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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병든 영혼이 百鬼夜行을 바라보듯 멍청한 시간의 시간은 가고 있었다.
荒城의 바깥 계절은 비(雨)인지 비(悲)인지 하루건너 한 번씩 작은 흔적의 물방울이 창문에 서려 있다.
그래서-悔色地帶의 압력에 짓눌린 도심은 인간 운명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거부한다.
-09호에서 08호로 병실을 옮겨가게 된 것은 입원실 환경이 좀 더 낫지 않을까 해서였지만, 완전히 엎친 데 덮친 꼬라지가 되어버렸다.
그곳 중간 병상 하나가 비어있었고 양면의 창밖 조망도 괜찮았다. 근데 사선 쪽 반대편 코너 창 좋은 위치에는 양 병실을 케어하는 간병사의 주거용 간이 침상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꽤 파워풀한 위상을 주는 분위기다.
출입구로부터 가로로 놓인 병상 간의 간격이 약간 좁은 듯하다.
내 옆의 짧은 대화의 소통이 가능한 조용한 환자분 있고, 바로 옆은 화장실, 세면대가 있었다.
화장실 앞에 예의 ‘율부린너로’ 찍은 'Q'씨의 병상, 그 안쪽은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분으로 거동이 자유로워 식후 커피 한잔 씩을 위해 간호실 정수기 더운물을 가져다 쓰는 일 외 병상에 비스듬이 누워 TV를 보는 것으로 일과를 보냈다.
내 바로 옆의 코너 쪽 환자분이 설상가상 나를 껌뻑 죽이는 시츄로 어필하는데 꼼짝없이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분은 장기 중환자로 간병사와는 오랜 기간 戰國時代를 거쳐왔음인지 테테(테클?)를 부려도 잘 먹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고분고분하니까.
비참을 極한다 해도 비유가 안 되리라
물론 근본 원인은 병든 인생의 좌초와 치욕이 낳은 부지불식간의 자기 변신임은 누구나 인식해야 하는 실정 때문이다. 불만이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를 누구에게나 돌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쟈코메티(Giacometti)의 인간 조형물을 압도할 만큼 마모된 육신에서도, 정신은 사물을 판단할 의식은 조금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밤이면 손발을 묶어두고, 손에는 자해를 예방하는 장갑을 끼워두고 수면 상태가 아니면 항상 움직임을 추적해야 한다. 그외의 행위들은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사물함의 설합을 타다딱 쉴세없이 여닫는가 하면, 만원짜리 3장을 돌림빵으로 연속으로 세는 기술을 나는 첨 봤다. 간병사가 “인자 그놈 돈 그만 세고 잘 감춰둬!”라고 하자, 어딘가에 슬그머니 수셔 넣어버린다.
“배고프다! 밥 안 주나? 아~고 배고파”
식사가 들어오자 그는 잽싸게 죽을 훌훌 들이마시고는 침 튀기는 기침을 해댄다.
나를 째려보며 또 설합을 타닥타닥 여닫으며 휴대폰을 귀에다 대고 들었다 놨다를 거듭한다.
나는 벌써 일주일 넘게 90도 돌아앉아 번개 식사를 하고 식판을 물리친다.
“하느님 저는 졌습니다”
-나는 그분과의 사이에 커텐식 펜스를 가져다 놓아 달라고 어필했으나 공간이 좁고 불편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병상과 사제품들을 옮겨 들고 09호실로 원위치하고 말았다. 원래 내 병상 위치와 야간에 큰기침으로 나를 간 떨어지게 만든 분과 간호원의 설득으로 위치교대를 했다. 그분에게 미안했다.
-근데, 어느날 밤 나는 문득 머리를 코너 쪽 화장실을 향해 두고 잔다? 에 거부감이 왔다.
WC 귀신에게 고사를 지내야 하나? ‘般若心經’을 끝없이 암송하고? 아니면 다라니경(陀羅尼經)의 특별 呪文을 외우고 잔다? 악몽 포비아-의 샤먼?
하여튼 나는 검은 악마의 커튼으로 내려앉는 밤은 길고 긴 유형지로 내쫓기는 시간이었다.
