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역사적 전통을 잇는 개혁교회에 대한 이해
Ⅰ.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형성과 발전
1. 개혁교회
1)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유래의 전통
먼저 오늘날 한국에 널리 퍼져 있는 성전과 같은 건물 자체는 물론이고, 그러한 성전 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는 결코 교회가 아니라는 것부터 천명합니다. 종교개혁기의 타락한 로마카톨릭교회처럼 성전이나 건물을 교회의 중심으로 삼을 경우 이미 그 자체로서 성경의 교회관으로부터 멀리 타락한 것입니다. 각설하고 한국에서 대부분의 교회는 장로교회입니다. 장로교인들인 자신들의 신학적 유래의 전통을 스위스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운동에서 찾습니다. 당시 여러 곳에서 새로이 출범하고 있었던 신교(Protestant)의 지도자들은 당대의 로마카톨릭교회의 신조와 관행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한데 따른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2) 마틴 루터와 존 칼빈과의 신학 사상의 차이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에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종교개혁은 점차 독일을 넘어 스위스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중에 스위스에서는 비록 로마카톨릭교회에 비판적인 면에서는 같은 입장이었지만, 루터의 신학적 사상에 전체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었던 신학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개혁자들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루터를 따르는 교회는 예배의식과 성례에 대한 교리에서 어느 정도 로마카놀릭교회의 주장을 수용하는 편이었지만, 스위스 제네바의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을 따르는 교회들은 성경적으로 정확한 가르침만을 따랐습니다. 당시 루터는 “성경이 반대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입장이었지만, 칼빈은 “성경이 찬성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3) 개혁교회의 두 진영 : 루터교회와 개혁교회
루터와 칼빈 두 사람 모두는 위대한 개혁자였으나, 예배의식과 성례에 대한 견해에서 차이를 보였고, 이로 말미암아 개신교는 두 진영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는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른 전통을 가진 두 개의 개혁교회로 나뉘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각기 루터교회(Lutheran Church)와 개혁교회(Reformed Church)로 불립니다. 그런데 스위스 개혁교회 진영은 다시 크게 개혁교회(Reformed Church)와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로 구분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두 교회는 단지 서로 이름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같은 형제 교회입니다. 칼빈의 주도적인 해석에 따른 신앙교리와 교회생활의 전통을 따르는 진영에 대해 일반적으로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부르는데, 국가적 차원에서는 칼빈에게서 배운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세운 ‘프랑스 개혁교회’가 최초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1559년).
2. 유럽 개혁교회의 확장
한편,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개혁교회는 주로 스위스, 프랑스, 독일 라인강 유역에 위치한 지역 및 헝가리 등지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가장 확고히 자리를 잡은 곳은 낮은 땅의 나라 화란(네덜란드)이었습니다. 화란 국민들은 당시 스페인 지역을 다스리던 카틀 5세(Karl V, 1500-1558)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Felipe Ⅱ, 1527-1598)의 로마카톨릭교회의 신앙을 강요하는 학정에 맞서 정치적이고도 신앙적인 자유를 위해 피 흘려 싸운 끝에 마침내 개혁신앙을 쟁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6세기 하반기에,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근거한 개혁교회가 화란에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개혁교회 신자들은 17세기 초부터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됨에 따라, 그곳에 개혁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3. 개혁장로교회의 출현
또한 스위스 개혁교회가 발전하는 가운데서 다시 유럽 대륙을 벗어나 스코틀랜드에 정착하게 되는 개혁교회가 있었는데, 당시 교황제도와 감독에 의한 교권정치가 시행되던 데 반대하고, 장로회의에 의한 교회정치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는 이름을 취하게 되었습니다(1560년). 이렇게 스코틀랜드에서 장로주의 체제에 의한 개혁교회를 ‘스코틀랜드 개혁장로교회’, 또는 개혁을 생략하고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라고 부릅니다. 스코틀랜드에 생겨난 장로교회는 제네바의 신학자 칼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존 낙스(John Knox, 1514-1572)와 그를 뒤이은 앤드류 멜빌(Andrew Melville, 1545-1622)의 개혁에 힘입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는 잉글랜드에서 진행된 국가교회(성공회)의 개혁에도 공헌하게 되어, 웨스트민스터 회의(Westerminster Assembly,1643-1649)에 대표단을 파송하여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아일랜드에도 장로교회를 세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17세기 이후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지로부터 많은 장로교회 신자들이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됨에 따라, 미주 지역 여러 곳에도 장로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4. 미국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이렇게 해서 미국에는 자연스럽게 개혁교회와 더불어 장로교회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개혁교회는 일치신조로 삼고 있는 ‘벨직(또는 벨기에)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돌트 신조(신경)’를 교회가 믿는 신앙고백으로 채택하고 있고, 장로교회는 주로 ‘웨스트민스터 삼대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대신앙고백문답(또는 대교리문답)’ 및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또는 소교리문답)’을 교회가 믿는 신앙고백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Ⅱ. 한국의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이상으로, 종교개혁을 통하여 출현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장로교회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이 둘 중에서 신앙적인 면과 전치적인 면에서 주로 미주 장로교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간접적으로는 유럽의 화란 개혁교회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실제로는 장로교회만이 압도적으로 세워지고 있는 편으로, 개혁교회는 극히 소수를 제외한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럽 개혁교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경향이고, 그에 따라 아직 장로교회에 비하면 거의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여하튼 이제 한국 땅에도 개혁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래의 신학사상이 개혁교회의 그것과 같다는 데 근거하여 ‘개혁장로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교단이 생겨났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렇게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양측의 교회는 사실상 신앙고백과 교회정치 면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기반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백 년 동안 각기 다른 역사적인 배경과 환경 가운데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원리를 지키고 적용해 가는 실천신앙의 측면에서는 나름 고유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습니다.
Ⅲ. 정통 개혁교회의 신학에서 벗어나 있는 한국장로교회 : 이교화된 기독교
그런데 한국에서의 장로교회는 대체적으로 정통 개혁신앙을 많이 벗어나 있는 편으로, 심지어 본래의 개혁된 교회로서의 장로교회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성전이라고 하는 건물 중심의 교회가 되어 버렸고, 이신칭의도 신앙주의로 변질됨에 따라, 거의 ‘사이비 종교단체’로 전락한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이교화’,‘ 곧 ’이교화 된 기독교‘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무엇인지를 잘 배워서 헛된 신앙생활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
*본 글은 주언개혁교회(장수민목사 시무)의 안내서인 '주언개혁교회(Guide Book for the Life of Jooeon Reformed Church)'에 의해서 허락을 받아 작성된 것으로, 글의 내용과 전개를 그대로 따르면서 부천개혁교회에 보충, 보완이 필요한 부분만 더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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