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다혁이 다니는 교회에서 '한일코이노니아'를 하였습니다.
작년에 한국교회 청소년들이 일본을 방문하여 여러 일본가정에서 흩어져 홈스테이 하였고,
올해는 다른 가정과 우리집에서 일본청소년이 흩어져 홈스테이를 하며
교회수련회를 합한 5박6일 동안 '주 안에 우린 하나'란 주제로 수련회를 하였습니다.
이틀간의 홈스테이 기간 동안,
하루는 동네 공원 분수대에서 뛰어놀다 슬리퍼까지 떨어졌는가 하면,
또 하루는 명동으로 쇼핑을 가서 밤12시에 돌아와서 제게 혼나기까지 하였던,
헤어지는 오늘은 일어나자 마자,
교회로 달려가 두 시간 동안 눈물로 배웅하기까지 얼마나 정성을 쏟았던지요.
아마 또 이번 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가,
얼깃설깃한 영어문장으로 한동안 한국 일본간 메일교류의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단 이틀간의 홈스테이를 위하여, 지은과 다은의 쏟은 정성이 눈물겹습니다.
교회의 홈스테이 신청란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이불을 빨고 널고, 또 널고 청소하고 또 청소하고...
돌아가신 장남순 어머니를 다시 저희집에 모신다 한들
이보다 더한 정성이 없지 싶어, 어머니께 참으로 죄송하였습니다.
시간과 요일도 잊고, 일본친구들에게 푹 빠져서 보낸 오늘,
마침내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지은과 다은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평소 사람들앞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다은이는, 밥도 먹지 않고 교회로 달려가고,
사람들과 뛰어난 사교력을 자랑하는 지은이는, 이부자리를 지키고 미적거립니다.
"아이들이 떠나가요. 메이가 울어요 ㅠ."
다은이의 울먹이는 문자에, 저희집에 홈스테이 한 일본학생을 배웅하기 위해 교회로 갔습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 사요나라" 나는 일본어로 안으며 인사하고,
일본학생은 "고맙습니다" 한국어로 인사하니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어머니께 배운 일본어가, 뜻하지 않은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곧 버스가 떠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지은에게 전화하니 핸드폰 전원을 아예 꺼놓았습니다.
여러번 시도끝에, 통화한 내용이 "헤어지는 게 너무 슬퍼서 가고 싶지 않아요."...
"지은이가 친구들을 열심히 사랑하였으니 괜찮아,
아낌없이 사랑하였으니 헤어짐으로 마무리를 잘 해야지.
겁내지 말고... 마음 아프다고 가는 모습도 안 보면 나중에 후회될텐데."
그래도 울먹이며 가는 모습 보고싶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지은이가 어제밤부터 생각하고 결정내린 것 같으니, 존중하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존중하고 기다려주셨듯이...
돌아오는 길, 다은이가 말합니다.
작년에 일본에 같이 갔던 교회언니가 이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회만 오면 헤어졌던 일본친구가 보고싶어 멍하니 있더니,
자꾸 생각나서 교회오기 싫다고 했답니다.
그 짧은 시간이, 그 학생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에 깊이 자리매김 되었나 싶습니다.
어머니의 고향 밀양에서, 어릴적 함께 뛰어놀았던 일본친구를
일본에 가서라도 꼭 만나고 싶다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다시금 이해가 되어,
또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당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때때로 잠결에 그 사실을 실감할 때면,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
사랑하는 것에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것은,
가슴 아픈 헤어짐을 염두에 둔 까닭은 아닌지요.
아낌없이 사랑하였으니,
헤어짐에 아쉬움이 없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쉬움이 없으니 후회함도 없을 거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사랑한 만큼 그리움이 남겠지만,
그 그리움이 삶을 이어주는 엑기스라고 내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이토록 진한 것인 줄 몰랐기에
그렇게 감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몇 년,
아직도 그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어, 어머니 묘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전화번호 462 - 7520.
대답없는 수화기에 귀를 대고 전화버튼을 누르기도 합니다.
임종의 꺼져가는, 끊어질 듯 꺼져가는 갸날픈 마지막 한 숨 조차,
"사..랑..해..' 사랑 고백으로 유언을 남기셨던 장남순 어머니.
어머니...그 사랑을 잊을 수 없으니,
새로운 사랑으로 도저히 채울 수 없어,
한 동안 사람을 끊고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에 서투른 것은,
지은이보다 오히려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우심을 구하라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 도우며 살라고,
어머니의 몸은 떠났으나, 천국에서 나를 기다린다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한 가지도 쓸만하거든 필요한 이웃에게 나눠주라"하시니
정리는 하였으나, 아직도 버리지 못한 옷가지가 있고.
