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렇게 나의 사상,나의 신념,나의 가슴속,을 통쾌하고 감동적으로 대변해주시는지
정말이지 너무고맙습니다. 노무현,유시민 그리고 이나라의 모든 양심개혁세력들이 승리하는
그날이 반드시 올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화염병 들고 바리케이드로…
노무현에 대한 반칙 응징하겠다"
[ 인터뷰]유시민의 '시민선언'…내가 절필한 이유
'색깔' 있는 칼럼으로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칼럼니스트이자 시사평론가인 유시민(43)씨가 돌연 '절필 선언'을 했다. 그동안 <오마이뉴스 2002> <경향신문> <프레시안>등에 정치 칼럼을 정기·부정기로 연재하던 유씨가 아예 당분간 '칼럼'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처음 기자에게 밝힌 절필 사유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 "한가하게(?) 칼럼을 쓸 수만은 없다"고. 말 그대로 유시민의 '시민 선언'이었던 셈.
며칠 후 만난 유씨는 "그라운드(정치판)에서 선수들이 반칙을 하는데도 심판이 제지하지 않는 불공정한 게임이 지속되고 있어 해설을 때려치고 그라운드의 룰을 세우려 운동장에 뛰어들려고 한다"며 비유적으로 '절필 이유'를 설명했다.
유씨는 "국민후보로 뽑힌 노무현을 아무런 이유없이 낙마시키려고 하는 민주당 반노(反盧)·비노(非盧)그룹의 행동은 국민들에 대한 배신 행위이자 사기 행위"라며 "이같은 비민주적인 행위에 대해 규탄하고 항의하는 시민·지식인 사회의 목소리를 조직하는 일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학생운동 시절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로 뛰어드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부연했다.
지난 7월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편집국에서 만난 유시민씨는 1시간 여 동안 격한 목소리로 정치권, 특히 민주당 내부에 대해 메스를 들이댔다. 그는 '정치적인 편향'에 대한 비판에 대해 당당히 "나는 노무현 지지자"라며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따져 물었다. 유명 칼럼니스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을 지키고자 '전투 현장'에 나섰다는 그. 인터뷰 내용이 다소 길지만, 전후 맥락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 왜 절필 선언을 했나.
"(웃으며) 절필이라고 하니까 살벌한 느낌이 든다. 정확하게는 칼럼니스트로서 매체에 글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칼럼니스트는 관전자이자 해설자다. (정치를 스포츠에 비유하며) 그런데 운동장 안에서 공공연하게 반칙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심판이 반칙하는 사람 편을 들고 있다. 떳떳하게 경기하는 선수가 발길에 채이고 밟히고 모욕당하고 있는데도.
그런 상황에서 중계석에 앉아 이런저런 해설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내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중계석을 박차고 나와 운동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해설자가 해설을 하다가 말고 경기장에 내려가 한바탕 부닥치고 나서 다시 (중계석에) 올라와 해설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 그럼 선수로 뛰겠다는 거냐, 심판을 보겠다는 거냐.
"심판에게 '심판 똑바로 봐' 이렇게 얘기하고, 반칙하는 선수에게 '너 반칙하지마'라고 얘기하고. 반칙하는 선수를 규탄하는 관중을 조직하고…. 할 일은 많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달라.
"정당개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경선, 당·정 분리 등을 제도화했던 민주당에서 지금에 와서 국민경선을 짓밟고 훼손하고 있다. 그런 행위를 언론들은 비판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칙을 하는 사람이나, 반칙을 당하는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며 중계방송을 하는 것이다.
국민경선 후보가 아무런 잘못 없이 당 안에서 모욕을 당하고 배척 당하고, 냉대받고, 훼손 당하는 사태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비쳐볼 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나서서 이런 불공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서 칼럼니스트를 집어치우고, 국민경선의 취지를 훼손하는 모든 행위를 규탄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일 생각이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조직하는 일에 뛰어들 것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유시민은 노골적인 '노무현 지지자'이고, 편향돼 있다는 비판이 있다.
