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426) – 변산바람꽃(안양 수리산)(2)
변산바람꽃
2024년 3월 8일(금), 안양 수리산
엊그제 다녀온 안양 수리산을 다시 찾았다.
날이 무척 쌀쌀했다.
내가 갈 때마다 수리산 변산바람꽃은 절정이었다.
안도현의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2003, 태동출판사)에서 시문 몇 개를 골라 함께 올린다.
내 이름은 스물 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 장정일, 「지하인간」 전문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 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전문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와
나무에게 키스했을 때
나무는 새의 입 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주었습니다
달콤한 과육의 시절은 끝나고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바람이, 떨어진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싹을 틔워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그렇듯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새떼가 날아갑니다
울창한 숲의 내세가 날아갑니다
—— 유하, 「나무를 낳는 새」 전문
가은데 씨가 박혀서 좀처럼 쪼개질 것 같지 않은 복숭아도
열 손가락 잘 정돈해서 갈라 쥐고 단호하게 힘을 주면 짝하고
정확히 절반으로 쪼개지면서 가슴을 내보입니다.
‘하트’―복판에 도인(桃仁)을 안은 ‘사랑의 마크’가 선명합니다.
‘사랑은 나누는 것’, 복숭아를 나누고, 부채 바람을 나누고,
접견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고 …….
26일자의 편지와 돈 잘 받았습니다.
복숭아 사서 나누어 먹겠습니다.
—— 신영복, 산문「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자칼이 덤벼들거들랑 하이에나를 보여주고
하이에나가 덤벼들거들랑 사자를 보여주고
사자가 덤벼들거들랑 사냥꾼을 보여주고
사냥꾼이 덤벼들거들랑 뱀을 보여주고
뱀이 덤벼들거들랑 막대기를 보여주고
막대기가 덤벼들거들랑 불을 보여주고
불이 덤벼들거들랑 강물을 보여주고
강물이 덤벼들거들랑 바람을 보여주고
바람이 덤벼들거들랑 신(神)을 보여주어야지.
—— 아프리카 민요, 「덤벼들거들랑」 전문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 양희은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중에서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천상병, 시 「강물」 전문
첫댓글 변산바람꽃은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구경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랗습니다.
수리산 거기에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또 가서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