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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숙성비법’ 20년 만에 터득 … 책 <바이올린 선택법>으로 유명
현악기 제작·복원 전문가 최승식
음악인들 사이에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계적 콩쿠르에서도 ‘연주자의 실력보다 악기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대회에 참가할 정도라면 실력은 고만고만할 터이니, 결국 승부는 ‘연장’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로, 시카고심포니가 주최하는 ‘일리노이청소년콩쿠르’가 있다. 여기에서 해마다 상위 입상자를 내는 M, B교수는 웬만한 바이올린을 갖고는 아예 참가시키지도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제자를 받아들일 때도 바이올린까지 평가항목에 집어넣고 선발한다. 그래서 일리노이 콩쿠르를 앞두고는 몇 달 전부터 참가 희망자들이 좋은 바이올린을 구하느라 법석을 떨고는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같은 풍속도가 음대 입시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하기는, 대학입시도 일종의 콩쿠르다. 그래서 음대에 가려는 학생들에게는 9월부터 벌써 입시 시즌이나 마찬가지다.
지원하려는 대학의 교수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수준의 악기를 선호하는지 파악해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레슨은 그 다음 문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악기상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 악기거리 등에는 기악 전공을 꿈꾸는 학생과 학부모들로 성황을 이룬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매년 이맘때면 이들 사이에 회자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바이올린 선택법>의 저자 최승식(64) 씨다. 이 책은 바이올린을 대상으로 했지만, 다른 악기 구입에도 적용 가능한 요령을 일러주는 자상함 때문에 악기를 장만하려는 이들에게는 바이블이나 마찬가지다.
최씨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바이올린 등 현악기 제작과 올드 명기 복원 및 수리 전문가다. 그는 한마디로 바이올린에 관해서는 삼박자(켜고, 만들고, 복원·수리)를 고루 갖춘 ‘빠꼼이’다. 특히 고전 악기의 다이아몬드로 통하는 스트라디바리 등 숱한 올드 명기(名器)를 복원·수리하면서 얻은 이해와 지식으로 감정 안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악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좋은 소리를 내느냐 여부입니다. 골동적 가치나 장식적 면은 그 다음이죠. 물론 명기라고 불리는 악기들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희소할 수밖에 없고, 부르는 게 값이에요. 그러니 가짜들이 판칩니다. 몸통은 명기 수준인데 소리가 엉망인가 하면, 소리는 좋은데 몸통이 아닌 것들을 명기로 둔갑시켜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좋은 악기를 요구하니 안목도 없는 학생들이 당하기 십상이죠. 저도 초창기 바이올린 강사를 할 때 엉터리에 속아 전세금을 날린 경험이 있습니다.”
바이올린 시장 세계 4위, 그러나 한국 학생들은 ‘봉’
최씨는 아는 교수의 소개로 바이올린을 샀다 낭패를 본 순간 하늘이 노래지며 음악을 때려치우려 했던 기억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세계 유명 음대에서 많은 한국학생이 공부하고 있어요. 줄리아드만 해도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특히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어요. 한국의 바이올린 시장이 세계 4위 규모로, 연간 거래액이 줄잡아 4,000억 원 이상 됩니다. 그러니 악기상에게는 한국학생들이 봉이에요. 한국에 드나드는 외국인 딜러 중 1,000만 원이면 충분한 바이올린을 이탈리아 명기로 둔갑시켜 10억 원에 판 사람도 있어요. 정말 분통이 터지지만, 결국 산 사람의 잘못입니다. 일단 사고 나면 그만입니다. 전문가가 보면 가짜가 분명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가짜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책을 쓴 것입니다.”
그는 초보자의 경우 특히 전문가와 상의할 것을 조언한다. 그것도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고 수고비를 주더라도 두세 명한테 의견을 들으라고 권한다. 세계적 유명 딜러라고 해서 100% 정직한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최씨는 현재 세계 악기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유명 딜러들과 상당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는 바이 앤드 후쉬와 케네스 워런, 인디애나의 피터 자렛, 뉴욕의 자크 프랑세, 독일 뉘른베르크의 스트롬머, 영국 런던의 우드콕스, 스위스 로잔의 울프 프리티, 프랑스 파리의 가르미, 헝가리의 노르비나 졸로 등. 사실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이유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씨가 바이올린을 정식으로 잡은 것은 열아홉 살 때부터. 하지만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바이올린에 빠져 있었다. 부친이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양조장과 간장공장을 운영했던 까닭에 어려서부터 유성기로 클래식을 많이 듣고 자랐다. 특히 미국에 유학해 국내 최초의 축산학 박사인 둘째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둘째형이 나를 가장 아껴주었는데 클래식을 좋아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틈만 나면 불러놓고 유성기를 틀어줘 자연스레 클래식 음악에 길들여졌어요.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어 길을 가다가도 전파사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나오면 몇 시간이고 서서 들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여학생들이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천사로 보여 미칠 지경이었으니까요.”
