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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22: 1~14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
호산나교회 정태경 목사 2018년 11월 4일 주일 설교
< 백년을 살아보니 : 김형석 교수님의 행복한 삶에 관한 책 >
“ 감사하는 인생이 행복하다, 우리는 받은게 너무 많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모두 남에게서 받은 것이다”
내삶이 그렇다. 옷, 신발, 안경, 치과 치료, 한의원치료, 머리카락, (머리 숱, 염색 안하는 것도 은혜^^)
테니스로 건강한 몸, 부지런한 생활, 긍정적인 생각, 도전하는 정신등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물려받은 것,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하나님과 수많은 성도들의 은혜로 된 집이다. 1층 교회, 2층 아동센터, 3층 사택,
성경 읽을 때 지혜와 계시를 주시는 것 ( 성령의 도우심 ) 주의 종으로 부름받아 신대원 공부하고 졸업,
한남대 대학원 공부 (은혜로 지내왔다) 우리 아이들의 삶 ( 시골로, 대전으로 이사, 학교, 대학진학, 군대 )
교회 (생초교회, 둔산중앙교회, 호산나교회) 섬기는 모습도 나의 갈 길을 주님이 인도하셨음을 고백한다.
나도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았다 (부모님 반찬, 형제 자매들 굴, 생선, 성도들 감, 배추, 김치,,)
가족들의 도움과 헌신이 아닌게 없다 ( 아내의 기도와 사랑과 수고에 감사, 세 아들의 순종과 협조에 감사)
또 기도로 물질로 아름다운 섬김과 희생으로 수고한 모든 성도들의 헌신과 사랑 덕분에 여기 까지 왔다
정말 모든 것이 감사하다^^ ( 인사 : 감사하는 인생이 행복합니다 )
<문제제기> 평형을 뒤집음(갈등) - 본문 배경 :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어려운 시험을 주신다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다
이삭이 누구인가 아브라함의 나이 100에 사라의 나이 90세에 생리가 끊어지고 인간적으로는 아이들 낳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셔서 겨우 얻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다 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때는 언제고 이제 겨우 자라서 나무를 지고 갈 만큼 자랐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멋진 소년이 되었는데 이 아들을 번제로 죽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인의 사고에는 몇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 그중에 하나가 3중구조, 3각구조라는 것이다)
3중 구조는 계속 같은 의미의 단어를 다른 말로 되풀이 해서 강조하는 강조 용법이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같은 의미를 반복한다
3각 구조는 하나님과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세가지 측면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하나님) 쉬지말고 기도하라( 이웃) 범사에 감사하라 ( 나 자신 )
민수기 6: 22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하나님 )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이웃)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나)
2절 다같이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은 다 같은 인물을 강조하는 의미다.
그중에서 제일 강조되는 단어가 중간에 있는 단어다. 네 아들이라 하면 여러명의 아들이 있을 수 있다
여러 아들이 있거나 또 딸이 있으면 한명은 주님께 드릴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삭은 웃음, 기쁨, 위로라는 의미다. 이삭을 낳고 그 부모가 웃음과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착한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라면 주님이 알아서 돌봐주시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네 사랑하는 독자를 드리라 한다면 좀 생각해보아야할 상황이다.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독자다
그것도 노년에 얻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부모가 애지중지 사랑하는 아들이다. 특히 엄마 사라에게는 생명보다 귀한 아들이다. 만약 두사람이 물에 빠져서 한사람 밖에 구할수 없는 상황에서 사라를 보고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중에 한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사라는 틀림없이 아들을 선택할 상황이다
사라가 이 상황을 알았다면 사라는 못가게 했을 것이다. 영감이 잘못 들었다면서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110세 넘은 이 영감을 차라리 번제로 데려가라고 항의 할지도 모른다
아마 하나님도 그런 상황을 미리 짐작하시고 사라에게는 아들을 바치라고 말씀하시지 않은 것 같다
아브라함도 그런 상황을 너무 잘 알기에 아브라함은 뜬눈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뭔지 뜻이 있겠지 결단하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말없이 떠난다.