"(나는) 편향됐다.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유력 언론사의 논설위원이나 데스크 칼럼을 쓰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이회창 편을 들고 있다. 심지어 없는 사실을 조작하고, 있는 사실을 왜곡해서 노무현을 흠집내고 공격하고 모욕을 주고 있다. 반면 이회창은 온건하고 우호적으로 써준다. 불공정한 게임이다.
원칙적으로 칼럼니스트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 안한다. 더욱이 지금처럼 (조·중·동이) 부당한 방법으로 '노무현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노무현 지지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 문제는 칼럼니스트가 정치인의 편을 들고, 안 들고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하느냐'는 내용이다. 그래야 논박하고 방어하고 토론할 수 있다.
나는 명백히 이회창씨가 대통령 되는 것보다 노무현씨가 되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 좋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 사실을 조작하거나 있는 사실을 왜곡해서 이회창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누구든 나에게 문제제기를 하면 성실히 내 입장에서 방어하고 토론한다. 나는 광장에 나와 있다. 그러나 조·중·동 칼럼니스트들은 대부분 비판하거나 항의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건 비열하고 무책임한 행위다."
- (노무현이 어떤 행동을 하건 간에 의도적으로 'DJ의 양자' '말 바꾸기' '말 못하는 쪼다'라는 세 가지 틀에 끼워 맞추는) '<조선일보> 프레임'에 언론과 지식인이 갖혀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겨레>나 <경향신문>조차 그렇다고 비판했는데, 다소 비약된 논리 아닌가.
"(<한겨레> 기자들) 본인은 잘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가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지난 석달 동안 세 가지 틀 안에서 노무현을 공격했다. 첫째, 한나라의 기본 구호인 'DJ 양자론'이다. '김대중=부패정권=노무현'이라는. 노무현이 DJ 정책을 옹호하면 DJ 양자라고 몰아 붙였다. 둘째, 노무현이 DJ 아들 문제를 비판하면 '말 바꾸는 사람'으로 내몰았다. 셋째,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면 '말 못하는 쪼다'로 취급한다. 이런 프레임 안에서 노무현의 이미지를 만든 게 <조선일보>의 프레임이었다.
지난 3월 김대중 <조선일보> 편집인이 마포포럼에 참석해 (DJ가 노무현을 후보로 밀고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런 다음 신문에서 음모론이 공론화됐다. 그러자 <조선일보>가 음모론의 실체를 밝히라고 주장했다. 자가발전이고, 부도덕한 짓이다.
이 '음모론'은 (<조선일보> 프레임의 근간이자, DJ가 노무현을 후보로 만들었다는) 'DJ 양자론'의 원형이다. 김대중 편집인이 처음 공개적으로 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때부터 <조선일보>는 노무현을 DJ의 양자로 몰고 갈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노무현이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한겨레>가 보도했던 '노무현 위기론' 시리즈나 노무현의 햇볕정책 발언에 대한 사설 등을 보면, 노무현을 낙마시키려는 쪽의 정치적 이해 관계를 여과없이 반영하고 있다. 반칙한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안하면서, 반칙하는 사람을 껴안고 가지 않는다고 노무현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보도 태도다.
노무현이 'DJ 자산-부채 승계론'을 주장했는데, 부채를 승계한다는 건 잘못된 정책일 경우 '나도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DJ 정책을 비판하면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겠다고 해놓고 말 바꾼다'고 지적한다. <한겨레>도 그런 보도 태도를 보였다. 기본적으로 <조선일보>가 만들고,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아류로 따라붙은 '프레임'에 기자들이 갇힌 것이다.
정치인들 사이의 갈등을, 반칙의 유무를 따지지도 않고 등가(等價)로 보도하는 건 잘못이다. 기자들은 정치 정보의 중요성을 판단하고 취사 선택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잣대'를 가져야 한다. 그 잣대가 없어 보인다. 민주당 안 갈등은 있는 그대로 현실이고, 그 누구의 잘잘못도 없고, 신문은 사실 그대로만 보도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건 <조선일보>식이다. 나는 반칙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고 있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 노무현이 후보가 된 뒤의 '경솔한' 행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YS를 찾아간 일이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 등은 노무현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는데.