고1 때 면도칼·사포만 가지고 바이올린 제작
하지만 집안 사정은 이미 한국전쟁 통에 아버지가 부르주아로 몰려 공산당에게 잡혀 돌아가시면서 간부들이 재산을 깡그리 빼돌려 쫄딱 망한 상태였다. 바이올린을 배우기는커녕 고등학교도 1학년밖에 다니지 못했다.
검정고시로 서울대에 지원했으나 실패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서울국향의 바이올린 주자로 있던 한규진 선생이 개인교습생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고는 대번에 찾아가 레슨을 시작했다.
월 2,500원씩이나 하는 레슨비는 고교생 과외를 해서 충당했다. “당시 서모 검사가 시공관에서 피아노 소나타의 밤이라는 공연을 하는 것을 보고, 저는 판사가 돼 바이올린 소나타의 밤을 하리라 작정하고 막 고시공부를 시작한 참에 마침 교습생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됐으니 저한테 바이올린은 운명인 셈입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열심히 했다. 보통 4~5년은 배워야 가능하다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3번을 사사 1년 만에 소화해낼 정도였다. 하지만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래서 3년 만에 고시공부를 접고 스물다섯에 입대했다. 제대 후 작은형 덕분에 사료회사를 운영했으나 큰 홍수로 망해 바이올린에만 매달렸다.
서울대 최동수 선생을 6개월 사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던 중 홍익초등학교 음악교사로 있던 친구의 권유로 1975년부터 그 학교의 현악부에서 바이올린 지도를 시작했다. 프로가 된 것이었다. 모처럼 좋아하는 일을 밥벌이로 삼으니 신이 났다. 여기에 음대 출신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에 더욱 열정을 다해 가르쳤다.
제자들이 각종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하자 금세 입소문을 타고 유명인사가 됐다. 심지어 서울대 출신으로 경력마저 부풀려질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초등학생이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것은 부유한 집안의 이야기였다. 여기저기서 개인 레슨 요청이 들어왔다. 청와대 경호처 차장보로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못나온 것이 늘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미 아들과 딸을 둔 상태였지만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볼 요량으로 1981년 초 미국으로 간 것입니다.”
당시 누나가 살고 있던 시카고로 갔다. 다시 시작하자는 결심과 함께 이듬해 노스웨스턴 음대 데이비드 카프만 교수를 찾아가 하루에 세 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하지만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시간당 80달러인 레슨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6개월 만에 접어야 했다.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최씨는 음악 외에 손재주가 좋아 어려서부터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 동생을 잘 아는 누나가 “초상화만 그려도 잘하면 먹고 살 수 있다”며 그림공부를 권했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트루먼 칼리지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술공부 역시 한 학기 만에 접어야 했다. 아직 영어도 서투른 판에 큐비즘이 어떻고 사실주의가 어떻고 하는 데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방황의 연속이었다. 이 같은 방황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1984년 시카고 바이올린 제작학교에 입학하면서.
“고1 때 면도칼과 사포만 가지고 18개월 걸려 바이올린을 만든 적도 있어요. 하고 싶었는데 배울 데가 없어 명동·청계천의 헌책방은 물론 국립도서관을 뒤졌지만 제작에 관한 책이 없어 포기했죠. 한동안 방황했던 것도 미국에 와보니 내 연주 실력으로는 밥을 먹고 살기 어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에요. 정경화 정도는 돼야 하는데 그 정도는 어림도 없고…. 방황하는 동안에도 벌이를 위해 아이들에게 바이올린 과외를 했는데, 한 아이가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해서 악기점에 갔다가 점원이 연주하는 것을 보고 기겁했어요.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척 잡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3번을 연주하는데 정말 잘하더라고요. ‘아, 점원도 이 정도인데 내 실력으로는 턱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그 전에 시카고에 제작학교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학비가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연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마당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국 땅인데다 아는 것은 바이올린뿐인데 먹고살려면 제작을 배우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죠. 미국에서는 무엇이든 전문기술이 있으면 먹고사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건달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점원이 제 인생을 바꿔준 셈이죠.”
