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겨울로 기억된다. 서울 답십리 경신교회 중·고등부 학생 100여명이 경기도 광주에 있는 광주 기도원으로 동계 수련회를 하기 위해 들어 갔었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었는데 그 때만 해도 한국의 기도원 대부분이 무허가 건물 몇 채로 기도원을 운영했고 광주 기도원 역시 본당 예배실이 100여명 들어가면 꽉 차서 앞, 뒤, 옆 간격이 없이 바짝 붙어 앉아야 겨우 앉을 수 있는 그런 곳 이였다. 숙소가 좁아서 손 바닥 만한 방에 남자 10여명이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았다가 하나 둘 셋 신호를 하면 모두 다리를 방 가운데로 향하여 동시에 뻗으면서 누웠고 방 중앙에 열명의 다리가 겹쳐져서 그 불편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한 사람도 불평 없이 3박4일간을 기도, 찬송, 그리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었다. 초 저녁엔 장작으로 불을 지펴서 바닥이 장판이 탈 정도로 뜨겁지만 새벽이 되면 냉기가 뼈 속에 스며들 정도로 추운 방에서 서로를 부등켜안고 잠을 자야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원 앞에 흐르는 계곡에서 얼음을 깨고 세수를 하고 나면 그 추운 새벽공기가 어찌나 상쾌하고 좋았던지…...
수요예배로 기억된다. 그날 밤은 동계 수련회 마지막 밤 집회였는데 학생회를 지도하시던 박 전도사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서 통성 기도를 시작했는데 그 기도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성령의 강한 역사로 30여분 동안의 기도시간동안 정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방언의 은사를 체험하였고 회개와 구원의 감격을 체험하는 역사가 나타났었다. 절제를 시키기 어려웠던 그 놀라운 기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모두 찬송을 하기 시작했다.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우리를 찾는 구주예수 날 오라 부르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 1, 2, 3절을 반복해서 몇 번을 불렀는지... 그리고, 나중에 1절만을 수도 없이 반복하여 찬송하였는데 처음에 앉아서 찬송하던 학생들과 교사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모두 일어나서 찬송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춤을 추게 되었다. 찬송 한 곡을 가지고 30분 이상을 부른 우리 모두가 절제를 하고 조용하게 주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때 그 좁은 예배당의 벽과 강단 등에서 놀랍게도 물이 줄줄 흐르는 것 이였다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인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첫 번째 은혜는 찬송의 샘이 터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그 분을 찬송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사람을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기 위한 존재로 태어났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찬송을 할 때 인간 그 존재의 목적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
찬송을 잃어버린 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사탄의 노예인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사람을 구원 하실려는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찬송을 읽어버린 인간에게 찬송을 회복시키는 역사. 그 기록이 성경인 것이다.
회복된 찬송,
찬양하는 사람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셔서 주인이 되시고 함께 내재하시는 성령의 감동에 의해 불려지는 찬송.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회복된 찬송인 것이다.
사도 바울의 서신 중에 아주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에베소서의 1장은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와 성령님과 함께 어떻게 인간에게 찬송을 회복시키는가에 관하여 기록함으로 그 첫 장을 시작하고 있다.
바울의 구원관. 교회론에 관한 대서사시라고 일컬어질 만큼 여러 서신 중에 교리적 진술이 완벽하고 논리적으로 서술된 에베소서는 그 외 그의 다른 서신들의 특징과 같이 1∼3장은 교리편 4∼6은 실천편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에베소서의 1장에서 사도 바울은 간단한 인사에 이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에게 구원의 은총을베풀고 계시는 가를 기록하고 있다. 3∼6절(성부 하나님의 선택), 7∼12절(성자 예수그리스도의 구속), 13∼14절(성령의 인치심). 성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선택하시고 성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단번에 제사를 드리시고 죄에서 모든 인생을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성령께서 인치셔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인도하시는 목적. 이유가 6절 후반부'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12절 후반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4절 후반부.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 ! 바로 모든 사람이 창조의 목적대로 찬양을 회복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구원받은 자는 기뻐 뛰며 주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감격하여 찬송을 부르게 된다. 이 회복된 찬송은 그 자체가 능력이여서 사탄의 역사를 파괴하고 영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힘이 된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것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자. 찬송을 회복한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인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찬양 사역자라는 이름으로 찬양을 통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대략 10만명 이상의 찬양대 지휘자와 반주자가 있다. (5만의 한국교회에 1명의 지휘자, 1명의 반주자만 계산한 숫자) 그리고, 천만이 훨씬 넘는 성도들이 있다. 천만 성도 모두가 아니더라도 10만의 교회음악 지도자들과 그 많은 찬양 사역자들의 찬양이 진정으로 회복된 찬양을 선포했고 지금 선포하고 있다면 한국 사회가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겠는가? 찬양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며, 영적 병든 자, 육신의 병든 자를 치료하는 능력인데 왜 우리민족 속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가? 요한 웨슬레, 찰스 웨슬레 형제가 찬양과 말씀을 통해 영국을 변화시켰듯이 우리민족은 그러한 영적 변화와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
"나의 찬송을 부르라"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라"
찬송의 목적이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인기, 명예를 위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면 더 좋은 찬양을 부르기 위해 필요한 물질을 주신다. 그리고, 그러한 찬양 사역자를 하나님께서 높혀 주신다.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찬송은 어떤 찬송인가? 그 기준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송이 그것이다.
가사의 내용이 가장 성서적이고 훌륭한 수준의 좋은 교회음악일지라도 찬양하는 사람의 중심에 성령께서 내제 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송이 될 수없다.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찬송은 소리(Sound)일 뿐이다. 음악적 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담아내지 못한다. 찬양하는 행위 그 자체가 능력일 수 없으며 음악 그 자체가 가진 그 많은 능력도 영적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찬양자의 심령에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찬양자의 음악적 능력과 그의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 그 찬송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신다.
자신을 찬양 사역자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찬양이 선포된 이후 다음과 같은 표적이 나타나야 된다.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자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 영 육 간에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야하고 역대하 5장에 기록된 성전 봉헌식에서 솔로몬 성가대의 찬양 후 그랬듯이 구름으로 임재 하셨던 하나님의 임재가 찬양 중에 나타나야 된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가야 된다. 찬양을 통하여 나타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기적을 한번도 체험한 적이 없다면 그는 자신을 찬양 사역자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찬양 사역자는 이미 영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훈련된 자여야 한다. 준비하면서, 연습하면서 자신을 찬양사역자라고 말 해서는 안된다.
나의 찬송을 부르라.
하나님의 찬송을 불러본 영적 체험이 있는 사람의 일생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일생을 책임지신다. 1978년 겨울 광주기도원에서 그 놀라운 찬송을 부르며 찬송을 회복한 학생들 중 지금 한국교회의 큰 일군들이 많이 있다. 여러 명이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고, 기독교 방송국 아나운서로, 영화 평론가로, 건실한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잡지사 사장 등으로 지금 한국 사회와 교회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 당시 경신교회 집사로 성가대 지휘자로 중·고등부 총무교사로 그 현장에 참여했던 이 부족한 종도 지금 모스크바에서 찬양을 잃어버린 러시아인들이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하여 선교사로 쓰임 받고 있다.
하나님 , 1978년 겨울 광주기도원의 그 들과 같이 러시아 민족이 영적 찬송을 회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