"YS를 만나서 상도동을 갔던 일은 정계개편을 시도했던 것이고, 결국 좌절됐다. 이는 정치적 실패이고, 노무현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때문에 실망 매물이 쏟아진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반복해서 절을 한 것이나 시계 얘기 등은 과공비례(過恭非禮)다. 가볍게 얘기하자면 노인네(YS)의 심기를 맞춰준 것이다. 그 때문에 노무현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굽신거리는 것으로 비쳐졌지만, 대통령 후보로서의 지지까지 철회할 문제는 아니었다고 본다.
햇볕정책은 다른 문제다. 노무현이 중요한 걸 제기했다. 햇볕정책의 내용은 가져가되 오해가 있는 용어는 바꾸자는 것이다. 북한도 싫어하고, 우리에게도 뭔가 퍼주는 인상을 주고. 나머지는 이전부터 줄곧 해왔던 얘기였다.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정치적 쟁점으로 다룰 문제를 '말 바꾸기'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가 노무현의 '안 시장'이란 발언을 '에이 쌍'으로 잘못 보도했던 것과 같다. 그렇게 들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들리는 것이다. 그게 <조선일보> 프레임과 같은 덫이고 자기최면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노풍(盧風)'이 잦아든 것이 외부 요인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노무현의 문제는 없는가.
"노무현은 양김(DJ·YS)과 같은 지도자가 아니다.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15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도 계보를 만들지 못했던 사람에게 석 달 안에 자기 계보를 만들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걸 기대하고 노무현을 지지했다면 그건 착각한 것이다. 노무현은 다른 장점 때문에 뜬 사람이다. 노무현은 (돈과 공천권 등을 장악한) 계보 지도자로서 덕성이 없는 사람이다. 그걸 원한다면 다른 정치인을 지지하는 게 맞다.
노무현은 기존 지도자를 모든 면에서 능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무현이 표방하는 가치, 그가 체현하는 문화가 우리가 지향하는 시대의 흐름과 부합하는 면이 있어 그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노무현은 완벽함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국민경선을 통해 공당의 후보가 됐다면 (그 후보에 대한) 여러가지 결함에 대한 지적이 안팎에서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그럴 때 같은 당 소속이라면 당연히 밖에서 비난할 때 옹호하고 보완해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도 사상이 의심스럽다거나 저질이라는 둥 주도적으로 공격을 한다. 이 때문에 노무현의 결점이 두드러져 보이고 노무현의 장점은 가려져 보인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민주당은 정당이 아니라,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임시로 동거하는 패거리 집단에 불과하다."
- 한화갑 대표가 지난 7월 30일 '노무현 후보의 사퇴'를 전제로 한 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뉘앙스의 '백지신당론'을 주장했는데.
"한 대표가 당 대표로서 노무현 후보의 지도력을 세워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당에서 벌어진 수많은 반칙 행위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비판한 적이 있느냐. 대표로서 지도력이 의심스러운 사람이다. 그가 노무현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느냐. 그런데 지금 와서 노무현의 지지율 하락을 이유로 (후보·대표) 모두 사퇴하는 백지신당을 이야기한 것 아니냐.
노무현의 지지도는 높을 때 60%에 달했고 지금은 30∼35% 수준이다. 민주당은 가장 높을 때가 30% 약간 못 미쳤고, 지금은 20% 미만이다. 후보가 당보다 지지도가 2배 가량 높았다. 노무현 지지도는 민주당 전통 지지자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이 섞인 것이다. 이에 비해 이회창은 한나라당 지지도는 당보다 약간 더 나오는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을 제끼고 신당을 만든다면,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 가운데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절반 가량의 사람들이 등을 돌릴 것이다. 그럼 15%의 정당 지지도에다 정몽준, 박근혜, 이인제 등이 주도하는 모양이 될 텐데, 그나마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표방했던 기존 민주당과는 다른 '지역연합 정당'에 불과하다. 원래 이인제가 주장했던 '호남+충청 정당'이다.
