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가 함께 주말을 맞아 집에 온단다. 평소에는 시장도 가뭄에 콩 나듯 가던 내가 카드를 척척 긁는다. 반찬거리를 잔뜩 사다놓고 만들기 바쁘다. 삼계탕 꺼리를 준비 해 놓고 아이들 마중을 갔다. 아이들을 만나면 그 길로 수영장에 간다. 두 아이랑 수영장에 들어서면 거기 상주하시는 아저씨가 청룡과 백호를 거느리고 온다고 우스개를 한다. 남편은 헬스를 하고, 우리는 수영을 한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으면 집안이 꽉 찬 느낌이다. 식탁에서 이어진 술자리는 거실 탁자로 옮아가고, 삼계탕이 바닥나면 돼지고기 편육으로 닭발 조림으로 안주가 이어지고 식탁 위는 소주병이 나란히 쌓여 간다.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대충 알 것 같다. 이야기는 들쭉날쭉 자유롭다. 현재의 정치계에 대한 토론에서 인생과 미학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가 철학으로 넘어간다. 다시 현 시점으로 돌아오면 부모 가난이 초점으로 부각된다.
두 아이는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했으면 좋겠단다. 특히 아들은 석사과정을 마치면 박사과정으로 넘어가야 하고,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을 경우 서울의 사립대 대학원에 적을 두어야 하는데 등록금도 문제지만 생활비도 문제라며 한숨을 토한다. 두 아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해도 기숙사비 역시 촌로에게는 비싸다. 두 아이가 인문계열이니 돈과 거리가 멀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불분명한 상태다.
"엄마, 나는 그냥 어학 쪽으로 전과를 할까? 한국어 강사나 논술교사 자리는 있다는데. 누나는 서울대 대학원이니 과외 선생을 해도 되지만 나는 지방 대학이니 그것도 어려울 것 같아. 아무리 국립대에 성적이 올 에이라도 안 알아주는 세상이잖아. 박사 학위를 받아야 그나마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는데 박사 따려면 서울에서도 괜찮은 대학원에 들어 가야하고, 서울대 외에는 사립대학인데 박사 코스 하려면 학비와 생활비가 문제잖아."
그러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한다. 아들은 국어국문학과 딸은 미학과다. 부모로서 할 말이 없다. 딸에게 직장 잡아 동생 공부 뒷바라지 하란 말도 못하겠고, 공부하고 싶다는 아들에게 공부 접고 취직자리 알아보라는 말도 못하겠고, 농사꾼 살림 빤하니 돈 걱정 말고 공부나 하란 말도 못하겠다. 겨우 한다는 말이 이렇다.
"궁하면 통한다. 길이 생길 거다. 하고 싶은 공부면 계속 해야지. 돈 돈 한다고 뭉치 돈이 하늘에서 떨어질리 없고, 여태 잘 해 왔으니 앞으로도 길이 생길 거다. 네가 가고 싶은 길을 향해 꾸준히 가 봐라. 한 우물을 파다보면 찬물이 펑 터질 날도 있지 않겠니. 대기만성이라 했다. 단감 농사, 고사리 농사 더 열심히 지어야겠네."
새벽이 깊도록 두 아이랑 갑론을박을 한다. 아이들은 부모랑 마주앉아 온갖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단다. 철학이야기로 넘어가면 수많은 사상가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두 아이 모두 다독 상을 받을 만큼 책을 많이 읽는 모양이다. 박식하다. 이러다 우리가 딸리겠는 걸. 남편과 나는 서로 눈짓을 하며 웃는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연인이자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 이야기에서 베네수엘라에 무혈 혁명을 이룬 사회주의 혁명가 차베스 대통령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담론은 종횡무진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두 아이가 어느 대학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감성적인 인간과 이성적인 인간에 대한 토론에서는 나와 남편이 표적이 되었다.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고, 남편은 이성적인 사람이라 두 사람의 견해가 합쳐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은 논리적이지만 감성적인 사람은 논리적일 수 없다는 것이 요지다. 소설과 논문의 차이란다.
문득 이런 토론을 할 수 있는 것도 두 아이가 아직 제 아내와 남편 제 자식을 거느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은 제 가족을 거느리면 부모로부터 몸도 떨어지지만 마음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딸의 친구가 결혼을 했다. 딸은 결혼식에 잠깐 참가했다가 가족 여행을 하자고 했다. 두 아이가 사전에 합의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딸에게 거기 참석한 동기생들과 어울려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우리 가족끼리 여행하는 것이 더 좋단다. 진해 쪽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진해 여고, 모교에도 들렸었다.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도 보고 차도 마시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이었다. 시댁에 들려 시부모님을 모시고 쇠고기를 먹으러 갔다. 손자손녀를 만난 상노인은 얼굴에 화색이 돈다. 두 노인을 시댁에 모셔다드리고 집으로 오며 또 밤 간식꺼리 잔뜩 사 들고 왔다.
두 아이가 부엌에서 술안주 만들어 와서 대화 자리를 편다. 우리 부부는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줄 뿐이고 가끔 한 마디 툭 질문을 던지거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 달라는 것이 다지만 그 시간이 참 정겹다. 나는 남편에게 눈짓을 한다. 이틀 밤을 새우며 담론을 해도 두 아이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텔레비전이 없어 참 좋다는 아이들의 말, 텔레비전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부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술 대신 차를 마셔도 분위기가 사는 것 같단다.
그 아이들이 오늘 모두 떠났다. 집이 텅 빈 것 같다. 아직 나는 자식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에는 찬성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오면 나를 그만큼 편하게 해 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집안 청소까지 싹 해 놓고 가는 두 아이 덕에 편하고 행복했던 사흘이다. 남편과 나는 또 조용히 각자의 자리에 앉아 각자의 취미생활을 이어간다. 이것이 일상이다. 다만 돈 걱정 안하고 원 없이 하고 싶은 공부 해 보고 싶다는 두 아이에게 힘이 되어 줄 길이 없는가 싶어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