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존재의 증명》
허재택/뇌과학자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더 많이 가지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기 시작했다. 가진 것의 총합이 곧 존재의 가치로 환산되고, 보이는 성취가 곧 인생의 척도로 평가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손에 쥔 것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점점 비어가고, 채움의 욕망은 끝없는 불안의 그림자를 낳는다.
소유의 증가는 곧 불안의 축적이다. 더 많은 재화, 더 많은 인정, 더 많은 권력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듯하지만, 실은 더욱 정교하게 얽어매는 사슬이 된다. 그 사슬은 황금빛으로 빛나지만, 안쪽에서는 조용히 영혼을 조여 온다.
‘더 가지려는 삶’은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고, 의심한다. 남의 성취가 곧 나의 결핍으로 보이고, 타인의 행복은 나의 실패로 해석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을 남의 거울 속에서만 확인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거울은 왜곡되어 있다. 그 안에는 진정한 ‘나’의 얼굴이 아닌, 사회가 규정한 성공의 가면만이 비친다. 우리는 그 가면을 벗을 용기를 잃어버렸다. 벗는 순간 초라해질까 두려워, 오히려 스스로를 감추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또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은 ‘더 되려는 삶’의 길이다. ‘되다’는 소유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이다.
무엇을 가지는가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되려는 삶’은 나를 넘어 타자에게로 열리고, 관계의 차원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한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관계는 소유와 다르다. 소유는 나의 경계를 강화하지만, 관계는 그 경계를 허문다. 소유는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돌게 하지만, 관계는 세계 속으로 나를 녹여 넣는다. 관계는 나의 일부를 내어주는 동시에 더 넓은 나를 만들어 간다. 그 속에서 인간은 자기 초월을 경험한다.
이 초월은 거창한 종교적 도약이 아니라, 매 순간의 작은 선택 속에서 이루어진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한 걸음, 용서하려는 마음의 떨림, 진심으로 건네는 한 마디의 위로. 그런 작은 초월들이 모여 인간을 해방시킨다.
‘되려는 삶’의 본질은 ‘창조’이다. 그 창조는 예술가의 붓끝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숨결 속에서도 피어난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상처를 품은 타인을 감싸며,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도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 그 모든 것이 존재의 창조다.
이때 인간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을 빚어내는 자’가 된다. 그의 하루는 생산이 아니라 창조이며, 그 창조의 대상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진정한 성공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로부터 풍겨 나오는 평온은 모든 소유를 초월한다.
어떤 이는 그것을 ‘내적 부요’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영혼의 성숙’이라 부른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하고도 단단한 상태이다. 외적 성취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지만, 내적 존재는 시간 속에서도 견고히 빛난다.
삶의 마지막 순간, 인간은 결코 자신의 집이나 재산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존재였는가’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따뜻했는가, 진실했는가,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았는가.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마지막 언어이다. 따라서 성공이란 외적 증명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존재 방식으로 증명된다. 진정한 성공은 타인의 박수 속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침묵 속에서 완성된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나는 얼마나 ‘되어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달려왔는가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어떤 존재로 성장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오직 스스로의 내면만이 알고 있다.
불안의 시대를 사는 오늘, 인간이 회복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존재이다. 가진 것을 늘리는 대신, 존재를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길이며, 가장 인간다운 존엄의 형태이다.
소유는 사라지지만, 존재는 남는다. 가진 것은 빼앗길 수 있으나, 된 것은 결코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되려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이다.
삶은 소유의 전쟁터가 아니라, 존재의 여정이다. 우리는 그 여정의 중간 어디쯤에서 자주 길을 잃지만, 다시 내면의 등불을 밝히면 된다. 그 불빛은 작고 흔들리지만, 진실하기에 꺼지지 않는다.
그 빛이 바로 인간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우리를 관계로 이끌고, 창조로 열며, 자기 초월로 이끈다. 그리하여 인간은 마침내 ‘더 되려는 삶’ 속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성공이란 외적 소유의 결과가 아니라, 내적 존재의 향기라는 것을. 그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그 향기를 맡은 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그 향기는 이름 없이 피어나지만, 그 향기가 머문 자리에는 평화가 깃든다. 그 향기는 바로 ‘살아 있음’의 증거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가장 고귀한 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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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健强하고 사랑하며 밝고 活氣차고 希望 가득한 幸福하고 便安한 하루가 되시길 所願합니다.
오늘도 福 지으시고 액운(厄運) 타파(打破)하시어 무탈(無頉)하시며 智慧 ㆍ知慧롭게 살아 가시길 祈願합니다. 마음이 따뜻 한 멋진 하루되세요. 잘 보고갑니다.
感謝합니다.
= 朴圭澤 華谷·孝菴 公認 大法師(佛敎學 碩士課程 2學年 在學中)의 좋은글 中에서 (Among the good articles of Park Gyu-taek HwagokㆍDharma-Bhānaka an Hyoam's official Daebosa(I'm in my second year of a master's course in Buddhist studies)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내적 존재의 증명.좋은 글 감사한 마음으로 즐감하고 나갑니다 수고하여 올려 주신 덕분에
편히 앉아서 잠시 즐기면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좋은글에 잠시 쉬었다감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귀한글에 머물다 갑니다.감사 합니다.
좋은 글 내용 잘 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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