이런 당으로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냐. 신당·재창당·백지신당 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고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후보·대표가 모두 사퇴하면 당은 비상기구가 만들어지겠지만 후보에겐 남는 게 없다. 결국 '노무현, 너 혼자서 보따리 싸라'는 이야기 아니냐. 그 얘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국민경선을 했느냐. 국민경선은 민주당의 정치적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서 한 것이고, 노무현이 당선되면서 어느 정도 확대되지 않았느냐. 국민경선 때 국민들의 요구는 '민주당 개혁'이었다. 그같은 국민 호응을 정면으로 짓밟고 경선을 무효로 돌리고 국민후보를 쫓아내고 자기들끼리 당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국민경선을 채택했던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다. 결국 국민들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한화갑 대표 기자회견 후 노무현 후보도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는 신당이라면 참여하겠다"고 밝혔는데.
"호박에 줄 그어놓고 수박이라고 한다고 해서 속을 사람은 없다. 민주당을 신장개업해서 다른 당이라고 한다고 믿을 사람이 있겠나.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는 채 선거철마다 신장개업 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짓이다. 현재 평당원 처지인 노무현이 내용이 뒷받침되는 신당을 만든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노무현이 당에 무슨 권한이 있느냐.
민주당 국회의원 구성을 봐라. 호남+수도권이다.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개헌론·재창당·선 후보 사퇴를 주장하는 박상천·정균환 등은 DJ 덕분에 전라도에서 국회의원을 서너 차례 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과연 무슨 의미 있는 일을 했느냐. DJ 신임만 받으면 개똥이건 소똥이건 전부 할 수 있는 3∼4선이다. 그게 무슨 자랑스런 훈장이냐.
이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당에서 어떻게 노무현의 컬러에 맞는 당을 만들 수 있겠느냐. 또한 후보 자리를 위협 받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후보가 어떻게 자기 지지자를 끌어들여 개혁신당을 만들 수 있겠느냐. 그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려고 한다면 합법적으로 해라. 당헌·당규상 규정된 선대위가 구성되면 인사·재정 권한이 후보에게 넘어가고, 당의 일상적인 의사결정 기구가 정지된다. 그러면 노무현 후보가 선대위를 자신의 컬러에 맞게 개혁적 이미지로 구성할 수 있지 않느냐. 그게 제도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유일한 방안이다."
-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8·8 재보선 이후 쪼개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에게는 분열상으로 비쳐질 텐데.
"민주당은 분열할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당은 정당이 아니고 임시적으로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패거리 집단이다. 사실상 민주당의 분당 상태는 불가피하다. 노무현이 선대위를 구성할 경우 반노(反盧)·비노(非盧)그룹을 선대위에 배치하겠나? 안한다. 바뻐 죽겠는데 맨날 뒷다리 거는 사람을 배치해서 어떻게 하겠나.
그런 점에서 사실상 분당 상태인데…. (반노·비노쪽에서는) 전당대회에서 재신임을 묻던가, 낙마시킨다거나 하는 방법들을 강구하겠지. 그렇게 되면 노무현이 당에 남건 남지 않건 간에 노무현 지지자들은 민주당에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은 '배신'에 대한 원한을 풀기 위해 사생결단을 할 지도 모른다.
노무현이 민주당을 지키고 반노·비노가 당을 뛰쳐 나가는 정계개편도 예상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노무현이 후보를 사퇴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면 법적으로 쫓아낼 수 없다. 그럴 경우 반대 그룹들이 뛰쳐나가 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 노무현이 기득권에 연연한다는 비판에 신경 쓰지 말고 확실하게 의미있는 재경선 도전자가 나서기 전에는 후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본다.
당 지도부 사퇴한다고 하는데, 후보까지 사퇴하면 무책임한 정당이 돼 버린다. 그럴 경우 민주당은 완전한 아노미·카오스(혼돈) 상태에 들어간다. 노무현은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민주당 지켜야 한다. 노무현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당을 떠나는 분당이라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화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밤낮 싸우는 정당보다는, 규모가 반으로 줄더라도 단결하고 결속해서 나가는 정당이 나라를 위해서도 좋다."
- 정권재창출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반창(反昌)연대'에 대해 어덯게 생각하는가.
