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에 발간된 작곡자의 동요곡집 <조선동요작곡집>을 통하여 발표된 동요인데, 이 책에 실린 21곡 가운데 이 노래만이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다.
이 노래는 1928년 이일래 교사가 창녕군 이방보통학교에 재직 중일 때 만들어진 곡이다. 그는 학교 뒷산인 고장산 기슭에 자주 올랐다고 하는데, 산토끼가 노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가락을 흥얼거리다 집으로 돌아와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산토끼는 자유롭게 마음대로 가는데 우리민족은 자유가 없음을 한해서 지은 것이랍니다 .
이 노래는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나라를 잃은 한을 담아 여러 가지 가사로 개사 되어 불려졌다. 한 번은 당시 유치원 교사였던 공덕기(윤보선 대통령 영부인)가 발표회 때 산토끼 멜로디에 “내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어디로 가느냐 근화반도 그대 사랑 어디로 가느냐”라고 불러 감옥에 갇히는 일이 있었다. 일본 순사들은 노래의 출처를 알아내고 이일래를 찾아와 노랫말 중 ‘근화반도’란 무엇이냐고 따지고 들었다고 한다. 이일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기지를 발휘해 ‘근화’라는 술집 기생의 이름을 넣어 만든 노래라고 둘러대서 난을 면한 일이 있는데 근화의 참 뜻은 무궁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생전에 술회했다.
당시의 이일래가 작사한 노랫말은 “산토끼 토끼야 너 어디로 가나 / 깡충깡충 뛰어서 너 어디로 가나 / 산고개 고개를 나 넘어 가아서 / 토실토실 밤송이 주우러 간단다”로 훗날 부르기 쉽고 어감이 편리한 현재의 노랫말로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
1938년에 발간된 작곡자의 동요곡집 <조선동요작곡집>을 통하여 발표된 동요인데, 이 책에 실린 21곡 가운데 이 노래만이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다.
이 노래는 1928년 이일래 교사가 창녕군 이방보통학교에 재직 중일 때 만들어진 곡이다. 그는 학교 뒷산인 고장산 기슭에 자주 올랐다고 하는데, 산토끼가 노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가락을 흥얼거리다 집으로 돌아와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산토끼는 자유롭게 마음대로 가는데 우리민족은 자유가 없음을 한해서 지은 것이랍니다 .
이 노래는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나라를 잃은 한을 담아 여러 가지 가사로 개사 되어 불려졌다. 한 번은 당시 유치원 교사였던 공덕기(윤보선 대통령 영부인)가 발표회 때 산토끼 멜로디에 “내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어디로 가느냐 근화반도 그대 사랑 어디로 가느냐”라고 불러 감옥에 갇히는 일이 있었다. 일본 순사들은 노래의 출처를 알아내고 이일래를 찾아와 노랫말 중 ‘근화반도’란 무엇이냐고 따지고 들었다고 한다. 이일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기지를 발휘해 ‘근화’라는 술집 기생의 이름을 넣어 만든 노래라고 둘러대서 난을 면한 일이 있는데 근화의 참 뜻은 무궁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생전에 술회했다.
당시의 이일래가 작사한 노랫말은 “산토끼 토끼야 너 어디로 가나 / 깡충깡충 뛰어서 너 어디로 가나 / 산고개 고개를 나 넘어 가아서 / 토실토실 밤송이 주우러 간단다”로 훗날 부르기 쉽고 어감이 편리한 현재의 노랫말로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
첫댓글'산토끼 토끼야' 노래에 얽힌 유래에 여러 사연이 있었군요. 이 노래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만큼 가장 애창되는 노래,산토끼 토끼야... 고 3때 백합료 마지막 날, 어머니와 함께 하는 자리에서 모녀합창 순서에 엄마와 저는 '산토끼 토끼야'를 불렀습니다. 어느 인테리 엄마는 '케세라세라'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첫댓글 '산토끼 토끼야' 노래에 얽힌 유래에 여러 사연이 있었군요.
이 노래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만큼 가장 애창되는 노래,산토끼 토끼야...
고 3때 백합료 마지막 날, 어머니와 함께 하는 자리에서 모녀합창 순서에 엄마와 저는 '산토끼 토끼야'를 불렀습니다.
어느 인테리 엄마는 '케세라세라'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노래 부를줄 모른다고 뺑소니 칠라하면 <산토끼 토끼야> 불러라고 하지요 그만치 우리국민의 애창 동요곡이지요.동영상에 산토끼들이 마루가 꺼지도록 뛰는 모습 너무 귀엽습니다.
무심히 듣는 이 동요에 그런 깊은 사연이 있었구나.
주권을 잃은 어려운시절의 가슴 찡한 얘기다.
경쾌하게 부르던 동요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지난 일요일 방송에 여행가 송일봉씨의 우포늪과 창영지방 얘기에서 들었습니다. 공덕기 여사는 공덕귀의 오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