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장편소설 [[황산강]]을 주 2회 정도로 연재할까 합니다.
1부 아수라장, 2부 코피, 3부 모순, 4부 내 속에 하나의 우주, 5부 더덕 냄새, 6부 한없이 가벼운 사랑
“쌤이 시범으로 한 번 살려내 봐요.”
“김 원장. ‘자꾸’가 너무 쉽게 열리네. 그래도 덕분에 이제 자는 사람 없어 좋구나.”
황산강 2부 코피(7회)
“쌤이 시범으로 한 번 살려내 봐요.”
“김 원장. ‘자꾸’가 너무 쉽게 열리네. 그래도 덕분에 이제 자는 사람 없어 좋구나.”
교실이 페이드아웃 되었다.
얼음판에 나자빠진 꼬맹이 송종우로 세상이 돌아왔다. 얼음을 짚고 있는 손이 떨어질 듯이 시렸다. 벌떡 일어났다.
잠깐 넘어졌을 때 본 세상은 뭘까? 오래전에도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꿈 내용이 도무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꿈 내용을 떠올리려 하면 견딜 수 없이 어지러울 뿐이었다.
머리를 한번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바위틈으로 드러난 칡뿌리를 괭이날로 여러 번 두드려서 잘라냈다.
집으로 오면서 마른 나뭇가지도 몇 개 주워서 들고 왔다.
후지코가 소학교를 마쳤다. 열네 살. 동래에 있는 여자고등보통학교로 진학했다.
그 이듬해 봄. 사음 영감. 후지코 증조할배가 세상을 떴다.
어른들 틈에서 이런저런 심부름으로 분주했다. 어른들이 이 집 큰 머슴과 같이 마당 귀퉁이 늙은 감나무 아래 돼지 잡을 물 끓일 가마솥을 걸었다. 가마솥 옆에 들마루를 옮겨두었다. 물을 길어오고 장작을 가져와 불을 지폈다.
정지(부엌) 앞에는 찌짐(부침개) 부칠 무쇠 솥뚜껑을 세 곳에 걸었다. 각 솥뚜껑 주위엔 마실 엄마들이 앉을 짚단을 여럿 두었다.
가마솥 물이 설설 끓었다.
큰 머슴과 어른들이 농짝만 한 돼지를 몰고 와 새끼줄로 묶어 눕혔다. 장정 여럿이 돼지를 들마루 위에 눕혔다. 돼지주둥이를 묶은 끈을 장정 한 명이 잡고서 위로 당기고 몸통을 묶은 끈에는 장정 둘이 붙어서 등 뒤로 당기며 누르고 앞다리 둘을 같이 묶은 끈에도, 뒷다리 둘을 같이 묶은 끈에도 각각 장정 한 명씩 붙어 등과 반대 방향으로 당기며 눌렀다.
춘삼이 아재가 목 언저리에 서서 시퍼렇게 간 식칼로 돼지 멱을 땄다. 돼지 멱 딸 때, 어른들이 애들은 보지 말라며 나와 열다섯 살 동갑인 새끼 머슴을 밀어냈다. 밀려나는 척하며 다른 어른 틈에 비집고 섰다.
마을이 떠나가라 돼지가 꽥꽥거리고 발버둥 쳤다. 돼지 목 아래 받혀둔 양동이에 피거품과 함께 시뻘건 핏물이 벌컥벌컥 쏟아졌다.
춘삼이 아재가 멱 딴 칼을 한 번 더 갈아들었다. 들마루 위 피 다 빠진 돼지에게 끓는 물을 끼얹어가며 털과 때를 밀었다. 돼지는 피 빠지고도 한동안 죽지 않았던지 털을 미는 중에 한 번씩 경련을 일으켰다.
마실 엄마들은 정지 앞에 걸어 둔 무쇠 솥뚜껑 세 곳에 서너 명씩 끼리끼리 짚단을 깔고 둘러앉았다. 장작불에 이내 솥뚜껑이 달아올랐다. 춘삼이 아재가 잘라준 돼지비계로 기름을 내며 찌짐을 부쳐 냈다.
나는 이 집 큰 머슴, 새끼 머슴과 같이 마당 가운데 화톳불 피울 준비를 하고 그 주위에 멍석을 가져와 깔았다.
돼지 멱을 따고 좀 있다가 후지코가 검정 교복을 입은 채 돌아왔다. 끔찍할 수 있는 돼지 잡는 장면을 후지코가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마당에 들어설 때 나하고 딱 마주쳤다. 어른들 눈 때문에 둘 다 서로 모른 척 내외했다.
안방으로 들어갔던 후지코가 노란 삼베 상복 차림으로 나왔다. 빈소에 들어가 곡을 하고 나왔다. 울어서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그런데도 마당에 햇살이 들이치듯 환했다.