"반창연대를 왜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그건 이회창이 추구하는 가치와 대별되는 새로운 가치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 도대체 박근혜·정몽준·이인제·박상천·정균환·한화갑 등이 모여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들이 이회창과 특별히 구분되는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반창연대는 필요할 수도,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안티(anti)테제로써가 아니라, 이회창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재창출'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가치의 차별이 있느냐. DJ를 따라 다니는 아류 집단의 일부가 들어가 있다는 것 말고 어떤 연속성이 있느냐. 그건 정권재창출은 아니다. 이회창이 집권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정치다.
정당의 목적이 집권이라는 잠꼬대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외국의 예를 들어 미안하지만, 집권 연정의 주니어 파트너인 독일 녹색당은 1980년대 초부터 지방의회에 진출하기 시작해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주체가 되어) 집권을 하지 못했다. 녹색당은 전체 의석 수가 6∼7%인 미니 야당이었지만, 사민당과 기민련 등 거대 정당의 환경정책을 다 바꾸어 놓았다.
녹색당이 야당으로 있으면서 환경공약을 지속적으로 내놓았고, 거대 정당들은 표를 의식해 자기 당 환경 강령을 녹색당에 가깝게 수정해왔다. 정당은 이처럼 정치적인 꿈과 이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어야 한다. 집권당이 되면 그 꿈은 더 빨리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겟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못 이루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정치 상황을 보면 집권하기 위해서 꿈을 버리는 쪽으로 가는 정치공학이다. 신당·재창당·반창연대 등을 앞세우는 것은 정치 모리배 집단·정치업자들이나 할 일이지, 정치지도자가 할 일은 전혀 아니다. 나도 이런 말을 직접 하기 위해 칼럼니스트를 집어치운 것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노무현 흔들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흔드는 쪽의 정치적 이해 관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미 '노무현 흔들기'를 지나 '노무현 죽이기'에 와 있다. 노무현이 싫은 것이다. 반노·비노 그룹은 노무현의 스타일·철학·리더십·정치적 처신 등이 싫은 것이다. 그들은 국민경선 과정 때 이인제쪽에 섰던 사람이거나 우호적인 사람들이다.
흔드는 입장에서 보자면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로 살아남아 대통령이 될 경우 지역구도 해체가 우려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특히 호남의 경우 2004년 총선에서 독자생존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면 시골군청부터 청와대까지 한나라당 일색 아니냐. 2004년 총선에서 국회·청와대·지방의회를 모두 장악한 거대 여당과, 견제를 주임무로 하는 제1 야당이 붙는 구도다. 그들 입장에서는 어느 게 유리하겠느냐.
일부 양식있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조차 자기가 나서서 노무현을 옹호하는 위험을 떠안기 꺼려하고 있다. 반노·비노는 날마다 떠들고 다니며 기세등등하고 친노는 조용하다. 이게 노무현 흔들기의 진행과정이다. 중립적인 입장이거나 친노는 8·8 재보선 후 재경선·후보 사퇴 요구가 거세질 때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대의를 생각한다면 당 지지도의 2배 이상의 지지를 받는 국민경선 후보를 옹호하는 게 옳다. 대선에서 이기건 지건 간에. 그러나 민주당은 대의가 실종됐다. 오로지 이해관계만 남아 있다. 개혁을 트레이드 마크로 여의도에 입성한 386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냐. 지금은 권력이동, 정파 간의 대립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잣대를 갖고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386 국회의원들이 침묵하는 것은 정치적 배신행위다."
- 노무현 후보가 중간에 낙마할 경우에는.
"혼돈 상태가 올 것이다. 정치적 암흑·절망·냉소가 올 것이다. 노무현이 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을 제안해도 누가 들어올 지 모르겠다. 정몽준 정도가 유일한데, 그가 붙어서 떨어지고 난 뒤 노무현의 선대위원장을 할 각로를 하고 들어올까. 그렇지 않으리라고 본다.
