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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국민학교 4학년 6반 담임 박민서는, 교무실 일이 좀 늦게 끝나 자신을 기다릴 두 아이들을 만나려고 급히 교실로 돌아오던 중, 복도의 교실 창문에 여자아이 두 명이 몰래 숨어서 교실 안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아이들에게 왜 그러느냐 물으려다가, 문득 생각나는 바가 떠올라 조용히 발걸음을 죽였다.
그리곤 곧 창문 뒤에서 몰래 교실 안을 엿보면서 속삭이는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닌, 무슨 말인지 알아 듣겠더나?”
“몰라? 니는 영감 쟈가 이상한 말을 하면 알아듣나?”
“화지부채라 캤나?”
“몰라? 우쨌든 대게(엄청나게) 이쁘단 그런 뜻인 갑다. 저 서울내기 가시나 한 봐라. 얼마나 좋으몬 저렇게 꽈배기처럼 몸을 배배 꼬겠노, 그자?”
“그래, 맞다.”
“금방(방금 전) 영감이 ’니처럼......‘이라 한 그 말을 듣자 말자 저 지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그라모, 찐숙이 말처럼 저 아 둘이 연애하는 거 맞는갑다.”
그러던 중에 한 여자애가 친구를 보면서 입을 삐쭉이면서 말했다.
“우쨌든 저 가시나, 저거 완전 불여시다. 그자?”
“맞다. 지가 영훈이 하고 언제부터 친해졌다고.......그저께 전학 온 아가, 생긴 것도 여시가 둔갑한 거처럼 뽀얀데다 해 다니는 것도 야리꾸리하고......”
“근데 순아, 낸 영감 쟈가 여자하고 말을 저래 많이 하는 거 처음 본다. 안 글나?”
“맞다. 3학년 때도 여자아들하고 말 한 마디 하는 거 못봤었다 아이가.”
“저번엔(지난 번) 우리 반에서 젤 이쁜 정인이가 산수문제 물어 봐도, 얼굴만 벌개져서 말은 한 마디 안하고 그냥 연습장에 풀어만 주더라 아이가.”
“그라니까, 불야시제. 영감 쟈도 서울아 라서 홀딱 넘어 간 길끼다. 문디 새끼.”
“그래도...... 추혜석이 쟈, 우야튼 가시나가 이쁘긴 이쁘다......”
“흥, 내도 서울에서만 살았으믄...... 오...... 옴매야!!!“
여학생 하나가 입을 삐쭉거리면서 친구에게 불만을 털어 놓으려다, 언제 다가왔는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선생님을 발견하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녀와 이야기를 하던 다른 여자애 역시 담임인 박민서 선생님의 등장에 놀랐고.
”와?.......아이고, 옴마야! 샘님?“
박민서 선생님은 그런 두 아이를 향해 살짝 차가운 음성으로 이야기 했다.
”그렇게 샘이 나면 너희들도 진작부터 영훈이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그랬어. 짝을 정할 때는 하나같이 친구인 영훈이가 무슨 병균이라도 되는 것처럼 싫다 해놓고, 막상 좋은 친구가 생기니까 질투가 나서 그렇게 뒷담화를 하는 거야?“
”아, 아임니더. 그게 아이라......“
”진짜, 그냥 남자하고 여자하고 둘이 남았길래 궁금해서......그, 그만 가 보께예......“
”아, 안녕히 계시소.......“
여학생 두 명이 선생님께 급히 인사를 하며 복도를 달려갈 때에야, 나와 혜석은 인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혜석은 그때까지 광대승천 하듯 올라간 입 꼬리를 내릴 줄을 몰랐다.
그걸 보면서 선생님이 웃으며 물었다.
“추혜석.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보네? 선생님이 교무실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표정이 어두워 보였던 것 같더니......”
“아, 아닌데요. 선생님, 제가 언제......”
선생님은 혜석의 변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물었다.