하나님은 이런 어려운 문제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를 시험해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상황에서도 좋으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수 있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차마 내 사랑하는 독자를 드릴 믿음이 없을 것 같다. 차라리 나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나를 데려가라고 하나님께 항변할 것 같다. 문득 목회자로 처음 부름받아 시골생초교회에서 사역할 때 큰아들 의진이가 교통사고 당한 것이 생각났다. 의영이 말에 의하면 형아랑 자전거 타고 내려오다가 코너 길에서 달려오던 차량에 부딫혀서 공중으로 붕 떠서 날랐는데 그래서 장로님이 형아를 차에 태워서 진주 병원으로 데려 갔다고만 하는 상황에서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아무 연락도 안되는 답답한 상황에서 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한참 많이 울었다. 그동안 아빠로서 잘 못해줘서 미안하기도 하고 아빠가 괜히 목회한다고 시골로 안갈려고 하던 아이들을 시골로 데려가서 이런 사고가 났나 하는 후회도 되고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주님이 나에게 물어보시는 것이 이 아들이 잘못 되어도 너는 나를 신뢰할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울면서 대답한 것이 “ 네 그래도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 이 아들이 잘못 되어 다리가 부러지고 장애가 남아도 혹시 더 심해져서 수술해도 생명도 주님의 것이니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동안 귀한 아들을 저에게 선물로 주셔서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의진이 때문에 행복했던 숱한 추억을 떠올리며 감사 기도했고 그래도 하나님은 좋으신 주님임을 믿고 큰 이상 없기를 기도했다. 그래서 허벅다리가 부러져 수술하고 성장판도 안 다치고 흉터만 남고 이렇게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서 너무 감사하다.
‣원인 (갈등분석, 심화 – 절망감) -원인 : 심화 또 한가지 강조 점이 나온다
2절 다같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 모리아 땅,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 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중 가운데 단어를 강조한다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이 중요하다.
모리야 산 ( 의미: 하나님이 나타내 보이다, 성전산, 성전이 건축된곳,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시던 곳, 기도하시고 승천하신 곳 )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무 관계도 없는 하나님의 성전이나 나타남이 아무것도 없는 그냥 다른 사람의 땅일 뿐이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림으로 의미가 있는 유명한 산이 되었다. 거기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이 된 것이다
아무데서나 내가 편한 곳에서 번제를 드리지 말고 하나님이 일러준 한 산에서 거기 가서 번제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러준 산에 가기위해서는 3일이라는 먼길을 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또 나무와 불을 준비해서 가는 헌신을 해야한다
또한 번제물이 될 아들을 데리고 가면서 가만히 지켜보아야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침묵하면서 믿음으로 간다
침묵은 순종을 의미한다. 불평하는 마음 들어도 항변하는 마음 생겨도 뭔가 뜻이 있겠지 하고 주님께 맡기면서 가고 있다
이삭이 나중에 물어본다 아버지 나무와 불은 있는데 번제물은 어디있나요 물어볼때 아브라함은 번제물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 하실
것 이라는 믿음으로 대답한다. 침묵하면서 순종을 배우고 아직 제물이 보이지 않을 때에 믿음을 보여야하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일러준 한 산,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거기 가서 예배를 드려야한다. 단순히 교회 가서 예배 드리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는 가를 보는 것이다. 내가 중간에 포기하거나 그냥 아무데서나 내 편한대로 번제를 드렸다면 아들 이삭은 그냥 헛된 번제물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서 실패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지시한 땅에 가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양을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양을 모리아 산에다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가 중간에 내 마음대로 말씀을 편한대로 해석해서 행동하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그 산이 우리의 믿음과 경험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아도 순종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다. 모리아산이 성전의 터가 되고 예수님이 거니시던 장소가 되고 죽어시고 승천하신 거룩한 땅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주님이 원하시는 그곳까지 믿음으로 갈수 있는 순종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해결(아하!) (클라이막스-극적인 반전) - 하나님은 언제부터 한 숫양을 준비하고 계셨을까?
그 숫양이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아니면 미리부터 가서 나무에 뿔이 걸려 제물로 준비되어 있었을까?
미리 가 있었다면 아브라함이 당연히 보고 그것이 제물인줄 알고 그 양을 제물로 드렸을 것이다
하나님이 제물을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믿음으로 말했는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제물이 없다.
결국 아브라함은 나무를 벌여놓고 아들 이삭을 잡아 결박하여 그 아들을 번제물로 드린다
그냥 칼로 내리치는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실재로 칼을 힘껏 내리친다. 그때 하나님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온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네가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고 드리는 것을 보고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한 숫양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는게 비로소 보인다
하나님이 이 숫양을 이끌고 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 , 그 숫양이 보이는 때가 있다.
내가 말씀에 순종하여 끝까지 가야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그 숫 양도 지금 올라오고 있다. 내가 중간에 포기하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정상에 올라가야 다른 방향에서 올라오는 숫양이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께로부터 오는 기도 응답이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 눈에 안 보여도 주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숫양을 준비하셔서 끌어 오고 계시는 것이다
* 복음 경험 :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시험을 하실까?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가를 물어보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노년에 얻은 사랑하는 아들, 소중한 독자, 이삭 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를 물어보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주님을 경외한다는 사랑의 표현으로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림으로 믿음을 증명한다
히브리 사고중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3가지 의미는 대표성, 전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수기 13장 가나안 정탐한 사람들이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따서 가져왔다고 말씀한다
가나안에 있는 여러 가지 과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고 또 그것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다른 과일도 많이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 나무로 표현할 때가 많다.