결국 노무현을 낙마시키는 유일한 길은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으니, 재보선 후 전당대회를 여는 방법일 것이다. 이때 한화갑 대표가 노무현을 적극 옹호한다면 모르겠지만, 방관하거나 반대쪽에 서면 재신임을 동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게 노무현이 유일하게 낙마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노무현 낙마가 현실화된다면, 반노·비노그룹 주도로 신당을 만들텐데 이때 후보는 정몽준 정도다. 과연 정몽준이 이회창을 이길만한 매력을 갖고 있는가. 이 당은 집권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이회창의 집권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뿐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지지자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파괴적인 사태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 우선 국민경선 후보를 낙마시킨 민주당의 배신행위에 대해서 응징할 것이다. 낙마를 주도했던 의원들에 대한 안티와 낙선운동 등이 집요하게 벌어질 것이다. 또한 20∼30대 등 젊은층의 정치 냉소가 팽배해 질 것이다. 또한 이들의 대리만족 때문에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의외로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건 간에 정치의 신명은 사라지고 허무주의가 확산될 것이다."
- 이번 대선이 어쨌든 노무현-이회창 구도로 갈 경우 판세를 어떻게 예상하는가.
"'노-창 구도'는 인물 구도다. 노무현이 여유있게 이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내부로부터 시달리면서 선거 전에 많은 흠집을 받은 채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이미 데미지를 입었고, 조·중·동의 공격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이런 갈등을 내부가 증폭시키면 싸움이 어려워진다.
이회창씨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분이 '내가 대한민국에서 엄청 잘난 사람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 이외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면 5년 동안 무지하게 고생을 할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그 날부터 퇴임까지 굉장히 힘든 나날을 보낼 것이다.
왜냐하면 이회창씨와 그를 뒷받침하는 집단은 이미 5년 전에 실패했던 집단이다. 그 세력이 그대로 이번에 정권 탈환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대통령의 패러디가 일반화될 정도로 세상은 많이 변했다. 정당화되지 않는 권위로 밀어붙이는 정치는 이제 불가능하다. 통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면 노동자나 지식인들과 갈등하고 그들의 반격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문제를 이회창씨가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이 분이 도덕적 지도력이 없는 사람이다. DJ는 막판에 아들 문제로 무너졌지만, 이회창은 아들의 병역문제와 동생의 세풍관련 등 도덕적 흠결을 처음부터 안고 출발하게 된다. 사람들이 정부에게 대들 때 '까불지마' 그러면, 그들은 '웃기고 있네' 이렇게 나올 것이다.
한나라당은 극우정당이고, <조선일보>는 극우신문이다. 물론 우익도 도덕적 정당성을 갖고 있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해 본 경험이 있으면 지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한국의 우익은 도덕적 지도력이 없다. 사회집단의 이해 관계가 분출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대응은 '법대로'밖에 없다. 이회창이 원해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것 외에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신(新)공안정국이 형성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시민사회도 고생을 되게 하겠지만, 이회창도 정치적으로 고생을 굉장히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을 알고도) 국민들이 (이회창을)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노무현이 지도자로서의 장점과 덕성을 선 보이지도 못한 채 (내부) 비난과 공격, 뒷다리 걸기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대선을 치러 낙마하거나 대선에서 떨어진다는 게 비극일 뿐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장상 총리서리에 대한 국회 인준이 부결됐는데.
"개인적으로 부결되기를 바랐다. DJ가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는데, 나는 대통령이라면 하야해야 한다고 본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애국을 더하겠다고 청와대에 남아 있느냐. 지금 무슨 대통령의 영(令)이 서나. 둘째 아들 홍업씨 문제는 DJ 책임이다. 그에 대해 DJ가 밝힌 입장을 보면, 나는 DJ가 정상적인 판단력 잃었다고 본다.
지금 대통령 자리에 있지만 실제 통치하고 있지 못하다. 비서들이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이 지난 개각 전에 국무총리와 법무·행자부 장관은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아서 하라고 건의했는데, 깡그리 무시했다. 임기중 문제가 됐던 사람을 다시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함승희 의원 지적대로 국민에게 도전한 것이다.
DJ는 지금 국민들과 맞서고 있다. 도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상황을 봐도 국내 정치에 대해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총리를 기용하려면 힘이 있을 때 했어야 한다. 레임덕 때문에 대통령이 있으나마나 한 상태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장상씨가 도덕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 주류층 삶의 패턴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분이다. 주류들은 다 그렇게 산 것이다.
