 루디와 타국으로 함께 떠나기로 약속하는데 우연히 전화가 혼선이 되는 바람에 알도가 두사람의 일을 알게 된다.
그 두사람의 애틋한 사연을 알고 보니 가는 여자를 막을 수도 없었다. 자기의 공연시간에 에리자베스가 떠날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좌절과 체념 속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연주가 시작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에리자베스를 바라보며 안도감 속에 공연을 시작한다.
한 곡, 두 곡 유명한 아리아를 부를 때마다 청중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다. 연주회가 중반을 넘어 설 무렵,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 난다.
떠나가는 여인을 바라 보며 절망감에 비통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 영화의 테마곡인 'Non Ti Scordar Di Me(날 잊지 말아요)'를 노래하는 알도에게 그런 사연은 모르는 관중들은 더욱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노래가 끝나자 청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한다.
화려한 무대 조명은 꺼지고 알도는 힘 없이 집으로 돌아 온다. 엄마 어디 갔느냐며 그녀를 찾는 아이를 달래며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부를 때
아들이 눈을 번쩍 뜨며 '엄마!'하고 소리친다.
물망초 꽃
Non Ti Scordar Di Me(물망초)
Sung By / Ferruccio Tagliavini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Partirono le rondini
dal mio paese freddo e senza sole,
cercando primavere di viole
nidi d'amore e di felicita
la mia piccola rondine parti,
Senza lasciarmi un bacio,
senza un addio parti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e legata a te;
io t'amo sempre piu
nel sogno mio rimani tu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e legata a te
c'e sempre un nido nel mio cuor per te
non ti scordar di me
헤일 수 없는 추위의 땅에서
꽃피는 봄을 따라
제비는 내 곁을 떠나갔네
사랑과 행복의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네
키스도 없이, 작별 인사도 없이
나의 사랑, 작은 제비는 내 곁을 떠났네.
부디 나를 잊지 마세요
내 맘에 맺힌 그대여
밤마다 꿈속에 그대의 얼굴이 떠오르네
나를 잊지 마세요
내 맘에 맺히 그대요
언제나 그대를 그리워하네
나를 잊지 마세요.
Non Ti Scordar Di Me -Carreras & Domingo 날 잊지 말아줘 (이태리어, 영한 번역 자막 Italian, English & Korean caption)
"Non ti scordar di me" - Ernesto de Curtis (Luciano Pavarotti)
이태리의 성악가 탈리아비니(Ferruccio Tagliavini : 1913 - 1995)가 부릅니다.
Ferruccio Tagliavini Sings "Non ti scordar di me"
영화 '물망초'로 유명했던 레지에로 테너. 녹아 내릴 듯한 아름다운 미성과 가성에 가까운 도취적인 음색을 들려 주었던 레지에로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는 1913년 이탈리아의 레지오 아밀리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음악가가 되기보다는 안정된 기술자가 되기를 더 원했다. 결국 탈리아비니는 파르마 음악원까지 졸업하고 나서도 아버지의 간청에 다시 공부하여 전기기사의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는 1938년 피렌체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같은 해 플로렌스의 Comunale에서 <라 보엠>의 루돌포 역으로 데뷔했다. 이 공연은 성공을 거두어 '스키파의 재래'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이후 39년에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 41년에 제노바의 카를로 펠리체 극장, 41년에 로마 오페라 극장, 42년에 라 스칼라 극장으로 입성하는 등 그의 성공은 화려했다.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이 무렵 그가 장기로 했던 레퍼토리는 베르디의 <리골레토>, 마스카니의 <친구 후리츠>, 칠레아의 <아를르의 여인>,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람메르모르의 루치아>,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등 이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이탈리아의 테너'로서 전선을 다니며 병사들을 위해 노래했으며, 라디오에서도 그의 노래를 방송해 연합군들까지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는 46년에 남미로 건너가 크게 성공했다.
남미의 승리를 발판으로 47년에 드디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데뷔, <라 보엠>으로 성공하고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인기는 승승장구하여 당시의 인기 소프라노 피아 레첼로와 결혼했다. 50년대에는 최고의 기량과 명성을 떨쳤고 영화 <물망초>등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칼라스와의 파트너쉽으로 스테파노가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다소 밀려나기 시작했다.
델 모나코, 베르곤지, 코렐리 등도 그의 인기를 뺏어갔지만 무엇보다도 그와 비슷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스테파노의 성공은 그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구나 탈리아비니는 레퍼토리의 폭도 그들보다 좁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탈리아비니는 고수한 우아하고 정교한 창법으로
개성있는 좋은 연주를 남겼다.
그의 성량은 큰 편이 아니었으나 팽팽한 포르테와 피아니시모가 대조적이며 맑고 투명한 고음을 들려 주었다. 특히 그는 가성에 가까운 발성을 통해 도취에 가까운 교묘한 감정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스키파의 뒤를 이은 가장 뛰어난 레지에로의 테너였다. 그는 70년대 이후 활동을 그만두고 칩거했으며, 오래 살았지만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83년에 있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100주년 기념식에 초대받고서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운 음색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담배를 많이 피워대던 애연가였다. 결국 1995년에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