달고 맛좋은 무화과나무 같고 충실한 열매가 가득 맺힌 포도나무 같고 잎이 푸르고 싱싱한 감람나무 같다고 표현한다. 모두가 축복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할 때는 쓸모없는 무화과나무 같고 먹지 못하는 들 포도나무 같다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3번째 나타나셔서 빈그물 들고 있는 그들에게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시고 물위에서 올라온 후에 조반을 먹이시고 베드로에게 3번 물어보시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이 세 번의 질문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표성의 원리로 보면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에게 먼저 물어보신 것이고
그때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을 사랑하는가? 3번 물어보시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 자녀된 태경아 네가 다른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어보신다면 나는 뭐라고 주님께 대답할 것인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우리도 주님 사랑한다고 3번 대답하자
여기서 뭐뭐~보다는 비교급 의미를 담고 있어서 네가 사랑하는 이런것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신다 황제의 논리가 판치는 디베랴 바다 같은 세상에서 세상의 물고기, 그물, 친구들, 그런 것 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나는 세상의 이런것들 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할수 있는가?
또한 주님이 잡히실 때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3번이나 사랑의 고백을 하게 함으로 상처의 치유와 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저주하던 입술이 이제는 사랑을 고백하는 입술이 된 것이다. 우리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던 입술에서 이렇게 사랑의 표현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내 입술에서 얼마나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미안하다고 고백하고 있는가?
뿐만 아니라 주님을 사랑한다고 3번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3번. 말씀하시면서 주님이 맡기신 사람들을 돌보는 목회적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신다
양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문에는 어린양, 중간 양, 장성한 양이라고 사용함으로서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어린양, 부족한양, 병든양, 건강한 양, 힘세고 장성한 양, 늙은양, 이 모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주님이 맡겨주신 내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후에 사도행전에서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주님이 주신 사명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돌아보고 섬기고 일으켜준다. 그들이 가는 곳에 성전 미문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병자가 일어나고 죽은자가 살아나고 수많이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고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고 복음이 증거되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탄다 . 우리 모두가 그런 멋진 믿음의 삶을 살아가길 축복한다. 아멘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누가 내 이웃인가?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맡겨주신 사람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어린양들, 아이들, 도움이 필요한 약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 병든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돌아보라
장성한 양들, 교회 일군들과, 주의 종들과 선교사님들과 정치 경제 교육의 지도자들 위해서 기도하라
결과기대 -우리가 해야 될 일 ‧
어제 다니엘 기도회 강사 : 소아 조루증 희귀 질병을 앓는 홍원기 아빠 홍성원 목사 간증 큰 울림이 왔다
요 9장의 말씀이 이해가 되더라. 나면서 소경된 자를 보고 사람들은 누구의 죄 때문인가? 조상의 죄인가 본인이 죄인가 생각할 때 주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는 대답을 보여주신다
5살 때 질병에 걸려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들을 둔 아빠의 숱한 원망의 시간이 이해가 되었다
목사이기 전에 아빠로서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지내면서 주님이 나타내 보여주신 은혜를 나누고 있다
시간의 소중함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가르쳐준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을게 아니라 지금 사랑하는 아이와 같이 예배드리고 웃고 맛있는 것 먹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더 많이 사랑하고 느끼고 만지고 웃고 즐겁게 바라보자
관계의 소중함이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삶의 용기를 잃지 않았던 것은 옆에 정말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집사님들과 할머니 권사님들의 손길을 잊을수 없다
“전도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기도할게요”하고 묵묵히 잡아주던 그 손길이 그와 아이를 살렸다고 고백한다. 그 친구들의 편지 “원기야 힘내 우리가 기도할게” 하던 그 아이들의 사랑의 편지가 잊을수 없다
사명의 소중함이다. 왜 원기를 우리 가정에 보냈을까? 고민하다가 깨달은 것은 아하 내가 감당할만 하니까.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줄수 있으니까 또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어서 원기를 사랑해 줄수 있으니까 우리 가정에 보내주신 것 같다고 한다. 또 그 아들을 돌보다가 주변에 다른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게 되었다.
소아조루증 환자 전세계 123명의 아이들. 시한폭탄 같이 언제 우리 곁을 떠날지 모르는 소중한 아이들.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무사히 20대를 맞이 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아빠의 꿈이 나를 울린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나 성도들에게 그냥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기보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사는 것 같다 이 소중한 시간에 더 사랑하고 더 웃고 더 기도해주고 더 축복해주고 더 위로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모두들 사랑하고 축복해요^^ 더 힘내길 더 행복하길 더 웃으며 더 많이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길 기도한다
< 결단 >
감사하며 삽시다.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며 삽시다,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하며 삽시다
내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이 원하신다면 기꺼이 드리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까지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주님이 준비하신 기도의 응답이 보일 때 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기도의 응답도 같이 올라 오고 있습니다.
번제물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선포하며 올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여호와 이레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서 아름다운 간증을 남기는 복된 주인공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
<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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