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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23. 큐티
에스겔 45:1 - 8
거룩한 구역
관찰 :
1) 거룩한 구역과 성읍 기지의 지정
- 1절.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a. 에스겔서의 40-46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 왕국에서 다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불법하고 패역한 제사가 드려지지 않을 것이며 거룩하고 온전한 예배가 드려질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이 조정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 선민들은 불법이 횡행하는 가운데 기본적 삶이 위협을 받음으로 인해 왕의 악행과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새 왕국에서 그들의 삶은 예배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를 중심한 삶이 될 것이며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이 보장될 것을 예언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악한 왕의 압제를 받지 않으며 그들의 삶을 보장 받는 기업을 소유한 공의로운 사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의 지도 아래서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게 된다는 내용은 가나안 땅에서 먼 이방 땅으로 포로되어 끌려온 선민들에게 매우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b. 본 절 이하 8절이 묘사하는 각 땅을 지도로 그려보면 3절에 나오는 성소가 있는 너비와 길이가 모두 오백 척인 땅이 이만 오천 척의 거룩한 땅의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장차 도래할 새 왕국은 성소를 중심으로 한 성전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방형의 모양은 완전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c. 이스라엘 지파들이 땅을 분배하는 방식은 광야 시대나 여호수아 시대처럼 제비를 뽑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경우에는 각 지파가 차지할 땅을 정할 때에 제비를 뽑았지만 에스겔에 주어진 계시에 따르면 48:1 이하의 내용에서 나오는 것처럼 각 지파가 갖게 될 위치와 영역이 모두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이 말하는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각 지파의 구역 안에서 각 가문이나 가족 별로 땅을 나누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d.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땅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땅을 제비 뽑아 나누기 전에 하나님의 성소를 둘 거룩한 지역을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된 약속의 땅 중에서 자신들의 땅을 제비 뽑아 나누기 전에 하나님께 드릴 땅 혹은 제사장에게 주는 땅을 먼저 예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땅 중에서 일부를 다시 하나님의 성전 부지로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은 레위기의 거제로 드리는 헌물로 제사장의 기업으로 삼고 다시 그 기업 중에서 일부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십일조 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한 구역의 땅을 헌납하는 것은 하나님께 바칠 거룩한 땅으로서의 한 구역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고 모든 땅이 하나님의 땅이라는 신앙 고백적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땅을 먼저 구별하여 드리지 않으면 자신들이 밟는 땅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민 18:12-15에서 짐승의 첫 새끼나 곡식의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가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과 같습니다.
e.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지파가 차지하게 될 모든 땅 중에서 한 구역에 대해서만 직접적인 권리 주장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땅이 예물로 바쳐지는 행위는 나머지 모든 땅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신학적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f.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땅의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고 너비가 일만 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척, 즉 규빗이 약 53.2cm였으므로 하나님께 속한 땅의 동서의 길이는 약 13.3km였고, 너비 즉 남북의 길이는 약 5.3km였습니다.
g. 2, 3절을 보면 이 넓은 땅 중에서 성소가 차지하는 면적은 길이와 너비가 각각 오백 척씩인 정방형 모양을 했고, 이 땅 사면에 오십 척씩의 전원 지역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4절을 보면 나머지 땅들은 제사장들에게 주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제사장에게는 별도의 기업이 없고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한 44:28의 내용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에게도 가정이 있었기에 그들이 거처할 최소한의 처소와 생활 터전이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민 35:1-8을 따르면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과 더불어 소유한 가축을 방목할 목초지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레위인들로 하여금 그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신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 2절.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길이가 오백 척이요 너비가 오백 척이니 네모가 반듯하며 그 외에 사방 쉰 척으로 전원이 되게 하되”
a. 하나님께 바쳐질 땅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를 둘 땅을 가장 먼저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b.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땅은 거룩한 지역에서도 더욱 거룩한 지역입니다. 이러한 성소는 길이와 너비가 오백 척이었으므로 가로 세로가 약 2.75km의 정방형의 모양을 했습니다.
c. 성소의 외곽에는 오십 척, 즉 약 275m 정도 너비의 전원 지역을 두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전원 지역을 포함한 성소 지역의 너비와 길이는 약 육백 척, 즉 가로 세로가 약 3.2km의 정사각형의 모양이었습니다.