(총리 인준 과정에서) 논란을 피하고 무난하게 처리하려면 한나라당과 협의했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건 청와대가 아니라 한나라당이다. 이회창씨가 대한민국을 실제로 통치하고 있다. DJ는 분수를 알아야 한다. 법적으로는 대통령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이 아니다. 그런데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 아니냐. 그게 (총리 인준) 부결 사태로 온 것이다. 장상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김 대통령 인사에 대한 심판으로 봐야 한다."
- 왜 노무현 후보를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인가.
"나는 현재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노무현 후보가 낙마하느냐, 아니냐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10년 정치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시민사회가 함께 국민후보를 만들었기 때문에 책임의식을 느끼고 나서야 한다. 바른 길을 지적하고 요구하고, 이런 목소리를 조직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회창이 대통령 되는 것은 그 분이나 나라를 위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이 이대로 나가서 낙마하고, 민주당이 이상한 당으로 바뀌고, 정치 허무주의에 빠지고, 이회창이 집권하고…. 이런 상황이라면 12월 19일 어떤 풍경일까. 저녁에 개표방송을 틀었는데, 투표가 끝나자마자 출구여론조사 결과 '이회창 압승' 예상…. 그날 저녁에 내가 뭘 하겠느냐. 홧김에 소주를 마시겠지.
계속 칼럼쓰고 관전자로 머물다 그런 날을 맞이하면, 그 순간 어떤 느낌이 들까. 내가 명색이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으로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할 도리를 과연 다 한 것이냐는 회한이 가슴을 칠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안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공공연한 반칙이 자행되는 과정에서 국민후보가 낙마하고, 이 사태를 그대로 관전자로 보면서 방관하다 12월 19일에 홧술이나 마시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끔직하다.
지금 나는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로 뛰어드는 심정이다. 옛날 (학생운동 시절) 을지로에서 유인물을 만들고 화염병 제조해 반입하고, 던지고 그럴 때…. 정말 하기 싫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의 유신치하, 5공화국 때 그런 일조차 하지 않고 그 시대를 통과하면 너무 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하기 싫어도 했다.
지금이 딱 그런 심정이다. 극히 주관적인 건데. 자기 성질 못 이겨서…. 칼럼니스트는 사실 괜찮은 일이다. 하고 싶은 얘기 맘대로 하고, 어떨 때는 지사 대접도 받고. 힘 센 신문에 세게 글을 쓰면 높은 사람이 아는 체도 해주고. 그럭저럭 밥 먹고 살고, 괜찮다. 해피하다. 그런데 다 집어던지고 (이런 일을) 굳이 해야 되느냐는 생각이 안 든 것도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좀 망가지기는 하겠지만 죽기야 하겠느냐."
- 노무현 후보와의 개인적인 인연은.
"노무현을 비교적 잘 안다는 것도 내가 이런 일에 뛰어든 요인 가운데 하나다. 15년 전쯤 처음 봤는데, 그는 지금도 기본적인 심성이 그대로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88년께 노무현이 국회 노동위에서 활동 때 일이다. 대우자동차인가 어디선가 노조를 결성했는데 노동사무소에서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고, 그 사이에 유령 노조가 만들어졌다.
그는 남들처럼 폼 나게 장·차관을 상대로 하지 않고 노정국장을 불렀다. 노무현은 내가 법률가이니까 유권해석을 하면 어떻다는 식으로 논리적으로 말하는데도 노정국장이 계속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며 버티더라. 그때 노무현이 잡고 있던 마이크 받침대가 드르르 떨리는 걸 봤다. 탁자에 부닥치는 소리가 났다.
'저 양반이 저거 집어던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됐다. 한참 그러더니 노무현이 업무보고 서류를 확 집어던지면서 분개하더라. 정회하고 위원장이 와서 만류하고. 그때 그걸 보고 있던 당시 민정당 여당 보좌관이 내게 와서 노무현을 잘 아느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까 인사 좀 시켜달라고 했다. 남자 대 남자로서 반했다면서.