미친짓 같지만 WC 반대편으로 누워 자기로 했다. 실컷 자고 났다고 보면 자정을 못 넘긴 시간에 절망한다. 수면의 질이 인간의 건강 생명을 좌우한다.
-토막잠을 자고 꼭두새벽 시간대에 세수를 하고 냉장고의 먹거리를 찾아 먹고, 소금으로 양치를 마친다. 탭피시를 켜고, 주로 일본과 미국의 입원 생활기, 간호원, 간병사의 진솔한 경험활동 리뷰를 읽고- 감동과 분노로 오늘의 현실과 비교를 해본다.
권태가 오면 누워서 멀뚱 잠을 청한다. 반수면 상태에서 다시 하루가 열리는 징조를 느낀다.
그런 가운데서도 심한 스트레스 환경변화에 길들여져 규칙적 생활 리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죽기 아니면 살기다.
재활의 탄력을 받아 한 스텝식 회복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우선 현재로는 치명적인 病原이 발견되지 않은 점, 당뇨의 정상 수치, 신장, 방광, 기타 미스터리가 好轉化로 돌아섰다고 라운딩 때마다 힘을 실어주었다. 원장님과는 친해져 식사와 운동에 대한 응원을 받았다. 그리고 나의 허접한 비망록의 기록에 대한 논평도 주고받는 소통의 공감력으로 발전했다.
나는 이 K城의 입성 신고식과 뭇매는 초장에 직사게 얻어터지고 다 맞았다고 토로하고 싶다. -그것은 초기입원 환자에게 가한 불안한 정서적 상처에 해당하는 간병사의 케어에 있다고 보아 진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 이놈도 별 볼일없는 인생을 저당 잡힌 놈이겠지- 불편한 진실을 묵과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치욕과 좌절감을 나는 나의 뇌리에 명확히 입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건은 초기의 내 인식이었으나 이해와 공감능력을 조금씩 갖게 되었음은 그 후의 일이다.
-새벽 5시에 야근 간호사에 의해 병원 전체 풀로어에 불이 켜지고, 각 호실의 간병사 첫 업무, 그것은 환자분들의 대소변 처리로 바쁘게 시작된다. 나는 일어나서 군대식으로 먼저 침구를 정리하고, 침대 식탁을 당겨 놓는다. 그리고 이어폰과 핸펀을 들고 나와 버린다.
그것은 푹 익어버린 냄새와 공기를 잠시나마 피하기 위해서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듯- 나는 이외로 사실 그 기간이 퍽 짧았다. 나의 후각과 신경은 예민해져 있었다.
-입원실 라인의 복도 공기와 반대편 여성 입원실 복도 공기가 코너를 돌아보면 그 질량의 스멜링이 완전히 틀린다. 이것은 환기 타임의 부재와 관성에 기인한다.
복도를 몇 바퀴 돌고 나면 식사타임 7:00시-밥(죽) + 5개의 부식 매뉴얼은 일주일 마다 회전식이다. 비빕밥 한그릇 & 갈치꾸이 하 부위 한 동가리를 맛있게 먹은 기억은 살아있다.
그 외는 모두가 소꿉장난 같은 부식이다. 두부 또는 양파 믹서류 영양식이라고 채워진다.
‘번개식사’를 하고 9가지 약봉지를 찢어 털어 넣는다. 이제 한 걸음씩 더 진행된 이동에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내 식판을 들고 대형 케리어에 가져가 넣는다. 식사 후의 식판 모습을 보면, 그냥 먹는둥 마능둔 내논 경우, 싹 다 비운 경우, 어지럽다. 다양한-식사메뉴를 관장하는 부서의 고민을 유추해 보는 순간이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던져 넣는 찰거락 소리가 참 가관이다.
식사 후 나는 간호실에 배달된 신문을 긴 소파의 끝자락에 앉아 훑어 내린다.
맨 처음 신문을 보라고 가져다준 그 간호사님의 배려를 잊지 않고 있다. 7~8명 간호사들이 성실하게 주어진 특수 생활 업무에 성실한 분들이었고, 보통의 인내력과 헌신이 없다면 정말 어려운 직업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하얀 제복의 나이팅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고 본다.
