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짝이면 충분하다.
오랜 옛날 자기의 위엄을 나타내기 좋아하는 왕은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들 때문에 발이 아팠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내가 다니는 모든 길에 소가죽을 깔아라." 하고 명령을 내렸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라 안의 소를 다 잡은들 모든 길에 소 가죽을 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한 현자(賢者)가 왕 앞에 나아가
"왕 이시여! 온 땅을 소가죽으로 덮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폐하의 발을 소 가죽으로 잘 싸고 다니면 먼지도 묻지 않을 것이고 상처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무릎을 쳤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구두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당신이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니는 모든 길에 소가죽을 깔았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탄한 길은 세상에 없다.
단지 그들은 자기 마음에 꼭 맞는 구두를 만드는 지혜를 가졌을 뿐이다.
내 세상은 왜 이럴까? 어째서 나만 불행한 것일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세상의 소를 다 잡아 길을 가죽으로 덮겠다는 생각과 같다.
세상은 당신의 영역이 아니다. 당신의 영역은 당신의 마음 뿐이다.
그런 당신의 행복은 당신 마음에 꼭 맞는 구두 한 짝이면 충분하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겠다.
한 소년이 있었다.
화창한 날에 기분 좋게 언덕을 올라가던 소년은 길에 튀어나와 있던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이런 돌덩이가 왜 사람들 다니는 길에 있지?”
소년은 삽으로 돌 부리를 캐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파헤칠수록 점점 돌은 더 커져 갔다.
땅 위에 보이는 돌은 큰 바위의 일부였던 것이다.
소년은 놀랐지만 결심했다.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파내야겠어”
소년은 분한 마음 반, 정의감 반으로 거대한 돌을 계속 팠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결국 삽을 놓고 말았다.
안 되겠다. 포기하자. 소년은 파 놓았던 흙으로 돌이 있던 자리를 덮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년이 걸려 넘어지려 했던 돌부리도 흙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소년은 혼자 중얼거렸다.
“왜 처음부터 이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 나를 넘어지게 했던 내 인생의 돌 부리는 누구에게 나 있다.
바로 그 내 인생의 돌 부리가 누구이든 파헤치지 말고 덮어 주라.
그것이 더 쉽고 온전한 방법이다.
덮어주는 삶이야말로 정말 아름다운 삶이다.
**카톡에서 받은 글 옮김**
첫댓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마음은 남의 수치를 가려주려고 나의 수치를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남의 허물을 보기 즐거워하고 오래 기억하고 들춰내려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이고, 남의 허물을 안 보려고 하고 금방 잊어버리고 덮어주려는 마음은 행복한 마음입니다.
허물을 보는 눈이 커지면 사물을 보는 눈이 작아집니다. 남의 허물을 찾으려는 안간힘은 나의 허물을 감추려는 안간힘입니다. 남의 허물을 잡았다고 해서 그가 패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허물을 잡는 과정에서 내가 패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남의 허물을 덮어준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그의 승리를 보면서 내가 승리하게 됩니다.
남의 허점을 보려고 현미경을 들이대고 확대해석할수록 현재 내가 패배자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해 안 되는 일에도 항상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남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남 탓하기’는 사람됨(integrity)을 잃어버리는 길이고, ‘허물 덮어주기’는 사람됨을 되찾는 길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져도 배우고 익히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공자의 말씀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하였지요.
평생 교육이란 말도 접합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하였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배움에는 끝이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받고 받아도 더 받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