이번에 올 때 이광수의 ‘무정’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상을 당해서 갑자기 온 것이다. 책은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다. 가져왔다 하더라도 상중이라 둘이 만나 건네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상여 나가기 전날이다.
사음 댁 너른 마당 가운데 화톳불이 나흘째 벌겋게 타올랐다. 남자 어른들이 불 주위에 마실에서 가져온 멍석 다섯 장을 깔아두고 무리무리 둘러앉았다.
밤늦어 돼지비계 한두 점 떠 있는 콩나물국밥에 막걸리 몇 잔이 따라 나왔다. 새끼 머슴과 같이 나도 국밥과 함께 한 잔 얻어 마셨다.
한 잔 더 달라고 했다가,
“대가리 쉬똥도 안 마른 자석들이”
소리만 들었다.
“김 주살 내지까지 보내 공부시킨다꼬 논밭전지 거반 다 거덜냈지. 멀쩡한 내 땅, 지주가 아니라 사음으로 지내민서 영감재이 속 어쨌을까? 솔찮게 끓였을 거야.”
“목소리 낮추게. 안에서 듣기라도 하면 뭐 좋을까?”
“그려, 그려.”
“사음 영감, 저승 가서도 맴 편할까?”
“그래도 사음 영감, 일평생 무논에 발 한번 담갔나. 누가 누굴 걱정해.”
“그려~. 내 분에 걱정해 줄 깜냥 아니지.”
“사음 영감 오랫동안 참 땐땐했는데.”
“그래도 말년에는 좀 베푼 편 아이가?”
“음~. 범보 마실 인근에서는.”
“사래미 아주 갈 때 되만 바낀다고 하더이.”
“그르커쩨. 그나저나 이제 울 김 주사가 지 애비도 없는데 사음으로 무슨 작당질이나 할까 걱정이네.”
“어째 울 김 주사야? 언제 자네가 김 주사와 그리 가까워졌나?”
“하~ 참. 우리 동네 김 주사란 말이제.”
“내 땅 남에게 넘기기만 해 봐라. 김 주사고, 쇠다리 주사고 뭐고 간에 내 그냥 안 둔다.”
“워~~ 소리 좀 낮추게.”
“그란데, 또쭐이, 우째 자네, 근년에 땅 한 마지기라도 장만했는가? 자네 부치는 땅 다 박양산이 땅이지?”
“내사 땅 주인이라고 했나. 내 부치는 땅이란 야그지.”
“소작권도 땅 주인 맴 아이가?”
“아무리 그래도, 내 땅처럼 가꾸는 것 자네들도 알잖는가?”
“목소리 낮추래도. 우리가 알아봐야 무신 소용이가. 박양산이가 그렇게 생각해야지.”
“맞아 박양산이가 또 우리 속내야 우찌 알겠는가?”
“그랴, 박양산이가 아는 우리 속내사 김 주사 말하기 나름 아닌가.”
“그려. 자네 땅 아무리 잘 가꿔 봐야 말짱 도루묵이네.”
“자네들, 내 부치는 땅, 넘보지 말라는 말이야.”
“문디 콧구녕에 마늘을 빼먹지.”
“근데, 김 주사가 내지에 가서 정말 공부한 것 맞나?”
“와?”
“이 손바닥만 한 범보로 돌아와 지 아배 하던 사음이나 물려받고.”
“공부에 에지간히 디었겄지. 그라이 지는 내지까지 가서 논밭 팔아가며 탱자탱자 공부했으만서도 지, 아들 둘은 다 소핵교 마치자마자 논밭으로 내몰았지. 아들들 무논에 몰아넣으만서 지는 지 아배처럼 무논에 발 한번 안 담그잖아.
지 새끼들한테도 그란데 작인들한테야.”
“내도 걱정이네, 김 주사가 우리 처지 알까? 생각이나 할까?”
마실 아배들은 넓은 마당 화톳불 앞에서 모처럼 걸친 막걸리 몇 잔에 찌짐 안주 몇 점으로 허튼소리, 군소리로 속낼 나누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때, 후지코가 안방에서 나와서 나와 눈을 마주쳐보고는 별채 뒤뜰 감나무 그늘로 숨어들었다.
“할배 상중이야. 안 돼.”
후지코가 단숨을 내쉬며 나를 밀어냈다.
이윽고,
“책, 가져오지 못해서 나온 거야. 갈 때까지 이번엔 더 못 봐.”
옷섶을 여미고 그늘을 골라 후지코가 먼저 갔다. 나는 한참 동안 후지코가 껴안고 있던 감나무에 기대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