- 식사 때면 간호사들이 중환자실에 달려와 밥먹기를 응원하고 떠먹인다. 인간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간호사님 이 밥을 떠먹이면 잘 받아넘긴다.
근데 나는 간호사의 조력으로 밥을 한차례도 받아먹지 못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옆 환자분들이 충분한 식사 능력이 되기를 바랬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좁은 입원 실내 공간에서의 작은 이동의 스텝은 부활의 희망을 심어 준다.
나는 무엇보다 워커바를 치우고 단독직립 걷기에 바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병원생활도 후반부로 줄달음 치고 있었다.
주로 여성 입원실 라인 긴 소파에서 TV를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시간을 죽이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다. 초저녁부터 풀 영상을 끝까지 시청한 것은 「쇼생크 탈출」뿐이다. 이 영화는 내가 리뷰를 써 수많은 멘트를 받았고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명 대화는 어느 누구에겐들 인생의 지표가 되지 않을 것인가?
어느새 비망록 뒷 커버에 카렌다를 그려놓고 날짜를 말소해가는 초조한 가슴의 애원 속에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목욕도 일주일에 한번씩 호실별 환자를 차례로 목욕 침대로 이동하여 간병사가 해 치웠다.
처음 환자 목욕 과정을 지켜보고 기겁을 했다. 남자 간병사와 여성 간병사가 역할 분담을 했다. 병상에서 환자를 목욕 침대로 냉큼 들어올려 목욕을 시키는 사이에 여성분은 병상의 침대 시트 와 환자복 등을 준비하고 목욕을 마친 분이 다시 병상에 옮겨지면 각종 기저귀와 환자복을 입히고 바디크림을 손바닥에 잔뜩 부어 환자의 몸 각 부위에 쳐 발라준다.
- 마치 출정식의 코만드처럼 완전군장을 하고 일사천리로 목욕을 주도하는 간병사를 보면 파워 베테랑급이 아니면 7~8명을 해내지 못할 일이다.
내가 첨 목욕할 때는 거의 자력으로 움직이는 자세를 견지했는데 홀랑 벗겨놓고 샤워기로 물을 뿌려놓고, 후다닥 때수건 한 뭉치로 쓱싹쓱싹 비누칠을 했다. 그리곤 샤워물을 뿌리는 듯 마는듯 하드니 잠간 사이에 목욕 끝! 따뜻한 샤워를 좀 느긋하게 하고 싶었는데, 이런 느꺼무 이거도 목욕인가 아쉬움이 컸다.
“아~ 간만에 목욕하니”숨쉴 만 합니다.” 고 제스쳐를 날렸지만, 내심 ‘시발 머 이런 느미 다있어’라고 반감이 치솟았다. 그날 밤 등짝이 가려워 뇌까렸다. ‘시발느미 비누나 다 씻었는지 모리겠다’고 느끼한 의심이 폭증했다. 그러나 그 후 샤워기를 틀어놓고 이따금 “목욕중”이란 전단지를 문 앞에 딱 붙여놓고 자력 목욕을 충분히 해왔다. 장족의 발전이라고 하면 치사한 캐이스라고 할찌?
환경변화에 동화되어 거역할 수 없는 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며 自嘲를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가고 있었다. 창밖의 미친 대구의 여름 기후는 지랄 같다.
원장은 식사를 가리지 말고 많이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고, 이따금 어깨죽지와 허벅지를 만져보는 스키쉽을 하는 것으로 봐 ‘이 친구가 살아나 얼마나 건강복구를 해 걸어 나갈 수 있는지’를 체킹하는 듯했다. 그리고 07층의 물리치료실 바이커 사용 배려를 해 주었다. 체력 보강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영양간식을 먹고, 침대에서 누워 휴식 시간을 일정하게 가졌다.
입원 생활의 가장큰 개인적 정신력의 안정을 위한 킬링타임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좌절, 실망, 절망의 강도가 좌우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도대체가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 헛된 망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유익하다. 오직 넓은 창문을 통해 보는 도심의 계절 기후는 어떤지, 외래 문병 가족들에게서 물어보곤 했다. 나는 여름 기온 변화가 주는 중력의 영향을 너무나 싫어한다.
