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new. 2006년
[앞면] 호치민 초상 [뒷면] 호이안의 일본교
호이안의 일본교 |
호이안(會安)은 베트남 중부의 역사도시이다. 다낭에서 Han강을 따라 남동쪽으로 약 30km 거슬러 올라간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오랜 상업도시 호이안은 초기 서양 무역상들에게 파이포(Faifo)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17-19세기에는 마카오, 말라카와 함께 번성했던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국제무역항으로 중국, 일본,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필리핀, 인도네시아, 타이,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의 배들이 고급 비단과 종이, 도자기, 차, 설탕, 후추, 중국 약제, 상아, 밀랍, 나전, 래커, 유황 등을 구입하고자 빈번히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호이안은 원래 2-15세기 중부 베트남에 자리잡았던 참파왕국의 상업의 중심지였다. 당시에도 호이안은 중국과 인도, 중동지역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도시로 번성했었다. 그러다가 16-17세기 일본인 상인들이 정착하여 그들의 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자취가 희미하지만 일본인 거리로 번창했던 한때 이곳에 자리잡은 일본인들의 수는 천명을 넘었다고 한다. 1637년 일본의 쇄국 이후 일본인들의 거리는 쇠퇴했으나 지금도 일본인들이 세웠다는 ‘내원교’(來遠橋 Cau Nhat Fan)라는 다리가 모습은 바뀌었지만 아직 남아있고 일본인 묘지 몇 기와 석비 등 몇몇 흔적들이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호이안은 중국인 거리이기도 하다. 이곳은 베트남에서 중국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으로 17세기 말경에는 중국인들이 이 도시의 주인으로 등장했다. ‘호이안에는 각국 상품들이 모이는 큰 항구가 있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 3, 4개의 마을들이 이어져 있다. 이 길을 중국인 거리라고 하는데, 길 양측에 점포들이 빈틈 없이 늘어서 있다. 주민들은 푸젠성(福建省) 출신들이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지금도 호이안의 거리에는 중국인들이 정착하며 세운 광동화교회관(Quang Dong Hoi Quan : 1786년 건축, 1855년 재건), 화교총회관(Chua Ba : 1773년 거립, 호이안의 다섯 화교회 - 푸젠, 광둥, 하이난, 차오저우, 하카 - 가 사용), 푸젠화교회관(Fujian Hoi Quan, 1900년 건립), 하이난화교회관 (Hainan Hoi Quan, 1883년 건립) 등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1653년 건립되었다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Chua Ong)도 남아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바탕위에 형성된 고색창연한 호이안의 가로경관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800여 역사적 유물들이 공식적으로 지정되었으며, 건축물들의 개축, 높이에 대한 제한 등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호이안의 역사적 지구는 Thu Bon강을 따라 동서로 달리고 있는 Bach Dang, Nguyen Thai Hoc, 그리고 Tran Phu 등 세 가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중 Tran Phu가 가장 오래된 길로서 일본인들이 세웠다는 내원교(일본교라 부르기도 한다)도 이 길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나머지 두 길은 19세기 중반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댓글 재작년에 동남아시아사 수업을 들으며 호이안과 日本町을 주제로 레포트를 썼던게 기억이 나네요~ 좋은 내용의 글 잘 보고 갑니다 ^^
어쩜 사진이랑 똑 같네요. ^^ 도안소재의 역사적 유물을 하나씩 찾아보는것도 훌륭한 공부가 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