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좋은 길, 편한 길, 넓고 평평한 길을 선호합니다. 불편한 길, 거친 길, 위험한, 좁은 길을 피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가? 좋은 길, 평평한 길인가? 좁고 울퉁불퉁하고 불편한 길에 어떤가?
좋고 평탄한 길도 가야 하지만, 좁고 불편한 길. 곧 어려운 길도 가야합니다. 어제는 나의 길이 어떠했습니까? 좋고 평탄하였는가? 아니면 좁고 힘들고 불편한 길이었는가? 생각합니다.
좋고 편한 길은 그렇게 깊이있게 받아들여 지지 않지만, 좁고 힘든 길을 깊이가 있고 뜻이 있으며, 그 길이 나의 삶의 깊은 관심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도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마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고 찾아드는 이들은 적다." 마태 7,13-14
어제 길에서 만남에서 여러분은 문이 좁았습니까? 길이 비좁았습니까? 그 길이었다면 그곳은 생명으로 이끄는 문과 길이었습니다. 그 점을 분명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관에 앉아있는 세리 마태오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하셨습니다. 마태오가 세관 앞에 앉아있다가 에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를 제자로 삼으신 것. 그것 당신도 용기있는 '도전'이었습니다. 동족 유대인들에게 로마 제국의 부역하는 이. 특히 동족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동족을 못살게 만드는 이. 죄인으로 분류된 이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율법을 따르는 사람들. 바리사이들이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요?"(마태 9,11).
예수님,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를 위하여 제자들 부르심에서 넓은 문, 널찍한 길로 가지 않으시고 좁은 문, 비좁은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우리가 좁은 문, 비좁은 길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생명과 구원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가졌거나 가지지 못하였거나, 있거나 없거나, 누리거나 누리지 못하거나, 높거나 낮거나, 의인이거나 죄인이거나 모두가 하느님의 생명과 구원에 열려있고, 그들이 그 안에 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친히 그분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왔다." 마태 9,13
오늘 하루 만남과 관계, 모임과 자리 일과 사건에서 생명과 구원의 길을 마련하십시오. 선하거나 의롭거나 죄인이거나 의롭지 않거나 잘하거나 못하거나, 누리거나 누리지 못하거나 그 안에서 모두에게서 생명과 구원의 자리, 그 잔치를 마련하십시오.
하느님 나라는 보잘 것 없고, 누추하며, 허약하고, 죄에 물들기 쉬우며, 그 권리를 잊어버리고, 어쩔 수 없이 무력하고 제대로 갖출 수 없는 이들을 기쁘게 돌보고 또 함께 나아가여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 하느님 나라를 그 의로움을 찾습니다. 그것이 우선 순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아갑니다. 그 안에 주님이 계획하시고 이끄심을 아는 것. 그렇게 실행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일입니다.
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세울 때, 이 모든 것을 곁들여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주님, 오늘도 좁은 문, 비좁은 길을 가게 하소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용기와 믿음 주소서. 당신의 은총을 충만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