나의 유일한 정서적 안정의 킬링타임을 준 것은 「음악」이었다.
그 주류는 「엔카-Enka」였음을 고백치 않을수 없다. 음악은 영혼을 달래준다.
문학과 예술은 罪가 없다. 거기에 정신적 유토피아가 있다고 본다.
품격 높고 고매한 클라식도 좋지만 나는 잠자는 시간 외 ■《山田恵範うちカラ・ギター》⚌ 「湯の町エレジーYuno Machi Elegy / 近江俊郎」■(人生劇場 カラオケ 岬ひろし)⚊(なみだの操 殿さまキングス)⚊(命くれない / 瀬川瑛子」カラオケ)(哀愁列車)⚊ 等의 엔카에 沒入 했다.
山田의 ‘기타와 만도린’의 화음은 그 音色에 마비된다는 멘트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만돌린의 주선율 + 기타 간주- “伊豆の山々月 あわく 灯りに むせぶ 湯のけむり -이즈의 산을 달 옅은 이즈미 마을의 탕의 연기~~”가사의 내용은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다. 哀愁로 물든 幻想에 마음을 갈아 앉히게 된다.
여기서 엔카를 언급하게 된 것은 그러한 곡들을 논파하려는 것이 아니고, 에이전트도 아니다. 그만큼 마음의 治癒를 경험 한 과정이 소중했었기 때문이다. 그 후도 나는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오는 각 버전의 시대를 초월한 음악을 듣고 있는데, 그 감성 리듬 필링 이입이 쉽게 되는 속성과 ‘노령의 슬픔’ 때문이기도 하리라.
“병원의 침대에서 듣고 있다. 옛날의 창백한 추억이 기억되어 눈물 난다”는 山田 메니아의 고백을 함께 공유한다. 그 내용들은 대부분 남여의 생애 & 애정에 기반을 두고 있음은 不問可知이다. 돌아오지 않는 체념적 哀想의 선율, 그 時代上의 명곡들이 있음을 알게 됐고, 첨 들어보는 주옥같은 우리들의 옛노래도 있음을 알았다.
불안으로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복고풍의 명곡 (추억)에 푸~욱 빠져보는 것도 旅路에도 아쉽게 지나가는 라일락 향기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침묵이 지배하는 영역의 K城-
허수아비 같은 환자복의 쳐진꼴에 이어폰을 끼고 걷기만 하는 저 허접한 노령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 밖이라는 쓸쓸한 분위기가 흘러간다.
낯설고 기묘한 환경-
무릇 匹夫 인생들도 시행착오의 순간들을 통과해 生을 유지해 왔지만 붕괴의 금이 도래했다는 감각의 필링-그 체념에서도 구원을 기도하는 틈새의 집중력이란 빛도 있다.
호수의 물결파처럼, 오는 ‘가을’ 街道의 시공을 느끼고 호흡할 순간도 있다. 지문 인식의 인간 가두리를 이탈하려 한다. 저녁 낙조의 으스럼이 피어올라 네온이 바다를 이뤄 그 속으로 스러져가도 아직 가난한 꿈은 존재하고 있다.
continue-

첫댓글 좌우지간 그 큰집(?)에서 나오신 것만해도 기적임다.
그리고 현재 숨 쉬고 있다면 아직 남은 시간은 많습니다.
역시 몸이 좋아지니 반본전을 건졌다는 생각이네요.
부지런히 자시고 노시고 주무시고 버리시며 현재를 즐기세요.
がんばれ합시다. 부산넘
늑점이 님!
좋은 계절입니다.
베란다의 '다육'이 성큼 자란 그 신비가 너무나 반갑 더군요.
아끼고 싶은 마음에 집안 창가에 가즈런히 두고보니 마음의 안도를 느낍니다.
流謫에서 귀가는 일상이 모두 수십배의 템포로 늘여지고, 어휘들이 망각으로 도망가- 두려움을 느낍니다.
"がんばれ" 응원에 온기를 얻습니다.
우야둔동 모든 패밀리 님들 건강하세요.
꾸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