- 3절. “이 측량한 가운데에서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고 그 안에 성소를 둘지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a. 1, 2절에 제시된 내용을 다시 한 번 요약 반복하여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b.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는 ‘거룩한 것들의 거룩한 것’이라는 의미의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즉 가장 거룩한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선민들이 구별하여 드릴 가로 세로 이만 오천 척의 땅이 다 거룩하지만 성소는 특별히 더욱 거룩한 곳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 4절. “그 곳은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 곧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수종드는 자들에게 주는 거룩한 땅이니 그들이 집을 지을 땅이며 성소를 위한 거룩한 곳이라”
a.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예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본 절에서 두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제사장들의 거처를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소가 있을 거룩한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반드시 거룩한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b. 이 땅을 소유하게 될 제사장에 대해서는 그들으 제사장의 직무가 부각되어 표현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거룩한 땅을 소유하여 그곳에 집을 지을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수종드는 자들이라는 사실에 근거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예배를 집전하는 자들이 거룩한 땅에 거주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거룩해야 한다는 요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거룩한 예배가 잘 드려질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이 보장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c. 성소가 거룩한 땅에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거룩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요구입니다.
d.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곳인 성소에서 거주하며 자신들의 삶을 보장 받는 거룩한 제사장들로부터 온전한 예배가 드려지기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거룩하고 온전한 예배가 드려지는 왕국이 에스겔 선지자가 본 새 왕국의 본질적 측면이었던 것입니다.
- 5절. “또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여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거주지를 삼아 마을 스물을 세우게 하고”
a. 레위인들을 위해 구분된 땅에 대한 설명입니다.
b. 레위인들의 땅의 면적은 제사장들의 땅과 동일하게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었고 너비가 일만 척이었습니다. 또한 48:13, 14에 의하면 레위인들을 위한 땅은 제사장들을 위한 땅과 인접하였고 사고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땅에서 열린 열매를 레위 지파 이외의 사람들에게 줄 수도 없었습니다. 이 레위인들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에 돕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기도 했지만(민 8:19, 22), 이들 중 상당수는 이스라엘 전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민 35:2-7). 즉 이스라엘 전역의 48개 성읍에 흩어져서 거주했습니다. 그런 레위인들이 거룩한 성소를 둘러싼 지역에 거주하는 제사장의 바로 인근에 거주한다는 것은 이곳 성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가를 나타내며 동시에 이스라엘 전체가 성소 중심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미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6절. “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너비는 오천 척을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측량하여 성읍의 기지로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a. 성읍 기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b. "구별한 거룩한 구역“은 앞서 주어진 제사장에게 주신 땅을 의미합니다. 48:13을 보면 레위인에게 주어진 땅은 제사장의 땅에 연접하여 주어졌고 48:18을 보면 백성에게 주어진 땅도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 즉 제사장에게 주어진 땅과 연접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세 영역은 모두 길이 즉 가로가 이란 오천 척이었고 너비 즉 세로만 제사장의 땅과 레위인의 땅이 일만 척이고 백성의 땅은 오천 척으로 달랐습니다. 따라서 옆으로 연접하기 위해서는 세로의 길이가 동일해야 하는데 이 길이가 서로 다른 점이나 이스라엘의 영토가 양 옆으로보다 위아래로 더 긴 형태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각 땅의 세로 부분이 아닌 가로 부분이 서로 맞닿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한 각각 이만 오천 척씩 동일한 길이였던 가로 부분이 맞닿게 될 경우 48:13, 18을 고려하면 제사장의 땅을 중심으로 위 아래에 각각 레위인의 땅과 백성들의 땅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c. 우리 말로 "기지"란 군대, 탐험대 따위의 활동의 기점이 되는 근거지 혹은 사업이나 건축물의 기초란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아훗자트’의 원형 ‘아훗자’는 ‘소유’ ghrds '재산‘이란 의미입니다. ’아훗자‘는 재산 중에서도 창 47:11에서처럼 요셉이 애굽으로 이주한 그의 가족들에게 살도록 준 땅이나, 레 14:34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가나안 땅, 그리고 수 22:9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뒤에 그들이 분배를 받은 땅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본 절에서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유다의 남은 백성들에게 이스라엘로 귀환한 뒤에 그들에게 주어질 재산으로서의 땅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본 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인을 사용하시어 멸망시키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회복하시고 옛 땅을 다시 나누어 주셨다는 언약적 측면이 강한 것입니다.