그때 나는 저 사람은 정말 단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일편단심. 자기 일도 아니고. 당시 그런 건이 수십수백 건씩 올라올텐데 그걸 갖고 30분 이상 노정국장을 직접 불러 따지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답변이 나왔을 때 자기가 풀어줄 수 있다는 무력감 때문에 부들부들 떠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끔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잘 모른다는 느낌도 든다. 노무현은 한 마디로 학습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발전하는 사람이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된 다음 당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대통령 후보는 처음 봤다고 하더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후보가 되기 전에도 봉투를 잘 주고 후보가 되면 금일봉을 돌렸을 것이고, 그게 지금까지 대통령 후보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뒤 노무현이 당에 가서 맨 먼저 한 이야기가 '판공비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음성적 정치자금으로 후보 활동을 할 수 없다며. 그처럼 합리적인 사람이다. 오가는 봉투 속의 끈끈한 유대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물론 그 때문에 '너무 드라이하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배반'당한 국민경선제-경향신문 칼럼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을 실시했다. 이것은 당권-대권 분리와 함께 패거리정치와 보스정치를 청산하는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서 커다란 정치사적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은 국민경선의 취지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스스로 짓밟고 있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사태이다.
민주당은 당원과 국민이 함께 참여한 선거를 통해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노무현을 당의 후보로 확정함으로써 민주당은 국민과 정치적 계약을 맺었다. 경선 과정에서 그가 제시한 정치적 목표와 정책을 승인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대선을 치를 것임을 국민과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사태를 보면 민주당은 이런 약속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다.
이인제씨를 비롯한 일부 낙선한 경선후보 진영은 끊임없이 노후보를 공격한다. 민주당을 떠나 다른 정치세력과 손잡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힌다. 백의종군하겠다던 말은 거짓말이었다. 자기 손으로 후보의 사상과 인격을 비난함으로써 정치적 지도력을 의심받게 만들어 놓고, 그 때문에 지지율이 하락하면 다시 지지율 하락을 명분으로 후보교체를 요구한다. 이것은 변명할 여지없이 명백한 경선불복이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짓밟는 반칙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안에서는 이런 반칙행위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는 개인과 계파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데 골몰하고 있다. 언론도 다르지 않다. 소위 ‘반노 그룹’이 반칙을 할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현실을 인정하고 싸움의 진행상황을 중계하면서, 반칙하는 경쟁자와 왜 화합하지 못하느냐고 오히려 반칙을 당한 노무현을 질타한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을 상식에 비추어 판단해 보라.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게임인가. 이런 반칙을 그대로 용납하는 사회에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가.
민주당 지도부와 일부 계파 대표자들은 “정당의 목적은 집권”이라고 말한다. 잠꼬대만큼 허황한 주장이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활개치는 한 대한민국 정치는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정당의 목적은 집권이 아니다. 정당은 정치적인 이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며, 집권은 그 꿈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집권하지 못해도 야당으로서 자기의 정치적 지향을 밀고 나갈 수 있다. 10개월 전까지 민주당의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도 수십 년 동안 야당의 지도자로서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으며 실제로 많은 업적을 이루었지 않은가.
민주당의 집권,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절대선은 아니다. 민주당과 노후보가 할 일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나뿐이다. 자신을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뚜렷하게 세우는 것이다. 그것을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받아들일지 여부는 국민이 결정한다.
8·8 재·보선이 끝나면 민주당은 신당 창당과 개헌론, 노무현 후보 선사퇴와 재경선 등 정파의 이익을 위해 국민경선의 정신을 부정하는 갖가지 주장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될 전망이다. 만약 노무현 후보가 낙마한다면, 국민경선제 도입으로 활로를 찾았던 한국정치는 12월 대선의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의 뜻이 아니라 지역주의적 정치공학이 지배하는 캄캄한 동굴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에게 묻는다. 이럴 것이라면 국민경선을 도대체 뭐 하러 했는가. 당신들은 2백만명의 경선참가 신청자와 7만여명의 선거인단을 놀림감 정도로 생각하는가.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민주당 국민선거인단에 당첨되어 한 표를 행사한 일이 있는 나는, 무시당하고 농락당했다는 배신감 때문에 형언하기 어려운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