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가는 7월.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적 드문 산기슭에 앉아 땀을 식히려는데 계곡 가장가리의 키 작은 나무 사이에서 작디작은 대나무 가지 하나가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조릿대가 밀고 올라온 건가. 큰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내리는 숲의 한쪽 사면을 빼곡히 채우는 조릿대는 계곡 가장자리의 응달에 여간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상한 일이다. 다시 눈을 돌리니 대나무 가지가 안 보인다.
충청도에서 강원도 강릉으로 이어지는 대나무 북방한계선은 지구가 더워지면서 벌써 올라갔을 것이니 수도권에도 조릿대가 무성할 수 있을 텐데, 앙증맞은 대나무는 산들바람에도 나무 뒤로 밀려난 건가. 가만, 이번엔 나뭇잎 뒤에서 그 대나무 가지가 머뭇거린다. 앞으로 갈까 말까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그랬다. 그 여린 대나무 가지는 분명히 머뭇거렸다. 대나무 가지가 아니라 대벌레인 거였다.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니 나뭇잎 뒤에서 머뭇거리는 녀석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산딸기가 더없이 탐스러운 작은 계곡은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을 뒤따르는 대벌레들이 이른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대벌레는 영어로 워킹스틱(walkingstick)이다. ‘걸어 다니는 막대기’라, 그럴싸하다. 대나무처럼 변장한 대벌레는 새와 같은 천적에게 발각되면 마디가 도드라지는 몸을 바람에 흔들리듯 앞뒤로 머뭇거리고 도마뱀과 같은 천적이 다가오면 지나가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버틴다. 어쩌다 천적에게 발이 잡히면 잽싸게 떼놓고 줄행랑을 치는데, 가늘지만 말랑말랑한 대나무 줄기를 물었다 아차 싶은 천적은 잠시 허탈해도 어쩔 수 없을 터. 대벌레는 실 같은 대나무 다리를 금방 재생해낼 것이다.
곤충의 변장술은 유별나다. 돌출한 작은 나뭇가지인 양, 가지를 한쪽 발로 단단히 부여잡고 꼼짝 않는 자벌레를 비롯해 낙엽을 닮은 날개를 가진 네발나비, 알에서 갓 깨어났을 때 새똥으로 위장하다 나비로 변하기 직전이면 부릅뜬 눈 무늬를 꼬리에 드러내는 호랑나비 애벌레도 변장술로 자신을 보호한다. 한자로 죽절충(竹節蟲)이라 칭하는 대벌레는 날아가는 것보다 효과가 좋았던지 날개는 퇴화돼 사라졌고, 가는 대나무 다리에 얹은 10센티미터 불과한 녹색이나 황갈색 몸은 산들바람에도 갈듯 말듯 흔들린다.
낙엽이나 부드러운 흙에서 알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작은 성체로 깨어나는 대벌레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투명한 연녹색을 띈 어린 대벌레는 새순이나 잎을 갉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 여름이 완연해지면서 성체가 되는데 늦은 가을까지 조릿대 주변에 서성이며 주변 활엽수의 잎사귀를 지분거리다 낙엽이 깔린 흙에 700개 가까운 알을 무더기로 낳고 죽는다. 그런데, 어쩌다 조건이 좋아 무리지어 깨어난 대벌레들이 산림을 좀 축내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산림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난리다. 하지만 그건 대벌레의 탓이 아니다. 하도 많은 농약을 뿌려 산림을 단조롭게 망쳐놓는 건 누군가.