“민영훈. 너 또 교실에서 싸움질을 할 거야?”
“죄송합니더. 다시는 안 그랄게예.”
내가 고개를 팍 숙이자, 선생님은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시다가 피식~ 웃으신 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영훈이 너, 일부러 큰 소리까지 내면서 신종호의 손을 꺾어 밀친 이유가 따로 있지?”
“아입니더. 그냥......종호가 와서 연애질 한다고 놀려가꼬예......”
“거짓말!”
내 변명에 선생님은 단호히 거짓말로 단정하시곤, 웃는 얼굴로 혜석을 힐끗 쳐다보시면서 확신하듯 말했다.
“여자 친구가 곤경에 빠져있는 걸 보고, 다른 아이들 시선을 돌리려고 그랬던 거 잖아!”
그런 선생님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혜석의 놀란 눈빛이 나를 향했고, 나는 무안해져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추려 애쓰면서 부인하려고 노력했다.
“우, 우데예,..... 진(저는) 그냥.......”
“괜찮아. 그랬다고 해서 선생님이 널 혼내려는 건 아니란 걸 너도 잘 알잖아. 선생님은 그냥 네 진실한 마음을 알고파서 묻는 거야.”
선생님은 말을 하면서 마치 혜석에게 동의를 구하듯 쳐다보면서 웃었고, 혜석은 정말 알고 싶다는 듯 눈을 더욱 반짝이며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 나도 모르게 고사를 인용하면서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그냥, 추혜석 쟈가 나를 위하다 곤궁에 빠졌는데, 지가(내가) 그냥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진 않습니꺼. 물론 혜석이하고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지는 그저 의지여비(義之與比)에 따랐을 뿐 입니더.”
내 대답에 선생님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내가 했던 말을 따라하며 혜석을 쳐다보았고, 그녀 역시 궁금한 표정을 짓다가 곧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 고개를 돌려 입을 막았다.
“의지여비?”
“키익......”
“하아~ 제길.......”
나는 또 내가 불식간에 유학자 할배들이 쓰던 용어를 사용했음에 한숨을 내 쉬었고, 두 여자는 서로 쳐다보더니 마침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까르르르~
그렇게 한 참을 웃은 후, 선생님은 손등으로 눈물을 살짝살짝 찍어내면서 물었다.
“무슨 뜻이야? 그 의지.......”
“의지여비예?”
“응, 그래. 뭔가 깊은 의미가 담긴 말인 것 같아서......좀 설명해 줄래?”
그런 선생 옆에서 혜석 역시 고개를 빼들고 나를 빤히 쳐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야기했다.
“그기예...... 성현의 말씀 중에 대개 군자라하몬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은 바른 것이고 어떤 것은 그르다며 섣불리 판단해서 하지 말고, 올바른 생각인 의(義)에 따라서 해야 한 다는 말 입니더.”
“오~ 그래서......”
“예. 지는 단지 아들(친구들) 시선만 잠시 끌어볼라고 신종호를 잠깐 이용했다가 나중에 사과 할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장영복이하고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된깁니더.”
그런 내 이야기에 선생님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와 혜석을 번갈아 보더니 내게 물으셨다.
“그러니까 혜석이가 운주를 몰아세운 것도, 영훈이 네가 신종호를 밀치고 장영복이와 싸운 것 모두 그 의지......뭔가를 따른 것이다는 이야기네. 맞아?”
“의지여비예.”
“응, 그래. 그 의지여비 때문이었던 거야?”
“아니예. 혜석이 일은 그냥 헤프닝일 뿐이고예, 지는 비록 의지여비에 따랐다고 해도, 우옛든 반 아들이 모두 보는데서 싸움까지 했으니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더.”
선생님은 내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헤프닝? 그런 말도 알아? 한자도 아닌 영어를......”
“어깨동무 같은 잡지에 자주 나오는 말입니더. 그라고 할배들이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하면서, 자고로 군자, 아니 학생은 배움에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다양하게 보고 익혀야 한다고 했었어예.”
