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먼 거리가 버스로 두 정거장?
장거리 도보 답사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어디를 걸어가는가?’ 다.
그래서 ‘해남에서 서울까지 우리나라 옛길인 삼남대로를 걷는다.’거나
‘태백에서 김포까지 한강을 걷는다.‘고 대답하면
다시 묻는다. ‘누가 돈 주느냐?’ “누가 돈을 주겠는가? 대답하면,
‘돈 안주면 걷지 마소‘ 그게 그 사람이 나에게 건네는 진지한 충고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직결되고,
그래서 모두가 세경을 안주면 일을 안 하는 머슴 근성이 몸에 배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2004년 봄에 해남에서 서울까지
삼남대로를 걸을 때, 수원의 지지대 고개를 넘어서
의왕시의 통미 마을을 지나다가다 나무숲처럼 들어선 아파트 숲에서
<대동지지>에 나타난 삼남대로 길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시내버스 토큰을 파는 간이 휴게소에서
‘오전초등학교로 가는 길이 어디냐?’ 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휴게소 주인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먼 거리를 걸어간단 말이요?”
나는 그 길이 얼마나 멀까 생각하고 물었다.
“얼마나 되지요?” “두 정거장이나 되는 데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
“내가 해남에서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한다면 기절하겠군.”
하고 아무 말 없이 길을 재촉했던 적이 있다.
국어사전에 먼 거리가 ‘시내버스 두 정거장이라고 어느 때부터 실렸는지,
그런 세월이 불과 십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거의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간에 아무데도 걸어 다니려 하지 않는다. 500m 떨어진 직장까지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을 알고 있다. 400m떨어진 대학 체육관에서 러닝머신에 올라타기 위하여 차를 몰고 가서는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없다고 심각하게 열을 내는 여자를 알고 있다.
언젠가 그녀에게, 차라리 체육관까지 걸어가서 러닝머신을 5분 정도 덜 타는 게 어떠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내 말에 가시가 돋쳐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서 “러닝머신에는 내게 맞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죠.” 라고 말했다.
“그건 내 거리의 속도를 길고하고, 나는 난이도에 따라 그걸 조정할 수 있어요.”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맥을 걸어서 종주한 빌 브라이스의 <나를 부르는 숲>에 실린 글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저마다 걷는 것이 좋은 사람이 있고, 실내에서 러닝머신이 훨씬 더 유익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리겠는가?
그의 글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km는 머나먼 길이고, 2km는 상당한 길이다. 10km 는 엄청나며, 50km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당신이나, 당신의 얼마 안 되는 동료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지구 넓이에 대한 그런 계측은 당신만의 작은 비밀이다.
그리고 삶은 굉장히 단순하다. 시간의 의미는 멈췄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너무도 훌륭하지 않은가. 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고, 필요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우리 땅 걷기에 처음 나온 도반들의 하루를 걷고 난 소감에
난 생 처음 오래, 많은 길을 걸었다는 말,
그 말은 대체로 맞다, 살아 온 나날 중, 어디서, 무엇 때문에, 무슨 일로
하루 20에서 30km, 어떤 땐 35, 40km를 걷는다는 말인가?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키츠와 내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20분 걸을 때마다 우리는 미국인이 평균 1주일에 걷는 것보다 더 걷는 셈이 된다. 집 바깥을 나서기만 하면, 거리가 얼마 되든, 무슨 목적으로 나가든 간에 외출의 93프로는 차에 의존한다., 요즘 미국인의 평균 보행거리-어떤 종류의 보행이든 간에, 즉 차에서 사무실, 사무실에서 차, 슈퍼마켓과 쇼핑몰 안을 걸어 다니는 것도 포함해서- 는 1주일에 2, 24km, 하루에 300m만 된다. 웃기는 일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다고 말하면서
걷고 또 걷는 다는 말인가?
걸어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나는 것도 아닌데,
하면서도 걷다가 보면 중독이 생겨 걷고 또 걷는 걷기의 매력,
그런 매력에 빠졌던 사람들이 자꾸 걷기에서 이탈하고 있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책과 길에 중독된 사람,
길이 없어도, 길을 잃어도 길을 걷고 또 걸으며,
그렇게 살다가 가야하지 않겠는가?
2018년 1월 11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