d.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라는 내용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공동 소유를 삼으라는 의미입니다. 48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는 별도의 땅이 따로 주어졌습니다. 본 절에 언급된 가로가 이만 오천 척이고 세로가 오천 척인 땅은 이와는 별개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의 몫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동 소유의 땅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땅과 연접한 지역에 주신 것은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에는 전혀 없었던 제도였습니다. 이 땅의 구체적 용도는 성경이 증언하고 있지 않지만, 제사장에게 주어진 거룩한 땅 주변에 이스라엘 모든 족속의 공동 소유의 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지파와 무관하게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중심으로 사는 ‘성전 공동체’ 혹은 ‘신정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왕과 일반 백성을 위한 땅의 지정
- 7절. “드린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 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쪽으로 향하여 서쪽 국경까지와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국경까지니 그 길이가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지니라”
a. 왕에게 주어질 땅에 대한 설명입니다. 왕에게 주어질 땅에 대한 설명이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비교해서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 주어질 땅에 대한 설명보다도 더 나중에, 즉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왕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을 섬기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b.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잃게 된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왕이 하나님보다 외교적 힘을 의지하여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애굽과 같은 외세를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왕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성전에서 우상을 두고 섬기게 함으로써 일반 백성들에게 종교적 측면에서도 본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왕의 땅에 대한 분배가 가장 마지막에 주어지는 것은 왕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c. 하나님께서 특별히 왕에게 땅을 주신 것은 회복될 새 이스라엘에서는 왕권에 의한 강제적인 땅의 양도와 같은 불의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본 절은 왕상 21장과 사 5장에 나오는 것처럼 아합 왕이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과 같은 비극적 사건이 새 성전 시대에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d. 왕에게 주어질 땅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으로 회복될 약속의 땅 중에서 가장 중심부에 대한 분배 기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각 땅에 대한 분배의 내용을 살펴보면 왕에게 주어진 땅이 세로로 동편과 서편에 주어지고 그 가운데에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레위인을 위한 땅, 제사장을 위한 땅, 그리고 일반 백성을 위한 성읍 기지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세 구역의 한 가운데 제사장을 위한 땅이 있었고, 제사장의 땅에서도 한 가운데에 가로 세로 오백 척의 성소를 위한 땅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소를 위한 땅은 왕의 땅이 둘러싸고 다시 레위인의 땅과 이스라엘 족속의 공동 소유의 땅이 둘러 싼 뒤에 마지막으로 제사장의 땅이 둘러싸는 삼중적 둘러쌈의 구조 한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회복될 새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 반면에 왕의 땅은 이 땅들의 가장 외곽에 위치함으로써 회복될 새 나라에서는 왕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만 해야지 8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의 중심에 위치하거나 자신의 욕심을 따라 착취하거나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회복된 뒤에 이스라엘 땅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지를 에스겔이 전한 신탁을 통해 전해 들었을 일차 독자인 바벨론의 유다 포로 공동체는 과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한 이유가 성전, 즉 하나님의 통치를 중심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간접적 교훈과 그러므로 그들이 단지 멸망한 나라의 회복만을 구할 것이 아니라 회복된 이후 새 나라는 절대적으로 성소와 그 성소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다스려져야 할 것이라는 직접적 교훈을 받았을 것입니다.