시카고 제작학교는 독일의 미텐발트국립바이올린제작학교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국가가 인정하는 미국 내 유일한 학교였다. 더구나 미텐발트는 학비는 무료이지만 스물두 살로 나이 제한이 있는 데다 한 해에 외국인은 단 두 명밖에 뽑지 않았다.
그나마 3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최씨는 이래저래 시카고제작학교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시카고제작학교는 마흔 살까지 입학이 허용됐다. 한 학기 수업료가 아파트 전세금보다 비싼 300달러여서 내심 걱정했지만, 아내는 전문기술을 배운다니 오히려 좋아했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방 한 개짜리로 줄여 학비를 마련해주며 격려해 주었다.
“교장이 동포인 이주호 선생님이셨어요. 동양인 최초로 1970년대 초 미텐발트를 나와 최초로 마이스터가 된 유명한 분이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시카고제작학교도 이 선생님이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한 것입니다. 당시 <시카고트리뷴> 등 유력지마다 전면을 할애해 소개했을 정도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35명 정원에 7학기제인데 동기 중 한국인이 두 명 더 있었습니다. 교육은 제작 80%, 연주 10%, 악기사 및 악기감정 10%로 구성돼 있었는데, 우선 조교들이 가르치고 단계별로 심사를 받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50단계가 넘습니다. 스텝을 잘못하면 7학기가 8학기가 되고는 하죠.”
최씨는 동기생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았다.
“시범을 보이고 그대로 따라 해보라는데 말도 잘 못 알아먹겠고, 난생 처음 보는 연장이 많아 곁눈질하면 그런다고 눈치를 주고는 해서 많이 애를 먹었습니다. 연장은 모두 독일에서 이 선생님이 가져온 것인데, 그렇게 종류가 많은지 놀랐습니다. 줄잡아 70가지는 될 것입니다. 바이올린 제작이라는 것이 워낙 정밀함을 요하는 일이어서 용도별로 세분된 까닭입니다. 옆면과 위판이 만나는 접점을 깎는 평면작업을 할 때는 머리카락은 고사하고 빛이 새어 들지 못할 정도로 정교해야 하거든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만 숙련을 통해 경지에 오르는 것입니다. 숫돌에 칼을 가는 것만 제대로 할 줄 알아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연장을 쓰는 법을 익히는 것이 어렵습니다. 연장이 용도별로 모두 다른데, 이들 연장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안다는 것은 바로 악기를 만들 줄 안다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어디를 가나 숫돌만 봐도 그 사람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박에 가늠할 수 있습니다.”
글 이만훈 월간중앙 편집위원 [mhlee@joongang.co.kr]
사진 최재영 월간중앙 사진부장 [presscom@hanmail.net]
첫댓글 "바이올린 선택 이렇게 하라" 이 책 구할수 없을까요?? 인터넷서점들은 다 품절이네요ㅠ
악기점에 들어가서 가격대를 보니 출처 불명의 악기가 2천만원대라니... 악기에 대한 정보는 설명도 안해주고.. 오직 소리만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외국인 딜러를 더 신뢰하게 되구요 ..
서점에 책이 없네요......
출판사에 문의해 보셔요.
인생스토리가 참...다사다난하시네요...
잘 봤는데요, 멘델스죤 바이올린 콘체르토 3번? 아마도 모짜르트 협주곡을 얘기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자칫하면 악기만 좋으면 다 되는 것처럼, 또는 엄청 비싸고 좋은 악기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과장된 겁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소장가치같은 건 필요없고, 무조건 소리 잘 나면 최고지요. 아무튼, 악기 문제는 2차적인 문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자! 사람이지요...
돈 많으면 문제없지만, 별로 돈도 없으면서 비싼 악기만 찾는 건 그게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연주자나 학생 수준은 생각지도 않고, 연습 진지하게 하지도 않고 무조건 악기부터 비싸고 좋은 거 찾으니까, 결국 사기꾼들이 설치게 되는 거지요.
또 요즈음 나오는 새 악기들은 예전과 다릅니다. 전에는 진짜로 소리 안나는 악기들이 많았지만, 요즈음 나오는 악기들은 어느 정도 수준은 됩니다. 우선 악기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괜찮은 새 악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심지어 중국에서 넘어오는 악기들도 불과 몇년 전과는 같은 가격인데도 질이 다릅니다. 아무튼, 돈이 빡빡한데 바이올린 하고싶은 분들은, 비싼 악기에 절대로 홀려서도 안되고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