내 말에 선생님과 혜석은 다시 한 번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나는 또 선생님의 곤란한 질문이 나올까 얼른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라니까 혜석이는 낼 변호해 주다가 그냥 우연찮게 시끄럽게 된 것이고예, 문제의 원인은 지하고(저와) 김운주 사이의 다툼 때문에 생긴 겁니더. 그러니까 벌은 지 혼자 받아도 충분하니까 혜석이는 고마 용서해 주이소. 전학 온지 며칠 되도 않았잖습니꺼.”
그런 내 말에 선생님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시더니 혜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추혜석. 맞아?”
“아뇨. 영훈인 김운주가 욕을 했지만 못들은 척 했어요. 그런데도 걔가 자꾸 나쁜 말을 하기에 제가 그러지 마라고......”
혜석은 당차게 선생님께 자기가 일으킨 사건을 설명하다가, 선생님의 미묘하게 웃는 표정에 아차! 당했다하는 눈빛이 되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선생님은 마침내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고.
“그러니까 눈앞에서 자꾸 남자친구를 욕해서 참지를 못했다 이거네?”
“꺄악! 어, 언.......합!”
“쓰~ 너......”
혜석은 비명과 함께 선생님께 원망스런 표정으로 무슨 말을 꺼내려다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닫았다. 그러면서 짐짓 화가는 듯 눈을 부릎뜬 선생님의 눈을 피하면서 입술을 삐쭉거리면서 혼잣말(그러나 다 들어 달라 듯)을 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여자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순간적으로만 헷갈렸지만, 곧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하느라 잊어버렸다.(태생이 그런 미묘한 부분에 둔감했었던 것 같다)
그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듯 선생님은 혜석에게 했던 질문을 내게도 했다.
“그럼 어쨋든 영훈이 네가 기사도를 발휘한 건, 순전히 여자친구를 위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겠네?”
그런 선생님의 말에 뭔가 함정이 숨어 있는 느낌에 약간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직 여자친구는 아닌데예.”
“.......?”
선생님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혜석을 살짝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직 2점을 더 따야 남자친구로 인정 해준다고 했어예.”
“2점. 그건 또 뭔데?”
“야(예). 그게 뭐냐몬.......!”
순간, 나는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하다 입을 닫았다.
어느새 그녀가 자그마한 주먹을 쥐고 내게 입을 닫으라는 귀여운 협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짓던 선생님은 힐끗 혜석을 쳐다보았고, 그녀는 어느새 선생님의 눈을 피해 새초롬하게 교실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선생님은 무슨 생각이 났다는 듯 교무실에서 가지고 오신 책과 출석부 사이에서 주섬주섬 원고지를 꺼내 우리들에게 나눠주면서 말했다.
“좋아, 더 이상 야단은 치지 않을게. 대신 너희 둘은 반성문을 대신해서 이 원고지 서른 장에 맞춰 글짓기를 해 와. 제목은 ‘친구’로 하고 아무렇게나 써오면 혼 날 테니까 정성들여서, 알았어!”
“우리만 예?”
“예, 선생님.”
나는 갑작스런 글짓기를 해오란 말에 놀라 반문했으나, 혜석은 의외로 담담히 받아 들였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면서 원고지를 열장 정도 더 건네주시면서 말했다.
“아~ 영훈이 너는 글쓰기하다 실수하고나서 원고지 아낀다고 지웠다가 다시 쓰지 말고, 이 새 원고지에 깨끗하게 써 가지고 와. 다음 주 토요일까지. 알았지!”
“예? 내일까지가 아니라......?”
“그래, 특별히 시간을 넉넉하게 주는 거니까 정성들여서 써와야한다.”
“야......”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은 들었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집에 가도 되예?”
“그래.”
선생님께 인사를 넙죽하고 혜석과 같이 교실 문을 나왔다.