- 8절. “이 땅을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업으로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줄지니라”
a. 하나님께서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왕에게도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본 절은 그 이유를 왕들에게 기업이 없으면 그들이 부를 얻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괴롭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왕상 12:4-11을 보면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솔로몬 왕 때에 그를 섬겼던 신하들이 와서 솔로몬 왕이 과거에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경감하여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솔로몬이 쌓은 업적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백성의 고통스러운 세금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b. 출 22:21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도 과거 애굽에서 압제를 받았으므로 이방인들을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을 전달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잘 드러났듯이 힘이나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우월적 힘을 통해 사회적 약자나 빈자를 괴롭히거나 착취한다는 의미입니다.
c. 하나님께서 왕에게 별도의 기업을 주신 것은 그가 백성들에게 이런 경제적 압제를 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회복될 거룩한 새 나라는 이 새 나라의 한 가운데에 성소를 둠으로써 종교적 거룩함의 구분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새 나라의 가장 외곽에 왕에게 기업의 땅을 만들어 줌으로서 경제적 정의도 실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d. 땅을 만들어 줌으로서 경제적 정의도 실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 기업으로서의 땅은 원래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이스라엘백성의 잘못으로 인해 잠시 이방인들이 소유했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한 예물을 드리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나온 소산물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으로 그들의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신앙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으로서의 땅과 예물로서의 소산물은 회복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인정하고 그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는 두 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요한 두 축은 왕이 백성들에게는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순종하는 자세를 가질 때에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왕들은 백성들의 기업인 땅을 빼앗거나 백성들로부터 하나님께 드릴 예물까지 과도한 세금으로 수탈하여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흔들리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f. 과도한 세금으로 수탈해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흔들이게 하는 원인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선ㄴ 회복될 나라에서는 왕에게도 기업을 주심으로써 과거 불의와 부패의 고리를 끊으시는 것입니다.
g. "그 나머지 땅“은 본반락의 앞선 내용이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왕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내용이었고, 본 절의 땅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내용이므로 본문이 땅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내용이므로 이 땅이 왕 앞에서 나누어 주고 남은 땅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h. "그 지파대로“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땅의 분배에 참여한 것입니다. 48:1-7에는 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르우벤, 그리고 유다 지파의 땅에 대한 분배의 내용이 기록되었고, 48:23-29에는 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그리고 갓 지판의 땅에 대한 분배의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가르침 :
1) 새 성전은 새 나라에서 구현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 나라에서는 선민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하나님께 드린 구별된 땅에서 거룩한 성전이 세워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거룩해야 함을 매우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성전이 세워지는 것과 별개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거룩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을 이루는 것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2)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는 제사장, 레위인, 백성, 그리고 왕에게 허락된 공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새 나라의 주요 구성 요소가 어떻게 구성되는가가 순서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왕이 중심이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는 새 나라는 하나님을 예배함이 중심을 이룬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심이 세워진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이유입니다.
3) 땅을 분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인간의 노력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다 그냥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된 성도가 자신들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감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해 우리 주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이 새 나라 새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전심을 다 한 예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심으로 모든 요구가 다 충족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공로가 하나도 없이 하나님께 나아왔을지라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정말 위대한 일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찾을 수 있고, 주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떠한 문제와 상황에 있어서도 오직 주님을 찾고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생각할수록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2)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투영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놀랍고 위대하고 광오한 환상을 경험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역사와 성령 강림의 은혜보다 더 스펙타클 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의 환상보다 더 놀랍고 위대하고 광오한 은혜를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