"작은 방에 널어놓은 벌레먹은 쌀은 새에게 주어라"하신 대로,
어머니 잘 가시는 쌈지공원에, 천둥번개 비맞으며 비둘기에게 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옥돌이 옥경언니의 권고로 어머니의 남겨진 통장잔액으로,
휴학중이던 사회복지대학원을 복학하였습니다.
또박또박 작은 글씨로 줄줄이 찍혀있던 그 통장의 적은 금액들,
쓰지 않고 모아두신 의료보호 1종 수급비는,
사회복지와 어머니를 그렇게 묶었고,
저의 삶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
그렇게도 싫어하는 8월 10일이 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처음 8월 10일은,
첫 직장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접고
대학원휴학 때 만났던, 사회복지정보원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사회복지정보원의 더생농 학습여행의 기운과,
오지사회사업 섬사회사업과 섬진강 트레킹에 참여하여 잘 넘어간 것 같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섬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러 간다 하였을 때,
아버지께선 여자가 집을 떠난다 하여 성경책을 불태우셨지요.
북한 고향에서 훈장을 하셨다던 한영석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성록 아버지는 여자는 무릅꿇고 조신하게... 조선시대 여성으로 저를 훈육하셨고,
그와 반대로 어머니는 아버지의 방패막이가 되어,
제가 결정한 것을 존중하고 기다려주셨습니다.
그 기억에, 섬활을 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8월 10일은 농활을 하였습니다.
농활에서 수 많은 독거노인들을 만났고, 또 다른 어머니들의 외로움을 보았습니다.
어떤 8월 즈음엔 아마 학습여행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어머니의 죽음 앞에,
헤어질 준비를 하지 못하였기에 사람들속에 숨으려 하였습니다.
지금 8월을 보내는 마음은... 완벽하진 않지만, 참 편안합니다.
사회복지정보원의 자연주의사회사업은,
어머니의 죽음앞에 도저히 살 자신이 없었던 저를, 점점 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과는 조금 다르지만, 오히려 그것이 저를 자유롭게 합니다.
내가 무조건 참고,
상대우선적인 배려만 하지 않고,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살림 살이'가 있는 복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즐거움으로 상대방도 즐거운 복지.
해결하고 고침받는 문제위주가 아닌,
강점을 보고 세워주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바탕적 힘을 기르는 복지.
자연에 위배하여 억지로 되게 하는 것이 아닌,
풀과 나무. 태양과 바람. 사람과 순리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알아가고 관계하는, 더불어 사는 공생적 복지를 배웠습니다.
그 배움 덕분에 복지적인 일로 만나는 다문화가정의 가족들과 조선족동포를
건강하게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왜 이렇게 잊지못할까"
어제 KTX동반석에 둘러앉아 지다혁에게 물었습니다.
"그만큼 많이 사랑하였으니까, 못 잊으시는거예요" 다은이가 답을 주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친구삼아 재미나게 이야기 나눴던 것 처럼,
지금은 제가 그 재미를 맘껏 누리고 있으니, 참 좋습니다.
다은이의 말이 지지받 듯 든든합니다.
때론 어머니와 헤어지기 싫어서,
학교도 가지않고, 계단밑에 숨어 청소하는 어머니를 지켜보았던 것,
수업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
"왁~!" 놀래키며 시장바구니 치켜드시던 어머니의 미소.
작고 여린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돌아다니던 시장가 콩국수, 팥죽.
칼이 없어 청과시장 바닥에 던져 깨먹던 300원짜리 수박.
어머니의 치맛자락 냄새를 맡으며 낮잠자던 마루.
노란단무지 담궈 이웃에게 나눠준다며, 큰 무우 머리에 이고 하염없이 걸었던 길.
다리가 아파 쓰러질 듯 하여도,
어머니가 곁에 계시면 참고 걸을 만 하였습니다.
어머니...
부르기만 하여도,
그 단어를 듣기만 하여도 주르르 눈물흘리던 막내가,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공중전화 박스를 보면,
어디에 있던지 어머니께 전화하여 자랑하던 습관이 불쑥불쑥 나오기도 하지만,
오늘 저녁이면 오빠가 지내는 어머니의 제사를 지켜보고,
모래 오후에는 어머니께서 누워계신 찬 바닥을 눈으로 확인하려 합니다.
어머니의 영은 천국에 계시니,
풀속에 누워계신 몸에 너무 마음쓰지 않고, 편안하게 이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머니를 아낌없이 사랑하였고,
마지막 모습 한 순간까지 지켜볼 수 있었으니,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 진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 수 있으니,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해 주신 어머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