같이 걸으려니 뭔가 낯설고 민망한 느낌이 들어 거리를 살짝 두려고 떨어지려다, 문득 그녀가 서운해 한다는 느낌이 들어 그냥 걸었다.
그렇게 복도를 어느 정도 걸었다 싶은 중에 그녀와 서로 눈이 마주쳤다.
머릿속에 뭔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 중에 불현 듯 그녀가 기습하듯 내게 말했다.
“너 바보 맞지?”
나는 멈칫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쳐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눈으로만 물으며.
그녀는 살짝 화가난 눈빛으로 내게 책망하듯 말했다.
“왜 우리 둘만의 비밀을 선생님께 말하는 거니?”
그제야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그녀의 독특한 어미발음인 ‘~니?’의 마치 노래처럼 들리는 독특한 뉘앙스를 음미한 다음, 시간을 조금 보낸 후 그녀에게 물었다.
“그게 비밀이었더나? 니 그런 말은 내게 안했다 아이가?”
“어휴~ 바보. 그런 걸 꼭 말을 해야 알아들어? 척하면 딱 인거 몰라?”
나는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녀의 기세에 슬그머니 말을 얼버무렸다.
“미안......낸 진짜 몰랐다.”
그렇게 건물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녀는 눈에 장난기 잔뜩 담긴 눈으로 콧방귀를 뀌더니 내게 남은 점수를 이야기 해 주며 앞서 걸었다.
“흥, 오늘 멋져서 1점을 내려 주려고 했는데, 선생님께 우리 비밀을 폭로하는 바람에 다시 2점 그대로 두기로 했어.”
나는 나를 앞서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건물을 나서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러자 마치 매뉴얼처럼 고향 할배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훈아, 나중에 어른이 돼서 장개(장가) 갈 때가 되몬, 항상 여자를 조심해야 한데이. 그렇다고 공맹의 자구에만 천착하는 고루하고 꽉 막힌 꽁생원 맨키로 여자를 돌처럼 보란 말은 아이다. 니가 내 여자라고 마음을 굳히기 전까지 반드시 불가근불가원을 지켜야 한단 말인기라.’
“허허, 그래. 옛 성현도 그렇게 말 안 했더나. 자고로 여자란 가까이서 잘 해주면 막 대해뿔고 그래서 멀리하몬 서운해서 찔찔 짠다믄서,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해도 안 된다고......”
그렇지만, 그런 할배들의 불가근불가원을 따르기엔 혜석이 너무 예뻤다.
마치, 항우장사도 홀딱 넘어가 버렸다는 우미인처럼.
어느덧 운동장 가운데 서서 건물을 벗어나는 나를 돌아보는, 지는 햇살을 가득안고 뾰롱퉁하니 심술이 난 듯 나를 돌아보는 저렇게 아름다운 그녀를, 내가 어떻게 한 발 떨어져서 지켜 보야야만 한 단 말인가!
할배들이 하나같이 이런 여자를 만나라며 그렇게 칭찬했던, 그 예쁘고 잘 웃으며 화려하지만 사치스럽게 보이지 않는 화이부치의 주인공인 그녀를!
첫댓글 의지여비에 따른 삶을 살아오려고 노력했나요?
때로는 타협을 했어야 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도 시험은 계속......
의지여비 ㅡ 군자라하몬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은 바른 것이고 어떤 것은 그르다며 섣불리 판단해서 하지 말고, 올바른 생각인 의(義)에 따라서 해야 한 다는 말 입니더.”
소설 속 주인공들을 통해서 의지여비도 배우고.
그 뜻도 알게되고..여러가지로 유익합니다. ~^^
회사를 그만 둘 때 선배님이 그럽디다.
니가 술만 좀 마셨더래도, 아니 술자리에 같이만 했었더라도......
잠깐 흔들릴 뻔 했었죠.
근데 지금은 언제든 모른체 할 수 있습니다^^
@거병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의로운 일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