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들 성영아
유 미숙
새까맣게 멍든 하늘에 또륵또륵 영글은 별빛 두 개가 네 눈망울같구나.
“성영아, 학기말 시험을 본다는데 학원에 안가고 왜 친구집엘 갔었니?
엄마하고 학원 잘 다니기로 약속해 놓고서 왜 또 어겼어?” 하자 “놀고 싶
었습니다.”라는 대답을 화가 많이 난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
서 세 번째 약속을 어긴 오늘 대나무 효자손으로 팔이 아프도록 너의 엉
덩이를 때렸다. 이를 물고 때리는 매를 큰 눈에서 뚝뚝 눈물흘리며 열댈
다 맞은 너였지. 그런 널 고집쟁이라고 소리치며 저녁밥까지 굶겼다.
아들아, 잠자는 너를 바라다본다. 눈이 많이 부었구나. 훌쩍이는 흐느
낌 때문에 깊은 잠을 못 자는 널 꼬옥 안고 엄마만한 엉덩이를 살짝보니
새파랗게 멍이들었구나. 멍든 아픔을 생각하니까 애미의 가슴의 새까맣
게 타는 듯이 고통스럽다.
성영아, 잘못했다고 두 손으로 싹싹 빌지 그랬니.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도망이라도 갔어야지. 왜 곰처럼 화난 엄마의 매를 다 맞고 자면서까지
울고 있는거야. 속이 상하다 못해 어금니가 욱씩욱씬 쑤셔서 잠을 잘 수
가 없구나. 너 때문에 굶은 저녁배가 쌀쌀한 찬바람에 더 허전해지고 네
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다.
애미의 욕심으로 혼을 내고 매를 주고 저녁밥을 굶겨 놓았으니 지나친
사랑법같아 스스로 반성도 했구나. 텅빈 배로 잠을 자는 널 깨워 좋아하
는 돈까스랑 피자를 실컷 먹여주고 싶은 심정을 누르느라 멍든 엉덩이를
살살 비비고 있단다.
봄볕에 잘 자라는 보리싹을 꾹꾹 밟듯이 이렇게 아들의 기를 꺾는 엄마
의 행동이 잘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 지금은 판단하기가 어렵구나.
그러나 내심 못배운 애미의 억하심정을 퍼붓어댄 것만 같아 죄스럽고 부
끄럽단다.
아침이면 잠이 모자라는 듯 조금 더 자고 싶어하는 너를 위해 책가방에
시간표대로 교과서와 노트를 챙겨넣고 연필과 지우개를 필통에 반듯이 넣
어둔다. 그러면서 한 장 한 장의 책 속에 박힌 글들이 모두 네 머리속에
들기를 바라고, 옳고 그름을 깨우쳐 줄 글귀가 네 가슴에 묻히기를 소망
하는 마음으로 가방정리를 해둔다.
하지만 그 좁은 어깨에 이 무거운 책가방을 매달아 줄 때마다 가슴 한
켠에 서글픔이 몰려와 긴 한숨을 내놓기도 했으나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
하니 아픈 구석에 위로가 되기도 하는구나.
성영이가 보던 삼국지가 책상 위에 놓여있어 책꽂이에 꽂다 가을소풍에
서 찍은 너희반 사진을 본다. 오목조목 모여진 얼굴들중에 네 얼굴이 눈
에 뜨이는구나.
사진액자를 깨끗이 닦아 놓는데 상장을 넣어둔 액자가 손에 달라붙고,
해마다 받은 모범상과 반장 임명장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성영아, 네 방에 앉아 있으면 부족함없는 아들같기에 엄마의 욕심이 지
나침을 뉘우치게 되는구나, 깊은 잠을 자는 너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감
기 걸리지 않는 건강한 아들이기를 소망한다.
밤하늘이 맑아 밖으로 나왔다.
저 하늘과도 바꾸지 못할 나의 아들 성영아, 천금을 준다해도 털끝하나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널 지켜본단다.
아들아, 네가 세 살때 탔던 세발자전거가 대문옆에서 버걱버걱 소리를
내듯 섰구나. 겁이 나서 자전거를 못타는 널 위해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구부리고 네 키에 엄마 키를 맞춰 자전거를 태워주었지. 핸들을 잡아주
고 가야 할 길을 알려주면서 자전거를 끌어주었다. 그렇게 얼마 후 너는
세발자전거를 놀이터에서 잘 타고 놀았단다.
그후 두발자전거에 보조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를 오른쪽 왼쪽으로 엉
덩이를 기우뚱거리며 페달을 밟아 앞으로 앞으로 달리던 너는 새 자전거
보다 너의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났었다.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페달을 밟아줘야 가고 브레이크를 잡아야 서는 자전거와
친해진 너였다.
돌멩이가 튀어나온 길은 비껴서 달리고 모래가 많은 길은 내려서 자전
거를 끌며 비에 젖은 진흙길은 조심스럽게 달리는 지혜로움을 배운 네가
열살 때, 네 키에 맞춰 자전거 키를 높여 주었지.
자전거와 함께 넘어져서 무릎을 다치고 팔을 삐었을 때 자전거를 다시
는 못 타도록 하고 싶었었다. 그런데 넘어진 달리기 선수가 다시 일어나
용감하게 마지막까지 달리듯이 상처가 아물자 더욱 열심히 자전거를 탔
지.
가파른 신작로도 잘 달리고 차가 다니는 큰 도로도 서두르지 않고 달리
며 급커브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자전거를 잘 타는 너는 엄마 심부
름도 해주었고 동생을 태워주는 멋쟁이가 되었다.
놀이터에서 시합을 했을 때 엄마를 앞지르고 함박 웃는 너에게 엄지손
가락을 들어 보이며 한 말이 기억나는구나.
‘너의 두 손으로 핸들을 움직여 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두 눈은 앞과
뒤를 살피거라. 그리고 두 다리가 쉬지 않고 페달을 밟을 때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자전거는, 너의 모습, 너의 생활, 너의 인생이라고’
저녁을 먹고 나면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를 한 바퀴씩 도는 넌 그 말을
이해하는듯했다.
네가 아파서 자전거를 못 탈 때 엄마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은 허
전함과 안정되지 않는 불안감이 일어 빨리 나아서 자전거 시합하자고 조
르기까지 했었지.
아들아, 공부 잘하는 아들보다, 건강한 아들을 더 사랑하는 엄마는 학교
시험과 학원 공부만이 전부가 아님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부탁하나 하거
늘 걷는것보다 편하기 때문에 타는 자전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노력해야
만 달릴 수 있는 자전거임을 잊지 말고서 쉼없이 페달을 밟아다오.
엄마 아들 성영이가 언제나 건강한 모습으로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아
가기를 바라며 오늘밤 네 자전거를 깨끗이 닦아 놓는다.
성영아! 이 자전거를 타고서, 매화꽃이 펑펑터지는 무심천 도로도 마음
껏 달리고 억수장마비가 내리는 길도 달려보려마. 낙엽이 쌓인 침묵의
산길도 달려보고 하얀 눈 내리는 겨울 바람속도 쉬지 말고 페달을 밟아가
려마.
몸과 마음이 참으로 건강한 엄마의 아들로서 말이다.
1998
첫댓글 부탁하나 하거
늘 걷는것보다 편하기 때문에 타는 자전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노력해야
만 달릴 수 있는 자전거임을 잊지 말고서 쉼없이 페달을 밟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