사실 숲 속의 다채로운 활엽수들은 대벌레를 비롯한 수많은 곤충과 애벌레들에 뜯기고 뜯겨도 견뎌낼 만큼 충분한 잎사귀를 매달았고, 나무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도마뱀이나 새들은 대벌레와 애벌레들이 무작정 늘어나지 못하도록 솎아주었다. 어디 그뿐이랴. 낙엽 속의 톡톡이들이 대벌레의 알을 가만 두지 않았을 터. 눈이 밝지 않으면 여간해서 보이지 않던 게 대벌레였건만 농약은 대벌레의 천적을 숲에서 일거에 사라지게 만들었고, 숲 여기저기를 파헤치던 사람이 감나무나 밤나무를 양팔간격으로 심거나 땅을 갈아엎어 한 가지 농작물을 바투 심었다. 보드라운 게 영양도 그만인 농작물을 굳이 마다할 리 없는 대벌레는 덕분에 전에 없이 수가 늘었을 따름이다.
대벌레가 많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만이 농약을 뿌리는 건 아니다. 솔잎혹파리나 재선충을 방제하려는 공무원들이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지만 온갖 생물이 다채롭게 보전되어야 하는 국립공원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1990년대 후반, 천적이 뜸한 국립공원에서 무럭무럭 자란 대벌레가 하계생태조사에 나선 대학원생의 눈에 띄어 모처럼 흔쾌히 생태 모델이 되어주려는 찰나였다. 느닷없이 적막을 깨는 모터 소음과 함께 안개처럼 분무되는 농약이 등산로 인근의 숲을 맹렬하게 집어삼키는 게 아닌가. 놀란 대학원생은 카메라 방향을 농약 분무차량으로 바꿨고, 대학원생의 서슴없는 카메라에 놀란 인부는 드잡이가 통하지 않자 양식장 주인을 냉큼 불러왔다.
공원 당국에 겨우 허가를 받아 “송어회를 드시는 손님들 모기 물릴세라 농약을 뿌리는 게” 잘못되었냐며 펄펄뛰는 무지개송어 양식장 주인은 필름을 내놓으라며 근육질의 몸을 함부로 드러내는 게 아닌가. 국립공원에 그것도 미국산 송어를 상업용으로 양식해도 무방한 것인지 단호하게 묻던 대학원생은 협박에 굴하지 않았는데, 그날 저녁, 양식장 주인은 물론이고 국립공원 책임자까지 대학원생의 지도교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이번만 봐달라면서. 이후 그 국립공원에 대벌레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다시 찾을 기회가 없어 알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 강원도와 충청도 일원의 숲에 대벌레가 크게 발생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고 관련학자들은 전한다. 정확한 원인은 구체적으로 연구하지 못했지만, 이미 몇 차례 아열대성 산림병해충이 늘어났던 사례를 비추어 지구온난화로 겨울철 온도와 습도가 높아지면서 부화 성공률이 높아진 걸 그 원인으로 짐작한다. 다행인 것은 대벌레의 급증이 아직 부정기적 현상이라는 점인데, 온난화 진전으로 산림 황폐화가 내륙으로 번져나갈지 전문가는 걱정한다. 온대지방에 아열대곤충이 늘어나는 현상의 원인을 단순히 지구온난화로 돌릴 수는 없다. 우리 산림에 천적까지 유입되지 못했기 때문일 테지만 그에 앞서 균형이 깨긴 생태 공간에 천적이 없는 곤충이 먼저 자리를 잡은 까닭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대벌레는 여전히 머뭇거리는데 사람은 자신의 터전을 파괴하는데 더없이 과감하다. 천적 없는 세상이 반드시 안전할까. 천적을 모조리 없애는 사람은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아열대 경쟁자를 맞이할 대벌레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첫댓글 이번 글은 이른 여름에 맞게 조금 부드럽습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상처 깊다 여기는 제가 쓴 글인데 솜사탕과 같지 부드러울 리 없겠지요. 소재가 말랑말랑하기는 해도 내용은 거칩니다. 그래도 좀 쉬다 가는 분위기로 올립니다. <전원생활>에 기고한 글입니다.
열심히 읽었습니다
으윽__ 백두대간길에서 마났던 엄청난 대벌레의 주검들.. 발을 디딜수가 없었고 나뭇가지에도 주렁주렁 달려서 가지를 건들면 툭툭 떨어져 내렸던, 소름돋던 길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